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깨끗한 피부에 순수한 외모, 다소 느린 말투는 배우 박혜수의 시그니처다. 눈웃음으로 무장한 강력한 귀여운 매력의 소유자다. 그런 박혜수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다소 촌스럽고 평범한 스타일링으로 변신했다. 뚜껑을 쓴 듯한 헤어스타일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늘 편안한 점퍼에 다리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고수하는 심보람이다.
신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박혜수가 연기한 심보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많이 닮아있다. 좋아하는 건 모르지만, 싫어하는 건 분명히 아는 20대 직장인,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기보다 남의 감정에 자신을 이입하는 게 더 빠른 성품이다. 누가봐도 착한 이 아이를 박혜수가 연기했다.
시그니처
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대회 우승자지만, 현실은 상고 출신의 가짜 영수증을 조작하는 게 그의 주업무다. 예쁜 얼굴을 가렸다. 기존의 귀여움 대신 촌스러움으로 변모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수도 있지만, 박혜수는 높은 만족도를 드러냈다.
“아성 언니나 솜 언니는 멋스럽고 개성 있게 스타일링을 했는데, 저는 코트도 잘 안 갈아입기로 했어요. 가방도 투박하고, 제일 작은데도 신발도 제일 낮은 걸 신었고요. 솜 언니는 힐도 길었어요. 그 조화가 재밌었던 것 같아요. 포스터가 나왔는데, 어떤 분이 댓글로 ‘그래서 박혜수는 어딨는 거야’라고 남겨주셨어요.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죠.”
심보람은 착한 성품에 공감 능력이 좋지만, 삶에 대한 열정은 박약한 인물이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저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게 즐거울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지 않는다.
무언가 많이 포기한 듯한 이미지가 심보람이다. 성장을 도모했던 1995년에 2020년 20대 여성이 들어간 느낌이다. 영화의 배경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2020년의 관객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보람이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심한 성격이지만, 편한 사람들하고 있을 땐 잘 까불거리고 할 말도 다 하고요. 특히 공헌철(김종수 분) 부장과의 서사가 깊게 남아요. 요즘에도 많은 사람이 할 법한 고민을 보람이가 공 부장님께 털어놓잖아요. 그 고민에 대해 공 부장님은 멋있게 조언을 해주시고요. 그런 멋진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아마 보시는 분들도 많이 공감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 부장은 길을 잃은 듯 보이는 보람에게 “가만히 있으면 재미없으니, 아무거나 해봐. 그러다 보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얻어걸리겠지”라며 차분히 조언을 해준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위로를 받았다는 박혜수는 촬영 내내 자신을 많이 되돌아봤다고 털어놨다.
“현재 사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죠”
“고, 연륜·여유 있는 선배…배려하는 프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며 살았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저는 그동안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걸 모르고 있다가 든든하게 지켜주는 언니들이 생기니까 ‘내가 조금 외로웠고 힘들었었구나’를 알게 됐어요. 제가 사랑받고 싶었다는 걸 알았어요.”
박혜수는 이번 작품을 통해 오랫동안 사랑하고 싶은 두 언니를 얻었다고 했다. 고아성과 이솜이 그 인물이다. 촬영 내내 같이 있던 것도 모자라, 한 데 모여 잘 때까지 수다를 떠는 세 사람을 위해 스태프는 아예 한 방을 내줬다. 온종일 함께 지내라는 의미였다. 그 이후로 세 사람은 그간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우정을 쌓았다고 한다.
“아성 언니는 경력에서 나오는 연륜과 여유가 있어요. 남들은 모를 고충이 있을 텐데 엄청 따뜻한 사람이에요. 배려심도 있고요. 일할 때는 프로예요. 그 변모하는 모습들이 정말 멋있어요. 나중에 선배가 되면 아성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솜 언니는 첫 인상은 차가웠는데, 알면 알수록 진국이에요. 솜 언니는 사람을 지켜보다가 뭘 원하는지를 완벽한 타이밍에 해줘요.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를, 공감이 필요하면 공감을, 때로는 선물도 주고요. 세심하게 챙겨주는 언니에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바탕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분위기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박혜수는 연기를 하는 동안에도 두 언니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언니들이 눈빛으로 보내주는 신뢰가 있었어요.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신뢰를 보내준다는게 정말 크다는 걸 경험했어요. 언니들이 저를 보람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연기하기 정말 편했어요. 언니들 덕분에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 뿐이 아니다. 두 언니의 사랑은 작품 후유증도 사라지게 했다. 작품과 인물에서 빠져 나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박혜수는 이번 작품만큼은 공허함이 적었다고 한다.
“사실 저는 작품이 끝나면 일상으로 바로 못 돌아오는 편이에요. 길든 짧든 혼란을 겪어요. 한 마음 한 뜻으로 혼신의 에너지를 뿜은 뒤에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에너지가 갈 곳을 잃어요. 그때가 참 힘들어요.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공허함이나 외로움이 없었어요. 워낙 자주 연락하고 만나다 보니까 공허할 틈이 없었어요.”
박혜수의 다음 행보는 드라마 <디어엠>이다. 화제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기대작이다. SBS <K-POP 스타>를 시작으로, JTBC <청춘시대>, 영화 <스윙키즈> 등 다수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꿰차고 있다.
갈망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 갈망이 있는데, 순탄하게 가고 있는 느낌이에요. 한 편으로는 내게 주어진 기회들이 값진만큼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 성장 속도(실력)가 그에 맞게 따라가야 하는데 항상 걱정이 앞서기도 해요. 매 순간 치열하게 준비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도 이번 작품을 통해 절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요. 스스로를 더 아껴줄 수 있게 됐어요. 보듬어도 주고 칭찬도 해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