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참한 노년 보내는 자니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02 11:20:33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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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대부의 쓸쓸한 말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1960∼1970년대 미국 유명 토크쇼를 주름잡던 코미디언 자니윤.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그가 미국서 쓸쓸한 요양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근황이 공개됐다. 한 때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노년에 친박(친 박근혜)으로 낙인찍혔다. 그의 인생을 돌아봤다. 
 

재미교포 코미디언으로 미국과 국내서 인기를 끌었던 자니윤이 최근 치매 증세를 보이며 미국 LA의 한 요양병원서 지낸다는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달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자니윤의 학교 후배로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냈다는 임태랑 전 민주평통 LA협의회장은 “자니윤이 작년 여름 미국 LA에 돌아와서 양로원서 지내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올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대저택 살며
아메리칸 드림

자니윤은 LA 도심서 북동쪽으로 13㎞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헌팅턴 헬스케어센터(한국의 요양병원에 해당)에 있다. 그는 이곳서 2인 1실을 쓰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회장은 “후배인 나와 70대인 남동생이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돌봐주지만 그 외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미주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자니윤은 현재 알츠하이머(치매)로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주 <헤럴드경제>는 “(자니윤은) 자신의 이름은 어렴풋이 아는 듯 했지만 기억은 잃어버린 듯했다”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에도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같은 날 보도했다.

이 매체는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자니윤을 웃게 만든 유일한 단어는 <자니 카슨 쇼>였다”고도 했다. 지난해 4월 뇌출혈 진단을 받고 그 이후 치매까지 걸리면서 자니윤의 노년은 급격히 기울었다. 

60대에 결혼했던 18세 연하의 부인도 떠났고 화려하고 커다란 저택도 누군가에 의해 팔렸다. 

자니윤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완전히 하얗게 새어 있었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매일매일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골프를 즐기던 건강했던 몸은 온데간데없이 보조기구가 없이는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아시아 평범한 해군 유학생 
미국 인기 방송인으로 우뚝

지난해 초까지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를 지내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 하지만 임기 몇 개월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뇌출혈을 맞으며 급격히 건강 상태가 안 좋아졌다. 

평소 골프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졌던 자니윤에게 뇌출혈이 찾아온 건 지난해 4월 3일이다. 이때 뇌경색 질환이 있었단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소식은 열흘이 지난 같은 달 13일에서야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한 지인 방송인에 따르면, 자니윤은 쓰러지기 이틀 전 저녁 늦게까지 모임을 갖고 피곤한 모습으로 귀가했다. 3일 아침 지인 한 명과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은 시간 약속을 1분도 안 늦는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돼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려 봐도 아무런 기척 없자 결국 경찰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갔고 쓰러져 있는 자니윤을 발견했다.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진 자니윤이 의식을 온전히 회복하기 까지는 1주일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측은 자니윤의 뇌출혈 사실을 언론에 알리며 “치료를 잘 받고 회복 후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니윤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한달여 후인 6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직서 물러났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건강 문제로 원래 임기에 한 달 앞서 그만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니윤의 임기는 그 해 8월까지였다.

자니윤은 1936년 10월22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이다. 1959년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자니윤이 미국서 인정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니윤쇼로 
제2 전성기

당초 서울대 음대를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부친의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미해군사관학교서 공부를 마친 뒤 미국 웨슬리안 대학서 성악을 전공하고 뉴욕의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서 연기, 모던 재즈 무용학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다. 

가수와 코미디언으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의 성공은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순도 100%의 노력도 한몫했다.

영어를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않았고 파티에선 양복 대신 한복을 입고 나갔다고 한다. 무엇보다 5분짜리 스탠딩코미디를 선보이기 위해 무려 3개월 동안 공부하고 연습했다. 남을 웃길 수 있는 자신감이 없으면 무대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조니 카슨의 제의로 동양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출연해 총 34번을 출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첫 출연은 스탠딩업 코메디만 하려고 했는데, 다음 출연인 대배우 찰턴 헤스턴이 갑자기 사라져서 자니윤은 그를 대신해 20분 가까이 자니 카슨과 시간을 끌어야 했다. 


자니윤은 어머니가 불러서 부를 줄 안다는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까지 불렀다. 

한국서 배워서 그런지 중간 부분은 한국어로 부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자니 카슨은 자니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출연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투나잇 쇼> 같은 유명쇼에 무려 20분 가까이나 게스트로 나온 것은 자니윤으로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 이후 명성을 얻자 NBC 방송국서 <자니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는 회당 2800만원을 받았을 정도로 방송인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1973년 뉴욕 최고 연예인상을 수상했고 1982년 영화 <They Call Me Bruce>에 출연했다. 

평범한 해군 유학생서 미국의 인기 방송인으로 거듭난 그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었다. 이 인기는 국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1989년 귀국, 대한민국의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 쇼인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미국의 <자니 카슨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 형식을 그대로 들여온 토크쇼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걸고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국내 최초 토크쇼였다. 

<주병진 쇼> <서세원 쇼> <고쇼> 등에 영향을 미친 1인 토크쇼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다.


느끼한 버터 발음과 음담패설로 화제를 모으며 한때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잇따른 방송제재로 토크쇼가 막을 내린 뒤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 TV서 출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에 자니윤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 떠났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성적인 유머나 정치를 소재로한 이야기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국내에선 제작진들이 시말서를 써야할 만큼 심의가 엄격했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자니윤은 1990년대 한인타운서 이불사업을 하는 18세 연하의 이모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잉꼬부부로 통했으며 화려한 저택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방송서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자니윤은 2007년 이씨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박근혜정권의 수혜자’로도 한동안 국내 언론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방송출연이 뜸하던 그는 2007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만났다. 2007년 2월 한인타운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근혜 미주후원회 발대식이 열렸다. 

휠체어 타고
나홀로 투병

이 행사를 준비하고 후원한 사람이 자니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2년 대선서 자니윤은 미국서 박근혜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박근혜 캠프 재외국민 본부장과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박근혜 후보의 선거를 도왔다.

이후 그는 2013년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2014년 8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임명돼 국내서 다시 활동했다. 박근혜 대선 캠프 활동 경력 때문에 한때 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이 돌기도 했던 자니윤은 결국 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면서 보은 인사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자니윤은 후보자 공모에 스스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심사 등을 거쳐 감사로 임명됐다. 그럼에도 그는 이날 오후 관광공사 노조 관계자를 만난 자리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고 했다. 자니윤은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도와주고 싶어 일을 맡게 됐다”고 말해 논란이 일으키기도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사임 이유로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라고도 폭로했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와 같이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5월19일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제는 안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자니윤을 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가 왔다”며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니윤을 서울사무소로 불러서 지시를 받았지만 당신을 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것을 묻고 어쩔 수 없이 그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하니 자니윤도 만족했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아느냐’ 질문에 울음만
이혼과 치매…현지 요양원 생활

그 후 그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다시 보고하니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질책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에 유 전 장관은 그만두겠다고 했고 며칠 후에 ‘다음 개각에서 빼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자니윤이 골프장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까지 회자됐다. 피해자 캐디를 무료 변호했던 이재명 현 성남시장이 당시 페이스북에 사건의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자니윤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자니윤은 1989년 10월 3일 지인들과 경기 성남시 한 골프장을 찾았다. 이 골프장은 캐디들이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사측과 분규를 겪고 있던 곳이었다. 캐디들은 사측 인사가 포함된 자니윤 일행에 대해 “비회원이 회원의 날 골프를 친다”며 문제삼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카메라 필름을 뺏으려는 자니윤이 캐디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격분한 자니윤은 퍼터를 든 채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던 캐디 유모(당시 27세)씨를 쫓아갔고, 경사진 길에서 자니윤을 붙잡던 중 함께 넘어져 유씨에게 전치 2주의 뇌진탕 등 상해를 입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는 1992년 10월 상해를 입은 유씨가 자니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서 “13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자니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이 시장은 당시 페이스북 글에서 “캐디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치료비 배상소송을 무료 변론했는데 자니윤은 배상 판결을 받고도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자니윤이 3년여 뒤 다시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한다기에 출연료 압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자니윤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배상금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친박 황태자 
어쩌다가…

이 시장은 이어 “당시 캐디가 5㎜만 더 가까이서 휘두른 골프채에 머리를 맞았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낙하산도 좀 그럴듯한 사람으로 해야지 국적회복 시켜가며 이런 사람을 감사로 임명하느냐”라고 꼬집었다.

2014년 국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설훈 의원에게 79세라는 나이를 지적받기도 했지만 “제 신체 나이가 64세로 나왔다. 먹는 약도 하나 없다”며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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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