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① 정경유착의 고리

고질병 못 고치면 ‘망국의 지름길’



전두환, 정경유착 정착…경제 부흥 위해 경제인과 밀접
노태우, ‘비자금’으로 몰락…“추징금 내기 바쁘다”
김영삼, 한보비리로 치명타…정태수 “150억원 전달” 폭로
김대증, ‘3홍 게이트’ 발생, 노무현‘세종증권 비리’로 곤욕

정치권의 오랜 고질병 중 하나가 ‘정경유착’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은 “정경유착을 근절시켜야 된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정경유착이 지나쳐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사례가 적잖아서다. 특히 정경유착과 관련된 대형 사건은 각 정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노무현 정권, 현 정부인 이명박 정권에까지 이를 정도다. 정경유착이 지나치면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정권이 망한다는 게 국민일반의 여론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전·현직 대통령들은 정경유착 근절을 외쳐왔다. 정치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고리가 과연 2009년에는 단절될 수 있을까. 그동안 역대 정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경유착의 사례들을 재조명해봤다.

정경유착은 기업과 정치인 사이의 부도덕한 밀착 관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전·현직 대통령들은 정경유착 근절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왔다. 정경유착만이라도 근절하면 ‘이 정권만큼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전제조건이 성립되기에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 관계자는 “권력·돈 등은 정치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무리 정경유착 근절을 외친다한들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면서도 “과거에 비해 정경유착 사례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근절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역대 대통령들이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 있지만, 이들 모두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정경유착 근절은 전·현직 대통령들의 남모르는 고충 중 하나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잡음만 여기저기서 불거졌고, 도리어 뿌리 깊이 박혀 마치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비자금 사건 터지면 ‘기업인’ 연루는 기본


그렇다면 정경유착이 정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치학자들은 하나같이 ‘박정희 정권 때부터’라고 말한다. 박정희 정권은 황폐화된 한국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경제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 당시 정부주도형 대기업-수출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은 각종 인허가 및 규제를 수단으로 특정기업에게 이권이나 기회를 제공하는 특혜를 줄 수밖에 없었던 시기다. 때문에 정치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이 고개를 들었고, 각종 비리 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6년 한국을 뒤흔든 ‘한비 사건’,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실제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당시 36만t 생산 규모의 동양 최대 비료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이후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건설자재로 위장, 사카린 원료를 수입 밀매한 것이 들통 나 한국 비료를 국가에 헌납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 정확한 진상은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전두환 정권 때는 정경유착이 공고화됐다. 기업과 정치인간의 ‘악어와 악어새’관계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장영자·명성 사건’과 ‘전두환 비자금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1982년에 발생한 장영자 사건은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와 사돈인 장영자 씨가 권력과 결탁해 저지른 거액의 어음사기 사건이다. 어음을 사채시장에 할인하는 수법으로 64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했던 것. 이로 인해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의 기업이 도산하고 조흥은쟁·상업은행장 등이 구속되면서 정경유착의 뿌리가 서서히 박히기 시작했다.

또 같은 해 발생한 명성 사건은 명성그룹에 대해 자금 출처, 인허가 문제 등에 대한 의혹이 제시돼 국세청과 검찰의 조사 끝에 100억원여의 탈세 및 1066억원의 불법 횡령 사실이 밝혀졌던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등이 구속됐다. 또 윤자중 전 교통부장관 등이 뇌물수수 업무상횡령방조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정경유착의 결정판은 전두환 비자금 사건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5공 비리 청산’ 일환으로 검찰 수사가 실시되면서 지난 1995년 전 전 대통령의 모든 치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은 대한석유공사를 상위재벌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43인의 기업주로부터 2000억원여의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도 정경유착이 비일비재했다. 행정각부의 장 등을 직접 지휘, 감독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책사업자 선정, 신규사업 인허가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기업 회장들을 독대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1991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당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진해 잠수함기지 건설공사, 월성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공사 수주를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억원을 받는 등 7회에 걸쳐 240억원을 수수했다.

또 동아그룹 회장으로부터 아산만 해군기지 건설, 울진 원자력발전소 수주 청탁과 함께 100억원을 받는 등 총 6회에 걸쳐 230억원을 수수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서울 수서 대치 지구내 조합주택 건축 사업을 위해 수서택지 개발지구중 일부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특별 분양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4회에 걸쳐 150억원을 받은 것. 이 사건으로 오용운·이태섭·이원배·김동주·김태식 의원 등이 구속됐다.

이 외에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9번에 걸쳐 250억원을 수수, 차세대 전투기사업·쌍용차 사업·대형건설사업 및 석유화학사업 등에 특혜를 줬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LG그룹 구자경 회장 등에게도 단독면담의 기회를 만들어 각각 250억원, 210억원을 받기도 했다. 즉 대기업은 200~300억원, 중규모 재벌은 100억원대, 소규모 재벌로부터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셈이다.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은 정치권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당총재 자격으로 민자당 운영비를 매월 20억원을 사용됐고, 정치인들에게도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의 일정부분이 권력유지에 사용됐다는 얘기다.

말만 앞선 역대 대통령, 뿌리뽑으려다 되레 당하기도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20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이 부과됐고, 뇌물을 제공한 김우중·정태수 전 회장 등은 ‘옥살이’를 해야 했다.

김영삼 정권도 정경유착의 악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보그룹 부도를 발단으로 드러난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5조7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대출, 정·관·재계 핵심부가 유착해 부정과 비리가 행해졌다.

실제 검찰은 한보그룹 정 회장이 2136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정관계 로비와 위장계열사 인수 및 부동산 구입 등에 유용한 사실을 밝혀내 정 회장 등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특히 정 회장은 1999년 외환위기 관련 경제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직접 만나 150억원을 전달하는 등 총 200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형적인 정경유착 사건인 셈이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도 한보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다. 현철 씨는 한보에 대한 산업은해의 특혜대출을 할 수 있도록 ‘후원자’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각종 공직의 인사와 신한국당 공천권 행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 외에도 국방사업인 ‘백두사업’ 추진과정에서 고위급 상대로 로비를 벌인 린다 김이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 연서를 나는 등 적절치 못한 관계를 맺었고, 정대철 민주당 전 대표는 경성비리 사건, 백남치 전 신한국당 의원은 동아비리, 이신행 전 한나라당 의원은 기아 비리 등과 관련해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후 정경유착만큼은 뿌리 뽑아야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직전에 장남 김홍일·차남 김홍업 전 의원을 삼청동 임시공관으로 불러 신중한 처신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 역시 “주변에서 조용히 해주는 것이 대통령을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은 계속됐다. 과거보다 더한 면도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른바 ‘3홍(김 전 대통령 세 아들 홍일·홍업·홍걸) 게이트’로 불리는 정경유착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은 이용호 진승현 게이트,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은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 3남 김홍걸 씨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됐던 것. 결국 김홍일 전 의원과 김홍업 의원은 종금사와 대기업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처벌을 받았고, 3남인 홍걸 씨는 벤처업계 비리인 ‘최규선 게이트’에 엮여 법정에 섰다.

실제 정현준 게이트는 한국디지털라인 정현주 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이 수백억원대의 금고 돈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정치인 등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2000년에 발생한 진승현 게이트는 MCI코리아 진승현 부회장이 1999~2000년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열린금고와 한스종금 등에서 2300여억원을 불법대출 받고 주가를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 정·관계에 로비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용호 게이트(2001년)는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한 뒤, 수사 무마를 위해 검찰 국정원 정치인에게 로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최규선 게이트(2002년) 역시 최규선 씨가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 씨와 체육복표사업자 선정과정에 개입해 청탁 대가로 기업으로부터 뇌물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 외에도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하는 대가로 비자금을 받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뇌물수수 및 불법송금 주도 혐의 등으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옥살이를 했다.

제2의 고질병 ‘비방전’‘끊어야 될 것 많다’

전직 대통령들의 정권유착 행태를 목도했던 노무현 정권도 정경유착 근절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청탁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지는 퇴임이후 수포로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의 둘째 형 노건평 씨가 세종증권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법정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뿐 아니라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3억원을 받았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도 정경유착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제2롯데월드 사업’에 대해 정부가 허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어서다. 민주당 이재명 부대변인은 “제2 롯데월드를 추진하는 롯데 총괄사장 장모씨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국가안보 대신 친구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치권은 정경유착 외에 제2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비방전과 몸싸움 등도 근절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정치권은 MB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 언제 몸싸움을 할 것인가에만 시기조율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는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오라”라는 문자 메시지를 띄웠을 정도로 여야간의 합의가 안 되면 무력충돌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이 같은 비방전과 몸싸움은 과거에도 계속되어 왔다는 점에서 꼭 끊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민여론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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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