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최 게이트> 쟁점 정유라 입에 물린 폭탄들

  • 최현목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6.05 10:17:36
  • 호수 1117호
  • 댓글 0개

다음 차례는 ‘정윤회 게이트’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정 농단 사태의 마지막 퍼즐이 송환됐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3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정씨의 송환은 언론에 생중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방증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정씨의 '입'에 집중됐다.
 

포토라인에 선 정유라씨는 담담히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취재진과 일문일답서 정씨는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억울하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억울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머니와 전 대통령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모르는데, 일단 나는 좀 억울하다”고 답했다. 이번 사태와 선을 긋고자 하는 의지가 다분하다.

[마지막 퍼즐]
“난 억울해”

정씨가 인천공항에 입국한 시각,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 전 대통령은 비선진료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된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출석할 뜻을 거듭 밝혔다. 

이에 법원은 강제 구인을 결정해 구인영장을 발부했지만, 끝내 출석을 거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은 정씨의 이대 입학과 학사 과정서 특혜를 제공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뇌물 등의 재판을 받고 있는 최씨에게 내려진 첫 구형이었다.


정씨는 이번 게이트 재수사를 촉발할 뇌관으로 지목돼왔다. 삼성그룹 승마지원 특혜의 당사자이자 최씨의 친딸이기에 박 전 대통령과 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이에 정씨가 검찰 조사서 최씨와 박 전 대통령과 관계, 삼성그룹 승마 지원 배경, 국외 재산형성 과정 등을 소상히 밝힌다면 재수사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씨가 송환된 당일 “판도라의 상자를 열 핵심 열쇠”라고 언급했다. 

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정씨는 22년 동안 아버지인 정윤회씨 외에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거의 유일한 인물이며,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며 “이대 입학 비리, 삼성그룹의 뇌물 의혹, 최씨 일가의 은닉 재산 등 정씨가 쥐고 있는 키가 아직 많다. 그만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고, 국민들은 속 시원한 ‘사이다 수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논평했다. 
 

정씨는 즉시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돼 조사를 받았다. 고강도 조사를 마친 정씨에 대해 검찰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지원 자금을 은폐하려 한 혐의 ▲이화여대(이하 이대) 업무방해 ▲재산 은닉 및 국외 도피 의혹 등 ‘3대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일요시사>는 취재진과 일문일답 당시 나온 의혹을 중심으로 주요 쟁점을 정리해봤다.

[삼성 승마지원]
모르쇠 전략


“딱히 그렇게 (특별지원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일 끝나고 돌이켜보니…잘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삼성전자가 승마단을 통해 총 6명을 지원하고 그중에 한 명이 나라고 말씀하셔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삼성 승마지원이 본인에 대한 특별지원이라고 생각하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정씨의 답변이었다. 정씨는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특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전면 부인했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최씨가 ‘일부 문서’를 보여줘 이에 서명했을 뿐이라던 덴마크서의 진술과 큰 틀서 일치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씨는 특혜 여부에 관해 ‘모르쇠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뇌물죄 혐의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법조계는 정씨의 뇌물죄 적용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검찰이 정씨에 대해 집행한 체포영장에도 청담고 학사 비리 및 이화여대 입학·학사 비리 혐의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가 적시돼있을 뿐 뇌물 혐의는 빠져 있었다.

정씨의 뇌물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정씨가 직접적으로 삼성에 승마 훈련 지원을 위한 용역비, 말 구입비 등을 요구한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최씨가 ‘일부 문서’를 보여줘 이에 서명을 했을 뿐이라고 정씨가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최씨가 수령한 뇌물을 본인이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인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지난 1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삼성서 최씨에게 부탁했고, 또 그걸 통해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관리공단 의사 결정에 관련된 지시가 있었다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라며 “정씨가 어떤 의사결정이라든지 구체적인 뭔가를 담당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고 언급했다.

김 의원은 이어 “정씨가 승마 지원 혜택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묻기에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정씨보다는 최씨가 주도적으로 대부분의 일을 했고, 정씨는 그 과실을 따먹는 수익범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모습 드러낸 유라 “억울하다”
뇌물죄는 피하나? “서명만 했을 뿐?”

또 정씨 뇌물죄의 경우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제3자 뇌물죄가 먼저 입증돼야 한다. 정씨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도 입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 비해 정씨의 뇌물죄 적용이 어려운 이유다.
 

이에 정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서 정씨를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나 “검찰이 정씨를 상대로 삼성 뇌물도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뇌물 관계는 전혀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씨는 특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함과 동시에 책임을 전적으로 최씨에게 떠넘기는 전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 승마 지원과 관련해 정씨의 입에서 결정적 증언이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썬 낮은 상황이다.


반면 정씨 소환으로 최씨의 입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졌다. 최씨는 재판부에 여러 차례 정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등 딸과 관련해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씨 송환 하루 뒤인 지난 1일 공판서 최씨는 “40년 지기로서 신의를 지키기 위해 박 전 대통령 곁에 끝까지 남은 게 정말 후회스럽다”고 토로하는 등 심경의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정씨의 송환 소식을 접한 최씨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기존 진술을 뒤집고 새로운 내용을 밝힐 여지가 있다. 박 전 대통령, 최씨, 이재용 삼성 부회장 모두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서 검찰의 ‘압박카드’가 얼마나 통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대 부정입학]
어머니에 전가

“학교를 안 갔기 때문에 입학취소를 인정한다. 나는 내 전공이 뭔지도 잘 모른다. 한 번도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입학 취소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 죄송하다.”

‘이대 입학부터 출석까지 특혜가 있어서 입학이 취소됐다.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이같이 답했다.


여러 의혹 중 정씨가 직접 얽힌 것은 청담고 재학 시절 출석·봉사활동 실적 등을 조작한 혐의와 이대 부정입학 혐의 등이다. 이에 대해 정씨는 “나는 한 번도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다”며 우회적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덴마크서 정씨는 이대 재학 중 대리 시험 의혹에 대해 “어머니(최씨)가 그런 것을 했다고 쳐도 이를 나한테 얘기하고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주장, 최씨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즉, 삼성 승마지원 의혹과 같이 일련의 학사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어머니가 주도한 일이며 자신은 몰랐다는 논리다. 그러나 삼성 승마 지원 건과 달리 이대 부정입학 건의 경우 정씨가 부정행위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정황이 존재한다.

이대 부정, 인지 가능성 높아
검, 모녀 공모 관계 소명할까

교육부 감사에 따르면 정씨는 이대 면접고사 당시 반입이 금지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고사장에 가져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입학사정관에게 요청한 사실이 있다. 이에 정씨는 면접장 테이블 위에 금메달을 올려놓고 면접위원에게 “금메달을 보여드려도 되나요”라고 말하는 등 스스로 공정성을 해치는 행동을 했다.

정씨는 관련 의혹에 대해 “메달은 이대만 들고 간 게 아니라 중앙대에도 들고 갔다. 어머니가 입학사정관에게 메달 들고 가도 되는지 여쭤보라고 했고 (입학사정관이) 된다고 해서 가지고 들어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이 평가위원 교수들에게 “수험생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으니 뽑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특검 조사 결과 드러나 최씨를 통해 정씨와 학교 측이 공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청담고 허위 봉사활동 실적의 경우 정씨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특검 수사에서 밝혀졌다. 사실과 다른 봉사활동 확인서를 정씨가 직접 서명하고 이를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는 것이다.

[재산은닉]
자진입국 강조

“입장 전달하고 오해도 풀어 빨리 해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한국에) 들어왔다.” 정씨는 이 같은 귀국 사유를 취재진에 전했다. 

변호인 이 변호사는 “입국은 전적으로 정씨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며 사실상 자진입국이라고 주장했다. 국외 도피를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씨는 그간 수사 당국의 귀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에도 장기간 국외에 체류했다. 이는 정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형사소송법은 죄를 지었다고 의심할만한 타당한 사유와 함께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구속 요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산은닉 의혹이 있다는 점도 정씨의 구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정씨의 귀국은 은닉재산 수사가 본격화될 것을 암시한다”며 “최씨 일가의 재산조사와 환수,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최씨가 독일에 설립한 법인의 지분을 한때 보유한 만큼 재산 은닉과의 연관성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다. 그는 특검이 뇌물로 지목한 약 78억원을 삼성전자로부터 송금받은 독일법인 코레스포츠의 지분 소유자였다. 결국 검찰이 최씨 모녀의 공모 관계를 뒷받침할 근거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혐의 소명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유라 미소의 비밀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시종일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미용용 서클렌즈를 착용한 정씨는 대답 도중 미소를 짓는가 하면 검찰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리를 꼬고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지난 1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긴 시간동안 한국에 송환될 때를 대비해서 머릿속에 이런저런 답변을 해야겠다고 준비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