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쇠고랑 찬 최경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11 14:45:34
  • 호수 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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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던 새도 떨어뜨린 그가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날아다니던 새도 떨어뜨렸다.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친박(친 박근혜) 핵심으로 최고의 실세였다. 그런 그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의원은 박근혜정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던 2014년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빼내 조성한 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최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온탕 냉탕
왔다 갔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역 의원이 구속되는 것은 최 의원(같은 날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도 구속됐다. 관련 내용은 박스 기사 참고)이 처음이다. 20대 의원 중에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금품비리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같은 당 배덕광 의원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최 의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지난달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의원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상납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지난 2014년 10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아 최 의원에게 직접 1억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원장도 관련 혐의를 인정하는 자수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당시 야권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축소를 요구하자 국정원이 당시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최 의원에게 로비 일환으로 특수활동비를 건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최 의원은 강하게 부인했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자리서 “검찰이 나를 죽이는 데 혈안이 돼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뇌물 혐의가)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서 할복 자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뇌물 받았으면 할복하겠다더니…
국정원 돈 1억 수수 혐의로 구속

최 의원은 의원총회 참석 등의 핑계를 대며 3차례에 걸쳐 검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했다. 그러다 “12월5일 또는 12월6일로 일정을 조정해주시면 성실히 수사받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6일에야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검찰은 최 의원의 재조사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20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최 의원은 3시간가량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았다. 그의 구속으로 ‘국정원 특활비’ 수사에 활로가 열린 양상이다. 검찰은 앞으로 최장 20일간 최 의원 신병을 확보한 상태서 보강 조사를 벌인 뒤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3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4일에 검찰이 추가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서 받은 돈을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운영한 의상실 관리비, ‘문고리 3인방’등 측근 격려금, 삼성동 사저 관리비, 기치료 주사 등 비선 진료비로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또 국정원 상납금 가운데 상당액이 최순실씨에게 흘러간 흔적도 포착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구속된 데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사필귀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원내 주요 정당들은 이에 일제히 논평을 내고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최경환·이우현 의원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라며 “자유한국당은 함구하지 말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특히 “두 의원의 신병처리 과정서 자유한국당의 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여야 3당이 합의했고 ‘대선 공통공약’이었던 개헌특위 연장 문제를 시작으로 민생법안을 가로막으며 임시국회를 파행시켜 결과적으로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던 바 있다”고 꼬집었다. 

사필귀정 지적
당은 묵묵부답

지난달 임시국회 파행 국면을 언급하며 ‘현행범이 아닐 경우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불체포특권)에 따라 사법 처리가 미뤄져왔음을 재차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사필귀정이다. 전 정권 최고 실세였던 두 의원이 국민이 부여한 자리와 권한을 남용해 본인들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했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며 “국회의원직과 정부직을 이용한 범죄라면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엄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의 핵심 세력들이 연일 검찰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며 “‘국정원 특활비’ ‘공천헌금’ 모두 자유한국당을 넘어 전 정권과 연관된 적폐인 만큼, 검찰은 이번 구속수사를 통해 혐의와 관련자들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변인은 “자유한국당 또한 정치보복이라는 식의 물타기는 그만두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수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적폐본산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구 여권이던 바른정당도 최·이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정치권 동향에 함께하는 모습이다. 

권성주 바른정당 대변인은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논평을 시작하면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불법을 자행한 것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부패한 권력남용이 만든 환부를 뿌리까지 도려내고 국민 신뢰의 씨앗이 심겨지길 기대한다”라며 “검찰은 철저하고 균형 잡힌 수사를 통해 정치권의 잘못된 폐습을 도려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최 의원과 이 의원 구속은 개인적인 불명예인 동시에 정권 교체를 전후해 가속화한 친박 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역대 정치권에서 실세로 꼽힌 인물은 많다. 하지만 최 의원만큼 공식·비공식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발휘한 이는 많지 않다.  

최 의원은 수많은 친박 정치인 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핵심 실세로 꼽힌다. 그는 전 정권 기간 옛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역임하며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손에 쥐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서 그에게 “성이 최씨라 최측근이냐”는 농담도 했다. 

최 의원은 1955년 2월27일 경북 경산서 태어났다. 1973년에 대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 재학 중인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80년에 청도군청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근무하다가 1980년부터 1994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서 근무했다. 경제기획원 근무 중인 1984년에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입학, 1986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91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재정경제원 국고국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귀국해 1997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보좌관, 1998년 4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후 “공무원 생활이 답답하다. 다른 일을 하겠다”며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갔다. 1999년 5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2002년 4월부터 2002년 9월까지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을 맡았다.

나락으로∼
전 정권 실세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이회창 전 총리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경북 경산·청도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20대까지 네 번 내리 당선됐다. 2004년 6월부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과 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했던 17대 대선 전 2007년 한나라당 경선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시 캠프서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한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지만, 그는 초지일관 최측근이자 실세였다. 보스 기질이 있어 단순 참모 역할 그 이상을 했다. 

적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눈여겨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발탁했다가 2009년엔 아예 지식경제부장관에 앉혔다. 당시 친이(친 이명박)계가 친박계를 배려하는 상징성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으며 2012년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자연스레 박근혜정부 출범 뒤엔 최고 실력자가 됐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그 1년 후엔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됐다.

온갖 의혹서도 살아남았는데… 
2년 만에 실세 부총리서 추락

명실상부한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였다. 당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지경부장관 시절 기획조정실장),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동기), 최양희 미래부장관(지경부 산하 R&D 전략기획단원) 등은 모두 최 의원과 인연이 있었다. 

시중에선 최 의원의 이름을 빗댄 ‘초이 노믹스(Choinomics)’란 말이 등장했다.

장관의 이름을 딴 경제 정책은 사상 처음이었다. 주택담보 인정비율(LTV)·총부채 상환비율(DTI)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4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살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20대 총선 당시 그는 이른바 ‘진박 감별사’가 됐다.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도록 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발언한 뒤 최 의원이 지원유세를 간 후보는 진실한 친박, 곧 진박 후보가 됐다. 

총선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패배. 이후부터 최 의원의 정치 인생도 내리막길을 탔다. 탄핵국면이 시작되면서는 추락하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3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최 의원 사무실서 일했던 인턴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이사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그동안 외압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법정에선 최 의원이 그냥 채용하라며 외압을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사장은 법정서 “두 번이나 성적을 조작했고 ‘그냥 해!’라며 강제로 면접서 통과시켰다”고 증언을 한 것. 

다음은 누구?
정치권 긴장

최 의원은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채용 부탁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최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이를 채용토록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강요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 수수혐의가 유죄 팔결이 날 경우, 그의 화려한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속된 또 다른 친박 이우현 의원 혐의는?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등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4일 새벽 이 의원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이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 의원은 20여명의 지역 정치권 인사나 사업가 등으로부터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미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당 공천관리위원을 지낸 이 의원에게 시장 공천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5억5000만원을 건넨 전 남양주시의회 의장 공모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이 의원에게 한국철도시설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2000만원을 제공한 전기공사 업자 김모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한전산업개발 임원을 지낸 윤모 전 한국자유총연맹 부회장이 이 의원에게 약 2억5000만원을 준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의원의 옛 보좌관 김모씨와 불법 다단계 업체 IDS홀딩스의 유착 관계를 수사하는 과정서 '금품수수 리스트'를 확보해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다. 이 의원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이 정치권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이 의원이 받은 자금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공천헌금'의 성격이 의심되는 데다 이 의원이 친박계 중진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IDS홀딩스와의 관계 등을 고리로 수사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일부 돈이 오간 정황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후원금일 뿐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었으며 공여자들과의 접촉은 보좌관이 한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해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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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