뭉친 ‘반문연대’ 국민의힘은 어디로?

무시무시한 싸움닭들 뭉쳤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불협화음’과 ‘투트랙 전략’이라는 상반된 의견이 제기된다. 김 비대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다. 당의 투쟁 노선에 대한 고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가 왜 거길 갔는지 잘 모르겠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비상시국연대의 공동대표직을 수락한 것을 두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비상시국연대는 범보수 단체로, 문재인정권의 퇴진을 주장하며 지난 10일 출범했다.

일단 조용
기싸움부터?

무소속 홍준표 의원, 국민통합연대 이재오 집행위원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연석회의에는 국민의당 이태규 사무총장이 참석했고, 무소속 윤상현 의원을 비롯해 40여개의 보수 시민단체가 참석했다. 이들은 야권 대통합을 위해 내년부터 전국을 돌며 반정부 투쟁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의아스러운 점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투톱을 이루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비상시국연대의 공동대표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정권이 조기 퇴진하고 폭정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데 범야권은 뜻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안다”며 “국민의힘도 해야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들은 ‘반문재인’이라는 연결고리로 모였다. 하지만 추구하는 투쟁 방식이 각기 다르다. 비상시국연대는 ‘집토끼(강성 지지층)’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다. ‘태극기부대’와 같은 극우 세력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외부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이들과 다시 연대하면 당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비상시국연대와 손을 잡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김 비대위원장에게 “극우세력과 연대해 분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국민의힘의 행보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친박·친이 비상시국연대
김부터 제거하고 문 겨냥?

김 비대위원장의 대답은 ‘중도’였다. 그는 지난 15일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데 대해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당내 반발을 고려해 사과 수위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 그는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과문에서 김 비대위원장은 보수정권이 집권할 당시 여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짚었다.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민생과 경제에 힘쓰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었다. 용서, 사과, 사죄, 반성과 같은 단어만 10여차례 반복했다. 이는 김 비대위원장의 단독 작품이었는데 취임 이후 꾸준히 공들여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대위원장은 원래 지난 9일에 대국민 사과를 하려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지금 아니면 영영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사과와 정치’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선거에 임박해 사과한다면 ‘쇼잉’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게다가 필리버스터 정국이 끝난 후라 여당의 독주가 돋보일 때다. 야당의 ‘자성’으로 메시지 증폭 효과까지 노려볼만한 시점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 의도는 명백했다. 취임 이후 질릴 정도로 언급했던 ‘쇄신’이다.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을 잘라내고 ‘산토끼’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 사과
물거품?

지난해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 세력과 손잡았는데 강성 지지층만 바라봤던 당의 몰락은 처참했다. 이후 김 비대위원장은 이들과의 선을 확실히 긋고 외연확장에 힘써왔다. 전국 단위 선거 연속 4연패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함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 이후 당내에선 찬사와 반발이 동시에 터졌다. 초·재선 의원들은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줬다. ‘성찰은 새로운 시작의 첫 단추’란 내용의 지지 성명을 내기도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과 기자회견에 동행했다.

중진 의원들 역시 김 비대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친이(친 이명박)계로 분류됐던 4선의 박진 의원도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를 100%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비상시국연대 지도부의 입장은 결이 달랐다. 복당이 어려워져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의원은 “배알도 없는 야당”이라고 비난했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는 개인적 정치 욕망을 위장한 속임수”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결백을 주장했다.

김 비대위원장의 사과에 반대하는 이들은 지지층의 분열을 우려한다. 그의 ‘좌클릭’에 대해 TK(대구·경북) 핵심 당원들의 반발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김 비대위원장이 수도권 민심에만 매몰돼 이들을 ‘패싱’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답은 과거에 있다. 이들에게만 집중했을 당시 당은 어김없이 패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재보궐선거 역시 보나마나 국민의힘의 ‘필패’다. 국민의힘은 당 이름을 연이어 3번이나 바꾸며 쇄신을 외쳤지만, 비호감 이미지는 벗지 못했다.

장외 투쟁
과거 회귀?

10년간 야당 정치를 했던 민주당은 어땠을까.  정권을 뺏길 때마다 폐족 선언 등으로 끊임없이 처절하게 반성했다. 당명도 7번이나 바꾸며 과거와 절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힘이 민주당과의 전략 싸움에서 한참 밀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극우와의 절연. 말은 쉬워 보이지만 국민의힘 내부는 복잡하다. 어느 정당이나 강성 지지층의 뜻을 역행하는 것은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들만 바라볼수록 민심과 멀어지는 법이다. 국민들은 당이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냐고 한다. 정부의 실정이 갈수록 심화되고, 여당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을 뽑지 않겠다는 중도층의 마음은 완고하다. 당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내에서는 산토끼는 물론이고, 집토끼까지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강성 지지층들은 반발하고 있고, 중도층은 국민의힘을 뽑지 않겠다고 한다. 집토끼마저 놓치면 선거에서 영영 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당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지금 시점에서 강경 세력을 어느 정도 ‘보듬는 행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주 원내대표가 비상시국연대의 공동대표직을 맡은 것 역시 같은 맥락 아니냐는 것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산토끼를, 주 원내대표는 집토끼를 타깃으로 하는 ‘투트랙’ 그림이다.

하지만 정계에선 두 지도부의 다른 행보를 전략이 아닌 분열로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주 원내대표의 ‘합류’로 강경 투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당내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전략’인가 ‘분열’인가
주호영 원내대표 노선은?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장 이들과 선을 그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당이 할 일과 시민사회가 할 일은 따로 있다”며 “범야권연대 개념으로 투쟁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그분들은 그분들대로 하시고, 당은 당대로 할 일이 있다”며 당 차원의 공식 참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장외투쟁은 절대 안 할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에 대한 국민의힘의 딜레마는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장외투쟁과는 선을 긋는 원내투쟁을 기본방침으로 해왔다. 하지만 여당의 개혁 입법 과정에서 의석 수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강성 지지층의 호소가 두각을 보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반문연대는 국민의힘에 잠시 매력적일지 모른다. 집토끼들 사이에 있으니 결집된 느낌이 드는 데다 소위 말하는 ‘그림’도 된다. 하지만 당의 분열은 당연한 수순이다. 비대위 체제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당이 중도층을 끌어안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한 배경이다.

비대위 체제의 성패는 당장 내년 보궐선거의 흥망과 직결된다. 내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선을 넓혀 보수가 결집해야 한다는 데 야권 내 이견이 없다. 하지만 투쟁 노선의 괴리감이 클수록 ‘동상이몽’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동상이몽
노선 괴리

보수의 결집을 위해 필요한 건 전략과 합리적인 목소리다. 공당의 비대위가 중심이 되어 외연확장의 노선을 걷는 만큼, 야권은 정부 실정에 대한 대안 제시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투쟁보다는 부동산 정책과 같은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꼬집는 방식이다. 당내에서는 백신 수급, 부동산 대안 정책, 인사 청문회에서의 인사검증 등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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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