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② 재계 5대 악습 되풀이 실태

로열패밀리 제버릇 ‘황제에서 황태자로…’

재벌그룹 도덕적 해이 등 고질병 매년 반복
기업 병폐 나라경제 직결 “털 건 털고 가자”

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 주가 조작, 경영권·재산 다툼, 하청업체 죽이기, 이물질 파동….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지난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시대의 악습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이런 병폐가 나라 경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불황의 벽 앞에서 극심한 불안과 절망으로 벌벌 떨고 있는 정부와 국민으로선 마땅히 질타하고 감시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새해를 맞아 <일요시사> 뉴 캠페인 ‘끊자 끊자’를 통해 ‘털건 털고 가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재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고질병들을 되짚어 봤다.

재벌 집단은 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IMF 외환위기 사태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의 뒷짐으로 가능했던 온갖 불법과 편법, 부실경영, 도덕적 해이 등이 환란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재계의 고질병이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재벌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각 그룹은 2000년대 들어 앞 다퉈 지배체제 전환을 서두르는 등 재정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나라 경제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결국 IMF가 재벌그룹의 투명경영을 공고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재계의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IMF에 못지않은 경제 한파가 또 다른 양상으로 들이닥친 지난해 충격적 추문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으름장도 소용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후 “경제계의 몇 가지 고질병을 고친다면 7%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재임 1년이 지난 결과 두 전제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1>기업 털면 정치인 나온다
비자금·로비의혹 줄이어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는 재계에서 끊이지 않는 추문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경영 1세대부터 줄곧 그랬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기업 비리 의혹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댔다.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검은 돈’을 집중적으로 털어냈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특정인을 솎아내는 데 비자금만 한 통로가 없다. 비자금이 곧 정·관계 로비로 연결되는 탓이다.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을 표적삼아 우선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여기서 나온다. 검찰이 기업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장 먼저, 가장 이슈화된 비자금 사건은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촉발된 삼성그룹 비자금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 일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42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룹 수뇌부인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 역시 퇴진했다.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도 해체됐다.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는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임직원 명의의 1천200여 개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된 이 돈의 출처와 용처를 놓고 세간의 추측이 무성하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100여일간 계속된 ‘삼성 수사’는 올해 초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았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도 비자금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 등으로 백 회장을 구속했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 구속 등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수사로 접어들었다.


이외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포스코 ▲유한양행 등도 비자금 또는 로비 혐의로 검찰에 이미 구속되거나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재계의 비자금·로비 후폭풍이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재벌가 자제 ‘주식 장난’
꼬리에 꼬리 문 주가 조작

재벌 일가의 주가조작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재벌가 2∼4세들의 ‘주식 장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초부터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의 첫 타깃은 코스닥 시장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LG가 방계 3세 구본호(사진)씨였다.

구씨는 2006년 9∼10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된 조풍언 씨의 자금을 이용해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을 끌어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상승시킨 후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재벌가 2∼4세 주가조작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검찰은 상당수 재벌가 자제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해 지난해 8월 두산가 4세 박중원 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뉴월코프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거짓 공시를 해서 일반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말 한국도자기 창업주 손자인 김영집 씨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당시 엠비즈네트웍스)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수백억원 규모로 재산상 피해를 끼치거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씨 등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3형제도 같은달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돈을 투자한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뿐만 아니다. 기형적인 투자로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수두룩하다. 현재 A그룹 창업주 손자 N씨, K그룹 회장 아들 J씨, L그룹 3세 S씨 등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투자한 회사의 시세차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형국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관심사다. 조 부사장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혹을 캐고 있는 검찰은 조만간 조 부사장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재벌그룹 총수의 주가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유티씨인베스트먼트가 허위공시를 통해 수백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정황을 포착했다. 이 회사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투자회사다. 검찰은 임 회장이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3>가족간 피 튀는 재산다툼
끊이지 않는 ‘골육상쟁’

재벌그룹 일가의 재산 다툼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우도 빈번했다. 법정 공방은 기본. 피붙이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치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했다.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겉으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돈’이기 마련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종근당 일가가 딱 그렇다. 이들은 15년 전 별세한 고 이종근 회장의 차명주식을 놓고 분쟁에 휘말렸다.

이 회장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난해 12월 “이 회장 사망 후 장남인 이장한 회장이 가족을 완전히 배제하고 종근당 등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단독으로 경영권을 장악했다”며 종근당산업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종근당 일가는 이 전 회장이 1993년 사망한 이후 줄곧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맛살 명가’오양수산 일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의 골육상쟁은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이 지난해 6월 타계한 뒤 상속지분 처분을 놓고 불거졌다. 2000년 11월 김 회장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1000억원대의 재산을 놓고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해를 넘겨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김 회장 소유 오양수산 지분(35.2%)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겼지만 장남인 김명환 전 오양수산 부회장이 반발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도 연출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결국 법원이 지난해 7월 1심에서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대성그룹 일가인 고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3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도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 이후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지난해 유난히 가족 간 분쟁이 마무리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 딸들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창업주 가족을 상대로 낸 100억원대의 상속재산 청구소송은 지난해 2월 혼외 딸들에게 40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조용히 종지부를 찍었다.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의 진수’를 보여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강문석 전 이사의 부자간 경영권 분쟁도 강 전 이사가 지난해 말 동아제약 지분(2만500주)을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됐다.


<4>‘먹는 음식에 장난을…’
식품업계 이물질 파동 반복

지난해 ‘먹거리 쇼크’도 되풀이됐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 먹거리에 비상등을 켠 사건은 ‘생쥐깡’과 ‘칼날 참치’ 파문이다.

지난해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 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뜨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 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해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두충 꽁치, 다이옥신 삼겹살, 바퀴벌레 라면, 생쥐 냉동야채, 볼트 컵라면, 동전 시리얼 등 이물질 파문은 계속됐다. 해당 식품업체들은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물질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지난해 9월 ‘멜라민 공포’가 엄습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동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분유를 비롯해 유제품, 사료, 가공식품 등으로 확대됐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문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체들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5>말뿐인 대·중소 상생관계
‘하청업계 죽이기’ 여전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쓰러져가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998년 6.01%에서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2007년 4.43%까지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틈만 나면 긴급 간담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기업에 전했고 대기업들은 모두 협력을 다짐했다. 이 대통령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생경영 투자액은 지난 2005년 1조401억원에서 지난해 2조3484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상생협력 전담 조직을 갖춘 기업도 2005년 5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소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원자재가 상승, 매출감소 등으로 인해 자금수요는 늘어난 반면 현금결제 비중 감소 등에 따른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추세다.

특히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대기업 불공정거래 사례 발굴 조사’결과 대기업들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별로 보면 ▲하도급대금 지연지급 ▲대기업 통신사의 부당한 거래관행 ▲PVC레진 가격의 비합리적 산정 ▲대기업의 비밀유지각서 강제 ▲대형 홈쇼핑사의 일방적 반품 및 비용상계 처리 ▲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산정 ▲대기업의 서면교부의무 위반?일률적 납품단가 인하 등 ▲대형 SI업체의 일방적 거래거절 등이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 보복이 두려워 참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내 건설 대기업들이 주로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에 선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를 위협해 선급금 포기각서를 받았다.

대형 백화점·마트가 우월적 지위 남용해 입점업체들을 압박한 사례도 허다했다. 또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란 고전적 수법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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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