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시동 걸리는’ 4·15 총선

불안한 정치권 “새 얼굴을 찾아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본격적인 기싸움이 시작됐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으로 위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에선 ‘물갈이론’과 ‘일하는 국회’를 앞세워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자유한국당은 ‘조국 퇴진’과 ‘민부론’을 앞세워 여당에 대항 중이다. <일요시사>가 내년 총선을 대비하는 거대 양당의 모습과 총선 변수를 조명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분들 아닌가 싶다” “국회 신뢰도가 2.4%로 거의 꼴지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9일 중진의원들이 모인 자리서 한 말이다. 당의 실세인 중진들을 직접 겨냥한 이 대표의 발언을 두고 당내 ‘공천 물갈이’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새 인재 수혈
참신한 정책

한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중진의원들이 많아 이들에 대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당내 기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에는 민주당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내년 총선에 불출마를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두 장관 모두 출마 의사가 강한 인물로 연말엔 당으로 복귀해 내년 총선 출마를 대비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측을 깬 셈이다. 김 장관과 유 부총리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다. 두 장관이 중책을 맡아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당내 핵심 인물의 불출마가 새 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판단이 불출마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유 부총리와 김 장관은 이 같은 총선 불출마 보도에 대해 부인하고 나섰다. 유 부총리는 당정청 협의회 직후 이날 보도에 대해 “제 의사에 대한 확인 과정이 없이 보도된 것”이라며 “거취 문제는 임명권자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 측에서도 “불출마 선언을 한 적 없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김 장관의 불출마 여부에 “맞는 것 같다. 유 장관의 불출마 여부는 가변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기자들에게 “유은혜·김현미 총선 불출마 관련 기사는 사실무근”이라는 문자를 돌려 입장을 번복했다. 여권서 거취 조율이 되지 않은 유 부총리와 김 장관을 내세워 물갈이론에 군불을 땐 것으로 해석된다.

물갈이 폭이 커야 승리
매스 든 이해찬-황교안

실제 17대 총선 이래로 선거에 승리한 당은 초선 비율이 높아, 물갈이론은 매번 총선 정국 때마다 나오는 카드다. 하지만 총선 7개월이 남은 시점에서는 시기상조다. 보통 물갈이 카드는 총선 구도서 불리한 쪽이 앞세우는 게 일반적인데, 조 장관 임명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민주당이 이를 급하게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 여권서 불출마가 확정된 인물은 15명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을 포함,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백원우 부원장 등 여권 핵심 인사의 불출마가 공식화됐다.

현역 의원 중에는 이해찬 대표(7선), 문희상 국회의장(6선), 원혜영 의원(5선)이 불출마 대상으로 꼽힌다.

아울러 김성수·이수혁·제윤경·최운열 비례대표 의원과 초선인 서형수 의원(경남 양산을)이 자진 용퇴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진다.
 

▲ 2020경제대전환회의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 지도부

당 핵심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물갈이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공천이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는 11월 시작되는 ‘현역 의원 최종평가’서 추려질 하위 평가자 20%를 합하면 본선 전 당내 경선서 최대 40명이 교체될 것으로 예측된다.

여권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중진 물갈이론이 계속될 경우 공천 전까지 당내 눈치 싸움으로 인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먼저 물갈이론을 선점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역시 의원 물갈이 압박을 느끼게 됐다. 최근 보수 언론마저도 민주당의 총선 물갈이를 경계, 한국당에 인물 쇄신을 종용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여당이 물갈이론을 내세운 상황서 한국당이 물갈이를 주저하면 총선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 영남·중진 중심으로 물갈이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눈치 싸움
진통 시작

경쟁력을 지닌 인재 수혈을 위해 당의 강세지역 현역의원들이 물러나는 것이 불가피하단 것이다. 하지만 TK(대구·경북)와 PKU(부산·경남·울산)서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현재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의 물갈이 작업의 1순위는 강세지역인 TK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당 이완영 전 의원의 지역구인 고령성주칠곡과 최경환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북경산에 새로운 인물을 내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 의원 모두 친박(친 박근혜)계 인물로 이 전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상실했고, 최 전 의원은 뇌물죄로 의원직을 잃었다. 친박계가 아닌 인물로 전략공천해 당을 쇄신하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읽힌다.

한국당 내에선 황교안 대표가 공천 물갈이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황 대표는 당무감사위원 전원을 비공개 교체했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위원 상당수는 황 대표와 가까운 인사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가 총선 공천서 인적쇄신을 하겠다는 칼을 빼든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무감사위원회는 당 대표 직속기구로, 당협위원회에 대한 당무 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 위원장 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이기에 내년 총선 공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황 대표의 전원 교체에는 서울 등 수도권 원외 당협에 당선 경력을 갖지 못하고 방치된 인물들이 많다는 당 내 목소리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 대표가 당무위원 교체를 통해 원외위원장을 시작으로 현역의원까지 점차적으로 공천 물갈이를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황 대표는 이와 관련해 “당무감사에 만전을 기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준비하는 좋은 모멘텀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물갈이론 외에도 조 장관 가족에 대한 추가 의혹이 계속 나오자, 내년 총선 주요 의제인 ‘국회개혁’을 정기국회 입법과제로 내세웠다. 민주당 국회혁신특별위원회는 지난 19일 연석회의를 열어 ‘일하는 국회법’을 구체화했다.


국회 개혁
정책 대결

민주당 박주민 특위장은 이날 중진의원들에게 지금까지 특위 회의 과정서 논의됐던 ▲국회의원 불출석에 대한 페널티 징계 신설 ▲국민참여 제도 신설 ▲상시국회화와 상임위원회 의사일정 결정 및 안건 처리 시스템화 ▲국민소환제 도입 ▲윤리특위 상설화와 강화를 비롯한 국회의원 윤리의무 강화 등에 대해 보고했다.

한국당은 이에 질세라, 지난 22일 ‘민부론’을 제시하며 총선 정책 대결에 돌입했다. 조 장관 임명으로 한국당의 지지층이 결집하자 황 대표가 장외투쟁과 삭발식에 더해 기세를 몰아가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부론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해 국민이 부자가 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한국당은 민부론의 3대 목표로 ▲가구당 연간소득 1억원 달성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 ▲중산층 비율 70% 달성을 내걸었다.

당내에서는 민부론이 한국당의 내년 총선 경제부문 공약으로, 장기적으론 황 대표 대선공약의 기틀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민부론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해 현실성에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과거 보수정부서 실패한 정책인 친기업-반노조의 정책을 내세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일하는 국회 vs 민부론
패스트트랙·선거제 변수


한국당은 민부론을 내놓으며 정책 분야에선 ‘총선 모드’에 돌입했지만 갈길이 멀다. 먼저 최대 난제인 보수통합을 통한 외연확장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반조국연대를 시작으로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한국당의 보수통합이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최근 계속되는 바미당의 내분으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당과 바미당 비당권파의 보수통합 여부가 내년 총선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검찰의 패스트트랙 수사 역시 총선 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충돌과 관련해 피고발된 국회의원 109명 중 59명이 한국당 소속이다. 출석 요구에 협조해온 다른 당과 달리 한국당은 전 의원이 수환불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수사 대상인 한국당 의원들의 공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물갈이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친박계 의원들에겐 검찰 수가가 공천 배제의 좋은 명분이 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안도 내년 총선의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선거룰이 바뀌고 거대양당의 의석 수는 줄어들게 된다. 이를 두고 한국당 내에서 느슨한 선거연대 후 총선 뒤에 합치는 방식으로 가자, 한국당 2중대 정당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을 실행할 시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혹시나?
역시나?

역대 선거사를 보면, 여야 모두 4번 연속 선거서 승리한 역사가 없다. 2010년도 지방선거 민주당 승, 2016년 총선 민주당 승, 2017년도 문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8년도를 작년 지방선거 역시 민주당이 승리했다. 만약 21대 총선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4번 연속 민주당의 승리로 진보집권 20년이 열린다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 여야 모두 사활을 건 승부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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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