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데뷔 50주년’ 조용필

반세기 감동 선사 ‘영원한 가왕’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가왕’(가요계의 제왕) 조용필이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국민들은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는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이는 곧 고스란히 국내 가요계의 역사가 됐다. 반세기 동안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그의 활동 발자취를 확인했다.
 

“영미권 음악을 비틀즈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누듯 한국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눌 수 있다” (임진모 평론가)

“아이돌적인 인기와 아티스트적인 위상을 거의 처음으로 한꺼번에 거머쥐었던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사실 한국서 가능한 음악적인 실험을 거의 다 한 인물” (이무원 평론가)

콘서트 따라
지하철 변동

조용필은 국내 가요 역사서 제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줄여서 가왕 조용필. 그런 그가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조용필은 1950년 3월21일 경기도 화성서 7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했다. 

화성서 염전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면서 화성 최고의 부잣집 막내아들로 나고 자랐다. 


별다른 금전적인 고민은 없었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잘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큰형을 데리고 사냥을 즐겨 나가곤 했는데 그때 어린 조용필은 하모니카를 불고 놀았다. 이런 모습을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다.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 조용필은 반대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고교 2학년 때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8년부터 록그룹 애트킨즈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미8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그의 음악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그는 기라성 같은 가수를 배출해낸 미8군의 마지막 가수로 기억됐다.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뒤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가왕 탄생의 서막을 연 셈. 

눈길을 끄는 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조용필이 처음 부른 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다른 가수들이 발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못 받다가 조용필의 목소리가 얹어지면서 국민가요가 됐다. 이후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부르면서 가왕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표곡으로는 ‘고독한 Runner’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그대여’ ‘기다리는 아픔’ ‘꿈’ ‘나는 너 좋아’ ‘눈물의 파티’ ‘내 이름은 구름이여’ ‘단발머리’ ‘돌아오지 않는 강’ ‘마도요’ ‘모나리자’ ‘못 찾겠다 꾀꼬리’ ‘미워미워미워’ ‘미지의 세계’ ‘바운스’ ‘서울 서울 서울’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등으로 한 번 언급하기에도 숨이 차다. 

세종문화회관서 그의 히트곡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한 번 부르는 데만도 이틀이 걸렸다는 일화는 팬들 사이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1968년부터 활동 미8군서 음악인생
숱한 히트곡으로 국민들 울고 웃어

조용필은 후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풍운아 이미지의 신해철은 조용필의 전화를 받자마자 두 손으로 전화기를 고쳐잡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가요계의 거장 이승철이나 이은미도 그 앞에서 겸손한 후배가 된다는 전언이다.

조용필은 모든 세대에서 보기드문 인기를 누렸다. 그와 비견되는 가수는 대중가요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서태지 정도지만 조용필이 더욱 폭넓고 다양한 팬층에게 사랑받았다.

조용필은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음악적 도전을 했다. 그가 시도한 장르는 록 음악(미지의 세계), 팝(Jungle City),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블루스(대전 블루스), 민요(자존심), 트로트(허공), 동요(난 아니야), 오페라(도시의 Opera) 등이다. 

이들 중 다수의 곡들이 히트하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실력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가 잠실종합운동장서 콘서트를 열면 지하철 배차 간격이 바뀌어 막차시간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록만으로도 그의 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 10년대에 음악순위 차트 1위에 자신의 곡을 모두 올려놨다. 특히 80년대 1위를 너무 많이 해 순위 프로그램의 1곡당 1위 횟수를 제한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길게 1위를 한 곡은 고추잠자리다. 

무려 24주동안 1위를 고수하면서 가왕의 면모를 과시했다.

노력형 순정파
최초 오빠부대

그는 인기순위 자신의 곡을 가장 많이 진입시킨 가수이기도 하다. TV 차트에는 4곡, 연예지에는 6곡을 순위에 올려놨다. MBC 10대가수 가요제서 가수왕을 6차례(80, 81, 83, 84, 85, 86년) 수상했다. 

KBS ‘가요대상’에선 최고인기가수상을 4차례(81, 82, 83, 85년) 수상했다. 그 외 많은 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며, 2000년 가수 최초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다.


그는 한류의 원조이기도 하다. 1985년 도쿄서 열린 제14회 도쿄세계음악제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인기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일본 내 대표적인 공연기업 교토도쿄와 독점 계약을 맺을 만큼 이름값을 인정받았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일본서 인기곡이 됐다.
 

그가 일본 활동 기간동안 판매한 음반은 공식 600만장, 비공식 800만장으로 전해진다. 또 현재 일본 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NHK 홍백가합전에 4년 연속(87∼90년)으로 출연했다. 그는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만든 인물이다. 

당시 뉴스에서는 조용필을 따라다니는 오빠부대에 대한 보도를 할 정도였다.

음악인생이 마냥 달콤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적인 시련도 있었다. 2000년에는 저작곡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조용필은 자신의 곡 가운데 31곡 저작권이 지구레코드의 임정수 사장에게 넘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용필은 1986년 지구레코드사와 계약할 당시 ‘지적재산권 일부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조용필은 방송권과 공영권을, 복제권과 배포권을 지구레코드 측이 가져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용필은 소송을 벌였지만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된 끝에 패소로 마무리됐다. 이후 조용필과 제작사는 합의점을 찾아 곡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 소유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던 곡은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너무 짧아요, 여행을 떠나요 등이다.

조용필의 감성은 세대를 아울렀다. 지난 2013년 조용필은 10년 만에 정규 앨범 19집 ‘헬로’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바운스’는 그가 여전히 음악계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포효’와 같았다.

음원이 공개되자 가요계는 들썩거렸다. 예순 넘어 발매한 신곡은 전 세대를 감동시켰지만, 특히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엠넷,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벅스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젊은 뮤지션의 노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바운스’는 멜론 등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도 5위권 내를 유지했다. 환갑을 넘긴 가수가 아이돌과 경쟁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유례없던 일이 일어났다.

신곡 공개 때마다 가요계 들썩
남녀노소 세대 아우르는 감성

그의 도전에 젊은 뮤지션의 존경담긴 극찬이 이어졌다. 

랩퍼 주석은 “조용필 19집 신곡 대박이네요. 이건 형용하기 힘든 여러 가지가 응축된 느낌. 곡이 소리의 질감서부터 짜임새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다가 극도로 절제되고 정돈되면서도 화려함이 있는 목소리. 조 선생님은 월드 ‘스타’가 아닌 진정한 한국대표 월드 ‘클래스’ 뮤지션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수 태양은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라고 전했다. 그룹 ‘샤이니’의 종현은 “말이 필요 없지요. 들어보세요. 존경해요. 선생님”이라고 감탄했다.

해외서도 주목했다. ‘강남스타일’로 빌보드차트 2위에 오른 월드스타 싸이의 ‘젠틀맨’ 누르고 음악차트 1위에 오르면서 해외서도 그를 주목했다. 빌보드는 당시 ‘조용필이 싸이를 K팝 핫 100차트 1위에서 끌어내렸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그의 활약을 조명했다.

빌보드닷컴은 “조용필은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며 “1980년대부터 여러 장의 LP를 발표해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등 패권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용필은 팝이나 록 장르부터 한국 전통 음악, 트로트까지 폭넓은 음악적 시도를 했다”고 덧붙였다. 조용필의 ‘바운스’는 빌보드 K팝 차트 1위로 뛰어오르며 싸이의 ‘젠틀맨’을 밀어내며 가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음악 창작자로서 조용필도 훌륭했다. 조용필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히트곡은 50곡에 달한다. ‘단발머리’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은 지금도 후배 가수들을 통해 수없이 리메이크 되며 사랑받고 있다.
 

이는 편견없는 그의 음악 열정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평소에도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그가 소장하는 음반은, 비틀즈나 마빈 게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크 플로이드, AC/DC, 폴리스, 스팅, 퀸 나아가 메탈리카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가왕 조용필이 아닌 인간 조용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동안 조용필은 이웃 사랑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전남 소록도서 2년 연속으로 공연했다. 조용필은 첫 공연 당시 내년에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를 지킨 것이다. 재방문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가수는  그가 유일했다. 자신의 콘서트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 환자 500명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인기 순위에 
가장 많은 곡

조용필은 두 번의 결혼을 했다. 1984년 3선 국회의원 박찬씨의 딸 박지숙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기간을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4년 만에 합의 이혼을 했다. 조용필은 이혼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대부분의 재산을 위자료로 주고 원만하게 이혼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사업가 출신 안진현과 재혼하며 화제를 낳았다. 1993년 미국 공연 당시 친누나의 소개로 안진현씨와 사랑에 빠졌다. 안진현은 그의 음악 세계를 존중했다. 조용필 역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러나 결혼 5년 만에 안진현은 심장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사망하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안씨의 유해는 조용필의 선산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안장됐다. 

조용필의 아내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망 이후 받은 상속액은 전액 심장병을 앓는 환자를 위해 기부했다. 2003년 18집에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진’이라는 노래를 수록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틈틈이 먼저 떠난 아내 산소를 찾곤 한다.

조용필은 2016년 아내의 생일을 맞아 묘소를 찾은 사실이 처제인 제니퍼 안씨의 남편 SNS를 통해 알려졌다. 제니퍼 안씨는 남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형부는 지금도 틈틈이 언니 산소를 찾는 순정파”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기수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겪은 희노애락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조용필은 가수로서 50년간 활동을 팬들과 함께 기념하려 한다. 오는 5월 열리는 그의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그의 절친이자 대배우 안성기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안성기는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가 진행하는 50인 축하 영상 ‘50&50인’을 통해 ‘땡큐 조용필’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응원했다. 두 사람은 서울 경동중학교 동창으로 무려 54년간 우정을 이어왔다.

지난 13일 조용필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50&50인’ 영상에서 안성기는 “집에 놀러다니고 했던 아주 친한 친구였다. 예전에 사진을 보면 모범생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키가 지금 키와 같다. 작은 거인이 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키는 더 이상 커지질 않았다”고 웃었다.

또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누구도 그런 기미를 채지 못했고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하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지금의 가왕 조용필을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친구 조용필은 자연인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수 조용필은 어마어마하다. 진짜 거인”이라며 “가창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작의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안성기는 조용필의 많은 곡을 즐겨부른다면서 애창곡 중 하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한 소절을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푸근하게 젖어든다고 그럴까?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고 꼽았다. 

또 조용필의 음악이 50년간 사랑받은 비결로는 “노래를 들었을 때 동화가 되고 공감이 되고 아직까지도 어떤 음악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이 있는 가수이기도 하고. 그런 모든 여러 가지 요소가 조용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5월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5월1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 6월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등지서 50주년 기념 투어 ‘Thanks to you’를 개최하며, 서울공연 티켓은 20일부터 인터파크를 통해 오픈될 예정이다. 

반세기 넘어 전세대가 주목하는 가수는 매우 드물다. 조용필은 예전에도 가왕이었고 지금도 가왕이다. 다가올 콘서트서 앞으로도 변치 않을 가왕으로서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 조용필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방송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 이미지를 소비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음악계에 오르지 음악으로만 평가받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중가요 역사상 
또 한 번 이정표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과거 명성만 갖고 안주해 온 가수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제 또 다시 그의 목소리에 온 국민이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조용필의 데뷔 50주년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상 또 한 번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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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