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배고파서…’ 현대판 장발장 후일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2.23 11:05:21
  • 호수 12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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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밥을 굶다니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생계 곤란을 겪던 인천의 한 부자(父子)가 마트서 우유를 훔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 부자는 최근 빵과 우유에 손을 댔는데 마트 대표는 처벌을 원치 않았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은 부자에게 국밥을 사주고, 익명의 시민이 후원금을 전달하는 등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일요시사>가 생활고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던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대해 알아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천서 ‘현대판 장발장’ 사건에 국밥을 사준 경찰이 한 말이다. 경기 침체가 악화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다. 

배고픔 
못 이겨서…

인천의 한 마트서 부자가 식료품을 훔치다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3일 인천 중부 경찰서에 따르면 10일 오후 4시경 A(34)씨와 아들 B(12)군이 인천시 중구 소재의 한 마트서 우유와 사과 4개 등 1만원가량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마트 직원에게 적발됐다.

마트 대표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몸을 떨고 땀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A씨는 당뇨와 갑상선 질환 등 지병이 악화돼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임대주택서 6개월간 요양을 하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마트에 도착한 경찰은 마트 대표가 처벌을 원치 않자, 이들 부자를 훈방 조치하기로 하고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 국밥을 사줬다. 또 경찰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은 지역 행정복지센터는 A씨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기로 하고 B군에게 무료급식 카드까지 지원했다. 


사건 당일 한 60대 사업가는 경찰이 부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데려간 식당을 쫓아가 A씨에게 봉투를 건네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 B군이 돈봉투를 들고 뒤따라갔으나 그는 “그냥 가져가라”며 돌려받지 않고 사라졌다. 이후 경찰은 수소문 끝에 인적사항을 확인한 뒤 이 사업가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또 한 여성은 사과 한 상자를 산 뒤 A씨에게 전달해달라며 마트에 두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장발장 부자를 “돕고 싶다”며 방법을 묻는 전화도 이어졌다. 계좌로 돈을 보내며 생필품을 대신 전해달라는 부탁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뇨·갑상선 등 지병 악화돼 휴직
현금 20만원·사과 한상자 등 후원

SNS(사회망관계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서도 해당 마트가 어딘지 알려달라는 글과 마트를 통해 후원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아버지는 많은 이들의 후원에 대해 “누구보다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홀어머니와 두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라며 “지병으로 하던 일을 못 하게 된 상황서 아들이 배고픔을 호소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 주변의 도움을 받게 된 만큼 건강을 되찾고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19월 강남서도 노인이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 적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일 강남구 한 편의점으로부터, 80대 할머니가 음료수를 훔쳐 갔다는 신고를 받았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파출소 경찰관에게 체포된 할머니는 강남경찰서로 넘겨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을 맡게 된 경찰은 전과도 없는 80대 노인이 우유와 주스 등 2500원어치를 훔쳐 절도 혐의로 입건되자, 그 속사정에 대해 알기 위해 노인의 형편에 대해 파악했다. 확인 결과 할머니는 고등학생 손자와 반지하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에 출석한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경찰은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논의를 가진 후 3일 뒤 동료 형사 3명 등이 노인이 사는 지역 주민센터에 찾아가 도울 방법을 물색했다. 주민센터 직원은 “할머니 아들이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어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고로 
슬쩍∼

형사들은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할머니의 사정을 설명한 뒤 “손자의 학비와 생활용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관심을 가져 달라”고 설득했다. 이에 대해 직원은 “학비와 생활용품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할머니가 굶으시는 일이 없게끔 구호물품 등이 전달되도록 조치하고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광주 북부 경찰서는 최근 광주 북구 용봉동 고시텔에 사는 A(35)씨를 절도 혐의로 검거한 뒤 병원에 입원시켰다. C씨는 10월18일 오전 2시20분경 자신이 사는 고시텔을 나와 인근 마트 출입문을 부순 뒤 빵 20여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을 훔친 혐의를 받았다.

고시텔에 돌아와 훔친 빵과 컵라면을 먹던 C씨는 곧바로 경찰에 검거됐던 그는 경찰에 출석해 “배고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A씨는 좁은 고시텔서 누워 주린 배를 움켜잡고 열흘을 버텼다. 배고픔 때문에 양심과 죄책감을 내려놓은 그는 마트 출입문에 소화기를 던져 깬 뒤 음식들을 훔쳐 허기진 배를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산업용 기계의 유효기간을 체크하는 일을 해오던 C씨는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지난해 말 퇴사했다. 허리 부상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아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C씨에겐 가족이 없어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카드 대출로 생활을 이어갔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자 고시텔 안에 누워서 굶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시텔 월세도 4개월이나 밀렸다. 고시텔에 살아 주소지를 증명할 수 없던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대상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조사를 하던 중 형사가 “왜 뭐든 해보려 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끼니 굶고
취업 준비

경찰은 상담을 거쳐 C씨가 자살 고위험군이라고 판단해 병원에 입원시켜 우선 정신적 회복을 하도록 돕기로 했다. 또 병원서 퇴원하면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주거지 마련과 구직활동 등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 한 편의점서 취업준비생이 삼각김밥, 조각 케이크 등 4500원어치를 훔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취업준비생은 같은 편의점서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준비생은 경찰 조사 과정서 “취업 면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며 “배가 고파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물건에 손을 대게 됐다”고 진술했다. 

딱한 사정을 접한 일산서부경찰서 강력2팀의 한 경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취업준비생에게 2만원을 건넸다. 해당 편의점 업주도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선처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이 벌어진 한 달 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일자리를 구해 첫 월급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취업준비생 외근 중이던 담당 경사를 만나지 못했다. 담당 경사는 전화 통화로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전했다. 집에 돌아간 취업준비생은 일산서부경찰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취준생 편의점서 삼각김밥 훔쳐
이후 2만원 빌려준 경찰 찾아와

취업준비생은 “일주일 넘게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저는 그만 부끄러운 범죄를 저질렀다. 담당 형사님께서 ‘아무리 힘들어도 범죄는 안 된다’는 깊은 뉘우침을 느끼게 해줬다”며 “취조가 끝나고 딱히 벌이가 없던 저에게 정직하게 살라는 의미로 빌려주는 거라며 2만원을 주셨고, 그 돈을 꼭 갚기 위해 한 달간 열심히 일했다”고 게시했다. 경미 범죄심사제도는 경찰이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 사정을 고려해서 처벌을 감경하거나 선처하는 제도를 말한다. 

경미 범죄심사제도의 심사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지난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18건에 불과했던 서울 지역 경미범죄 심사 건수는 지난해 1699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 대상 중 94.5%인 1608건에 대해 처분 감경이 이뤄졌고 91건만 원처분을 유지했다. 경미범죄심사위는 심사 대상으로 정해진 피의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소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원들이 감경 여부를 결정한다. 불가피한 상황이나 안타까운 상황서 발생한 가벼운 범죄에 대해 심사를 거쳐 최초 형사처분을 감경해준다.

심사를 통해 정상 참작을 받은 피의자는 형사 입건되지 않고 즉결심판으로 넘어가거나 훈방 조치된다.  


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어난 것은 우선 제도 자체가 활성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양극화 심화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고령자와 사회 취약계층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계형 범죄
점점 늘어나

통계청이 2월 발표한 ‘2018년 4·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위(하위 20%)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 비중은 2017년 4·4분기 37%서 지난해 같은 기간 42%로 늘었다. 빈곤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를 활용하거나 이웃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지자체에 알려주는 체계를 마련하는 등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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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