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고 돌아 돌아온 이대호

부산에 짐 푼 '150억 사나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이대호(35)가 친정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이대호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렸다. 그의 선택은 친정집으로의 복귀였다. 친청집은 따뜻하게 그를 맞이 했다. 4년 총액 연봉 150억원으로 한국프로야구(KBO) 역사상 최고액을 보장해 주기로 한 것. 2017년 시즌이 벌써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롯데는 지난 24일 이대호와 계약기간 4년, 총액 150억원에 FA(자유계약 선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가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돌아온 것이다. 이대호의 4년 연봉 총액은 KBO리그 역대 FA 최고액이다. 그가 FA 시장에 나왔을 때 국내행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았다.

4년에 150억원
역대 FA 최고액

높은 몸값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의 커리어에 걸맞는 연봉을 제시해줄 국내 구단이 전무해 보였다. 특히 선수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이대호에게 큰 금액을 배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대우를 확실하게 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연봉을 제시한 것이다. 이 선수도 이에 화답했다.

더 좋은 조건을 마다한 채 한국 무대서 뛰기로 결단을 내렸고, 친정팀인 롯데를 선택했다. 지금까지 4년 연봉 총액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최형우가 지난해 11월24일 받았던 4년 총액 100억원이었다.

미국과 일본, 국내를 모두 염두에 두고 고민하던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됐다. 2011시즌을 마치고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오릭스 버펄로스,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친 이대호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서 뛰었고, 6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하게 됐다.


이대호는 “미국서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꿈을 이뤘다. 롯데로 돌아와 팀 동료, 후배들과 함께 우승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고 꼭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다시 FA가 된 이대호가 롯데와 계약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 이대호를 1루수 플래툰 자원으로 보고 관심을 보일만한 구단이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서도 이대호의 거취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본인이 “출전 기회를 가장 중시할 것”이라고 해 다시 일본서 뛸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지바 롯데 마린스, 한신 타이거스가 이대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잇따랐다.

올 겨울 전력 누수가 심했던 롯데에 이대호는 놓칠 수 없는 카드였다.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이 개인사를 이유로 이탈한 가운데 FA 황재균까지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겠다고 제안을 고사한 상황이었다. 롯데는 이대호에게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이번 겨울에도 그에 대한 애정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롯데 이윤원 단장은 “해외에 나가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롯데로 돌아올 선수라 생각해 예의주시했다. 이번 비시즌도 마찬가지였다. 말만 하고 지켜본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살펴봤다”며 “이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꾸준히 이대호의 움직임을 살피던 롯데는 지난 주부터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이 단장은 사이판서 개인 훈련을 하는 이대호를 만나기 위해 직접 사이판으로 떠났다. 지난 18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등 사이판에 머물면서 그를 설득했다.

이 단장은 “사이판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직접 사이판으로 간 것에 고마워했다”고 설명했다.


일본·미국 거쳐 6년 만에 친정팀 복귀
망설이다 팬·가족 사랑에 한국행 결심

이제 나이가 적지 않은 이대호도 고향팀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서 정상급 타자로 활약하고,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룬 그에게 고향팀서의 우승이라는 꿈이 남아있었다.

이 단장은 “이대호 본인도 롯데서 우승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선수와 구단의 뜻이 통했고,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고 말했다.

이대호의 한국행을 결정했던 중요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이 선수는 평소 자녀교육에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1년 시즌을 마치고 해외(일본) 진출했고 우수한 성적도 거뒀다. 일본 진출 첫 해에 오릭스와 계약한 그는 2014년 소프트뱅크로 팀을 옮겼고, 4년간 일본 프로야구서 맹활약했다.

2015시즌을 마치고 돈 대신 꿈(메이저리거)을 택한 이대호는 시애틀과 스플릿 계약을 맺고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로 합류했다. 이대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메이저리그 로스터 한 자리를 꿰찼고,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서 10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53(292타수 74안타) 14홈런 49타점 33득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해외 진출에 평가는 긍정적이었지만 이대호 본인은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으로 한국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초 해외파의 WBC 출전 의사 확인 차 미국을 다녀온 이순철 WBC 타격코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대호가 한국에 오고 싶어 하더라. 출전시간 보장도 큰 걸림돌이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을 많이 걱정하더라”라고 언급했다.

1루수 4번 찜
주장으로 활약

특히 장녀 효린양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이 깊다고 했다. 효린양은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할 무렵에 태어나 그곳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미국생활을 하면서 환경과 문화적 차이에 꽤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가정적인 이대호도 오랜 해외생활에 지친 딸을 매우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고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의 한국행이 가능했던 것은 상호 신뢰감이 돈독한 팬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행이 결정되면서 “해외리그서 뛸 동안에도 항상 저를 끊임없이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너무 그리웠고, 우리 팬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설렌다”며 “마음으로 대하고 가치를 인정해주신 구단에도 감사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국제신문>에 따르면 사이판서 정훈 등과 함께 개인 훈련 중인 이대호와 전화 통화를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한 구단 홍보관계자는 이대호가 끊임없이 강조한 것은 팬들이었다.


이 관계자는 “보도자료에는 팬들이 두 차례 언급됐지만 이대호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 팬들’이라는 말을 거의 빼놓지 않았다”며 “후배들과 함께 팬들이 보는 앞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고 전했다.

롯데 입장서도 이번 이대호의 영입으로 한숨 돌리게 됐다.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선수들을 이끌어줄 베테랑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단장은 “이대호가 이전에 롯데에 있을 때도 리더십을 보여줬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팀 분위기를 활기차게,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복귀로 롯데는 막강 타선도 구축하게 됐다. 손아섭, 최준석, 강민호, 이대호 등으로 이어지는 ‘강타 라인업’은 향후 포스트 진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최형우와의
라이벌 예고

이대호는 막강한 티켓파워를 가진 프렌차이즈 스타이기도 하다. 2001년 2차 1순위로 롯데에 입단한 이대호는 2008∼2011년 롯데의 4번타자로 활약하며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한국 프로야구 최초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을 달성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활약했다.


사실상 최근 11시즌 동안 롯데의 전성기는 그의 전성기와 맞닿아 있었던 셈. 그가 복귀 후 선전한다면 최근 4년간의 부진으로 돌아선 ‘부산갈매기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연속 100만 관중을 달성하고 관중 동원 1위를 달린 롯데는 2013년 77만731명으로 관중수가 뚝 떨어졌고, 2014년(83만820명)과 2015년(80만962명) 90만 관중도 채 넘기지 못했다. 지난해도 롯데는 85만2639명 관중에 머물렀다.

이대호가 롯데로 돌아오면 1루수 4번타자와 더불어 팀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측은 이대호와 롯데 팀원들이 처음 만나는 롯데의 미국 애리조나 캠프 상견례 자리서 그를 주장으로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시즌엔 포수를 맡고 있던 강민호가 주장직을 수행했다. 롯데는 강민호가 포수라는 중책을 맡고 있어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의미에서 이대호에 주장을 맡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이대호의 친정 복귀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이대호의 한국행으로 지금까지 그가 선수로서 얼마나 연봉을 챙겼는지도 관심이 쏠린 것. 연봉 추이를 보면 그의 성과를 대략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국내 간판타자가 얼마나 벌었느냐는 호기심도 포함됐다.

이대호는 지난 2001년 2차 1순위에 지명돼 롯데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연봉은 프로선수 최저인 2000만원이었다. 이대호의 이번 연봉이 평균 37억50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6년 만에 187배 치솟은 셈이다.

이대호는 2006년 첫 억대 연봉(1억3000만원)에 진입한 뒤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2007년 곧바로 3억원(3억2000만원)대로 들어섰고, 2011년에는 6억3000만원을 끝으로 일본으로 진출하며 큰폭으로 뛰었다. 오릭스와 2년간 7억6000만엔(약 78억원)에 계약한 이대호는 소프트뱅크로 자리를 옮겨 2년간 12억5000만엔(약 129억원)의 연봉을 기록하는 등 천정부지로 몸값이 솟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시애틀과 스플릿 계약서 400만달러(약 46억5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됐다. 이번 롯데와 4년간 150억원의 역대 최고액을 받게 된 이대호는 입단 계약금 포함 연봉 누적 429억 2900만원을 적립하게 된다. 연평균으로 계산하면 21억4645만원 수준.

롯데 애정공세로 계약성사
국내서 선수생활 마무리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간판타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승엽(41·삼성)과의 격차가 현격하게 좁혀졌다는 점이다. 이승엽은 올 시즌 종료 후 은퇴할 예정인데, 그가 활약한 23시즌 동안 벌어들인 총 연봉은 462억9200만원으로 이대호의 연봉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이번 이대호의 복귀로 KIA 거포 최형우와의 연봉 경쟁에도 관심이 쏠린다. 둘 간의 4년 연봉 총액만 250억원으로 자연스런 라이벌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커리어는 이대호가 앞선다. 2001년 롯데서 데뷔한 이대호는 11시즌을 뛰면서 통산 1150경기서 타율 0.309 225홈런 809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2006년 타격 3관왕(타율·홈런·타점)에 오르면서 전성기에 진입했다.

2010년에는 KBO리그 최초로 타격 7관왕 시대를 열었다. 그는 KBO리그 통산 세 번의 타격왕 (2006·2010·2011년)과 두 번의 홈런왕(2006·2010년), 두 번의 타점왕(2006·2010년)에 오르는 발군의 활약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 꾸준함은 해외로 진출해서도 이어졌다. 201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뒤에도 소프트뱅크서 뛰던 2015년에는 31홈런 98타점으로 활약하며 일본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그해 이대호는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이름을 올리면서 선수생활 최고의 순간을 맛봤다.

지난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스플릿 계약한 그는 14개의 홈런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물론 이대호의 한국행 이전 가장 높은 연봉을 기록한 최형우의 이력도 화려하다. 전통의 강호 삼성 라이온즈서 활약한 최형우는 2008년 중고 신인으로 신인왕에 오른 뒤 최근 4시즌 동안 평균 3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

지난해에는 타율과 안타, 타점 부문서 1위로 생애 첫 타격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에는 이대호(27개)를 제치고 30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풍성한 볼거리
달아오른 부산

최형우는 우승 경험서 이대호를 앞선다.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서 두 번의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꼈지만 한국시리즈 정상 경험은 물론 한국시리즈 출전 경험도 없다. 반면 최형우는 2011년부터 4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기록했다.

이대호의 롯데행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주장(2001∼2011년)을 맡았던 조성환 KBS 해설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대호의 복귀는 나도 고대하던 소식이었다”며 “롯데구단을 깨우고 팬들을 다시 불러모을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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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