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아동 출연자’ 학대 논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29 11:00:57
  • 호수 1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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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 홍어 먹이고 회당 5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방송가에는 여전히 열정페이가 존재한다. 아역 배우를 둔 학부모들은 최저임금을 지키는 표준계약서는 구경도 못했을 뿐더러, 아이들을 장시간 촬영에 방치하는 등의 열악한 조건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화려한 방송가 뒤에 숨겨진 민낯에 대해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S양은 “추운 밤길에 혼자 뛰어다니는 연기 등 고된 촬영을 많이 해봤지만, 가장 힘든 촬영은 모 방송국서 홍어나 광어회를 먹는 장면이었다. 또 같이 출연한 언니는 사춘기라는 이유로 편의를 봐줬지만, 나한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나이도 어린 나에게 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일단 출연?
계약서 없이…

2017년 S양은 학원형 기획사인 D사에서 연기를 배웠다. D사는 모 방송국서 아이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S양에 관한 프로필을 모 방송국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인 L사로 전달했다. 

L사는 S양의 프로필을 확인한 후 오디션 기회를 제공했다. S양은 같은 해 3월경 OO공개홀서 열린 모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당시 8세였던 S양은 오디션에 합격해 캐스팅되는 기쁨을 누렸다.

S양 어머니는 “오디션이 일주일 이상 진행된 것으로 안다. 우리 아이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처음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프로그램 측에서 원하는 아이가 없어서 연령을 확대하다가 우리 아이가 눈에 띄어 발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S양 어머니를 불러 스케줄만 맞으면 S양과 함께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S양은 같이 출연하게 되는 출연자 A양과 함께 3번의 대본 리딩을 진행했다. 이때 S양 어머니는 제작진에게 계약서에 관해 운을 뗐다.

하지만 프로그램 관계자는 “그전에 하던 애들도 계약서 안 썼어요. 아이들이기 때문에 변수도 많이 있고, 3개월 묶어놔도 아이에 따라서 그 기간을 못 채우는 경우도 있고, 3개월 이상 촬영하는 경우도 있어 사실상 의미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S양은 어머니는 촬영 경험상 아이들과 제작사가 원해야 계속 촬영이 진행되기 때문에 계약서 작성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아이 출연에 관해서는 계약사항을 서로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S양 어머니는 “오디션에 참여해서 캐스팅된 아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모르겠지만, 엄마들은 다 알고 있다. 불공정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이 힘들게 얻은 배역을 엄마가 괜히 나서서 놓치게 될까 봐 말을 못했다. 이 업계에선 성인·아이 할 것 없이 무명 배우들은 불합리한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이 피해 갈까봐 항의도 못 해 
따로 쉬는 시간 없이 대본 연습

D사 관계자도 “원칙상으로는 출연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시간을 자꾸 미루더니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2017년 5월23일 S양은 본격적인 첫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됐지만, 오전 7시까지 도착해 촬영 준비를 마쳐야 했다. 메인 MC였던 S양은 2주에 1번씩 촬영을 진행했는데, 오전 8시부터 이르면 오후 10∼12시까지 하루에 4회분의 촬영을 해야 했다.


8세 아이가 소화하기에는 상당히 타이트한 촬영 스케줄이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S양 어머니는 “촬영 시간 동안 별도의 쉬는 시간은 없었다. 필름이나 메모리 교체할 때나 촬영 환경을 바꿔야 할 경우 틈틈이 쉬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 시간마저도 대본 연습하느라 바빴다. 온전히 쉬는 시간이라 하기도 민망하다”며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는 건 당연하다. 촬영을 다 마치고 차를 타고 집으로 올 때 녹초가 된 아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찢어졌다. 특히 촬영이 오후 12시에 끝난 다음 날에는 학교에 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촬영을 담당했던 작가는 “촬영은 8시부터 시작한 게 맞다. 하지만 아이들이 온전히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인서트(화면이 없어도 장면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는 영상) 촬영을 앞에서 몰아서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휴식시간을 넉넉히 제공했다”고 항변했다.

S양 어머니에 따르면 촬영 특성상 아이들은 서서 촬영에 임해야 했고, 나이가 어려 키가 작은 아이는 같이 출연한 성인 연기자와 키를 맞추기 위해 발 받침대를 사용했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S양 어머니는 “촬영 당시 프로그램 제작진은 주위 소품 중에 키를 맞출 수 있을 만한 물건을 급한대로 사용했다. 아이가 그 받침대서 떨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건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열악한 촬영환경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S양은 프로그램 특성상 음식을 먹고 맛을 평가해야 했다. 출연자들은 홍어, 광어회, 청양고추가 담긴 김치 등을 먹어야만 했다.

S양은 가장 힘들었던 음식으로 홍어를 꼽았다. S양은 82회 때 같이 출연했던 출연자 A양과 함께 홍어를 시식했다. S양은 고기, 김치와 함께 홍어를 먹어야 했다. S양은 “언니(A양)도 홍어를 먹고 콜라를 계속 마시면서 힘들어했다. 홍어를 맛있게 먹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밝혔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서도 S양은 고등어회를 시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S양은 “고등어회가 너무 비려서 토할 뻔했어요. 다른 회를 먹어도 고등어회 맛이 계속 나서 ‘아, 이게 비린내구나’ 했어요. 물도 계속 마셔봤지만, PD님과 대표님이 계속 맛있다고 하라 하시니까…. 솔직히 먹기도 싫었고 맛있다고 하라는데 맛있다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같이 출연한 언니는 사춘기라는 이유로 다독여주는데 저한테는 계속 ‘언니 대사인데 네가 좀 해봐라’ ‘이렇게 맛있다고 해줘’ 이런 식으로 언니보다는 나한테 자꾸 요구했다. 그 상황서 안 한다고 할 수 없으니까 일단 ‘예’ 하고, NG가 나면 계속 ‘이렇게 해야지’라고 하는데 좀 힘들었다. 저를 좀 거칠게 대한 거 같은(느낌이 들었다)…. 작가님들이 얘기하실 때는 친하니까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저를 좋다고 얘기하시는데, (L사 대표와 작가를) 못믿겠다”고 덧붙였다. 

S양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먹인 음식들은 제작진들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당시 촬영현장에 있던 작가는 “아이들에 중간에 맵다고 한 건 안 먹이고 넘어갔다. 억지로 먹인 적은 없다”고 답변했다. 
 


모 방송국 외주제작사서 촬영한 이 프로그램은 촬영 기준이 아니라, 방송 기준으로 출연료를 지급한다고 했다. S양이 처음 출연한 방송날짜는 2017년 7월10일이었다. 7월 6회, 8월 8회, 9월 6회, 10월 7회, 11월 8회, 12월 7회분이 방송됐다. 이후에도 2018년 1월 5회, 2월 3회, 3월 6회, 4월 9회, 5월 7회, 6월 7회, 7월 9회, 8월 5회, 9월 5회분에 출연했다. 

교통비도… 
1회당 5만원

마지막 촬영은 2018년 7월31일이었다. S양 어머니는 “촬영을 며칠 앞두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이는 잘하고 있었는데…. 제작진에선 아이가 오래 일하기도 해서 교체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아이가 촬영은 힘들어했지만, 막상 끝난다고 하니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S양 출연을 두고 처음부터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게 화근이 되었다. 2018년 7월31일 마지막 촬영을 끝냈을 때도 S양 어머니는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회당 출연료는 5만원으로 책정됐는데,한참이 지나서야 일부분만 지급됐다.

S양의 새 소속사 B사 대표는 “7월 6회 차에 관해서 L사는 D사로 출연료를 입금했다고 말했고, D사는 L사로부터 입금된 돈이 없다고 하며 말이 서로 달랐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료 5만원으로 책정해서 6회 차는 30만원이다. L사는 D사로 송금했다고 하나 우리는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29회 차에 대한 출연료는 1년도 지난 2018년 12월3일 L사로부터 받았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총 48회 차에 대한 출연료는 같은 해 8월13일 B사가 L사로부터 받아 S양 어머니에게 지급했다. 


B사 대표는 “지난해 8월 S양이 프로그램서 퇴출당하고 난 후 출연료가 급하게 지급됐다. 그 이유는 타인이 항의하자 프로그램에 손상이 갈까 봐 지급한 것”이라며 “출연료 5만원은 근로 기준 시간을 초과한 미성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S양 어머니는 2017년 7월 6회분인 출연료 30만원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호소하고 있다.

S양 어머니는 “이러한 일들이 여기만 그런 게 아니고 비일비재하다. 이전 방송활동서도 출연료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이전 프로그램 작가한테 입금됐는지 물어보니 입금명세서까지 보여주며 확인시켜줬다. 당시 D사 대표에게 물어보니 출연료에 대해서 별말은 없고, ‘출연시켜줬는데 그 까짓 돈 얼마나 되느냐고 난리냐’ 이런 말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트라우마…못 먹는 음식은 ‘홍어’
출연료도…항의하자 뒤늦게 지급

D사 대표는 “우리도 억울하다. 우리가 2017년 S양을 케어 하는데 인건비, 교통비, 식사비, 헤어 메이크업 등 들어가는 돈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야 하는 돈을 새로운 소속사가 받아갔다. L사는 계약서를 우리랑 안 쓰고 B사와 쓴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우리도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L사 대표는 “출연료 지급은 다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근로기준법상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하루에 7시간,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 다만 사용자와 근로 청소년이 합의한 경우에는 하루에 1시간, 1주일에 6시간을 한도로 연장해 일할 수 있다.
 

해당법에 따르면 S양에 관해서는 근로기준법 위반의 여지가 있다. 현재 B사는 L사에게 S양을 비롯해 소속 아역 배우들의 미지급된 출연료를 요구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 PD는 B사 대표에게 S양의 촬영본을 보내 S양의 시선과 표현에 대해서 지적을 하기도 했다. PD는 S양이 방송본만 확인하다 보니 (문제점을)잘 모를 수 있다면서 촬영본을 전송했다. 

2017년 5월부터 S양과 함께 출연한 A양도 홍어에 관한 기억이 좋지 않다고 했다. 1년 후 A양이 SNS를 통해 “싫어하면서 못 먹는 음식이 홍어”라고 말한 것. 텐**는 S양과 A양이 홍어를 먹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애가 못 먹겠다고 먹기 싫다는 거 굳이 저렇게 먹이는 건 아동학대 아니냐?? 성인들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불호가 더 많은 음식인데”라는 댓글을 달았다. 

성인도 못먹는
음식을 강요?

권상집 동국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방송업계서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그렇게 출연료와 처우에 대해 요구할 거면 하지 마’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이들, 솔직히 많다. 드라마가 생방송처럼 촬영되다 보니 근로계약서를 바탕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스태프는 방송업계서 이른바 매장되기 쉽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기학원의 사기

아역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용해 금품을 가로채는 일이 기획사뿐 아니라 일부 연기학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를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드라마 제작 감독까지 있다. 아역 배우 지망생 부모들에 따르면 ‘꿈팔이’는 연기학원서 상습적으로 일어난다. 연기학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학원이 폐업을 하면, 수업료를 돌려받지 못하기도 한다. 

한 웹드라마 제작사 A 감독이 꿈 팔이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아이가 오디션에 합격하려면 연기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아역 배우 부모들에게 25회에 300만원짜리 연기 수업을 제안했다. 수업은 5차례가량만 이뤄졌고 이후 그와의 연락은 끊겼다. 

“돈 주면 데뷔”

고소하겠다고 항의해 돈을 일부 돌려받은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아이 앞가림에 방해가 될까봐 쉬쉬했다. 전국출연자노조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피해 부모들에 따르면 A 감독은 출연료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인당 3만∼4만원의 출연료를 지급한 사실도 있다. 일반적인 1회 보조출연료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A 감독은 지난 23일 출연자노조 측에 사실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구>
 

<기사 속 기사> 보람튜브 아동학대 논란

최근 건물을 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제가 된 ‘보람튜브’가 아동학대 논란에 휩싸였다. 2017년 보람튜브는 전기 모기채로 아이를 협박해 춤을 추게 하는 연출, 임신과 출산을 흉내 내게 한 연출, 아빠 지갑서 돈을 훔치는 상황 연출 등으로 그해 9월 국제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으로부터 몇몇 아동 채널 운영자와 함께 고발당한 바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당시 “해당 유아뿐만 아니라 영상의 주 시청자인 유아와 어린이들에게도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보람튜브는 과거 다소 과한 설정 때문에 일부 맘카페서 논란이 되거나 유튜브로부터 몇 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다. 

재주는 아이가 돈은 부모가?

논란이 불거진 후 보람튜브는 사과했고 논란이 된 영상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했다.

보람튜브 측은 “초창기 업로드 영상을 포함 일부 비판을 받았던 영상에 책임을 통감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후 1년 이상 큰 논란이 될 만한 자극적인 콘텐츠는 제작되지 않았다. 현재 일부 부모들은 보람튜브가 대다수 ‘키즈 크리에이터’ 채널에 비해 유해한 것은 아니라고 평한다.  

과거 논란에 대해서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부모도 있다.

보람튜브를 향한 비난이 뜨거워지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비난이 ‘질투’에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와 인기를 끌었다.

이번 비난이 일반인은 열심히 노력해도 평생 못 벌 돈을 한 달 만에 번 데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이유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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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