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논란의 후보들 백태

강간에 살인까지…전과 18범도 나왔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청렴’은 정치인의 선결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21대 총선에도 어김없이 살인, 아동·청소년 성범죄, 음주운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인물들이 선거판에 당당히 나서고 있다. 막말을 일삼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인물들도 보란 듯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았다. 오는 15일, 자격미달 후보들과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이 필요하다. <일요시사>가 총선에 출마하는, 이 논란의 후보들을 전수 조사했다.
 

▲ (사진 왼쪽부터)최혜영(더불어민주당), 조수진·정경희(미래한국당) 후보

21대 총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총선서 1423명(지역구 1116명·비례대표 307명)의 후보가 선거에 나선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253명,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이 237명의 후보를 냈다. 눈에 띄는 건 18대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씨가 대표로 있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하 배당금당)이다. 배당금당은 지역구 235명·비례대표 22명으로 총 257명이 등록하면서 정당 중 가장 많은 출마 후보를 배출했다.

듣보잡
군소정당

이번 선거서 지역구 후보의 경쟁률은 4.4대 1, 비례대표 후보는 6.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비례대표 후보의 경쟁률은 20대 총선과 비교했을 때 2배에 가까운 기록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번 총선서 최초로 도입되면서 위성비례정당 꼼수 및 군소정당의 난립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어떤 총선 시즌보다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전과 이력, 막말 및 과거 논란이 크게 일었다.

지난 2일을 기준으로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후보자 가운데 벌금 100만원 이상의 전과가 있는 후보는 총 509명으로 전체 후보의 35.7%에 달한다. 10명 중 3∼4명꼴인 셈이다.


중앙선관위에 접수된 후보 등록 현황에 따르면, 정당 순으로는 민주당이 100명, 배당금당이 100명, 통합당이 52명이었다. <일요시사>취재 결과 살인 및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와 같은 국민적 지탄을 받는 범죄를 저지른 후보가 포진돼있는 당은 배당금당 등 다소 생소한 군소 정당 출신들이 많았다.

일각에선 후보자의 적격성 검증을 정당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개정이 자체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보 중 가장 많은 일탈행위를 한 후보는 18건의 전과를 신고한 한국경제당 최종호 비례대표 후보다. 최 후보는 사기, 음주운전은 물론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차례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2001년에 사기죄로 200만원을 선고받고, 같은 해 사기죄로 또다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2004년과 2008년에는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원, 1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개나 소나 출사표 “무슨 자격으로?”
살인범, 아동 성폭행범도 공천 논란

그는 현재 <시사포커스>의 주필이자 평론가로, 당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비례대표 4번에 배정됐다.

다음으로 최다 전과자는 민중당 김동우 후보(안산 단원갑)로 10건의 전과 기록을 신고했다. 김 후보는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 경기본부 사무국장 출신으로, 노동운동 과정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주로 위반해 징역 및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했다가 집시법 위반을 한 후보자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의 평가가 갈린다. 대한민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전과보다는 훈장에 가깝게 보는 시선도 있다. 

현역 의원 중에서는 민주당 송갑석 의원(광주 서구갑)이 전과 4범으로 최다 전과 기록을 신고했다. 송 의원은 1988년 집시법 위반,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2003년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 받고, 같은 해 사기죄로 벌금 500만원을 납부했다.


살인죄나 살인미수 혐의와 같은 흉악 범죄로 처벌받은 전과자도 있다. 배당금당 김성기 후보(부산 서·동구)는 살인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또 배당금당의 비례대표 7번에 배정된 박경린 후보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악질적인 범죄로 꼽히는 성범죄 전과가 있는 후보자도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들도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배당금당의 조만진 후보(전남 나주시화순군)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청소년 강간)으로 지난 2007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집단 흉기 등 상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 차량) 등의 전과가 있었다. 조 후보는 1962년생으로 올해 만 58세다.

벌금은 기본
악질 범죄도

또 같은 당의 안종규 후보(경남 김해시을)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으로 지난 2015년에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당 신방호 후보(서초구갑)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성매매)으로 지난 2013년에 벌금 100만원, 강덕수 후보(송파구병)는 폭행과 준강제추행으로 지난 2009년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한나라당 차주홍 후보(제주시을)는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 아름다운 선거 행복한 대한민국 포스터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인물 역시 이번 총선서 다수 나왔다. 음주운전 또는 무면허운전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은 후보자는 총 134명으로 전체 후보의 무려 9.4%에 달한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22명, 통합당에서는 25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냈다. 거대 양당 모두 음주운전 전과를 후보자 평가 기준으로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에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번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상습범죄다. 민주당에서는 이상호(부산 사하을), 김현정(경기 평택을), 이용선(서울 양천을), 이후삼(충북 제천단양), 김철민(경기 안상상록을) 후보가, 통합당에서는 한상학(서울 성북갑), 김철근(서울 강서병) 후보가 음주운전 전과를 두 번 신고했다.

지난 2018년 ‘윤창호법’이 국회서 통과된 이후에도 음주운전을 한 후보들은 특히 국민적 지탄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무소속 이용주 후보(전남 여수시갑)는 지난 2018년 12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300만원을, 무소속 노남수 후보(광주 북구을)는 지난해 3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200만원을 물었다. 또 민생당 노승일 후보(광주 광산구을) 역시 지난해 9월 음주운전으로 벌금 200만원을 내야 했다.

비례대표 후보들 역시 음주운전 전과기록으로 크게 논란이 됐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6번에 배치됐던 신장식 변호사는 음주운전 1회, 무면허 3회 전력으로 비난이 일자, 후보직서 스스로 물러났다.

비례대표
검증 부실

반면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6번으로 이름을 올린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본인의 음주운전 전과에 대해 “심각한 결격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주 전 대표는 열린민주당 후보 면접서 2008년에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를 받은 사실을 밝혔다. 이 외에도 더불어시민당 최혜영 후보의 무면허 운전, 미래한국당 허은아 후보의 음주운전 전력 역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막말 논란을 일으켰던 후보들의 출마 역시 화제가 됐다. 통합당 민경욱(인천 연수구을) 의원은 20대 국회서 수차례 막말로 국민들의 뭇매를 맞았다. 포털사이트에 ‘민경욱 막말’이 그의 연관 검색어로 항상 뜰 정도였다. 그는 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대변인을 맡으며 북유럽 순방을 떠난 문 대통령을 두고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민 의원은 공천 번복으로 겨우 기사회생해 이번 총선에 출마하게 됐다.
 

▲ 정진석·나경원 후보

경기 부천시병에 출마하는 통합당 차명진 후보 역시 ‘세월호 막말’로 유명하다. 차 후보는 지난해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유가족들. 가족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 쳐먹는다”며 “자식 시체 팔아 내 생계 챙긴다”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통합당 정진석 의원은 당시 “세월호 좀 그만 우려먹으라, 이제 징글징글(하다)”이라며 차 후보의 의견에 동조해 사태가 더욱 확산됐다. 이후 차 후보와 정 의원은 모두 당 윤리위에 회부됐고, 차 후보는 당시 당원권 3개월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정 의원은 21대 총선서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에 단수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됐다.

윤창호법 통과 후에도 음주운전
막말 파문 의원들도 다시 심판대

이뿐만이 아니다.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통합당 정태옥 의원은 대구북구갑에 출사표를 냈다. 이외에도 ‘달창’ ‘문빠’ 발언을 했던 통합당 나경원 의원은 동작을서 민주당 이수진 후보와 ‘판사 대첩’을 벌일 예정이다.

미래한국당서 비례대표 7번에 배정된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제주 4·3사건을 ‘좌익 폭동’이라고 표현해 그의 그릇된 역사 인식 역시 도마에 올랐다. 정 후보는 박근혜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을 지냈다. 당시 정 교수는 <한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서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이 주도한 좌익세력의 활동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도민들이 궐기한 게 아니라 제주도의 공산주의 세력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저항해 일으킨 무장반란’이라고 적시했다.

또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5번을 배정받은 조수진 전 논설위원은 방송서 ‘대깨문’ ‘대깨조’라고 표현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선거운동을 하는 도중에 발언이 문제가 된 후보들도 있다. 민주당 송재호 후보(제주시갑)는 한 TV토론회서 “평화와 인권이 밥 먹어주냐”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통합당 정승연 후보(인천 연수갑)는 ‘인천 촌구석’이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사과를 했다.

21대 총선은 문정부의 중간 평가적 성격이 강해 여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 꼼수, 군소 정당 난립 등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한 선거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는 15일은 국민으로서 주권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로, 막말과 혐오 정서를 조장하는 정치판의 악순환을 심판할 수 있는 날이다.

거르지 못한
관대한 기준

<부산일보> 총선 자문단 가운데 이남국 부경대 교수는 “후보자 청렴성을 우선 살펴야 한다”며 “뇌물이나 횡령, 정치자금 사건 등에 관여됐다면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진시원 부산대 교수는 정치를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들, 혐오를 키우는 사람들, 막말을 하는 인물을 제외 1순위로 꼽으며 “막말을 동원해서 자신의 지지를 끌어오려는 것이 가장 나쁜 정치”라고 말했다. 자문단은 “공천 과정서 거르지 못한 막말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꼭 걸러야 한다”고 입을 모아 조언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총선 출마자 정보 어디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후보선택도우미’ 사이트를 지난 2일 개설해 정당과 후보자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에 나섰다.

유권자들은 경실련이 만든 후보선택도우미를 통해 기존 국회활동을 했던 초선 이상의 의원들의 입법 성향과 자산 현황, 전과, 비리, 막말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경실련 황도수 주권실현운동본부장은 후보선택도우미를 만든 취지에 대해 “국민이 갑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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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