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속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심 법원이 징역 24년 및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표명했다. 언론에 실린 그의 반응이다.
“돈 1원 받지 않고 친한 지인에게 국정 조언 부탁하고 도와준 죄로 파면되고 징역 24년 가는 세상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입니다.”
홍 대표는 ‘수가재주역가복주(水可載舟亦可覆舟,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한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공주를 마녀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만큼 정치판은 무서운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지난 대선 전 홍 대표가 보였던 반응을 살펴보자.
“춘향인 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었다” “탄핵을 당해도 싸다” 등의 말을 했다. 또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세미나서 홍 대표는 “우파 대표를 뽑아서 대통령을 만들어놓으니까 허접한 여자하고 국정을 운영했다. 그래서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근혜정부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박근혜정부 4년간 철저하게 당했다. 속된 말로 하면 이가 갈리는 정도”라고도 밝혔다.
상기의 두 예를 살피면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린다. 향단이가 공주로 변신하고 최순실은 허접한 여자에서 친한 지인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흥미로운 부분은 ‘박근혜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대목이 ‘돈 1원 받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거기에 더해 24년 징역을 선고한 일은 무섭다’는 개탄의 소리다.
그동안 한국당 내에서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썼던 홍 대표의 행동을 살피면 상기의 반응은 이외로 비쳐진다. 그런데 왜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자신의 일관된 행동을 접었을까.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부연한다. 당연하게도 금번 6월에 실시될 지방선거서 문재인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동시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들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알량함서 비롯된 게다.
1년여 만에 뒤바뀐 홍 대표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자 불현듯 지난 1996년 4월에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가 생각난다. 당시 필자는 신한국당 서울시지부 조직부장으로서 서울 지역 선거를 감독·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선거에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떨치던 홍준표 검사가 서울 송파구 갑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전격 발탁된다. 그리고 홍 후보는 정치 초년병임에도 불구하고 ‘모래시계 검사’로 돌풍을 일으키며, 주변의 불안감을 잠식시키고 당당하게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다.
물론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었던 부분도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됐었다. 그러나 드라마보다 홍 후보가 지니고 있던 이미지, 절대 권력에 굴하지 않는 강직하고 정의를 추구했던 캐릭터가 더욱 어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홍준표가 세월이 흘러 이상하게 변했다. 그의 말마따나 한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공주를 마녀로 만들 수도 있는 무서운 곳이 정치판이고 그래서 홍 대표가 지니고 있던 캐릭터는 입방정으로 변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쓰레한 미소가 절로 흘러나온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