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의 절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유 있는 ‘대망론’…내친김에 ‘대권’까지?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2009년 5월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어느 새 2주기. 올해도 어김없이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지난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정치권엔 예년과 다른 기운이 감지됐다. ‘노풍(盧風)’을 타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대망론’이 제기된 것. 당초 대망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그는 “도움이 된다면 피하지 않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이로써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게 된 문 이사장,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대통령 최측근
원칙적이고 강직한 성격에 성실한 일처리 능력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경남고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문 이사장은 학생운동에 참여해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통지서를 받은 그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 졸업하고도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가 되지 못하자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인권변호사 길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선배 변호사인 노 전 대통령과 경남지역 시국사건을 함께 맡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 27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각각 대통령과 비서실장으로 새로운 연을 맺었고, 화창한 5월의 토요일 운명이 갈라놓을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두 차례, 그리고 시민사회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차례씩 맡았다. 하나같이 대통령을 최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직책들이다. 인사 배경은 확실했다.

노 전 대통령은 우선 문 이사장의 원칙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높이 샀다.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그를 ‘자신이 아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로 평가할 정도였다. 실제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의 수많은 측근이 자금수수 의혹에 휩쓸리거나 사법처리 되는 가운데서도 문 이사장의 이름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모시는 분에게 눈곱만큼이라도 누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실한 일처리 능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산지역 정치권 인사들 사이에선 “서류 작성은 물론 법원에 가서 서류 제출하는 것까지 직접 챙기던 노 전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문 이사장이 노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내공을 쌓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방패막이가 돼 준 ‘든든한 우군’이었다. 간혹 업무 영역을 넘나드는 행보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아랑곳 않았다. 문 이사장은 묵묵히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노 정부 초기에 대통령 측근 비리, 부산고속철 노선 변경, 보길도 댐 건설 논란, 한총련 합법화 및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논란 등 굵직굵직한 갈등이 터질 때마다 중재와 진화에 나선 것도 모두 문 이사장이었다.

그렇다고 대통령을 무조건 싸고돌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 앞에서 ‘노(No)’라고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직언자였다는 게 전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 이사장이 개혁 의지가 충만한 대통령이 속도를 지나치게 낼 경우 이를 제어하는 ‘제동기’ 역할을 맡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도 문 이사장 앞에선 그 유별난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내에서 의견충돌이 일어날 경우 문 이사장의 ‘원칙’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것.

이런 문 이사장이지만 항상 노 정부 초기에 민정수석인 그가 “대통령 측근에 속한 사람 중 소문 차원의 좋지 않은 정보와 관련된 이가 있다”고 말해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의 시발점이 됐는가하면,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부산 시민들이 (우리를) 왜 부산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가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선거 참패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변함없는 신뢰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문 이사장에 대해 “술잔을 기울이면서 심경을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사람을 무척 가려 만나는 것으로 알려진 노 전 대통령의 입에서 ‘평생지기’라는 말도 자주 나올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은 문 이사장보다 사시에서 5기수나 선배지만 “노무현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 친구 노무현”이라며 돈독한 우애를 드러냈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문 이사장이지만 결코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특히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술을 끊고 인맥이나 지연, 학연을 노출하지 않고 몸을 낮췄다. 괜한 스캔들로 ‘주군’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 평생지기
돈독한 우애 드러내

문 전 실장이 민정수석이 되면서 일부 검찰 인사들이 문 전 실장과 동기인 사법시험 22회 인사들과 접촉해 다리를 놓아보려 했지만 “도저히 라인이 드러나지 않아 포기했다”는 것이나, 문 전 실장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 경희대 법대 동문이 축하연을 열었는데 문 전 실장이 인사만 하고 자리를 뜨는 바람에 동문들이 주인공 없이 밥만 먹고 일어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문 이사장은 민정수석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빚 청산’ 얘기를 꺼냈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권 입문을 적극 권유, 힘겨운 정치판에 발을 들이게 한 미안함에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문 이사장은 또 한 가지 빚을 졌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줄기차게 그를 주요 보직 혹은 지방선거 무대에 세우려 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자리를 그에게 내줬고,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고도 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가 있을 때마다 부산지역 출마를 권유했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끝내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고사했다. “다음 자리를 고민하다 보면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고, 결국 사심이 개입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문 이사장은 대신 “크게 정치력을 요구하지 않고 원리원칙대로만 하는 일, 개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하겠다”는 초심을 지켰다.

하지만 자신을 그토록 배려한 노 전 대통령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한 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 강한 신뢰에도 자신 내세우지 않아
대망론 부정하면서도 “피하지 않겠다” 여운 남겨

그러던 지난 2009년 5월, 문 이사장은 빚도 제대로 갚지 못한 채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문 이사장은 큰 실의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리기 직전까지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지만 결국 마이크를 입에 대기 전 브리핑 쪽지를 쥔 손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문 이사장은 지난 2009년 9월 출범한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아 노 전 대통령에 ‘빚’을 갚아 나갔다. 이 가운데 어느새 서거 2주년을 맞았다. 전국 각지에서 50여개의 추모행사가 열렸고 각각의 행사에는 각계각층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1주기 당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됐다.

‘노풍’을 타고 ‘문재인 역할론’이 불거진 것. ‘4·27 재보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텃밭인 ‘김해을’ 지역을 한나라당에 빼앗긴 데 따른 것이다. 김해을에 인물이 없어 패했다는 자체진단에 따라 문 이사장에게 ‘대안론’을 넘어 ‘대망론’까지 제기됐다. 특히 문 이사장이 4?27재보선을 앞두고 야권 단일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며 상당한 정치력을 보여주면서 정치참여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최근 실시된 여론조에 결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진보진영에서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문 이사장은 15.2%를 차지해 22.8%를 차지한 손 대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대망론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세계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내공을 쌓아 경력과 능력을 검증 받은 후보들도 많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신의 대망론을 거듭 부정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는 게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면서 “야권 후보군이 풍부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논의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임해 ‘빚’ 갚아

 

하지만 문 이사장은 최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문재인 대망론’에 대한 질문에 “급부상이니 대망론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과분하기도 하고 또 과장된 말씀이기도 하다”면서도 “어찌됐든 내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정권교체를 반드시 해야 되는데, 우리쪽 상황이 쉬워 보이지 않고 어려우니 다들 힘을 모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당신도 나와서 역할을 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혹시 도움이 된다면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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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