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마이크> 정의당 여영국 의원

“국회, 특권부터 내려놓아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누구나 동등한 출발선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하지만 이번 ‘조국 정국’서 드러난 기득권층의 입시 비리는 한국교육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나라게 보여줬다. 국회에선 사회 기득권 자녀들에 대한 입시특혜 의혹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공정의 가치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국회의원·고위공직자 자녀 대입 전수조사 특별법’을 발의했다.
 

▲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최근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정의당 여영국 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의원·고위공직자 자녀 대입 전수조사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여 의원은 이번 기회로 특권층이 누리는 불공정한 입시 비리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대입제도 개선에 계기점을 만들고자 한다. <일요시사>는 최근 화두가 된 교육불평등 문제와, 앞으로 정의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물었다.

-최근 ‘국회의원·고위공직자 자녀 대입 전수조사 특별법’을 대표발의 하셨습니다.
▲대학입시의 불공정 문제, 특권층들이 누리는 특혜 때문에 기득권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이 더더욱 분노를 하게 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문제가, 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계기가 되면서 자녀를 둔 부모들의 상실감과 실망감도 매우 컸습니다. 특권층의 입시비리를 전면적으로 파헤쳐서 실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심각한 법적 위반사항 있다면 처벌을 통해 입시 부정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계기점을 만들고자 합니다.

-법안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법안의 주된 목적은 처벌보다는 특권층이 누리는 불공정한 입시비리의 실체들을 들여다보고 개선하기 위함이고요. 국회 내 국회의장 소속으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자 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 때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지낸 자녀들과 18대국회부터 지금 20대국회 전현직 의원들의 자녀가 대상입니다. 교대를 포함해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자녀들의 입학 전반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자 합니다.

-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여당서 두 명을 추천하고 야당서 네 명을 추천해서 국회서 여섯 명으로 구성하고요. 감사원장 추천 3인, 교육부장관 추천 2인, 시도교육감협의회 추천 2인, 대학교육협의회 2인으로 총 15인 구성입니다. 자격은 판사나 검사, 법무관, 변호사, 10년 이상 교육기관 근무, 10년 이상 조사 및 감사업무 등 상당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활동기간은 법 제정 후 6개월 이내에 하는데, 필요하면 3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소위원회도 두개로 구성됐습니다.
▲단순히 조사뿐 아니라 대안도 만들기 위해서 소위원회를 두 개로 뒀습니다. 하나는 대학입시전형 조사위원회, 다른 하나는 대학입시전형 제도개선위원회로요. 한 쪽은 제도개선, 나머지 한 쪽은 실태조사를 담당할 겁니다.
 


-임명권을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장이 갖도록 발의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정쟁이 격화돼있는 가운데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하면 또 정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번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 문제가 정치적인 쟁점이 됐습니다. 정치권서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국회의장 소속으로 뒀습니다.

-법안이 통과된 후 예상되는 효과가 있다면.
▲대입제도 개선에 계기점이 될 것이고요. 한국사회에 만연한 기득권의 문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검찰 개혁, 선거법 이슈에 밀려 있어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가 힘들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현재 정의당 포함해 4개의 정당이 똑같은 목적과 비슷한 대상으로 비슷한 법안을 발의 했습니다. 검찰 개혁이나 정치 개혁에 앞서 이 문제를 합의해서 정기국회 기간 내에 반드시 처리하자고, 정치협상회의서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의원·고위공직자 자녀 대입 전수조사 특별법 발의
정의로운 나라 위해 출마…진보정치의 ‘등불’로

-교육위원회 소속이십니다. 최근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정시 확대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2019학년 입시 통계를 분석해보면 정시에 합격한 학생들 중에는 고소득층 자녀들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정시 확대는 계층 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도 더욱 심화시켜서 한국사회를 더 불평등한 구조로 확대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정시 확대는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
▲정시 확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서 “정시 확대를 비롯한 대입 제도 개편을 하겠다”는 한 마디 이후로 입시 전문학원의 주식이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교육제도를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드는 것은 참 코미디 같은 일입니다. 2018년도에 많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2022학년도부터 정시를 30% 정도까지 확대하겠다고 입장이 정리된 바가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또 정시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현 입시제도에 불만이 많고 정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해도 다른 문제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게 오히려 지도자로서의 바른 태도라 생각합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으로 청년들의 입시 불공정이 크게 이슈화 된 바 있습니다. 청년들이 분노한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지난 정유라 때도 우리 청년들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교육을 통해서 기득권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 이런 점 때문에 청년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좀더 컸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특히 대학을 안 간 청년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논의에 끼지도 못하는 청년들의 분노와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정의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지지율이 떨어졌습니다.
▲조국 전 장관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국민들이 정의당에 상당히 실망해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정의당은 고민 속에서 늘 개혁의 길을 선택했는데, 이번에 국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의당이 그동안 걸어온 길과 지켜온 원칙이 있는데 정의당마저 그 원칙에 어긋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는 식의 질타가 참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변명의 여지없이 저희의 실책이라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시 민심을 되찾기 위해 정의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이번에 조국 사태로 인해 불거진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타파하고 해소하는 데 저희 정의당이 누구보다 앞장서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저희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엊그제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서 국회 특권부터 내려놓고, 의원들 월급도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줄이고 보좌관 수도 줄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국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결국 기득권 문제 해결은 정의당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께서 금방 마음을 주실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은.
▲국회 들어온 지 8개월도 안 됐습니다. 출마할 겁니다. 또 해야 되고요. 그동안 창원 성산구는 권영길, 노회찬이 지켜오면서 진보정치의 등불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아프게 가신 고 노회찬 의원님은 우리 사회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의 손을 잡고 고군분투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나라가 정의롭지 않겠습니까. 우리 창원 시민들을 포함해 힘든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을 함께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출마할 생각입니다.


<sangmi@ilyosisa.co.kr>

 

[여영국 의원은?]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조직국장
▲제9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노동당 경남도당 부위원장
▲제10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정의당 경상남도당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경남 창원시성산구/정의당)
▲정의당 경상남도당 창원시 창원지역위원회 위원장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