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폭풍’ 잠재울 문의 히든카드

‘최후의 보루’ 힘 받는 청와대 쇄신론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 이후 분위기 쇄신을 위한 개각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조 전 장관의 사퇴 이후 후임 법무부장관을 찾고 있지만 쇄신용 개각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문재인정부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중폭개각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 최근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퇴 관련 청와대 개각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청와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로 청와대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집권 3년차로 최근 조 전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임기 최저 지지율을 기록했다. 레임덕에 대한 우려 속에 인적 쇄신의 필요성이 청와대 안팎으로 계속해 제기되면서 ‘물갈이’에 동원될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들도 함께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최저 지지율
레임덕 우려

청와대는 최근 조 전 장관의 후임자을 찾기 위해 인사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킨 분위기다. 청와대는 법무부장관만 교체하는 이른바 ‘원포인트 인사’를 줄곧 밝혀왔지만 일각에선 국무총리를 포함, 국토교통부와 교육부·외교부 등을 한 번에 중폭개각해 분위기를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해 제기되고 있다.

‘개각 카드’는 위기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청와대가 지금까지 이용했던 방법 중 하나다. 청와대 입장 발표는 개각설로 인한 공직 사회의 어수선함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전략에 불과하고, 중폭개각으로 장관 인사청문회 때마다 거치는 야당의 혹독한 검증과 공세를 최소화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인사 실패로 타격을 입은 청와대는 이번 법무부장관 내정에 청문회를 무난히 넘길 현역 국회의원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현역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선거를 치르면서 이미 검증을 받은 만큼 인사 실패로 인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현역 의원이 청문회서 낙마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청문회서 의원에 대한 평가가 다소 관대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후임으로 가장 크게 거론되는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다. 전 의원에 따르면, 전 의원의 법무부장관행에 민주당 의원들의 권유와 청와대 참모들의 직·간접적인 권유가 있었다.
 

▲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 의원은 지난 23일 경기도의회 민주당이 마련한 정치아카데미 행사 특강서 “다른 대안이 없고 필요하다면(법무부장관을) 마다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서 검찰 개혁의 위중함과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총선을 하는 것으로 정리를 한 상태”라며 법무부장관행에 대한 선을 긋고, 내년 총선 출마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전 의원은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 출신으로 노무현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일 때 민정비서관을 지낸 중진 의원이다. 현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3철’로 불리며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그가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경력이 있는 만큼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구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전언이다.

법무부장관 원포인트 개각 주장
총리 포함 ‘중폭 개각’ 가능성↑

정치 9단으로 꼽히는 대안정치연대 박지원 의원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조국 전 장관 후임으로)전해철 의원이 확실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판사 출신인 민주당 박범계 의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김오수 법무부 차관,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과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 등이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후임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김 차관이 장관 직무를 대행한다. 김 차관은 검찰 출신으로 검찰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물이지만 오히려 검찰 출신인 점이 법무부장관행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폭개각을 관측하는 이들은 법무부장관 후임을 비롯한 개각이 이르면 11월 중순서 12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가 인사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감안하면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12월 초에 개각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이번 중폭개각에는 법무부장관 자리 외에도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경기 고양시병),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경기 고양시정), 강경화 외교부장관 등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된다. 
 

▲ 이낙연 국무총리와 강경화 외교부장관

특히 이 총리의 경우 문정부의 출범부터 함께하며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역대 최장수 국무총리’라는 영예를 얻은 이 총리는 대표적 지일파로 최근 방일로 인해 대권주자로서 몸값이 더 뛴 상황이다. 이 총리가 이번 개각 후보에 포함된다면 내년 총선서 ‘조국 정국’으로 떨어진 당의 지지율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국 정국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은 계속해 하락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도세력 지지율이 한국당에 밀리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서 조국 정국에 의한 책임론이 일고 있는 이해찬 당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당내서 나오는 배경이다.

11월 중순?
12월 초순?
 

이 총리 후임자 인선의 어려움으로 이 총리의 사퇴가 늦어질 경우, 곧바로 민주당 당 대표 선거로 직행해 당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울러 중도층을 포섭할 수 있는 이 총리를 총선서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해 총선을 진두지휘 하는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정부의 연내 중폭개각이 있다면, 그 시점이 이 총리의 여의도 복귀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총리직 이후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당 복귀를 염두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지난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 방문할 적엔 “전 지금 이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제 심장은 정치인”이라고 말해 이 총리의 마음이 ‘행정부’보다 ‘입법부’에 향해 있음을 암시했다.

지난 1일 대정부질문에선 이 총리의 남은 임기를 묻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함진규 의원의 질문에 “(총리직을)너무 오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 총리가 만약 올해 안에 총리직서 내려온다면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다. 정계에선 대권 주자로서 상징성을 갖는 ‘서울 종로’와 ‘세종’을 이 총리의 출마 예상 지역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11월 말과 12월 초에 법무부를 포함한 중폭개각에 이 총리를 포함시킨다면 조국 정국으로 인한 책임 개각설서 다소 벗어날 수 있다. 이 총리의 교체설이 계속해서 화두가 된 만큼 이 총리의 오래된 임기를 고려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총리 교체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선도 있다. 총리의 경우는 야당의 인준이 필요한데, 총선을 앞둔 시점서 후임 총리에게 야당이 조국 정국 때와 같은 공세를 이어간다면 당청의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또,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던 이 총리의 완벽주의자 성격상 ‘포스트 조국’의 어수선한 상황에선 청와대에 계속해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임기 말 혼선
되풀이?

총선 출마 의지가 강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역시 유력한 개각 대상으로 꼽힌다. 지난 9월 총선 불출마설에 휩싸인 두 장관은 총선 출마 의사가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불출마설에 두 장관 모두 부인했고, 특히 김 장관 측은 출마 의지가 확고함을 강조하며 “임명권자의 뜻을 따른다는 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유 장관은 자사고·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서열화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을 11월 중에 발표할 예정으로, 문정부 교육 정책에 대해 주어진 임무를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 장관은 지난 21일 교육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서 “총선에 출마하느냐”는 한국당 이학재 의원의 질의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답하며 총선 출마 의사를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장관 취임 이후 총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의가 나올 때마다 “임면권자의 뜻에 따르겠다”며 즉답을 피해왔던 것과 결이 다른 반응이다.
 

▲ 국회 시정연설하는 문재인 대통령 ⓒ국회사진취재단

김 장관의 경우에는 문정부 초기에 합류한 ‘원년멤버’로 장관 초임 시절엔 일산시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 재선 성공엔 어려움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2기 내각 당시 후임자로 지명된 최정호 후보가 낙마하면서 김 장관의 총선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김 장관은 ‘3기 신도시’ 정책으로 민심의 역풍을 맞았지만 “(내년 총선)출마를 한다면 일산서 할 것”이라며 ‘지역구 변경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경우 '총선 차출설’이 민주당 내에서 꾸준히 제기되며 개각 후보로 입에 오르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 24일 총선 출마설과 관련해 “거취에 대해서 여러가지 소문은 있지만 제가 정식으로 들은 바는 한 번도 없고 저도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총선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조각
어려워진 ‘포스트 조국’ 구하기 

청와대와 정부가 인지도가 높은 ‘정치신인’을 총선 간판으로 내세워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를 유도하는 전략은 여권서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다. 강 장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차출 후 출마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로는 서울 서초갑이 거론된다. 서초구는 현재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의 지역구로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유일하게 한국당 소속(조은희 구청장)이 당선된 ‘보수의 성지’기도 하다. 

이외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출마 후보자 명단에 올라 있다. 홍 장관은 본인의 고향인 강원 춘천에 출마해 한국당의 텃밭인 강원도를 공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직선거법상 의원 겸직 장관은 총선 출마 시 선거 90일 전 공직을 내려놔야 하는 만큼 내년 1월10일까지는 장관직을 그만둬야 한다. 현재까지 의원 겸직 장관 가운데에선 진영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다만 청와대에서는 ‘조국 트라우마’ 분위기가 감돈다. 장관 후보자들은 반드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당분간은 야당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빌미를 최대한 줄이는 게 정국 안정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계산이다.

아울러 청문회 부담이 커 후임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조 전 장관의 청문회 당시 야당은 조 전 장관의 자녀가 입시 때 작성한 자기소개서까지 공개하며 조 전 장관을 공격했다. 청문회 부담으로 후보들이 장관행을 꺼려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장관 구하기는 더욱 어려운 정국이 됐다.

1월10일…
카운트다운

조국 정국으로 인해 공정과 평등을 내세운 문정부가 큰 타격을 크게 입으면서 청와대는 개각 후보의 도덕성을 더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조국 정국으로 무너진 도덕적 가치를 지금 시점에 바로 세우지 못하면 다음 대선의 결과 역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개각은 문정부의 총선 출마자용 마지막 개각이 될 것이다. 개각에는 민주당의 물갈이 등 여권의 총선 전략과도 맞물릴 것으로도 예상되면서 정계 개편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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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