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치른 ‘김종인 비대위’ 내홍 막전막후

‘불안한 동거’ 하는 일마다 브레이크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힘이 내년 재보궐선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경선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약점을 파고드는 당내 변수들이 생기면서, 비대위 순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온다.
 

▲ 생각에 잠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당 체질 개선에 과감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김 위원장의 강점과 한계점은 뚜렷한 편이다. 관록이 두터운 정치가이자 경제 전문가인 그는 탁월한 이슈 메이킹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다소 독단적인 리더십을 가졌고, 원외 인물로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비대위 역할
다시 시험대

최근 그의 약점을 파고드는 당내 여러 변수들이 생기면서 당 지도부들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위한 경선준비위원회(이하 경준위)를 띄웠다. 조기 출범으로 일찌감치 선거를 흥행시키자는 의도였지만, 발족 과정서 인사를 둘러싼 잡음들이 터져나오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분위기다.

지도부의 계획대로라면,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당의 선거대책위원회를 이끄는 것으로 내정됐다. 유 전 부총리는 박근혜정부 국토교통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았던 인물이다. ‘친박’색이 짙은 편은 아니지만, 박근혜정부 인사라는 점에서 당 개혁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비대위 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김 위원장은 유 전 부총리 내정을 사흘 만에 철회하고, 후임으로 김상훈 의원(대구서구)에게 경준위원장직을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인선에 대한 권한을 김선동 사무총장에게 위임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 전 총리의 내정설로 파문이 일자 빠르게 인사를 교체했다. 김 의원은 당내 주류로 꼽히는 TK(대구·경북) 의원으로, 비교적 계파색이 옅어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인사 단행으로 그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경준위원장과 같은 요직을 두고 당 지도부와의 어떤 소통도 없이 번복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경준위 총괄을 맡았던 김선동 전 사무총장을 향해 ‘무슨 일을 이런식으로 하느냐’고 강하게 불만은 표출하기도 했다.

창준위 조기 출범…선거 분위기 띄워
선수가 심판으로? 미리 치른 ‘홍역’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 역시 “모든 정치 일정과 인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비대위의 문제가 다시 한 번 외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을 향해 “‘마이너스의 손’을 휘두르고 있다”며 당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과 주 원내대표의 갈등설이 떠오르자, 당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진화에 나섰다. 주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언론서 갈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며 갈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준위는 내년 재보궐선거의 후보 선출 방법, 경선 규칙 등에 대해 재검토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다만 예상보다 경준위의 역할이 막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경준위에 되도록이면 오는 11월 중순까지 활동을 마무리할 것을 주문한 상태다.
 

▲ ⓒ고성준 기자

조기 경준위 출범으로 당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서울시장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들이 ‘당연직’으로 경준위에 합류하게 되면서다. 선수가 ‘심판’이 되어 룰을 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당내 반발이 제기됐다.

정원석 비대위원은 “공정성 확보 차원서 경선준비위 소속 전원은 서울·부산시장 출마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진정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옳다”는 소신을 밝혔다.

서울시장 출마가 점쳐지는 인사들이 경준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당은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잔류한 경준위원이 차후 재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에는 내홍이 다시 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경준위의 출범으로 그동안 잠잠했던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군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내년 재보궐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던 일부 후보들이 본의 아니게 때 이른 ‘커밍아웃’을 하게 된 셈이다.

불안불안∼
뇌관 터지나

지난 13일에는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이 경준위를 사퇴한 데 이어, 다음날인 14일에는 김선동 전 사무총장이 경준위에 사의를 표했다. 지 원장은 경준위 첫 회의서 “재보선 승리를 위한 전략을 만드는 여의도연구원장으로서 경선 위원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의 의견을 밝혔다.

또 김 전 총장은 한 달 전쯤 서울 마포에 사무실을 내고 재보궐선거 경선에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울 도봉을서 18대·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지냈다.

김 위원장은 이를 두고 “본인 스스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가겠다는 결심이 선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사실상 김 전 총장이 경질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가 ‘주자’로 뛸 준비를 하면서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김 위원장이 평소 못마땅해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는 오신환 전 의원도 경준위원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 김선동 전 국민의힘 사무총장

오 전 의원은 “경선준비위원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했다. 상황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데 시작부터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년 재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내에선 선거관리위원회가 이후에 따로 꾸려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김 위원장도 경준위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당내 불만이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몰라, 한 달 남은 경준위의 순항은 미지수로 남은 상태다.


이번 잡음은 김종인 비대위에 선명한 상처를 남기면서, 리더십을 다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미 김 위원장의 리더십은 여러 차례 한계에 부딪히면서 비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잡음 없다?
뒤숭숭∼

지난달 당 상징색 논란이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새 당명에 걸맞은 상징색을 빨간색을 주축으로 3가지 색을 추가해 혼용하는 데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파랑색과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을 상징하는 빨강색, 정의당의 노랑색을 모두 합친 색이었다.

정치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당의 확장성을 넓히기 위한 김 의원장의 의도가 담겼다. 하지만 기존의 분홍색을 유지하자는 당내 반발에 부딪혀, 발표를 수차례 미룬 끝에 노란색을 빼고 하얀색을 넣는 절충안이 확정했다.

이 외에도 상임위원장 재분배 문제로도 당내 불만들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전에 원 구성 협상 과정서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가져가자, 18개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포기했다. 김 위원장이 ‘알짜 상임위’ 7개를 주겠다는 민주당의 제안을 거절하면서다.

하지만 상임위원장을 맡지 못한 야당의 현실은 냉혹했다. 국정감사 시즌이 되자 야당은 국감장에 설 증인과 참고인 채택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진 의원들 사이서 국감 이후 원 구성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협상으로 민주당과 먼저 상임위원장직을 ‘11대7’로 재배분 하자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제기된 의견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위원장은 “이러다가는 비대위를 더 끌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며 강한 배수진을 쳤다. 그는 당이 총선 참패에도 여전히 ‘기득권 문화’에 젖어있음을 지적했다.

한 개의 상임위원장직도 갖지 않기로 했으면 최소한 전반기 국회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사사건건 당내 반발 시끌
김의 리더십 한계 지적도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배수진은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처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그의 불만도 반영된 것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정거래 3법을 두고 주 원내대표와 김 위원장의 의견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당내 갈등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정부와 민주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있는 이른바 공정경제 3법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법안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으로 진보진영에서 제기돼온 법안이다.

하지만 주 원내대표를 포함한 당내 중진의원들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보수정당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을 향한 싸늘한 민심 역시 비대위를 흔드는 요인이다.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힌 채 좀처럼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비대위 출범 초반에는 김 위원장을 반대하는 이들도 당 지지율이 점점 더 올라 지켜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최근 여당발 악재에도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점점 하락세를 타면서 김 위원장을 지지했던 이들도 이탈하는 분위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의 중도하차설도 흘러나온다. 다만 지도부에선 이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을 그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잘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내년 재보궐선거 때까지 비대위를 맡는 조건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김 위원장 역시 “당내 갈등이나 어떤 문제로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마지막 희망
이대로면?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 선거서 내리 4연패를 하면서 김종인 비대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여당발 대형악재에도 큰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형국이다. 내년 선거는 2022 대선을 위해 국민의힘이 반드시 승기를 잡아야 하는 선거다.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 여부는 내년 재보궐선거의 결과로 성패가 나뉠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의 당 쇄신이 실패하면 국민의힘의 정권 재창출 꿈은 물 건너갈 공산이 높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힘 새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새 사무총장에 정양석 전 의원을 내정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정 전 의원은 서울의 대표적 험지인 강북구 갑에서 18대, 20대 의원을 지냈다.

지난 4월 21대 총선서 낙선한 뒤 총선백서 집필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 서울시당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 전 의원은 전남 보성서 태어나 광주 살레시오고와 전남대를 졸업한 뒤 84년 민정당 공채로 정치에 뛰어들어 주요 당직을 거쳤다.

김 위원장은 전임자인 김선동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14일 오전 국회로 정 전 의원을 불러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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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