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한국당 연수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일이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동료 직원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덕으로 담근 술을 선물했다.
물론 은근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거시기에 끝내준다’고.
더덕
거시기에 끝내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 친구가 돌아가자마자 뚜껑을 열고는 급하게 한잔 들이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하기도 하지만 그 냄새가 마치 카바이트 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카바이트 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오래전에 포장마차를 방문하면 종종 접하고는 했는데 상당히 불쾌하고 사람이 죽기 일보 직전 몸에서 풍겨나오는 그 냄새와 아주 흡사했다.
그런 연유로 거시기를 떠나 그 술을 하수구에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흐르자 그 친구 남의 속사정은 모르고 슬그머니 다가와 더덕 술 복용 효과에 대해 물어온다.
차마 하수구에 버렸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냥 눈을 찡긋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후일 지방 출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예의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한마디 한다.
“이 친구야, 그게 바로 더덕향이야. 그리고 그 정도 냄새 날 정도면 거의 산삼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거야.”
더덕 향기를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아쉬움에 씁쓸하게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 더덕이 향약집성방에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돼있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더할 가’이니 ‘더’라 읽어야 하고 덕은 ‘덕’이라 읽어야 하니 더덕이 이두식 표기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그를 위해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에 실려 잇는 글 중 일부 인용한다.
山菜以爲沙參 山菜方言曰多德,【多音더】 蔓生根可茹
산채는 사삼인데 방언은 다덕(多德)으로 불린다.
多의 음은 ‘더’로 덩굴과 생뿌리는 식용할 수 있다.
정약용의 변을 빌면 더덕의 한자명은 沙參(사삼)이다.
그 사삼의 우리 명칭이 바로 더덕이라는 의미다. 이로써 더덕이란 명칭에 대한 궁금증이 한 번에 해결된다.
이제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기록을 살펴본다.
고려의 더덕은 관(館) 안에서 날마다 올리는 나물 가운데 있는데, 형체가 크고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약용(藥用)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무엇을 의미할까.
더덕이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데 고려에는 너무 흔해 평소 식품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이후 조선조에서는 더덕이 식용뿐 아니라 약용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동의보감을 살피면 더덕에 대해 산정(疝疔)과 분돈(奔豚)에 그만이라 했다.
산정은 아랫배가 아파서 대소변을 못 보는 것을 이르고 분돈은 아랫배서 생긴 통증이 명치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마치 새끼돼지가 뛰어다니는 듯한 증상을 의미한다.
이는 더덕이 복통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복통에 탁월한 효능… 동의보감에도 실려
흰머리를 검게 하는 도라지, 사포닌 듬뿍
도라지
필자가 어린 시절 자주 접했던 ‘도라지 타령’ 소개해보자.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우리에 철철 넘누나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상기 도라지 타령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경기) 지방에 유행했는데, 도라지 타령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불리고 있다.
이는 도라지가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식물이었음을 입증하는데 상기 노래에서 결론 즉 후렴의 마지막 가사가 일품이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간장을 녹이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는 의미인데 도라지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즉 하얗고 곧게 뻗은 도라지 뿌리는 사람의 하반신을 연상시킨 데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하반신으로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자의 하반신으로 말이다.
여하튼 도라지는 한문으로 桔梗(길경)이라 기록하는데 그 사연을 풀어보자.
아니 桔梗서 나무 목(木)을 제외한 吉更만을 놓고 보자.
吉은 ‘상서롭다’라는 그리고 更은 ‘고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도라지는 상서롭고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식물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지 과거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자.
오래전 설날에 마시던 술 중에 도소주(屠蘇酒)라고 있다.
이는 약주의 한 종류로 설날에 괴질(怪疾)과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하기 위해 마시던 술인데 이 술이 도라지로 빚었다.
그러니 상서롭다는 의미는 성립된다.
그렇다면 ‘고치다’라는 의미도 성립될까.
이에 대한 답은 확고하게 '물론‘이다.
과거 여러 문헌서 약으로 사용된 흔적이 나타난다.
심지어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따르면 ‘대변이 막힌 데에는 도라지를 기름에 담갔다가 항문에 꽂으면 즉시 변을 볼 수 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니 고치는 데에 관한한 언급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송강 정철의 손자인 정호(鄭澔, 1648∼1736)의 작품 감상해본다.
州倅遺以白花桔梗數三莖云。啗之。能令白髮還黑云。戲吟。
사또가 백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면서 말하기를, 먹으면 하얀 머리가 검게 변한다고 하기에, 재미 삼아 읊다.
使君遺我草三莖(사군견아초삼경)
사또가 내게 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었는데
却老神方不翅靈(각로신방불시령)
정신은 물론 늙음 없애는 처방 지니고 있다네
頭上素絲猶堪黑(두상소사유감흑)
머리 위 하얀 실 오히려 검게 변하게 하고
難醫澤畔槁枯形(난의택반고고형)
고치기 어려운 택반의 초췌함 고칠 수 있다네
*澤畔槁枯(택반고고) : 굴원이 조정의 권세가들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당해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렸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했다고 한다.
정호에게 도라지를 보내준 인물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빌면 도라지가 흰머리를 검게 하는 등 시 내용처럼 실로 무궁무진하다.
물론 정호의 농이 다분히 섞여있지만 고치는 데에는 고래로부터 명성을 구가했던 모양이다.
이제 도라지 효능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도라지는 모습도 인삼과 흡사하지만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 역시 지니고 있다.
사포닌은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고, 체내 혈당을 낮춰주고 콜레스테롤까지 저하시키며 환절기에 자주 걸리는 호흡기 질환의 증상인 가래를 삭이기도 하는데 도라지의 쓴 맛을 내는 사포닌 때문이다.
또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함유돼있어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도 좋고 폐를 맑게 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줘 스트레스 완화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한다.
이 도라지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소개해본다.
조선 제 9대 임금인 성종 시절 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공조참의였던 이계기가 그를 축하하며 바친 글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桔梗充飢美(길경충기미)
도라지는 주림을 채우는 아름다움이 있네
연산군에게 백성들이 굶주림에 처하지 않도록 농업에 특히 도라지 농사에 주력해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보위에 오른 연산군은 상서롭고 개선의 의미를 지닌 도라지의 본성을 역으로, 즉 파괴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