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백제군이 다시금 신라를 침범하여 독산성(獨山城, 충남 예산)과 동잠성(桐岑城, 경북 구미)에 적지 않은 타격을 가하고 물러갔다.
그 소식을 접한 무열왕이 곧바로 김유신을 찾았다.
“두 성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비록 손실은 입었으나 성은 건재합니다.”
“곧바로 보복을 감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답을 한 유신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로 출정하렵니까?”
최후의 발악
“전하, 근본적으로 바라보심이 가당합니다.”
“근본적이라 하면?”
“이참에 결말을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통일 작업에 단초를 마련하였으면 합니다.”
“상세히 말씀해보세요.”
“작금의 백제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대략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여력이 있으니 침공을 감행하는 게 아닙니까?”
“여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후의 발악이지요.”
“최후의 발악이라!”
“지금 백제의 의자왕은 한 요망한 계집에 의해 철저하게 농락당하고 있다 합니다. 그 계집의 농간으로 놀이 삼아 신라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울러 지금이 백제를 멸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입니다. 백제 최고의 명장인 성충은 이미 죽었고 군사인 흥수는 귀양 갔다 하옵니다.”
“성충이 의자왕의 비행을 탄하다가 죽은 사실은 알고 있지만 군사인 흥수까지 귀양 갔단 말입니까?”
“흥수 역시 의자왕의 황음에 대해 간곡하게 간하다가 미운 털이 박혀 지금 고마미지현(전라남도 장흥)에 귀양 가 있다 하옵니다.”
“허허 그렇다면 지금 의자왕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작 허수아비들, 즉 간신들뿐이겠습니다.”
“물론 백제에도 아직 충신들이 건재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경우 수도가 아닌 변방에 머물러 작금의 실정에 대해 한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지금이 최적기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임하자 말씀하셨군요.”
“그래서 그런데.”
말을 하다 말고 유신이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해보세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십시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란 말입니까?”“도움 요청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자는 이야기지요.”
“어떤 식으로?”
“신라의 주요한 인물을 사절로 보내어 정식으로 지원군을 요청하십시오.”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유신이 대답하지 않고 무열왕을 빤히 주시했다.
“그러면 결국.”
“이런 중차대한 일에는 인문 왕자 외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김춘추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 그야말로 당나라 통이었다.
일찌감치 당나라에 숙위로 파견되어 당나라 조정에 머물면서 양국 간 현안문제에 있어 중개임무를 맡았고 불과 스물세 살에 당나라 좌령군위장군(左領軍衛將軍)이라는 직함을 받았다.
그후 잠시 귀국했다가 당으로 돌아갔고 다시 귀국하여 김유신이 군주로 있던 압량주의 군주로 재임하고 있었다.
“당에서 호락호락 군사를 보내겠습니까?”
유신이 대답하지 않고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왜 그러시오?”
“당의 선황제에게 보장 받은 일이 있지 않습니까?”
무열왕이 진덕여왕 시절 당에 사절로 입조해서 당태종의 환대를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당태종이 백제를 정벌할 때 군사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조한 사실이 있었지요.”
“그 사실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양동작전으로 임해야지요.”
“양동작전이라니요?”
“선친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고종에게 당태종과의 약조를 상기시키고 또한 미끼를 던져야지요.”
백제 상대 당의 지원…사신은 김인문
김춘추 왕으로…김유신 상대등으로
“미끼라면.”
“후일 당에서 고구려를 침공할 때 우리가 호응할 것을 다짐하는 일입니다.”
“고구려 땅은 어찌하고요?”
“그는 후일 문제고 먼저 백제를 생각하시지요.”백제라는 소리에 무열왕이 슬그머니 이를 갈았다.
무열왕에게 백제와 관련해서라면 이미 철천지원수로 자리매김했다.
대야성 전투에서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을 잃었고 또 조비천성 전투에서 셋째 사위 김흠운을 잃었던 터였다.
“하기야 백제만 정벌할 수 있다면 그 나머지는.”
“그렇다고 통일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고구려 영토를 취하지 않으면서.”
“영토의 통일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영토도 중요하지만 민족의 통일이 우선이라 보아야지요.”
“민족의 통일이라!”
“그를 이루면 영토의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무열왕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열왕이 즉각 압량주로 사람을 보내 김인문을 소환하여 당의 사절로 보냈다. 물론 신라의 진귀한 조공품들 역시 바리바리 곁들였다.
아들을 당으로 보내고 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돌아올 것으로 고대했던 김인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초조해하며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는 중에 김유신이 두 사람을 대동하고 입궐했다.
“그 사람들은 누구요?”
무열왕이 급히 예를 올리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자께서 보낸 사람들인데 직접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을 듯하여 함께 들어왔습니다.”
“왕자가!”
“고개를 들고 소상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거라.”
두 사람이 고개를 들기는 하였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너무 어려워 말고 왕자께서 전하라 한 사실들에 대해 고해 보거라.”
김유신의 부드러운 말투에 한 사람이 부복한 상태서 무열왕을 주시했다.
“왕자 저하께서 내년 5월 당군이 진군한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내년 5월이라니?”
“금년에는 당군이 고구려를 침공할 예정이라 시기를 내년으로 늦춘다 하였습니다.”
“그게 다인가?”
“그러하옵니다, 대장군.”
유신이 두 사람을 주시하자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알았으니 자네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게.”
“무슨 의미요?”
두 사람이 자리를 물리자 무열왕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고구려에 경각심을 주기 위함이 아닐는지요?”
“경각심이라니요?”
5월 당의 지원
“증원군을 파견하여 백제를 침공한다고 하면 고구려의 입장에서 어찌 나올지 모르니 사전에 경각심 차원에서 고구려를 침공하여 그들의 발을 묶어놓고 군사를 파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뜻은 없을까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리고 당군이 겨울철에 한번 된통 당해본 경험이 있다는 측면도 작용했을 거라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저 아무 걱정하지 않고 차근히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당연합니다.”
유신이 힘을 주어 답하자 춘추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이를 기회로 신라를 쌍두마차 체제로 바꾸려하오.”
“어떻게!”
“짐은 왕으로 그리고 장군은 상대등으로!”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