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舌禍)에 데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세무조사, 회장님 혀끝에서 시작됐나?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한창인 지금, 삼성의 표정엔 고민이 가득하다. 세무조사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조사가 ‘회장님 혀끝’에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서다.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의 ‘낙제점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삼성은 95년에도 ‘설화’로 큰 타격을 입은 전력이 있어 지난 악몽이 되살아날까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다.

삼성물산,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세무조사가 ‘한창’
현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아닌 것 같다”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등 삼성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한창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월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삼성중공업 등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국세청 조사2국은 4일부터 호텔신라에 대해 2개월가량의 일정으로, 조사1국은 삼성중공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사에 대해 삼성그룹은 통상적으로 있는 4년 주기의 정기세무조사라는 입장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하지만 재계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삼성그룹의 계열사가 일제 세무조사를 받는 배경에 이 회장의 “(현 정부가) 낙제는 면했다”는 발언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낙제점 발언에
MB 괘씸죄 적용?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지난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했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 회장 발언에 정부는 불편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정부정책의 지원을 받은 대기업 총수가 낙제점 운운하는 것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수출을 많이 하는 삼성그룹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가장 큰 수혜를 누렸는데, 배은망덕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비판도 이어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회장이 청와대 성적을 평가하는 채점자냐. 너무 오만하다”는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정부와 여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삼성은 즉시 진화에 나섰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이 회장은 ‘발언의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삼성 정부 간 냉기류 세무조사에 영향 미쳤을 것”
“이 회장 특유의 화법과 리더십 때문에 생긴 오해”

결국 이 회장이 직접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을 위해 출국하면서 “내 뜻은 그게 아니다. 완전히 오해하신 것 같다”고 적극 해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은 듯하다. 정치권은 여전히 싸늘한 시선으로 이 회장을 바라봤다. 이 회장의 출국을 두고 “정치권의 반발과 세무조사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도피성 출국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4일 뒤, 국세청 세무조사가 이어졌다.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하다. 삼성은 “이 회장의 발언과 어떤 관련도 없으니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 회장의 발언 이후 정부와 삼성그룹 간에 형성됐던 냉기류가 이번 세무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란 게 재계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에서 포착된 몇 가지 특이사항은 이 같은 의혹에 무게를 더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세무조사 기간이 105일로 통보됐다. 통상적인 조사 기간이 2개월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석연치 않다. 조사인력도 대폭 증원돼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국세청이 같은 그룹 계열사 2곳(삼성중공업·호텔신라)에 대한 세무조사를 같은 날 동시에 착수한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세무조사 기간 105일
조사인력 대폭 증원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자 삼성은 되살아나는 악몽에 치를 떨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한국의 정치는 4류, 행정과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격노했고, 급기야 고강도 세무조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삼성은 상당기간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결국 삼성은 이 회장의 발언 5일만에 정부에 고개를 숙였다. 이후 이 회장은 정부정책에 대해 입을 꽉 다물었다. 지금껏 전경련 회장 후보로 가장 많이 추천된 이 회장이 한사코 회장직을 맡지 않은 것도 참모진들이 설화를 우려해 반대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은 이 같은 오해가 빚어진 건 이 회장의 독특한 화법과 리더십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삼성그룹 측 관계자는 “그룹 안과 밖에서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겠지만 내부에서라면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 말 자체는 상당히 고무적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삼성 사장단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전자 휴대폰사업을 맡고 있던 이기태 사장에게 “이제 겨우 졸업했군”이라고 말한 게 그 일례라는 설명이다. 당시 이 사장은 위기에 처한 휴대폰사업을 정상화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품질개선과 독창적 모델 개발에 힘써 애니콜 브랜드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애니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이 사장은 삼성전자의 간판 최고경영자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 회장이 이 사장에게 한 발언은 휴대폰사업부문이 현재 성과를 내고 있다고 절대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라는 의중에서였다. 이번 낙제점 발언과 뉘앙스가 비슷하다.

달리는 말 채찍질
주마가편 리더십

이 회장은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계열사 CEO들이 뛰어난 실적을 내도 좀처럼 다독여 주는 일이 없다. 되레 혹독한 매질을 한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의 리더십이다.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나선 당시 “앞으로 5년, 10년 후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해 사장단을 잔뜩 긴장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가 최근 수년간 반도체 휴대폰 LCD등의 호조로 사상 최고의 실적을 매년 갈아치울 때도 “지금이 중대고비다. 앞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신수종사업을 키워야 한다”며 담금질했다.

이 회장은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유화 중공업 등 계열사에 대해선 ‘암3기 환자’ ‘선천성 불구자’ 등의 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으며 품질 혁신과 구조조정, 신수종 사업 등을 통해 환골탈태할 것을 촉구했다.

삼성특검 이후 일선에서 퇴진했다 지난해 경영으로 복귀하면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전자의 주력제품들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며 위기 경영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낙제점’ 발언 사태 일지>

♦2010년 11월, 국세청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삼 에버랜드 세무조사 착수

2011년 2월, 국세청 삼성물산 세무조사 착수


2011년 3월10일, 이건희 회장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히 성장을 해 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 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비판

3월11일, 여권 관계자 “이 회장이 청와대 성적을 평가하는 채점자냐. 너무 오만하다”

3월14일,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 정부정책의 지원을 받은 대기업 총수가 낙제점 운운하는 것이 서글프다”

3월16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장 “이 회장은 ‘발언의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3월29일,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동반성장 위해 15대 대기업총수 만나겠다”

3월31일, 이 회장 “골치가 좀 아팠다. 이런저런 면에서 (정부가) 잘했다는 뜻이었다”

4월4일, 국세청, 삼성중공업·호텔신라 세무조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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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