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K-BK’ 3인3색 잠룡 군단 해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08 10:48:15
  • 호수 12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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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을 잡아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낙연(NY)·정세균(SK)·김부겸(BK),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하는 대권주자들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기지개를 켰다. 이낙연 의원이 대세론을 굳혀가는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부겸 전 의원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말까지 들린다. <일요시사>는 당권을 넘어 대권판까지 뒤흔들 세 사람의 조직력을 파헤쳤다.
 

▲ (사진 왼쪽부터)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정세균 국무총리·김부겸 전 의원 ⓒ문병희 기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독주 분위기였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177석 ‘공룡여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각종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서도 1위를 달린다. 2위와의 격차는 크다. 그런 그가 민주당 당선인 워크숍서 자신의 전당대회(이하 전대) 출마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 “대체로 맞다”며 당권 도전 의사를 드러냈다. ‘이낙연 대세론’은 그렇게 굳어지는 듯 보였다.

여 대선주자 
조직 보니…

민주당의 ‘영남권 자산’ 김부겸 전 의원이 이 의원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그는 당권 도전 의사를 주변인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서 열린 만찬에 참석한 김 전 의원은 만찬이 끝난 후 따로 참석자들과 자리를 만들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정세균-김부겸 제휴설’로 이어졌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만찬은 정세균 국무총리의 주재로 열렸다. 대구·경북(TK) 지역 낙선인 20여명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 총리가 당권 도전 의사가 있는 김 전 의원을 측면지원하기 위해 만찬을 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제휴설은 정 총리와 김 전 의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신뢰도를 높였다. 정치권은 ‘대망론’이 불거지는 등 대권에 뜻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정 총리 입장서 이낙연 대세론을 저지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정 총리는 여의도 정가와 멀어져 있다. 이낙연 대세론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선수로 당권에 뜻이 있는 김 전 의원이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김 전 의원 입장에선 당권을 위해 전국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지난 21대 총선서 낙선한 김 전 의원은 호남 중심 정당서 영남 출신의 한계를 경험한 바 있다. 기반이 탄탄한 정세균계의 지원은 김 전 의원 입장서 천군만마다. 총 세 번의 당대표를 역임한 정 총리는 이 의원에 비해 당내 세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휴설의 당사자들은 이를 전면 반박했다.

정 총리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전적으로 억측이고 오해다. 일부 낙선자들을 만난 것은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한 분들을 위로한 것일 뿐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코로나19 방역과 위기 극복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차 있다”며 “대권·당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최근 자신의 측근들에게 입단속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의원과 제휴를 맺어 이 의원 견제에 나섰다는 일각의 해석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절대 아니다” 부인하지만…
‘정-김 제휴설’ 전대판 후끈

김 전 의원 역시 자신을 둘러싼 일련의 말들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그는 “정 총리 및 TK 낙선인과의 식사 자리서 내 전대 출마 얘기가 나왔다는 소식은 사실이 아니다. 낙선인들과 별도의 자리를 가졌고, 그 자리서 전대와 관련한 대화를 꺼냈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아예 그런 별도의 자리 자체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전대 출마와 관련해서는 “조만간 결심이 확고해지면, 저의 입장과 생각을 밝히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정치권서 세 사람과 관련한 설이 분분한 이유는, 세 사람의 조직력이 전대구도를 뒤흔들만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은 최근 조직 정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잠룡들의 조직은 선거병참기지 역할을 해왔다. 지지자 모임을 활성화해 세력을 확대하고, 전문가 그룹과 토론해 어젠다를 선점하는 식이다.

이 의원의 조직 확장은 일찌감치 포착됐다. 이 의원은 총선 전 38명 후보자의 후원회장을 맡았으며, 그중 22명이 당선됐다. 정치권에선 이들 당선인·낙선인이 NY계로 합류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총선 후 이 의원은 당선인·낙선인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7일에는 낙선인, 15일에는 당선인과 만났다. 지난달 18일에는 광주·전남 당선인 14명과 만찬을 가졌다.
 

▲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참석하는 이낙연 의원 ⓒ문병희 기자

21일에는 민주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하 시민당) 당선인들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주최 측인 시민당서 일정을 취소해 성사되지 못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정치권은 이 의원의 행보가 과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식사정치’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식사정치로 몸풀기를 끝낸 이 의원은 지역순회를 시작했다. 지난 3일, 충북 청주시를 찾아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충청권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 양승조 충남도지사를 비롯한 충청권 단체장들과 지역 국회의원 등 유력 인사들이 자리했다. 이어 이 의원은 지난 8일 영남권(경남 창원시), 12일 호남권(전북 전주시), 18일 강원권(강원 원주시)을 찾을 예정이다.

당권부터?
대권으로?

이 의원은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자격으로 지역순회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의원이 전대를 앞두고 지지기반을 다지고자 전국순회에 나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말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힌 이 의원이 공식 출마선언을 미룬 이유도 지역순회 일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마선언 이후 지역순회를 다니면 당내 위원회를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이 의원은 전남도지사·국무총리 재임 시절 해왔던 공부모임을 확대·개편해 네트워크화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이 의원은 경제·금융 분야 전문가들과 주말에 모여 주제별 토론을 해왔다.

해당 공부모임이 ‘싱크탱크’로 진화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앞서 정치권에선 이 의원이 싱크탱크를 발족시킬 예정이며, 그 규모가 10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기존 국정 전반에 걸친 공부는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추기 위함으로 읽힌다. 현직 국회의원도 싱크탱크에 합류할 공산이 크다.

이 의원이 대권까지 모색한다면 싱크탱크는 필수다. 역대 대권주자들 모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을 앞두고 싱크탱크를 출범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공간 국민성장’,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미래연구원’,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제전략연구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싱크탱크는 국정운영의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들을 연구해 대선의 주요 공약을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의원 측이 싱크탱크 출범을 검토한 바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싱크탱크 출범이 시간 문제라고 내다본다.


이해관계
들어맞아

정 총리의 핵심 조직은 ‘광화문포럼’이다. 지난 17대 국회 때 만들어진 공부모임 ‘서강포럼’이 발전해 지금에 이른다. 20대 국회 끝날 때만 해도 30여명에 그쳤던 광화문포럼은 21대 국회 들어 40여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SK계인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광화문포럼의 대표를 맡아 정기적 공부모임을 이끌어갈 예정이다. 광화문포럼은 정 총리와 여의도 정치를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정 총리는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지난 2일 자신의 주재로 민주당 전북 지역 의원들과 서울 삼청동에 소재한 총리공관에서 만찬을 가졌다. 전북 진안 출신인 정 총리는 해당 지역서 내리 4선을 한 바 있다.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주로 코로나19 극복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여야를 초월한 행보다. 앞서 정 총리는 지난달 27일 정의당 당선인들과 총리공관서 만찬을 열었다. 심상정 대표는 물론, 배진교 원내대표, 강은미·이은주·장혜영·류효정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어 정 총리는 오는 9일 민주당 원내대표단, 12일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단과 오찬을 가질 예정이다. 정 총리가 대권주자로서 보폭을 늘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정세균 국무총리 ⓒ문병희 기자

정 총리는 일단 코로나19 대응에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본부장을 맡은 정 총리는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정 총리는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대구에 내려가 3주 동안 현장을 지휘했다.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해 마스크 대란을 돌파하기도 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규모로 당정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설득한 사람도 정 총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정 총리는 ‘코로나19 극복 총리’로 불리며 대선 레이스서 큰 가산점을 얻을 전망이다.

김 전 의원의 핵심 조직인 ‘새희망포럼’은 외연확장에 나섰다. 지난 2004년 출범한 새희망포럼은 전국 모임임에도 지부의 수가 적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지난해 11월 대구지부 출범을 시작으로 서울과 호남 등으로 뻗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전국 순회로 기지개
서울·호남 지부 설치

최근 김 전 의원 주변에선 새로운 지지자 모임의 필요성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외 정치인의 한계를 다양한 조직으로 극복하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새로운 모임이 결성되면, 기존 모임인 새희망포럼과 기존 정책연구모임인 ‘생활정치연구소’와 함께 김 전 장관의 정치적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대는 조기 과열 양상이다. 이 의원이 치고 나가는 가운데 제휴설까지 불거졌다. 이는 전대가 다가올수록 더욱 확전돼 ‘비이낙연계 연대론’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민주당 내부서 이 의원의 당권 도전이 과연 옳은 결정이냐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전대 출마를 준비 중인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지난 2일 JTBC <전용우의 뉴스ON>에 출연해 “한 사람이 당권까지 가져가는 것에 다른 대권주자들이 흔쾌하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대권주자가 당권까지 가지려는 것은 당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권주자가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오는 8월, 내년 5월과 8월 등 1년 사이에 전대를 세 번 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권주자가 당권을 잡은 후 차기 대선으로 직행한다고 가정하면, 민주당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내년 3월에는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 또한 문제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내년 4월에 재보궐 선거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 과정서 당선인 94명이 입건됐고, 그 중 상당수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우에 따라서 ‘미니 총선’을 넘어서는 규모의 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 만약 당 대표가 대권을 위해 내년 3월 대표직을 포기한다면 지도부 공백 사태가 불가피하다. 이는 재보궐 필패로 이어질 수 있다. 

비책은
측면지원?

민주당은 당 대표가 물러나더라도 최고위원의 임기를 보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해찬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은 최고위원의 역할을 다하고, 당 대표는 당 대표 역할을 다하는 체계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 한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에게도 그렇게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민주당이 이 의원의 당권 도전 길을 터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의원이 대권을 위해 대표직서 내려오더라도 지도부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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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