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16범’ 조세형 파란만장 도벽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6.17 10:41:54
  • 호수 1223호
  • 댓글 0개

손 못 씻고…좀도둑 된 대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조세형이 아직 손을 못 씻고 제 버릇 남 주지 못했다. 또 도둑질을 했는데 벌써 16번째였다. 그의 나이는 올해 81세다.
 

▲ 조세형

1970~80년대 고위 관료와 부유층의 집을 털며 ‘대도’라는 별칭을 얻은 조세형씨가 또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1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조세형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세형은 지난 1일 오후 9시경 서울 광진구에 있는 한 다세대 주택 1층의 방범창을 뜯고 침입해 소액의 현금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아 출신
10대 때 절도

경찰은 조세형이 훔친 금액은 몇만원에 불과했지만, 상습법인 점을 감안해 구속한 것으로 밝혔다. 조세형이 절도 혐의로 수갑을 찬 것은 16번째다.

조세형은 1938년 전북 전주서 태어났다. 고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도둑질에 눈을 떴던 조씨는 5세 때 남의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가 은수저를 훔친 것이 첫 도둑질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16살 무렵 본격적인 도둑질을 시작했고, 이후 20차례 교도소에 들락거렸다. 1970년대 조세형의 범행을 기록한 판결문을 살펴보면 ‘조씨는 뒷담을 넘고 베란다를 통해 2층 방에 침입했다. 뒷담을 넘고 그 집 안방 쇠창살을 드라이버로 뜯어냈다’고 기술했다. 


당시 조세형은 “어릴 때 배를 채우기 위해 훔쳐 먹다보니까 절도 습관이 몸에 뱄다”고 말한 바 있다. 

법원 판결문에 나온 절도 기록도 다양하다. 36세이던 1974년 5월15일 오후 8시쯤 서울 신당동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 침입해 녹음기 한 대 등 모두 5만4100원 상당을 훔쳤다. 1975년 1월31일에는 서울 중구 필동 한 가정집에 들어가 다이아몬드 반지 등 105만원의 상당을 훔치기도 했다.

같은해 2월 조세형 서울 종로구 명륜동 양모씨 집 창문을 뜯고 침입해 금고를 드라이버를 부수고 현금·수표·금·비취목걸이·다이아몬드 반지 등 2600만원어치를 훔쳐 내연녀를 통해 70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다세대주택 방범창으로…
고작 몇 만원 훔치고 수갑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언론서 조세형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현대판 홍길동, 대도 등 다양한 별명이 붙으면서 단순한 잡범이 아닌, 의로운 도둑의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1982년 12월 형사들은 “그는 유명인사의 집만 골라 값비싼 귀중품을 훔치는 간 큰 도둑이었으며, 돈을 쓰는 것도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뿌렸다는 게 주변인들의 얘기”라고 말한 바 있다. 

1983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가 훔친 5.75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5공 시절 고위층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야당은 정부를 공격할 거리를 찾다가 들고 일어나자, 5공에 반감을 갖고 있던 대중은 그를 강자를 노리는 대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조세형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서 ‘권력층을 대상으로 대담한 절도 행각을 벌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왕에 범죄 하는 것 큰 집 들어가야 가지고 나올 것도 있을 것 아니냐”며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청와대 경호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신모씨였다”고 답했다. 

조세형은 “거기서 여러 가지 수십억원어치 보석을 들고 나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물방울 다이아였다”며 부유층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이어 “솔직히 정상적인 수입으로 그렇게 했겠냐”며 “나보다 더 도둑놈들이고 부정축재로 쌓은 것이겠지”라고 덧붙였다.

조세형이 부유한 큰집을 노렸던 것은 허를 찌른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1980년 초반의 큰집은 의외로 문단속이 허술한 경우가 많았고, 집이 크면 한쪽 방에서 웬만한 소리를 내도 발각되는 일이 드물고, 큰 집일수록 낮에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유층 털어
사회적 이슈

당시 조세형은 부유층의 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민들은 통쾌하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경찰과 사법당국은 긴장했다. 결국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졌고 182년 11월 조세형은 경찰에게 최포된다. 체포될 당시에도 조세형은 절도 전과 11범이었다.

1982년 11월에 체포된 조세형은 1983년 4월 결심공판이 열리던 날 탈주를 결심한다. 10여차례에 걸쳐 5억여원 절도 혐의로 기소된 그는 탈주 계획을 세운다. 법정에서 구치소로 돌아가기 전 피의자들은 구치감서 대기한다. 조세형은 구치감에 머무는 동안 경비가 허술해지는 순간을 노렸다.

담당 교도관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구치감 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와 한쪽 수갑과 포승줄을 푼 뒤, 복도 환풍기를 뜯고 탈출한 것이다. 조세형은 탈주한 뒤 서울역, 후암동, 장충동 등 도심 일대를 활보했다. 또 5차례나 주택에 몰래 침입해 음식과 현금, 옷가지를 훔치는 대담함도 보였다. 

1983년 4월19일 오전 10시쯤 서울 장충동 주택가 골목. 18세 청년은 수배범을 발견하고는 10여분간 미행한 후, 인근 파출소로 달려가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을 발견한 조세형이 가정집으로 뛰어들어 지붕을 타며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이미 장충동 일대에 포위망을 쳐놓은 상태였다.
 

10여분 동안의 추격전 끝에 경찰과 조세형은 막다른 곳에서 대치했다. 조세형이 한 가정집에 침입해 집주인의 아들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조세형의 손에는 드라이버와 쇠톱이 들려 있었다. 경찰은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 얼마 후 조세형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쏘지 마라. 자수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스총을 발사했고, 조세형이 흠칫하며 인질을 놓친 사이 권총 한 발이 발사됐다. 영화 같은 ‘대도 탈주사건’이 6일 만에 종결되는 순간이었다.

또…또…
의적 미화?

조씨는 체포 후에도 화제가 됐다. 바로 다음과 같은 절도 다섯가지 원칙 때문이었다. 첫째, 나라 망신을 주지 않기 위해서 외국인의 집은 털지 않겠다. 둘째, 다른 절도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판검사 집은 들어갔더라도 그냥 나오겠다. 셋째, 연장은 사용하지 않는다. 넷째, 가난한 사람 돈은 훔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서 사용한다. 


조세형의 검거는 당대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조씨에게서 압수된 현금이나 수표, 귀금속 등을 도난당했다는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난당한 금품 회수보다도 ‘탐관오리’나 ‘졸부’라는 손가락질과 뒤따를 세무조사를 더 두려워서 한 탓이다.

상류층 부패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조세형을 의적이라며 추켜세웠다. 

이 같은 그의 발언은 언론을 통해 대중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당시 이해구 치안본부장이 “조세형은 훔친 돈으로 불우한 이웃을 도와준 적은 없다. 술집 등에서 호스티스들에게 돈을 마구 뿌려 횡재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른다”고 발표했다.

조세형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나눠줬는지는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이 거의 없다.

최중락 전 총경은 “나눠주길 뭘 나눠주나. 자기 먹기도 바쁜데. 내가 보기에는 없었다. 항상 붙들리면 그렇게 얘기했다. 자기 미화하려고…”라고 말했다. 그를 옹호했던 한 법조인도 “그가 일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정상참작을 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며 “‘도둑질 했지만 베풀어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70~80년 부유층 털어 유명
신앙 등 제2의 삶도 공염불


조세형의 전력도 기부 행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도둑질을 하면 여성과 함께 호화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1982년 검거 직전엔 부자들만 가입할 수 있는 사파리 클럽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1997년 출소한 조세형은 보안업체서 수당을 받으면서 자문위원 일도 하고 대학 강의도 했다. 교회서 간증 요청을 받아서 신앙 활동하기도 하고 또 선교 단체 설립한 후에 사회사업도 시작하면서 개과천선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전과자들을 종교로 인도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활동도 하면서 절도와는 연을 끊는 듯 했다. 하지만 조세형은 선교활동을 떠난 일본 도쿄 시부야 주택가서 빈집 세 곳을 털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징역 3년6개월형 선고를 받는다. 조세형은 수형 생활을 모범적으로 해 감형을 받았고, 2004년 3월에 다시 출소했다. 2005년 서울에 있는 한 치과의사 집에 들어가서 금품을 훔쳐 징역 3년 선고받았다. 2008년 출소하고 2년이 지난 2010년에도 장물 사건과 관련해 또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2013년에는 70대의 나이에 노루발못뽑이 등을 이용해 강남 고급 빌라를 털다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출소 5개월 만인 2015년 용산의 고급 빌라서 재차 남의 물건에 손을 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진짜 여든까지
다시 도둑질

손수호 변호사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조세형 본인이 의적이었다면서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경찰이나 법원이 공식적으로 대도나 의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며 “대도, 소도 둘 다 없으며 오로지 절도만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자발찌 무용론 “길게 채우면 효과 없다”

재범 우려가 있는 범죄자 신체에 5년 넘게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경우 재범률이 오히려 올라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으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을 약 90% 떨어뜨렸다고 발표한 내용과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장기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관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으로 파악되면서 보다 정교한 정부의 감독과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형사정책학회의 학술지 ‘형사정책’에 실린 ‘전자장치 부착제도의 효과성에 대한 재검토’ 논문에 따르면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기간을 선고받은 범죄자들의 재범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선고기간이 1년 이상 5년 미만인 경우 2531명 중 123명(4.9%)이 재범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비해 5년 이상 10년 미만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는 1682명 중 183명(10.9%)이 재범을 저질러, 재범률이 1∼5년 부착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 10년 이상 부착을 선고받은 경우도 1028명 중 71명(6.9%)이 재범을 저질렀다.

5년 이상 부착자들의 경우, 분석 대상인 전체 8430명 중 378명(4.48%)인 재범률 전체 평균을 앞지른 만큼 논문은 5년 이상의 전자발찌 중장기 부착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는 역효과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부착 선고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재범률은 3189명 중 1명(0.03%)에 불과했다.

논문은 1년 미만 전자장치 부착기간 선고가 주로 재범 위험성이 약한 가석방(가출소, 가종료 포함) 범죄자에 집중됐다고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5년 이상 채우면 재범률 증가
1~5년 부착에 비해 2배 이상

따라서 해당 논문은 전자발찌 제도에 대해 “‘단기 충격요법’으로 전자장치 부착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논문은 “법무부가 전자감독제도 시행 전인 2004∼2008년 14.1%에 달한 성폭력 범죄 재범률이 제도 시행 후 2009∼2017년 1.9%까지 떨어졌다며 내세운 운영 성과 발표에 실증적 오류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논문은 전자감독제도가 도입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성폭력·살인·강도 등 범죄자 8430명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에 따른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다.

전자감독제도 도입 당시 최대 5년이었던 전자장치 부착 선고 기간은 지금까지 4차례 개정을 거쳐 가중처벌을 적용할 시 45년 상한으로 늘었다. 

강민구 변호사는 논문서 “전자감독제도 제정법대로 5년 범위에서 재범 위험성에 따른 전자장치 부착기간을 선고해야 한다”며 “전자장치를 단기 충격요법으로 사용해 줄어든 관리인력으로 1대1 전담 보호 관찰관제도를 확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