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 의사’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1.29 15:09:09
  • 호수 1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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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치료는 이벤트가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교수가 총상을 입은 채 귀순한 북한 병사를 살렸다. 그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출했던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외과의사로 유명하다. 이 교수는 국내 외상외과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엔군사령부가 지난 22일 공개한 CCTV와 열상감시장비(TOD) 화면에는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서 일어난 북한군 귀순 사건 당시 상황이 모두 담겨있었다. 귀순병이 간발의 차로 북한군 추격조를 따돌리고 전력 질주하는 장면, 추격조가 귀순병 등 뒤에서 10초간 조준 사격을 퍼붓는 모습, 총상을 입고 쓰러진 귀순병을 우리 JSA 경비대 대원들이 구출하는 상황들이 확인됐다. 

죽어가던 병사
결국 살려냈다

귀순병은 귀순하는 도중 북측 초소로부터 총격을 받아  골반(엉덩이쪽), 오른쪽 무릎, 왼쪽 겨드랑이, 오른쪽 팔 등에 총상을 입었다. UN사 헬기를 통해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교수가 집도했다. 

지난 14일 1차 수술서 귀순병의 내장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있었다. 손상 부위는 소장 총 7곳 부위의 파열, 6곳 이상의 장간막 파열 및 유실이 있었다. 

1차 수술만 마친 당시 이 교수는 총상으로 손상된 장기서 흘러나온 분변으로 복강과 다른 장기들이 크게 오염돼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 환자의 경우 골반을 통해 들어온 총알 1발이 골반을 부서뜨린 뒤 내장을 휩쓸며 다수의 손상과 출혈이 발생했다”며 “몸 속에 박혀 있던 총알은 1발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장에서 교과서에서만 보던 수십여마리의 기생충이 발견됐다. 총상으로 인해 내장이 터지면서 내장이 분변으로 가득 찼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반드시 살리겠다’고 밝혔다. 1차 수술을 마친 이 교수는 다음날 곧장 2차 수술에 들어갔으며 지난 15일 오전 9시4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진행됐다. 

이 교수는 2차 수술서 오염 부위를 제거하기 위해 복강 세척 이후 복벽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복벽에 남아있던 1발의 총알을 제거한 뒤 수술을 종료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환자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합병증이 예상돼 고도의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량 출혈에 의한 쇼크 상태에 빠졌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외상 환자에 비해 예후가 불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의 상태는 처음보다 많이 호전됐다”면서도 “현재로서 생존 여부는 확답할 수 없다. 여전히 위중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아덴만 영웅 이어 총상 귀순병 집도
혼수상태 빠졌다가 의식 찾고 회복

이후 이 교수는 의도치 않게 정치 논리에 휘말렸다. 

지난 17일 군사 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서 “이국종 교수가 귀순 병사의 허락 없이 브리핑해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던 한 존엄한 인격체가 어떻게 테러를 당하는지, 그 양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고 비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식을 들은 이 교수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에 나섰는데 인권 침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비난은 견디기 힘들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여론 역시 이 교수를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21일 귀순병의 의식이 되돌아왔다. 

이 교수는 지난 22일 수원 아주대병원서 열린 북한군 귀순 병사 관련 2차 브리핑서 ‘환자는 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현재 환자의 의식은 명료한 상태”라며 “다만 환자는 총격으로 인한 부상, 2차례의 대수술 등으로 심리적 스트레스가 심해 우울감을 보이고 있어 정신건강의학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평가와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함께 감염 등 후유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가 확인될 때까지 적어도 수일 이상 중환자실 치료를 계속할 예정”이라며 “이후 환자의 이송과 치료에 대해선 관계 기관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는 2차 수술 3일 뒤인 18일 오전 9시께 자가호흡을 시작했다. 현재 발열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의료진은 수술과정서 발견된 기생충(회충, 개회충)에 대해 치료 중이며 추가 검사에서 발견된 B형 간염에 대해서도 치료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병원 
사회 향한 일침

또 우측 폐 상하엽서 발견된 비활동성 결핵은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안은 아니어서 추가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교수는 “환자는 (상태가)좋아졌다. 안 죽을 것”이라며 “환자 프라이버시 보호와 국민, 언론의 알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의료기록은 비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브리핑서 이 교수는 그간 쌓여 왔던 불편한 감정도 터트렸다. 며칠 전 있었던 김 의원의 ‘인격 테러’ 발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의료계 내에서 이 교수를 향해 보낸 냉담한 시선에 대한 반격에 가까웠다. 

이 교수는 이날 브리핑 시간의 대부분을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반박하는 데 할애했다. 그리고 중증 외상 환자들이 골든타임 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괴감이 든다” “괴롭다”는 말도 많이 했다.
 

이 교수는 “저는 칼을 쓰는 사람이다. 외과 의사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전문화된 일에 특화돼 있다. 말이 말을 낳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잔치가 돼 버리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이 없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건 이벤트가 아니다. (북한군 귀순 병사 말고도) 우리 센터에는 중증외상 환자가 150여명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사 입장서 봤을 때 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인터넷이나 SNS가 안 되는 휴대전화를 쓴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환자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김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군 귀순 병사가 치료를 받는 동안 몸 안의 기생충과 내장 분변, 위장의 옥수수까지 다 공개되는 인격 테러를 당했다고 비판하는 등 일부서 제기된 인권 침해 논란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어 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중증외상센터에 있는 의료진의 인권도 보호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인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인권 사각지대서 비참하게 일하고 있는 중증외상센터 의료진과 직원들도 생각해달라”며 “중증외상센터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병원들이 영미권 병원보다 직원을 3분의 1밖에 고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간호사들이 계속 그만두는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에 진정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헬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몸이 긁힌다. 긁힌 상처가 있는 상태서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인지 모르고 수술한 적도 있다”며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키트를 쓰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삭감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비행 도중 유산한 간호사도 있고 300여시간 비행하다 쓰러져 그 이후에는 다시 비행을 하지 못하는 간호사도 있다. 얼마 전에는 손가락이 부러진 간호사가 사직했다”며 “나도 어깨가 부러졌다. 그러면서도 헬기 타고 출동할 때 정부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다”고 하소연했다.

환자를 두고 ‘쇼’를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교수는 이날 지방서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한 병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에 돌린 문서를 공개했다. 

문서에는 “이 교수처럼 쇼맨십이 강한 분의 말씀만 듣고 판단하지 말고 의료취약지 중심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푸념도 들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교수가 중증 외상 환자도 아닌 석해균 선장을 수술하는 ‘쇼’를 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이 교수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석 선장의 수술 장면까지 공개하면서 “당시 석 선장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언론 브리핑은 주로 병원장이 했다. 나는 석 선장이 깨어나고 나서 브리핑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무섭다. 나 또한 그걸 잘 알고 있다. 다른 동료 의사들에게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면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거나 빅5병원 중 하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분노의 브리핑
열혈 외과의사 

이 교수는 브리핑 내내 불편한 심경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현재의 중증외상센터가 지속가능하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팀원들과 함께 버티겠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의 격정 토로가 있은 이 교수와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를 지원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에 빗발치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는 현재 이 교수 관련 청원이 90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지난 7일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지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은 약 20만명의 시민들이 동참해 가장 많은 동의를 얻었다. 이 청원은 다음달 17일 마감된다.

이 교수는 6·25 전쟁 상이군인인 국가유공자 부친을 두고 있는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1969년 서울서 태어났다.

1995년 아주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서 조교수, 부교수 및 교수직을 지냈다. 2002년 외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서 연수, 2007년에는 영국 로열런던 외상센터서 수련했다. 

2011년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 신분으로 우리 군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출했던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외과의사로 더 유명하다.

당시 석 선장은 해적이 쏜 총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청해부대 소속 UDT/SEAL의 신속한 대처로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총상을 입은 석 선장을 국내로 빨리 이송하는 것이 가장 급한 문제였다. 

메디컬 드라마 실제 모델로 유명
철저한 프로의식·직업의식 갖춰

석 선장은 1차적으로 오만 대학병원서 수술을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이에 오만에 급파된 이 교수는 석해균 선장의 상태를 확인한 후 “오만에 더 놔두면 사망한다”고 판단,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해 한국으로 호송할 것을 적극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석 선장의 후송에 이용하려는 에어 앰뷸런스는 전세비용이 약 40만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4억5000만원)에 달했다. 

긴박한 상황서 국내 정부 측과 연락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자 이 교수는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일단 이송부터 하자”라는 말과 함께 이 교수의 이름으로 빌리돼 외교부가 비용 지급보증을 서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됐다.

이런 공로가 인정 돼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수여받았고 한국 해군과의 합동의료훈련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대위 계급의 영예를 얻었다. 

그는 MBC <골든타임> SBS <낭만닥터 김사부> 등 메디컬 드라마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졌다. 

이 교수는 최근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출연해 의료현장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한국 사회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지난 8월 방송된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서 이 교수는 “우리나라서 돌아가시는 분들 조사해보면 젊은 사람들, 40대 이전에는 중증외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곧장 수술방에 들어가야 한다”며 “그러나 한국 사회서 명령을 내리고 시스템을 만들 사람은 없지만 직접 고된 작업을 할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국가에 몇 없는 최고의 외상외과 전문가로서 투철한 프로의식과 직업의식을 갖추고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중증외상 분야의 외과 전문의이자, 외상 및 외상 후 후유증, 총상 치료 부문서 한국 최고 권위자다. 

이 교수가 이끄는 외상외과 의료팀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외상외과 의료진으로 꼽힌다.

중증외상 분야
알리는데 기여

기존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중증외상이라는 분야를 언론 등을 통해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국 거점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이를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2012년 응급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이국종법이 통과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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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