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8③>연말연시 서민들의 고달픈 애환<돌격르포>

“하루벌이 하루살이에 쓴 소주만 들이켜요”


흉흉한 시국으로 다소 썰렁하긴 해도 연말은 연말이다. 백화점은 세일이 끝나기 전 겨울옷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유흥업소가 즐비한 골목은 취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흥청망청한 분위기는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저소득층 서민들과 실직자, 노숙자, 노점상 등이 그들. 이들에게 연말은 새해엔 나아질 거란 희망조차 품기 어려운 추운 날들이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더 받으려 동분서주하는 대리운전기사, 구직을 위해 쓸개까지 빼놓은 실직자, 내일의 일거리가 보장되지 않아 밤마다 쓴 소주를 삼키는 일용직 노동자 등 처절한 연말을 보내는 이들의 사연을 현장에서 들어봤다.

분주한 연말 분위기 속 생계걱정에 여념 없는 서민들
술자리 많은 연말 대목 노린 대리운전기사들의 힘든 일상
실업자 늘면서 대리운전기사, 노점 상인들 경쟁 치열해져
일정 수입 없는 실직자·노숙인 등 ‘더욱 가까운 불황’


10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반 강제로 퇴사하고 지난 10월부터 대리운전을 시작한 박모(37)씨. 그의 하루는 오늘도 해가 떨어진 뒤 시작된다.
지난 15일 저녁 7시, 그날도 어김없이 박씨는 PDA를 들고 강남 유흥가 골목에서 손님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평소대로라면 손님이 뜸할 월요일 저녁이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연말특수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햇다.

대리운전자 늘어나
대목특수 사라져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PDA는 울리지 않았다. 초조감이 극에 달할 무렵 첫 번째 ‘오더’가 왔다. 내용은 ‘강남역-신설동 15K’. 강남역에서 신설동까지 1만5000원이란 뜻이다.
박씨는 콜센터 접수를 마치자마자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부리나케 강남역으로 이동,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태웠다. 무사히 첫 번째 손님을 집까지 태워준 뒤 1만5000원을 받은 박씨는 벤치에 앉아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마침 인근에 있는 손님으로부터 주문이 왔고 웬 횡재냐 싶었던 박씨는 급히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손님은 먼저 온 대리운전 기사의 차를 타고 떠난 뒤였다. 대리운전을 부르는 사람들은 몇 개 업체에 전화를 걸어 먼저 오는 운전자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일이 허다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었다.

그 후 박씨는 용산에서 일산으로, 마포역에서 강서구청 등으로 불려 다니며 5건의 대리운전을 해 새벽 5시경 약 8만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택시비와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 식사비 등을 제하고 4만원가량의 순수익을 손에 넣은 채 지친 몸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박씨는 “그나마 연말이라 손님이 좀 있는 편이어서 집사람에게 몇 만원이라도 쥐어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박씨와 같은 대리운전기사들에게 연말은 송년회 등 각종 모임으로 취객이 늘어나는 대목일 뿐이다. 크리스마스나 새해 첫 해맞이 등의 행사는 이들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들이 흥청망청한 연말을 보내 PDA가 한 번이라도 더 울려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연말특수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대리운전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데다 실직 등의 이유로 대리운전기사를 택한 이들이 늘어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전국대리운전자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30일 기준으로 전국의 대리운전자 수는 7만6000여 명이다. 이는 지난 6월과 비교해 5000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암암리에서 활동하는 대리운전기사가 적지 않은 만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대리운전 업계에 뛰어들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자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지출만 하고 돌아오는 대리운전자들도 허다하다. 대부분 대리운전 이용자들은 몇 군데의 업체에 전화를 건 뒤 가장 먼저 오는 대리운전자에게 자신의 차를 맡긴다.
때문에 기동성 싸움에서 진 운전기사들은 허탕을 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택시비만 낭비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심지어 대리운전업체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집단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사건 등이 이를 말해 준다.

여성 대리운전자의 경우 더 큰 고충을 감수하며 밤거리를 나선다. 술에 취한 남자손님들이 공공연히 보내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등을 견디는 것은 여성 대리운전자들이 넘어야 할 산이다. 때로는 시선과 언어성희롱에서 그치지 않고 육탄공세를 펴는 취객도 있는 것이 현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운전대를 잡게 됐다는 대리운전 경력 6개월 차의 주부 이모(35)씨. 처음엔 뭇 남성들의 농담을 받아주는 것이 몸의 피로함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성적농담에 대응하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러나 지난달 손님에게 당한 성추행으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대리운전을 그만두게 됐다.

여성운전자에 쏟아지는
야릇한 시선과 짓궂은 농담

그날 밤도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자손님을 옆자리에 태우고 가던 이씨. 점잖은 인상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손님을 본 그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그 남성은 이씨에게 “2차 한번 가자”는 제안을 한 것.
놀란 이씨는 애써 웃으며 거절을 했지만 남성은 계속해서 2차를 요구했다. 결국 그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그 남성은 이씨의 팔을 잡아 당겨 끌어안은 뒤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남성을 밀어낸 뒤 도망치듯 차에서 빠져나왔다.
이씨는 “그날 이후로 대리운전은 절대 하지 않는다”며 “술에 취하면 모든 여자를 업소의 여자로 보는 남성들이 있는 한 여자가 대리운전을 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들뜬 연말분위기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또 다른 이들은 구조조정 등으로 실직하거나 사회에 나오기도 전 불합격이란 쓴잔만을 마시고 있는 구직자들이다. 하루아침에 백수로 전락하거나 면접의 기회조차 뜸한 이들에게 연말은 우울하기만 하다.
올 10월 아빠가 된 이모(28)씨는 그야말로 막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100일 잔치를 하기도 전 실업자 신세가 돼 분유값 걱정을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1년 전 한 무역업체에 취직해 15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세 식구의 가장이 된 이씨. 늘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전셋집이나마 보금자리가 있고 직장이 있고 가족이 있다는 것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지난달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말이었다. 갑작스런 해고통보에 정신이 아득했던 이씨에게 사장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아기 기저귀 값이라도 하라며 두 달 치 월급을 넣어 줬던 것.
회사가 기울어가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데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꼈던 사장의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씨는 눈물을 머금고 사무실을 나와야 했다.

그는 그 후 건설현장을 찾아다니며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거리를 찾기가 어려워 공치는 날이 늘어간다고 한다. 이씨는 “젊은 놈이 처자식 굶기겠느냐며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어린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눈물부터 난다”고 말했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장모(25·여)씨도 초조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는 이들 중 하나다. 대학 4년 동안 대기업취업만을 목표로 달려왔던 장씨. 그러나 대학시절 동안 취업을 위해 쌓아왔던 각종 이력과 결과물로 밤을 새워 이력서를 작성해도 서류전형조차 통과되지 않자 눈높이는 차츰차츰 낮아졌다.
이제는 중소기업은 물론, 초대졸 사원을 모집한다는 기업에도 서슴없이 원서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수십 개의 기업 중 면접시험의 기회를 준 업체는 단 두 곳. 두 업체에서도 장씨는 퇴짜를 맞았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에 취업재수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장씨는 오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취업사이트와 취업박람회 등의 정보를 검색하며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친다. 내년엔 많은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규모를 대폭 줄인다는 가슴 철렁한 뉴스는 마음 편히 눈조차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장씨는 “졸업 전 취업해 졸업식 날 부모님에게 사각모를 씌워 드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졸업식장에도 가지 못할 것 같다”며 “왜 하필 올해 졸업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절망감부터 맛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장사를 하는 노점상인에게도 이 겨울은 유난히 춥다. 경기도 부천에서 5년째 붕어빵을 구워 파는 남모(46·여)씨는 어느 해보다 수입이 줄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씨가 장사를 하는 장소와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붕어빵 노점상이 3개나 생긴 탓이다.
재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000원에 4개의 붕어빵을 팔고 있는데 비해 인근의 한 노점상은 1000원에 무려 8개의 붕어빵을 주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근처에 20대 여성 2명이 다코야끼라는 일본과자를 구워 팔아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어 손님의 발길이 한층 더 뜸해졌다고 한다.

남씨는 “손님을 끌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 팔 수도 없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며 “내년에 대학교에 가는 첫째아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늘어간다”고 토로했다.
강추위와 싸우며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에게도 이번 연말이 달가울 리 없다. 서울역, 잠실역, 영등포역 등 노숙인의 메카(?)로 자리 잡은 곳에는 대낮부터 소주병을 끼고 행인 사이를 지나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추위가 거세질수록 종이상자와 신문지로 몸을 감싼 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모여 들어 술로 추위와 절망감을 떨치고 있었다.

실직자 증가하면서
노숙인, 노점상도 늘어

갈수록 더해가는 불황은 20~30대의 청년들과 여성들까지 거리로 내모는 등 노숙인들의 풍경을 바꿔놓기도 하고 있다.
문제는 내년 초가 되면 노숙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거리생활을 하기 전 PC방이나 고시원, 쪽방 등을 전전하다 길거리로 나오는데 현재 이 장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짐작케 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밖에도 보일러를 틀 형편이 되지 않아 냉방에서 두꺼운 이불 몇 장에 의지해 생활하는 쪽방촌 노인들, 보증금이 없어 언제 터질지 모를 사건에 대한 불안감을 안은 채 고시원에서 지내는 노동자들, 일거리를 찾으러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선 이들 등 서민들의 연말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