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4)

“부끄러움을 무릅 쓰고라도 선공하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성추행 조작한 여성에 사채업자 진퇴양난
정리할 것 정리하고 새출발 하는 게 최상책

“아, 예, 그래서요?”
내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이 타서 녹차 한 모금을 마시는데 왕 사장은 뒤가 궁금한지 다시 반문을 했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뒷얘기를 마저 했다.
“왕 사장님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사채업자들은 부인이 졸지에 블라우스와 브래지어를 찢고, 속살이 드러난 채로 뛰쳐나가는 순간 아차 싶었겠지요. 채무자 부인은 달려온 여성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난리 법석을 떨었지요.

해결책 제시에 흠뻑

‘이 놈들아! 여태껏 날마다 협박하더니 이제는 성 폭행까지 하려고 하느냐? 이런 놈은 콩밥을 먹어봐야 해!’그러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고, 이웃주민들도 하나 둘 나와서 여차하면 함께 힘을 합쳐 사채업자들에게 달려들 기세였지요. 그러니 사채업자들이 죽을 맛 아니었겠어요? 그렇다고 많은 동네 주민들 앞에서 연약한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사채업자들은 진퇴양난에 빠졌지요. 그러는 사이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도착했답니다. 현장을 목격한 경찰관들은 사채업자 진상 꾼 3명 모두를 연행해 갔지요. 그들은 연행당하기 전 자신들은 성추행사실이 없다고 펄펄뛰며 부인했으나, 현장 상황이 그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일단은 집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을 모르는 이웃들은 채무자 부인의 속살이 드러나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당연히 그 진상꾼들의 행위로 볼 수밖에 없었겠지요. 경찰관이 오자 사태를 목격한 이웃주민들은 모두 채무자의 부인 편을 들었던 거지요. 그러니 그들은 채무자가족을 협박하고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일반인이 아닌 사채업자 전문 폭력배라는 부분이 그들을 더욱 불리하게 몰고 갔지요. 영락없이 걸려든 사채업자들은 미친개한테 물렸다는 심정으로 결국은 채무자 부인과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채무금액 중 일부금을 탕감 받고, 채무자인 남편이 돌아와 상환할 능력이 있을 때까지 일정기간 연기해 준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와아, 이사님. 그 부인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겨났는지……”  왕 사장은 마치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든 아이처럼 그저 감탄할 뿐이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놀라워하는 왕 사장에게 마지막 해주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왕 사장님. 이처럼 채무자의 부인은 곤궁함과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방어적 공격 즉 병법에서 말하는 ‘최후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전략으로 대응을 하였지요.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채무자의 부인은 날고 긴다는 전문 사채업자들을 상대로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고육지계’ 즉 자신을 희생하여 적을 믿게 만든 후 어려움에서 빠져나가는 계책으로 함정을 파서 자신을 괴롭히는 악덕 진상꾼들을 상대한 겁니다. 그것은 오로지 그들과 싸워서라도 가족을 지키겠다는 근성과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왕 사장님도 뭔가 한 가지는 잃을 각오를 해야 그들을 상대로 해서 견디어 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지요.”
“이사님?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진상꾼=이해 못 할 자

“하하하. 그것은 왕 사장님 판단에 맡기고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채권자와 채무자 간에 극단적인 대립만으로 대응한다고 해서 해결점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채권자인 진상꾼들도 채무자인 사장님의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독촉하는 것만이 상책이 아니지만, 반면에 채무자인 사장님 역시 도망 다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진실성을 갖고 상환할 의지가 있는가?’ ‘재산을 감추어놓고 채권자를 기만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솔직하게 진실을 밝히고 채권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이해를 시키는 게 좋다고 봅니다. 서로 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해하며 불신이 넘쳐 감정을 사게 되지요. 상환계획서를 제출하여 도리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가령 왕 사장님의 사업을 도와주면서 돈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설득을 시키는 겁니다.”

“이사님 말씀이 백번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일반 채권자가 아닌 사채업자들은 저희들이 진실을 얘기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돈만 내놓으라고 닦달합니다. 없는 돈이 붕어빵 만들 듯이 아무 데서나 생산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오죽하면 그들을 상대할 방안을 찾겠습니까?”
왕 사장은 찾아오는 진상꾼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못을 박아놓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이해를 구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최상책은 왕 사장님께서 하루속히 돈을 많이 벌어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만이 최상책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시간을 벌어 재기할 기회를 마련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사님! 바쁜 일도 많으실 텐데 이렇게 긴 시간을 내어 자문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사님께서 말씀해주신 좋은 방안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제 집사람하고 깊이 상의하도록 해보겠습니다. 후일 또 문제가 있으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희망과 삶에 비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왕 사장은 대화가 끝나고 나자 마치 무언가 단단히 각오한 사람처럼 결의에 찬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기 옆에 놓인 찻잔을 들어 조금 남은 녹차로 갈증을 달래며 부디 그가 난관을 잘 헤쳐가기를 바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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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