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참한 노년 보내는 자니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02 11:20:33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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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대부의 쓸쓸한 말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1960∼1970년대 미국 유명 토크쇼를 주름잡던 코미디언 자니윤.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그가 미국서 쓸쓸한 요양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근황이 공개됐다. 한 때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노년에 친박(친 박근혜)으로 낙인찍혔다. 그의 인생을 돌아봤다. 
 

재미교포 코미디언으로 미국과 국내서 인기를 끌었던 자니윤이 최근 치매 증세를 보이며 미국 LA의 한 요양병원서 지낸다는 근황이 공개됐다. 지난달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자니윤의 학교 후배로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냈다는 임태랑 전 민주평통 LA협의회장은 “자니윤이 작년 여름 미국 LA에 돌아와서 양로원서 지내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올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대저택 살며
아메리칸 드림

자니윤은 LA 도심서 북동쪽으로 13㎞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헌팅턴 헬스케어센터(한국의 요양병원에 해당)에 있다. 그는 이곳서 2인 1실을 쓰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주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전 회장은 “후배인 나와 70대인 남동생이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돌봐주지만 그 외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미주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자니윤은 현재 알츠하이머(치매)로 자신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주 <헤럴드경제>는 “(자니윤은) 자신의 이름은 어렴풋이 아는 듯 했지만 기억은 잃어버린 듯했다”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는 질문에도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같은 날 보도했다.

이 매체는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자니윤을 웃게 만든 유일한 단어는 <자니 카슨 쇼>였다”고도 했다. 지난해 4월 뇌출혈 진단을 받고 그 이후 치매까지 걸리면서 자니윤의 노년은 급격히 기울었다. 

60대에 결혼했던 18세 연하의 부인도 떠났고 화려하고 커다란 저택도 누군가에 의해 팔렸다. 

자니윤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완전히 하얗게 새어 있었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매일매일 기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골프를 즐기던 건강했던 몸은 온데간데없이 보조기구가 없이는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아시아 평범한 해군 유학생 
미국 인기 방송인으로 우뚝

지난해 초까지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를 지내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했다. 하지만 임기 몇 개월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뇌출혈을 맞으며 급격히 건강 상태가 안 좋아졌다. 

평소 골프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졌던 자니윤에게 뇌출혈이 찾아온 건 지난해 4월 3일이다. 이때 뇌경색 질환이 있었단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이 소식은 열흘이 지난 같은 달 13일에서야 외부에 알려졌다. 당시 한 지인 방송인에 따르면, 자니윤은 쓰러지기 이틀 전 저녁 늦게까지 모임을 갖고 피곤한 모습으로 귀가했다. 3일 아침 지인 한 명과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인은 시간 약속을 1분도 안 늦는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돼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려 봐도 아무런 기척 없자 결국 경찰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갔고 쓰러져 있는 자니윤을 발견했다.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진 자니윤이 의식을 온전히 회복하기 까지는 1주일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 한국관광공사 측은 자니윤의 뇌출혈 사실을 언론에 알리며 “치료를 잘 받고 회복 후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니윤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한달여 후인 6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직서 물러났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건강 문제로 원래 임기에 한 달 앞서 그만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니윤의 임기는 그 해 8월까지였다.

자니윤은 1936년 10월22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이다. 1959년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자니윤이 미국서 인정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니윤쇼로 
제2 전성기

당초 서울대 음대를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부친의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미해군사관학교서 공부를 마친 뒤 미국 웨슬리안 대학서 성악을 전공하고 뉴욕의 리 스트라스버그 액터스 스쿨서 연기, 모던 재즈 무용학교서 춤과 모던 재즈를 공부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다. 

가수와 코미디언으로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의 성공은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순도 100%의 노력도 한몫했다.

영어를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않았고 파티에선 양복 대신 한복을 입고 나갔다고 한다. 무엇보다 5분짜리 스탠딩코미디를 선보이기 위해 무려 3개월 동안 공부하고 연습했다. 남을 웃길 수 있는 자신감이 없으면 무대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조니 카슨의 제의로 동양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출연해 총 34번을 출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첫 출연은 스탠딩업 코메디만 하려고 했는데, 다음 출연인 대배우 찰턴 헤스턴이 갑자기 사라져서 자니윤은 그를 대신해 20분 가까이 자니 카슨과 시간을 끌어야 했다. 


자니윤은 어머니가 불러서 부를 줄 안다는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까지 불렀다. 

한국서 배워서 그런지 중간 부분은 한국어로 부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자니 카슨은 자니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출연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투나잇 쇼> 같은 유명쇼에 무려 20분 가까이나 게스트로 나온 것은 자니윤으로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 이후 명성을 얻자 NBC 방송국서 <자니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는 회당 2800만원을 받았을 정도로 방송인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1973년 뉴욕 최고 연예인상을 수상했고 1982년 영화 <They Call Me Bruce>에 출연했다. 

평범한 해군 유학생서 미국의 인기 방송인으로 거듭난 그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었다. 이 인기는 국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1989년 귀국, 대한민국의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 쇼인 <자니윤 쇼>를 진행했다. 미국의 <자니 카슨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 형식을 그대로 들여온 토크쇼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걸고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국내 최초 토크쇼였다. 

<주병진 쇼> <서세원 쇼> <고쇼> 등에 영향을 미친 1인 토크쇼의 원조로 자리매김했다.


느끼한 버터 발음과 음담패설로 화제를 모으며 한때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잇따른 방송제재로 토크쇼가 막을 내린 뒤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 TV서 출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문에 자니윤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 떠났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성적인 유머나 정치를 소재로한 이야기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국내에선 제작진들이 시말서를 써야할 만큼 심의가 엄격했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자니윤은 1990년대 한인타운서 이불사업을 하는 18세 연하의 이모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잉꼬부부로 통했으며 화려한 저택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방송서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자니윤은 2007년 이씨와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박근혜정권의 수혜자’로도 한동안 국내 언론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방송출연이 뜸하던 그는 2007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만났다. 2007년 2월 한인타운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근혜 미주후원회 발대식이 열렸다. 

휠체어 타고
나홀로 투병

이 행사를 준비하고 후원한 사람이 자니윤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2년 대선서 자니윤은 미국서 박근혜 선거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박근혜 캠프 재외국민 본부장과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박근혜 후보의 선거를 도왔다.

이후 그는 2013년 한국 국적을 회복한 뒤 2014년 8월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임명돼 국내서 다시 활동했다. 박근혜 대선 캠프 활동 경력 때문에 한때 관광공사 사장 내정설이 돌기도 했던 자니윤은 결국 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면서 보은 인사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당시 자니윤은 후보자 공모에 스스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심사 등을 거쳐 감사로 임명됐다. 그럼에도 그는 이날 오후 관광공사 노조 관계자를 만난 자리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고 했다. 자니윤은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도와주고 싶어 일을 맡게 됐다”고 말해 논란이 일으키기도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사임 이유로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 때문”이라고도 폭로했다. 유 전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와 같이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5월19일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서 낙하산 인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제는 안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자니윤을 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라는 지시가 왔다”며 깜짝 놀랐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니윤을 서울사무소로 불러서 지시를 받았지만 당신을 관광공사 감사로 임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하는 것을 묻고 어쩔 수 없이 그에 해당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하니 자니윤도 만족했다”고 말했다.

‘누구인지 아느냐’ 질문에 울음만
이혼과 치매…현지 요양원 생활

그 후 그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다시 보고하니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질책을 당했다고 전했다. 이에 유 전 장관은 그만두겠다고 했고 며칠 후에 ‘다음 개각에서 빼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자니윤이 골프장서 여성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2주 진단 상해를 입힌 사실까지 회자됐다. 피해자 캐디를 무료 변호했던 이재명 현 성남시장이 당시 페이스북에 사건의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자니윤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올리면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자니윤은 1989년 10월 3일 지인들과 경기 성남시 한 골프장을 찾았다. 이 골프장은 캐디들이 노조 설립 문제를 놓고 사측과 분규를 겪고 있던 곳이었다. 캐디들은 사측 인사가 포함된 자니윤 일행에 대해 “비회원이 회원의 날 골프를 친다”며 문제삼고 사진을 찍었다. 

이 과정서 카메라 필름을 뺏으려는 자니윤이 캐디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당시 격분한 자니윤은 퍼터를 든 채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던 캐디 유모(당시 27세)씨를 쫓아갔고, 경사진 길에서 자니윤을 붙잡던 중 함께 넘어져 유씨에게 전치 2주의 뇌진탕 등 상해를 입혔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는 1992년 10월 상해를 입은 유씨가 자니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위자료 청구소송서 “13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자니윤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이 시장은 당시 페이스북 글에서 “캐디들이 너무 억울하다고 해서 치료비 배상소송을 무료 변론했는데 자니윤은 배상 판결을 받고도 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돌아갔다”며 “자니윤이 3년여 뒤 다시 방송 출연을 위해 귀국한다기에 출연료 압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자니윤 측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배상금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친박 황태자 
어쩌다가…

이 시장은 이어 “당시 캐디가 5㎜만 더 가까이서 휘두른 골프채에 머리를 맞았다면 죽었을 것”이라며 “낙하산도 좀 그럴듯한 사람으로 해야지 국적회복 시켜가며 이런 사람을 감사로 임명하느냐”라고 꼬집었다.

2014년 국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설훈 의원에게 79세라는 나이를 지적받기도 했지만 “제 신체 나이가 64세로 나왔다. 먹는 약도 하나 없다”며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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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