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데뷔 50주년’ 조용필

반세기 감동 선사 ‘영원한 가왕’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가왕’(가요계의 제왕) 조용필이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국민들은 그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는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이는 곧 고스란히 국내 가요계의 역사가 됐다. 반세기 동안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그의 활동 발자취를 확인했다.
 

“영미권 음악을 비틀즈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누듯 한국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눌 수 있다” (임진모 평론가)

“아이돌적인 인기와 아티스트적인 위상을 거의 처음으로 한꺼번에 거머쥐었던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사실 한국서 가능한 음악적인 실험을 거의 다 한 인물” (이무원 평론가)

콘서트 따라
지하철 변동

조용필은 국내 가요 역사서 제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줄여서 가왕 조용필. 그런 그가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조용필은 1950년 3월21일 경기도 화성서 7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했다. 

화성서 염전업을 하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면서 화성 최고의 부잣집 막내아들로 나고 자랐다. 


별다른 금전적인 고민은 없었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잘 맞지 않았다. 아버지는 큰형을 데리고 사냥을 즐겨 나가곤 했는데 그때 어린 조용필은 하모니카를 불고 놀았다. 이런 모습을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았다.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 조용필은 반대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고교 2학년 때 가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는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8년부터 록그룹 애트킨즈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미8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그의 음악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그는 기라성 같은 가수를 배출해낸 미8군의 마지막 가수로 기억됐다.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한 뒤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가왕 탄생의 서막을 연 셈. 

눈길을 끄는 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조용필이 처음 부른 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다른 가수들이 발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못 받다가 조용필의 목소리가 얹어지면서 국민가요가 됐다. 이후 그는 수많은 히트곡을 부르면서 가왕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대표곡으로는 ‘고독한 Runner’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그대여’ ‘기다리는 아픔’ ‘꿈’ ‘나는 너 좋아’ ‘눈물의 파티’ ‘내 이름은 구름이여’ ‘단발머리’ ‘돌아오지 않는 강’ ‘마도요’ ‘모나리자’ ‘못 찾겠다 꾀꼬리’ ‘미워미워미워’ ‘미지의 세계’ ‘바운스’ ‘서울 서울 서울’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등으로 한 번 언급하기에도 숨이 차다. 

세종문화회관서 그의 히트곡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한 번 부르는 데만도 이틀이 걸렸다는 일화는 팬들 사이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1968년부터 활동 미8군서 음악인생
숱한 히트곡으로 국민들 울고 웃어

조용필은 후배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풍운아 이미지의 신해철은 조용필의 전화를 받자마자 두 손으로 전화기를 고쳐잡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가요계의 거장 이승철이나 이은미도 그 앞에서 겸손한 후배가 된다는 전언이다.

조용필은 모든 세대에서 보기드문 인기를 누렸다. 그와 비견되는 가수는 대중가요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서태지 정도지만 조용필이 더욱 폭넓고 다양한 팬층에게 사랑받았다.

조용필은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음악적 도전을 했다. 그가 시도한 장르는 록 음악(미지의 세계), 팝(Jungle City),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블루스(대전 블루스), 민요(자존심), 트로트(허공), 동요(난 아니야), 오페라(도시의 Opera) 등이다. 

이들 중 다수의 곡들이 히트하면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춘 실력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가 잠실종합운동장서 콘서트를 열면 지하철 배차 간격이 바뀌어 막차시간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록만으로도 그의 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 10년대에 음악순위 차트 1위에 자신의 곡을 모두 올려놨다. 특히 80년대 1위를 너무 많이 해 순위 프로그램의 1곡당 1위 횟수를 제한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길게 1위를 한 곡은 고추잠자리다. 

무려 24주동안 1위를 고수하면서 가왕의 면모를 과시했다.

노력형 순정파
최초 오빠부대

그는 인기순위 자신의 곡을 가장 많이 진입시킨 가수이기도 하다. TV 차트에는 4곡, 연예지에는 6곡을 순위에 올려놨다. MBC 10대가수 가요제서 가수왕을 6차례(80, 81, 83, 84, 85, 86년) 수상했다. 

KBS ‘가요대상’에선 최고인기가수상을 4차례(81, 82, 83, 85년) 수상했다. 그 외 많은 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며, 2000년 가수 최초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다.


그는 한류의 원조이기도 하다. 1985년 도쿄서 열린 제14회 도쿄세계음악제를 기점으로 일본에서 인기가수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일본 내 대표적인 공연기업 교토도쿄와 독점 계약을 맺을 만큼 이름값을 인정받았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일본서 인기곡이 됐다.
 

그가 일본 활동 기간동안 판매한 음반은 공식 600만장, 비공식 800만장으로 전해진다. 또 현재 일본 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NHK 홍백가합전에 4년 연속(87∼90년)으로 출연했다. 그는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익숙하게 만든 인물이다. 

당시 뉴스에서는 조용필을 따라다니는 오빠부대에 대한 보도를 할 정도였다.

음악인생이 마냥 달콤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적인 시련도 있었다. 2000년에는 저작곡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조용필은 자신의 곡 가운데 31곡 저작권이 지구레코드의 임정수 사장에게 넘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용필은 1986년 지구레코드사와 계약할 당시 ‘지적재산권 일부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조용필은 방송권과 공영권을, 복제권과 배포권을 지구레코드 측이 가져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용필은 소송을 벌였지만 대법원까지 소송이 진행된 끝에 패소로 마무리됐다. 이후 조용필과 제작사는 합의점을 찾아 곡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 소유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던 곡은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너무 짧아요, 여행을 떠나요 등이다.

조용필의 감성은 세대를 아울렀다. 지난 2013년 조용필은 10년 만에 정규 앨범 19집 ‘헬로’를 발매했다. 타이틀곡 ‘바운스’는 그가 여전히 음악계에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포효’와 같았다.

음원이 공개되자 가요계는 들썩거렸다. 예순 넘어 발매한 신곡은 전 세대를 감동시켰지만, 특히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엠넷,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벅스 등 주요 음원사이트에서 젊은 뮤지션의 노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바운스’는 멜론 등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도 5위권 내를 유지했다. 환갑을 넘긴 가수가 아이돌과 경쟁해 차트 1위를 차지하는 유례없던 일이 일어났다.

신곡 공개 때마다 가요계 들썩
남녀노소 세대 아우르는 감성

그의 도전에 젊은 뮤지션의 존경담긴 극찬이 이어졌다. 

랩퍼 주석은 “조용필 19집 신곡 대박이네요. 이건 형용하기 힘든 여러 가지가 응축된 느낌. 곡이 소리의 질감서부터 짜임새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데다가 극도로 절제되고 정돈되면서도 화려함이 있는 목소리. 조 선생님은 월드 ‘스타’가 아닌 진정한 한국대표 월드 ‘클래스’ 뮤지션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수 태양은 “조용필 선배님, 미리듣기 음원이 이렇게 좋을 수가.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라고 전했다. 그룹 ‘샤이니’의 종현은 “말이 필요 없지요. 들어보세요. 존경해요. 선생님”이라고 감탄했다.

해외서도 주목했다. ‘강남스타일’로 빌보드차트 2위에 오른 월드스타 싸이의 ‘젠틀맨’ 누르고 음악차트 1위에 오르면서 해외서도 그를 주목했다. 빌보드는 당시 ‘조용필이 싸이를 K팝 핫 100차트 1위에서 끌어내렸다’는 제목의 칼럼으로 그의 활약을 조명했다.

빌보드닷컴은 “조용필은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며 “1980년대부터 여러 장의 LP를 발표해 각종 시상식을 휩쓰는 등 패권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용필은 팝이나 록 장르부터 한국 전통 음악, 트로트까지 폭넓은 음악적 시도를 했다”고 덧붙였다. 조용필의 ‘바운스’는 빌보드 K팝 차트 1위로 뛰어오르며 싸이의 ‘젠틀맨’을 밀어내며 가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음악 창작자로서 조용필도 훌륭했다. 조용필이 작사하거나 작곡한 히트곡은 50곡에 달한다. ‘단발머리’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은 지금도 후배 가수들을 통해 수없이 리메이크 되며 사랑받고 있다.
 

이는 편견없는 그의 음악 열정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평소에도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그가 소장하는 음반은, 비틀즈나 마빈 게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핑크 플로이드, AC/DC, 폴리스, 스팅, 퀸 나아가 메탈리카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한다. 

가왕 조용필이 아닌 인간 조용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동안 조용필은 이웃 사랑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전남 소록도서 2년 연속으로 공연했다. 조용필은 첫 공연 당시 내년에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를 지킨 것이다. 재방문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가수는  그가 유일했다. 자신의 콘서트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 환자 500명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인기 순위에 
가장 많은 곡

조용필은 두 번의 결혼을 했다. 1984년 3선 국회의원 박찬씨의 딸 박지숙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 기간을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 4년 만에 합의 이혼을 했다. 조용필은 이혼이 자신의 잘못이라며 대부분의 재산을 위자료로 주고 원만하게 이혼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사업가 출신 안진현과 재혼하며 화제를 낳았다. 1993년 미국 공연 당시 친누나의 소개로 안진현씨와 사랑에 빠졌다. 안진현은 그의 음악 세계를 존중했다. 조용필 역시 아내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러나 결혼 5년 만에 안진현은 심장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사망하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안씨의 유해는 조용필의 선산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안장됐다. 

조용필의 아내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망 이후 받은 상속액은 전액 심장병을 앓는 환자를 위해 기부했다. 2003년 18집에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진’이라는 노래를 수록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틈틈이 먼저 떠난 아내 산소를 찾곤 한다.

조용필은 2016년 아내의 생일을 맞아 묘소를 찾은 사실이 처제인 제니퍼 안씨의 남편 SNS를 통해 알려졌다. 제니퍼 안씨는 남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형부는 지금도 틈틈이 언니 산소를 찾는 순정파”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기수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겪은 희노애락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조용필은 가수로서 50년간 활동을 팬들과 함께 기념하려 한다. 오는 5월 열리는 그의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그의 절친이자 대배우 안성기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안성기는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가 진행하는 50인 축하 영상 ‘50&50인’을 통해 ‘땡큐 조용필’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응원했다. 두 사람은 서울 경동중학교 동창으로 무려 54년간 우정을 이어왔다.

지난 13일 조용필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50&50인’ 영상에서 안성기는 “집에 놀러다니고 했던 아주 친한 친구였다. 예전에 사진을 보면 모범생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키가 지금 키와 같다. 작은 거인이 되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키는 더 이상 커지질 않았다”고 웃었다.

또 “신만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누구도 그런 기미를 채지 못했고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을 하게 될 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지금의 가왕 조용필을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친구 조용필은 자연인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수 조용필은 어마어마하다. 진짜 거인”이라며 “가창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작의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안성기는 조용필의 많은 곡을 즐겨부른다면서 애창곡 중 하나인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한 소절을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몸과 마음이 푸근하게 젖어든다고 그럴까?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고 꼽았다. 

또 조용필의 음악이 50년간 사랑받은 비결로는 “노래를 들었을 때 동화가 되고 공감이 되고 아직까지도 어떤 음악을 내놓을지 모른다는 어떤 기대감이 있는 가수이기도 하고. 그런 모든 여러 가지 요소가 조용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5월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5월1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 6월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등지서 50주년 기념 투어 ‘Thanks to you’를 개최하며, 서울공연 티켓은 20일부터 인터파크를 통해 오픈될 예정이다. 

반세기 넘어 전세대가 주목하는 가수는 매우 드물다. 조용필은 예전에도 가왕이었고 지금도 가왕이다. 다가올 콘서트서 앞으로도 변치 않을 가왕으로서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현재 조용필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방송 출연을 거부하고 있다. 이미지를 소비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음악계에 오르지 음악으로만 평가받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중가요 역사상 
또 한 번 이정표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과거 명성만 갖고 안주해 온 가수들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제 또 다시 그의 목소리에 온 국민이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조용필의 데뷔 50주년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상 또 한 번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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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