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3룡’ 건설사의 비밀

“대기업 비켜!” 거침없는 질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최근 건설업계서 파죽지세인 건설사 3인방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때 잘 나갔던 건설사를 M&A(인수합병)하며 사세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묘하게 비슷한 구석들이 있다. <일요시사>는 건설업계 3인방의 공통점을 짚어봤다.

국내 건설업의 불황으로 M&A시장에 건설사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매물 중에는 한때 잘나갔던 건설사들도 눈에 띈다. 반면 매물로 나온 건설사들을 족족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건설사 3인방이 있다. 호반건설, SM그룹, 세운건설이 바로 그 기업들. 3인방의 행보를 보며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것 같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호남 기반
자수성가 회장

호반건설(김상열 회장)의 4대 건설 법인의 외연은 3년 만에 2배가 됐다. 지난해 호반건설, 호반건설주택, 호반건설산업, 호반베르디움 등 4대 건설법인의 각 연결기준 매출액 합계는 3조908억원에 달했다. 작년 매출은 1조2195억원으로 호반건설 1조1593억원을 뛰어넘었다. 영업이익을 살피면 4개 법인은 작년 5275억원을 거뒀다.

SM그룹(우오현 회장)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우방, 우방산업, 우방건설산업, 우방건설의 매출액은 6092억원으로 전년 4617억원 대비 무려 30.95% 증가했다. SM그룹의 지난해 매출 2조4500억원, 영업이익 1900억원, 당기순이익 1600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SM그룹은 법정관리 중인 경남기업에 M&A 전에 뛰어 들었다. 경남기업을 품에 안을 경우 중견 건설사로 발돋움할 교두보가 마련된다.

세운건설(봉명철 회장)은 위에 있는 2인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아직 미약하지만, M&A 시장서의 행보는 가히 독보적이다. 세운건설이 인수한 금광기업과 남광토건의 지난해 매출액은 260억원으로 전년도 156억보다 100억가량 증가했다. 세운건설은 극동건설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면서 중견 건설사 3곳을 거느린 종합건설사로 자리매김했다.


3인방은 하나같이 호남을 모태로 한 무명기업이었으며, 자수성가형 회장들이 이끌고 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1961년생 전남 보성 출신이다. 그는 조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중소건설사서 일하다가 호반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의 첫 사업은 광주 북구 삼각동의 호반맨션아파트 149가구였다. 변두리지역이라 수요가 많지 않았으나 아파트 완공 직전 살레시오고와 전남공고 등 시내 고등학교들이 주변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덕분에 호반이 세운 아파트는 완판됐다.
 

김 회장은 호반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금융업을 시작했다. 지금 호반건설은 호반이 설립한 호반건설산업이 모체다. 호반건설산업은 현대파이낸스라는 이름으로 1996년 설립됐다. 김 회장은 이듬해 현대파이낸스의 회사이름을 현대여신금융으로 변경하고 할부금융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던 중에 IMF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IMF사태는 김 회장에게 기회였다.

현대여신금융은 1999년 신화개발주식회사로 회사이름을 변경하고 호반의 건설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리고 2000년 이름을 호반건설산업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건설사업 확대에 나섰다. 김 회장은 IMF사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여러 곳에 땅을 사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이름으로 주택분양사업을 펼쳤다. 호반건설의 기반은 광주였지만 이때부터 울산, 대구, 천안 등 전국적으로 사세를 확장해갔다.

중견 3인방 호반건설·SM그룹·세운건설
‘죽어라 죽어라’ 건설 불황에도 파죽지세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1953년 전남 고흥 출신이다. 그는 광주상고와 광주대 건축공학과, 조선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88년 삼라건설을 설립하고 광주와 전남 일대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삼라건설은 승승장구했다. 90년대 광주에서는 아파트 붐이 크게 일어나 삼라건설이 분양한 아파트는 불티나게 팔렸다. 이 때문에 분양만 하면 팔린다는 말까지 나와 SM건설은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 외환위기가 닥쳤지만 위험을 대비해 둔 덕분에 2000년대에는 수도권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경영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이 보유했던 수도권 택지들을 헐값에 내놨는데 삼라건설은 이 땅을 하나둘 인수했다. 이를 기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인천, 용인, 구리 등 수도권은 물론 서울시에도 삼라건설의 아파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
 

봉명철 세운건설 회장은 1961년 전남 화순 출신이다. 봉 회장은 1995년 전남 화순에 세운건설을 설립했다. 현재도 화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요 업종은 도로건설업과 지역 토목공사 등을 맡고 있다. 세운건설은 아직까지도 건설업계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세운건설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12년 2월 자신보다 10배 이상 몸집이 큰 금광기업을 집어삼키면서부터다.

3인방이 M&A를 통해 전국구 건설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몸집을 불리려는 배경은 종합건설사로써 위상을 갖추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꾸준히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최근 울트라건설 인수를 위한 본계약까지 체결했으며 현재 인수가격을 놓고 조정 중이다. 울트라건설은 1965년 설립돼 토목, 관급 주택건설 도급사업이 주력인 중견건설업체로 2014년 연간 매출의 약 82%를 관급공사로 달성했다.

공격적 M&A
사세 급성장

업계에선 호반건설이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합병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울트라건설 인수에 적극적인 것은 사업 확장을 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또 최근 강점을 보이고 있는 주택사업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호반건설이 아파트 건설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때문에 토목 등 사업다각화를 이루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며 “최근 울트라건설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향후 굵직한 건설업체 인수로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TOP10 진입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반건설은 이 외에도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중견 건설사 인수전에 뛰어들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지난해 초부터 쌍용건설, 금호산업, 동부건설 등 건설사는 물론 쉐라톤 인천호텔(대우건설)과 파르나스호텔(GS건설) 등의 인수 후보로도 끊임없이 거론됐다. 특히 금호산업 매각 전에는 단독으로 나서 6000억원이 넘는 응찰가를 써내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SM그룹은 올해만 3개의 건설사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항만 및 하천 준설 토목공사 분야서 기술력을 보유한 비상장사 태길종합건설을 인수했다. 올 들어 성우종합건설과 동아건설산업에 이어 세 번째 건설사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성우종합건설은 올해 초부터 추진한 공개매각이 무산되면서 회사 청산 위기까지 몰렸지만 SM그룹이 인수자로 나서면서 기사회생하게 됐다. 법정관리 건설사 5~6개를 인수해 하나로 합쳐 대형 건설사로 키우겠다는 우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법정관리 건설사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SM그룹이 대형 종합건설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에 한발 다가섰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미 SM그룹은 M&A업계에서는 큰손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주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계열사를 17개(건설사 및 다른 업종 포함)까지 늘렸다.

세운건설의 M&A 행보는 가히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였다. 세운건설은 2012년 지역 대표 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인수하면서 지역사회를 놀라게 했다.


지방 무명서…
전국구 발돋음

세운건설은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378억원으로 전국 440위였다. 금광기업은 시공능력평가액이 세운건설의 11배가 넘는 4310억원(55위)이었다. 법정관리 중이긴 했지만 당시 시공능력평가액 전남 1위 대표건설사였던 금광기업을 세운건설이 집어삼켰다.

금광기업은 세운건설로 인수된 직후 법정관리서 벗어나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최근 금광기업의 옛 주인인 송원그룹의 소송도 뿌리치고 소유권을 확고히 했다.

인수합병은 시공능력평가액 59위인 남광토건으로 이어졌다. 토목공사에 주력했던 남광토건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2014년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세운건설은 지난해 금광기업·오일랜드 등과 컨소시엄을 꾸려 유상증자와 출자전환을 거쳐 남광토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세운건설의 M&A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공능력평가액 44위인 극동건설로 계속됐다. 극동건설은 웅진그룹 산하에 있던 중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설사.세운건설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극동건설과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인수합병을 추진해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개시 결정도 받아냈다.

법원이 회생계획안을 인가하면서 세운건설은 극동건설까지 품에 안았다. 세운건설이 금광기업·남광토건·극동건설까지 모두 인수하면 시공능력평가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30위권의 이내의 대형건설사로 올라섰다.


이들 3인방의 광폭행보에 업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자칫 잘못했다가는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서 무리한 인수합병은 자칫 건실했던 모기업을 부실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2006년 대우건설을 사들였다가 그룹을 통째로 위기에 빠뜨렸다. 이뿐만 아니라 굴지의 조선사들을 거침없이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던 STX그룹의 침몰 역시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사례다. 이들 3인방이 이런 선례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오버페이스 우려도

호반건설의 곳간이 넘친다고 하지만 호황기를 지난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사업 다각화를 위해 무리하게 인수전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주택시장의 비중이 높은 호반에게 이런 M&A가 부담될 수 있다는 시각이 다분하다.

SM그룹의 무분별한 M&A에 대해서도 걱정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그룹의 기존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는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는 점은 위험요소로 꼽힌다. 앞서 2011년 SM그룹은 유압기 부품 계열회사인 태주를 인수했지만, 그룹 관리 아래 법정관리에 돌입하기도 했다.

법정관리가 진행돼 어느 정도 부실이 정리된 매물들만 인수했던 만큼 실제 기업회생 능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SM그룹은 계열사 간의 연결고리도 상당히 약한 구조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세운건설의 행보 역시 거침없고 성공적인 듯 보이지만, 일부의 우려섞인 눈빛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먼저 세운건설이 피인수기업의 경영 안정화보다는 추가 M&A에만 몰두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실제로 금광기업은 인수 첫해인 2012년에 전년보다 매출이 22.52% 줄었다. 그 후 지난해까지 역성장을 기록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실적은 악화되고 있는데 M&A에 투입돼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 금광기업은 남광토건에 100억원, 극동건설에 107억원을 투자했다.

인수 초기에 잡음이 발생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세운건설은 남광토건을 인수한 뒤 광주지점 설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영업 등 일부 부서만 제외하고 본사 인력들을 광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남광토건 노조는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광폭 행보에
불안한 시선

극동건설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극동건설 노조는 세운건설이 인수하면 남광토건처럼 될 것을 우려, M&A 반대를 표명했다. 그리고 올해 초 서울시 서초구 금광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다. 무서운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불안한 시선을 떨쳐 내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내 건설경기 전망 “더 안 좋아진다” 

국내 건설경기를 이끌던 주택산업의 위축으로 2018년에는 국내 건설업계가 수주불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은 19일 배포한 ‘국내 건설경기 하락 가능성 진단’보고서에서 “2016년 국내 건설수주는 123조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0% 이상 크게 하락할 전망”이라며 “2017년 이후에도 향후 2∼3년 간 감소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건산연은 작년 건설수주 호조를 이끌었던 민간주택 부문이 크게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2018년 수주불황 경고
20%↓ 주택산업 위축?

올해 부문별 국내 수주 전망은 공공 41조 8000억원, 민간 81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이전 각각 전년대비 6.5%와 28.3% 줄어든 것으로 민간 부문 중 주택 수주예상치가 전년대비 29% 줄어든 48조 1000억원으로 나온 영향이 컸다.

문제는 주택수주 전망이 갈수록 어둡다는 점이다. 건산연은 신규 주택 공급은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고 작년 신규주택 분양이 역대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공급과잉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방 주택입주물량은 2014년 이후 4년 연속 역대 최고수준인 점도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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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