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보다 못한’ 헬스 트레이너 속사정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8.19 11:13:48
  • 호수 12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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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도 안했는데 퇴직금 준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프리랜서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직종이 있다. 바로 피트니스 센터 직원들이다. 이들은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등 합당하지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 급여 일부를 쪼개서 퇴직금을 지급하거나 최저임금 대신 추가 근무를 강요하는 피트니스 센터의 행태에 대해 <일요시사>가 파헤쳤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낮은 보수와 불안정한 일감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비정규직 직종에는 택시 운전사, 덤프차 운전사, 방문 교사, 보험 판매 등이 있다. 이들은 우울·불안 증세를 겪을 위험이 다른 임금 노동자보다 1.8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정규 직종 종사자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악습된 관행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도 비정규직에 속한다. 경력 10년차가 넘는 한 트레이너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전국 6000곳 이상의 업체에 20여만명 이상의 종사자가 있다. 4대 보험 가입과 최저임금, 퇴직금이 보장되는 업체는 1% 미만이다. 피트니스 종사자 약 20여만명 중 99%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보장과 4대 보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자로 인정해달라”고 청원글을 게시했다. 

이어 “회사는 근무하는 트레이너들에게 퇴직금과 최저임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이중계약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회사는 업계서 9년째 운영되고 있는 연 매출 200억대의 대형업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거쳐 간 수백명의 직원들이 퇴직금을 정상적으로 받은 적이 없으며, 그에 대한 처벌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피트니스 센터서 트레이너로 근무하려면 ▲근로계약서▲업무위탁계약서 ▲프리랜서 근무사실 확인서 ▲강사 서약서 ▲퇴직금 중간 요청서 등 보통 5개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수습 기간, 근로 장소 및 업무 내용, 근로·휴게시간, 휴일, 연차휴가, 임금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업무위탁계약서란 동등한 위치의 당사자 간 일정 업무를 맡기고, 업무 결과에 따라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다. 즉, 업무위탁 계약은 일반적으로 프리랜서와 계약할 때 사용하는 계약서며,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프리랜서 근무 사실 확인서란 회사와 계약자는 고용 관계가 아닌 지점관리만을 전담하는 직원을 의미한다. 또 4대 보험 가입을 스스로 하지 않았다고 내용을 증명하는 서류다. 강사 서약서에는 근로자 귀책 사유와 트레이너 활동에 관련한 내용을 서약한다. 이 서약서 안에는 ‘본인은 계약종료 내지는 계약 해지가 있는 날로부터 만 1년 동안은 회사의 사업장으로부터 5km 내에서는 동종의 영업을 개시하거나 취업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프리랜서로 입사시 5개 서류에 서명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 받아

업계 관계자는 “트레이너를 보고 수강하는 회원들이 꽤 많다. 트레이너가 그만두고 인근에 있는 헬스장으로 옮길 시 회원을 빼앗길 수 있는 우려를 차단한 조치”라고 말했다. 

A트레이너는 B피트니스 센터서 2018년 2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근무했다. 정식대로라면 근로자가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사할 때, 회사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퇴직금은 회사가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A트레이너는 2018년 말부터 퇴직금 중간 정산을 받기 시작했다. B센터는 A트레이너의 매월 급여에 10%를 급여날짜 하루 전날 퇴직금이라는 명분으로 입금했다. 이에 A트레이너는 “인센티브가 포함된 미지급된 퇴직금은 약 300만원이다. 퇴직금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A트레이너는 다른 센터서 근무하다가 해고당했다. A트레이너는 “피트니스 업계 특성상 세무조사를 맞으면 세게 맞는 경우가 있다. 전 직장(B센터)으로부터 협박이 들어왔다. 현 센터서 ‘미안하지만 그만둘 수 있겠냐’ 해서 회사에 피해줄 수 없어 이달 말까지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서 근무를 하다가 부산으로 왔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쪽 업계가 좁다 보니 한동안 일을 못 하거나 아니면 이러한 압박에도 견딜 수 있는 회사를 구해야 한다”며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A트레이너 외에 다른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Y지점서 근무했던 C트레이너는 “올해 3월 말부터 6월 말까지 석 달간 근무했다. 하루 9시간 이상 근무를 했는데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았다. 매출에 신경 쓰다 보니 업무 외 시간에도 추가 근무를 하게 됐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최소 180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나의 월급은 90만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센터서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Y지점으로부터 세무조사 관련해 압박을 넣어 현재 권고사직을 받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10년 전 60만∼70만원
지금도 90만∼100만원

C트레이너는 회원 유치에 따라 돈을 받을 수 있지만 회원이 환불하면 손해 보는 금액을 담당 트레이너 급여에서 차감한다고 주장했다. 

B센터 E지점에서 1년 이상 근무했던 D트레이너는 “퇴직금은커녕 추가 시간 업무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대형 헬스장의 경우 4대 보험 관련해 사회초년생들에게 월급서 깎지 않는 것이니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거나 근로복지공단에 200만∼300만원 상당의 금액을 먼저 내야 한다는 등 반협박을 하면서 위협감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상대로 노무소송이 걸리면 뒤에서 몰래 합의금을 주며 최하를 유도한다고 들었다. PT활동을 10년 이상 하니 다른 피트니스센터뿐 아니라 간부·임원급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금 해당 해당 피트니스센터 상대로 노무소송이 걸려있는 사람만 10명이라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헬스장이 현금 영수증을 제대로 하지 않아 탈세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이 업계에선 세무조사 관련해 먼지 안 나는 곳이 없다 보니 센터의 약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피트니스 센터뿐 아니라 다른 센터들도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들었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며 “10년 전 트레이너 기본급이 60만∼70만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90만원 수준으로 올라온 만큼 시대가 많이 변했다. 10년 전 관행을 지금까지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당 본사 관계자는 “퇴직금에 관한 근로 계약서는 문제가 없다. 프리랜서기 때문에 10%를 떼서 지급했다”고 답변했다. 강사 서약서에 표기된 반경 5km 내의 동종 영업장의 취업을 막는 행위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의 일이라 언제 일어난 일인지 밝힐 수 없지만, 예전에 한 트레이너가 개인정보를 훔쳐서 새롭게 들어간 센터에 그 정보를 팔고 회원들을 대거 빼앗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이후로 강사 계약서에 해당 내용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압박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다. (우리가)뭐가 아쉬워서 트레이너들의 앞길을 막겠느냐”고 항변했다. 

법 사각지대 

신하나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서 “헬스 트레이너들이 실제로는 근로자인데 프리랜서로 계약을 맺어 퇴직금 등을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직이 잦은 분야라 트레이너들이 자기 권리를 잘 주장하지 못하는데 회사쪽은 이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설령 프리랜서로서 업무위탁계약서를 썼다해도 해고를 하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4대 보험 역시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한다고 해서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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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집단지도체제 꺼낸 친윤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도 ‘전권 부여’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송 비대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차기 지도부를 집단지도체제로 구성할 것”이란 예상엔 여전히 힘을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30일 끝났다. 이후 국민의힘은 지난 2일 송언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새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송 비대위원장은 다음 달 중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당을 이끈다. 비대위원으로는 ▲4선 박덕흠 의원 ▲재선 조은희 의원 ▲초선 김대식 의원 ▲박진호 경기 김포갑 당협위원장 ▲홍형선 경기 화성갑 당협위원장이 내정됐다. 이들은 모두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로 구분된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반대했고, 공조수사본부의 윤 전 대통령 체포 시도 당시 저지 집회에 참석했다. 친윤 일색 새 비대위 지난 2일엔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했던 4선 중진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송 비대위원장은 같은 날 국회 비대위원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안 의원의 임명 사실을 밝혔다. 안 의원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코마(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답게 국민의힘의 현 상황을 일컬어 “악성 종양이 이미 뼈와 골수까지 전이된 말기 환자여서 집도가 필요한데도 여전히 자연 치유를 믿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메스를 들어 과거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냉정히 평가하겠다”며 “보수 정치를 오염시킨 고름과 종기를 적출하겠다”고 강조했다. 혁신위원회 구성은 송 비대위원장의 원내대표 출마 당시 공약이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23년 인요한 의원이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혁신위원회를 가동했던 적이 있다. 당시 혁신위는 다양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 취소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보좌관 신설 권고 등 혁신안 2개만이 실행됐다. 혁신위엔 의결권이 없다. 인요한 혁신위도 당 내외에서 “혁신위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일 뿐”이란 말을 들은 위원 3명이 사퇴하는 홍역을 치렀다. 안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꼭 필요한 처방전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비대위에서 의결하지 않으면 휴짓조각으로 전락한다. 국민의힘이 김 전 비대위원장의 5대 개혁안을 무위로 돌린 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사람이 안 의원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친윤(친 윤석열)계도 아니고, 친한(친 한동훈)계도 아니다. 대선주자로서 독자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당내 세력이 부실하다. 지난해 12월7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1차 시도 당시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홀로 자리를 지키면서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이후 안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독자적 정치 행보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찬성 견해를 꾸준히 유지했고, 지난 1월엔 국민의힘에서 유일하게 내란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됐던 지난 4월엔 국민의힘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과도 오랫동안 껄끄러운 관계였던 이준석 의원과 화해하고, AI와 미래에 대한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친윤계로선 안 의원의 혁신적이면서도 당내 충돌을 자제하는 성향과 이미지를 당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혁신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안 의원에게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점도 매력적이었던 대목으로 해석된다. 어떤 혁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전 혁신위원장이었던 인 의원은 친윤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혁신위원장 임명하고 권한 부여에 말끝 흐려 안 의원이 2회에 걸쳐 홀로 본회의장에 남아 국민의힘에 불리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사실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의결권이 없는’ 혁신위원장이어야 한다.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계보를 거느린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만 해도 친윤계로선 상대하기 까다롭다. 세가 없는 안 의원이 당시와 같은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당내 세력이 없어서 ‘제2의 한동훈’이 되긴 어렵다. 지난달 27일부터 김민석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 반환을 요구하면서 국회 로텐더홀에서 6일 동안 숙식 농성을 잇던 국민의힘 5선 나경원 의원은 묘한 견제구를 던졌다. 나 의원은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는 것”이라며 “기대도 있고,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방향을 골고루 정하라”는 말은 당내 다수인 친윤계의 요구 수렴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송 비대위원장조차도 안 의원과 혁신위에 권한을 부여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당이 특위 형식 기구를 만들면, 당의 의사 결정 체계 내서 운영한 사례가 있다”며 “이를 고려해 혁신위를 운용할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 수준의 혁신 방안이 잘 마련되도록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당의 의사결정 체계 내’라는 것이다. “안 의원과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강하다. 이를 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께서 바라고 계신 혁신은 인적 청산”이라며, “당을 잘못 이끈 사람들에 대한 조치 등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걸 못하면, 혁신위는 결과적으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등 혁신위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5대 개혁안 발표 당시에도 같은 당 조정훈 의원으로부터 “혁신위원장을 맡는 게 어떻겠느냐”는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결국 안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혁신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면서 전당대회 출마로 급선회했다. 그는 “당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혁신위원장 제의를 수락했지만, 혁신의 문을 열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며 “최소한의 인적 청산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비대위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과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을 놓고 갈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함만… 권한 없다 송 비대위원장은 혁신위 설치 외에도 많은 구상을 밝혔다. 비대위 활동 방향으론 ▲당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혁신안 추진 ▲비판과 견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도약 ▲유능한 정책 전문 정당으로 발돋움 등을 제시했다. 또 정책 정당화를 위해 ▲반도체·AI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 ▲청년 자산 형성과 일자리 창출 ▲취약계층 재기 지원 등 국민의힘이 추진할 3대 중점 정책도 밝혔다. 문제는 불과 한 달여 남짓 활동할 비대위임에도 너무 많은 구상을 밝혔단 것에 있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민의힘의 정책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 전담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비대위가 소화하기엔 너무 거시적이고 분야도 넓다. 이렇게 되면 구상의 진정성조차 의심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차기 당권 구도와 관련해 “차기 지도부는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송 비대위원장은 이를 부정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누가 집단지도체제를 얘기했는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저는 얘기한 적 없고,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지 의문이 많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의 힘을 모아 강한 정부·여당과 싸워야 하는 상황서 힘의 결집을 방해하는 이야기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단지도체제는 친윤계 입장에선 매력적인 체제가 될 수도 있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지도체제는 대표로 선출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최고위원을 맡아 함께 지도부에 입성하는 체제를 말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탈락한 후보들이 지도부서 배제되는 단일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는 ▲김문수 전 대선후보 ▲한동훈 전 대표 ▲안 의원 ▲나 의원이다. 이들 중 나 의원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 및 친윤계와 치열하게 다투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나 의원도 친윤계로 분류되지만, 전당대회 출마 및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장직 사퇴 여부를 놓고 윤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던 전력이 있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적 방향과 지지층도 다르다. 따라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이들 모두가 지도부에 모이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각에 따라선 “서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의도가 개입될 수도 있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안 의원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변종 히드라”라고 비판했다. 그는 “집단지도체제에서는 계파 간 밥그릇 싸움·진영 간 내홍·주도권 다툼을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협의와 조율이란 핑계로 시간만 허비하고 혁신은 실종되면서, 당이 다시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도 지난달 27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친윤 중심 체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쉼 없을 내부 투쟁 집단지도체제는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 채택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덩샤오핑·김일성 등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자가 없는 상황에선 파벌별로 당 최고의 의사결정기구 정치국원들을 추천하고, 그들 중에서 당과 국가를 통치할 수장을 배출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정치투쟁이 매우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모호해서 개혁도 지지부진해진다. 김일성은 파벌을 모두 숙청한 후 1인 지배체제와 세습체제를 확고히 굳혔다. 중국에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다른 파벌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휘하인 시자쥔으로만 정치국을 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도 게오르기 말렌코프·라브렌티 베리야 등 경쟁 상대를 몰아내 권력 독점을 완수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정당사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에서 지난 2016년 발생한 ‘옥새 파동’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전당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무성 전 대표가 대표직을 차지했고, 2위에 머물렀던 서청원 전 의원 등은 최고위원에 올랐다. 김 전 대표는 비박(비 박근혜)계였지만, 최고위원 중 상당수는 친박(친박근혜)계였다. 당시의 집단지도체제는 지난 2004년 총선 패배 후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이로 인해 계파 갈등은 외부에도 격렬하게 표출될 정도로 극심해졌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엔 대부분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는 곧 극심한 공천 갈등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하려다가 실패했고, 친박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전 의원 등 비박계 핵심에 대한 공천을 거부했다.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은 “김 전 대표도 공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등 김 전 대표를 공천 과정에서 배제할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천을 의논했다. 현 수석도 직속상관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건너뛴 채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이 위원장과 공천을 논의했다. ‘옥새 들고 나르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 위원장은 유 전 의원 등 비박계 인사 5명의 공천을 취소하고, 친박계 후보를 공천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천장을 작성했다. 하지만 여기에 직인을 찍어야 할 김 전 대표는 날인을 거부하고 “후보자 등록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취재기자들을 대거 몰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가 대형 선거 홍보 현수막을 배경 삼아 영도대교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제목을 따서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패러디를 갖다 붙이기도 했다. 당 대표에게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은 채 서로 비슷한 위상을 가진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으면 이 같은 내부투쟁은 쉼 없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옥새 들고 나르샤’는 불과 9년 전 일이었고, 국민의힘 구성원 대부분은 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 패배 후 지도 체제를 현재와 같은 단일지도체제로 바꿨다. 아픈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단지도체제라는 구상이 외부에 거론된 것에 대해선 “구 친윤계의 셈법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후보 ▲한 전 대표 ▲안 의원 등 친윤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당권 주자들을 같은 지도부에 몰아넣어 서로 싸우게 하다 자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윤 전 대통령 사례로부터 알 수 있듯이, 친윤계는 대선주자를 외부에서 데려와 옹립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당내 후보 경선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외부의 한덕수 전 총리를 데려와 새벽에 기습적으로 대선후보를 교체하려고 했을 정도로 거부감이 없다. 당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 대충 대선을 치르고, 대구·경북과 서울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당만 유지하면 된다”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친윤계는 텃밭 지역구와 특정 이익집단의 지원만 있으면 계속 여의도서 정치를 할 수 있다. 이는 일본식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여당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정치인 중 상당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역구 ▲후원회 ▲특정 이익집단과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반영구적인 정치생명을 누린다. 현재 일본에서 이어지는 쌀값 상승 파동과 관련해, 농협·쌀 도매상 등과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형성한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이 “쌀을 사본 적 없다. 지지자들이 많이 주신다. 팔아도 될 만큼 있다”는 망언을 대놓고 했을 정도였다. 일본엔 특정 집단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의원들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일각에선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친윤계가 집단지도체제를 배경 삼아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숙청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는 안 좋은 방식의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 겉핥기 자민당 내부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총리를 배출하는 파벌만 달라져도 정권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은 비결이었다. 집단지도체제 구상엔 당의 혁신엔 무관심하고 자리 다툼에만 집착하는 일부 계파의 뻔한 속내가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하는 안 의원과 “혁신위와 안 의원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말끝을 흐린 송 비대위원장이 크게 대비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