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풀려난 정유라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6.26 10:25:21
  • 호수 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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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검찰 머리 위서 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또 다시 구속을 면했다. 이번에는 범죄수익은닉 혐의가 추가됐지만, 정씨는 살아남았다. 일각에선 ‘검찰 위 정유라’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정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이날 밤 10시13분쯤 검찰의 2번째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추가된 혐의를 포함한 범죄사실의 내용과 피의자의 구체적 행위·가담 정도, 그에 대한 소명의 정도, 현재 피의자의 주거상황 등을 종합하면 현 시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근혜-정유라 
통화도 했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 18일 정씨에 대해 이화여대 부정입학·학사비리 관련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정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지 보름여 동안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정씨의 첫번째 구속영장에 담긴 업무방해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외에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추가해 승부수를 걸었다.

법원은 지난 3일 정씨에 대한 1차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영장에 청구된 범죄사실에 따른 피의자의 가담 경위와 정도, 기본적 증거자료들이 수집된 점 등에 비춰볼 때, 현 시점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업무방해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이 적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후 정씨와 아들 보모, 마필관리사, 정씨의 전 남편 등을 소환해 삼성의 승마자금 지원 방법과 내역을 집중 추궁하며 범죄수익은닉 혐의 입증에 총력을 다했다.

두 번째 구속영장도 기각
국정농단 사건 재판 삐걱

검찰은 삼성이 정씨에게 제공한 말 살시도와 비타나V, 라우싱을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로 교환한 ‘말세탁’ 과정서 정씨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또 정씨가 최씨의 독일 차명회사 코어스포츠서 매달 5000유로(약 630만원)를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월급은 삼성이 코어스포츠에 컨설팅 명목으로 제공한 280만유로(약 36억원)에 포함된다. 검찰은 이 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에 박 전 대통령이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대가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씨의 독일 자금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장도 소환해 자금 흐름에 대해 캐물었다. 이 전 지점장은 정씨가 삼성의 지원 과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추가로 발견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7권은 박 전 대통령이 최씨의 뇌물수수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핵심 증거로 떠올랐다.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이상화 전 KEB 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의 국제전화번호가 적혀 있는데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 직접 번호를 불러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영장실질 재판 과정에선 새로운 정황도 드러났다. 정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직 당시 박 대통령과 수차례 직접 전화 통화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검찰 조사 과정서 밝혀졌다.

제3국으로 
망명 시도도

정씨는 검찰 조사 과정서 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 사실을 시인했다. 박 전 대통령과 정씨의 통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화 경위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일 당시 어머니 최씨가 통화 도중 자신에게 전화를 바꿔줘 하게 됐다고 검찰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과 정씨는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 서로 교류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 당시 “정유라는 아주 어렸을 때 만나보고 그 이후에는 본 사실도 없다”며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정유연이 정유라로 이름을 바꾼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씨도 과거 언론에 “박근혜 대통령을 뵙긴 뵀는데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버지가 일하실 때, 초등학교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정씨가 덴마크에 구금됐을 당시 지중해 섬나라 몰타를 포함한 제3국의 시민권을 얻어 한국 송환을 피하려 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최씨의 재산관리인 역할을 한 데이비드 윤씨가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서 정씨는 “몰타가 아니라도 모든 나라, 변방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이라도 괜찮으니 빨리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해 달라”며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제3국 시민권을) 획득하기 전까지는 (바깥에) 철저히 비밀로 해야 한다”며 “적어도 다음 대선(5월 9일)까지는 돼야 한다”고도 적었다.

이에 대해 정씨는 검찰 조사서 “알아보기는 했지만 돈이 많이 들어 시민권 취득을 포기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는 전날 영장심사를 앞두고 시민권 취득 의혹이 불거지자 “전형적인 페이크(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이어 “정유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국적 브로커들이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피가 목적이었으면 벌써 취득했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검찰은 덴마크서 범죄인인도 거부 소송을 진행하던 정씨가 승소하는 경우를 대비해 제3국으로 옮길 채비에 나섰던 것으로 의심한다. 한편 정씨가 제3국 국적 취득 문제를 모친인 최씨와 긴밀히 상의한 정황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이 편지서 “(외국 시민권 취득 문제를) 빨리 엄마 의견 물어봐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전화 통화나 서신 교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력자들을 사이에 놓고 간접적인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검찰은 다른 편지들에서도 정씨가 최씨의 측근과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이 같은 사실을 감추려 한 정황을 포착했다. 

정씨는 국내의 한 조력자에게 보낸 편지서 최씨 관련 상황 등 국내 동향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면서 “편지를 받아서 읽으면 라이터로 태워버리니 보안은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편지들은 정씨의 유럽 도피 생활을 도운 마필 관리사 이모씨의 휴대전화서 다량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증거들을 토대로 검찰은 제3국 시민권 취득 시도 등 도주 우려와 공범 관계인 모친과의 말맞추기 등 증거 인멸 우려가 크다고 봤다. 

그러나 법원이 또다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정씨의 신병을 확보해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혐의를 추가 조사하겠다는 검찰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최씨와 아버지 정윤회씨가 국정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도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뿐 아니라 정씨 또한 긴밀하게 연결돼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을 영장에 적시했다. 

세번째 영장?
검찰 고민 중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소 유지와 국정농단 마무리 수사 차원서 정씨를 중요한 핵심 인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반 사건이라면 동일인에게 세 번씩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만 보강 수사의 진전 상황에 따라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서 정씨는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세 번째 영장이 청구될 경우 어떻게 하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똑같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어머니 최순실씨가 국정 농단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검색도 안 해봤다. 갇혀 있어서 검색할 수 없었다. 변호사를 통해서는 어머니가 아직 형을 받지는 않으셨다고만 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전 대통령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난 지 모른다. 난 조금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이번 영장 기각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보강 수사를 거쳐 세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과 덴마크 당국의 추가 동의를 받아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얹어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놓고 내부 검토 중이다.

‘특혜인생’ 모르쇠 통했나
최순실 압박 전략 난항

정치권서도 정씨의 영장 기각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지난 20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법원의 2번째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면서 불구속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백혜련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도주와 증거인멸이라는 구속사유에 대해 법원이 너무 형식논리에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백 대변인은 “정유라의 영장기각과는 별개로 국정농단에 대해 미진한 부분은 계속 수사돼야 한다”며 “대한민국에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구두논평서 “2번째 영장기각에 허탈함은 더 커지고 그동안 검찰이 제대로 준비한 것인지 강력한 수사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려스럽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이제 불구속 수사를 통해서라도 부정입학과 학사특혜비리 삼성으로부터 금전적 특혜 등 모든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비정상의 정상화는 국정 농단 사건의 총체적 진실을 밝히고 죄는 지은 대로 받는다는 상식의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준비했나
수사 의지 의문

추혜선 정의당 대변인도 구두논평을 통해 “한 언론의 추적 끝에 겨우 붙잡은 국정농단의 주범”이라며 “법원이 기계적인 판단으로 자유를 준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신환 바른정당 대변인도 “어디까지나 구속의 사유가 인정되지 않았을 뿐 법원이 정씨의 혐의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와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유라 풀어준 권순호 판사는?

권순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26기)가 최순실 씨(61)의 딸 정유라 씨(21)에게 두 번째로 청구된 구속영장도 기각하면서 권 부장판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권 부장판사는 20일 정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추가된 혐의를 포함한 범죄사실의 내용, 피의자의 구체적 행위나 가담 정도 및 그에 대한 소명의 정도, 현재 피의자의 주거 상황 등을 종합하면, 현시점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설명했다.  

권 부장판사는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나온 뒤 공군 법무관을 거쳐 2000년부터 판사로 재직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대구지법, 서울고법, 창원지법, 수원지법 등을 거쳐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리를 옮겼다. 

권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과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내는 등 대법원 근무 경력도 다수 있으며 지난해에는 지방변호사회가 뽑은 우수 법관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권 부장판사는 합리적인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원칙에 근거해 꼼꼼히 살핀 뒤 엄정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권 부장판사는 지난 2월 ‘비선진료’ 방조와 차명폰 제공 등의 혐의를 받은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의 영장을 기각하기도 했다. 당시 권 부장판사는 “이미 확보된 증거와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연락처 등을 고려했을 때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이어 지난 4월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는 “혐의 내용에 관해 범죄 성립을 다툴 여지가 있고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에 비추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음이 충분하지 않아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최씨의 최측근이었다가 갈라선 뒤 국정농단 의혹을 폭로한 고영태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권 부장판사는 “주요 혐의사실이 소명되고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힌 바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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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