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선족 타운’ 한국인 역차별 실태

중국인 밀집지역에 한국인 출입금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서울 속에 작은 중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영등포, 금천, 구로구에 자리하고 있는 일명 ‘조선족 특구’가 넓어져 가는 추세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중국의 친·인척들을 불러들이는 조선족의 특성에 지역 거주민들은 희비가 엇갈린다. 사람이 늘어 상권은 살아나지만 그외의 문제들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조선족 특구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남구로역으로 향했다. 역에서 내려 밖을 나서니 붉은 간판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중국어와 한글이 섞여있는 간판이 대부분이었다. 알아듣지 못할 중국말와 미묘한 억양의 한국말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스쳐 지나가면 외국어로 착각하고 지나갈 듯한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붉은 간판 가득
중국에 간 기분

조선족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 연변거리를 방문하기 위해 한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연변거리는 가리봉시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자 그는 아래쪽에 보이는 가리봉시장을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랑 같다”고 답했다.

굳이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의 답변이라 남구로역 위쪽으로 나 있는 길가도 마찬가지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지역에 대해 잘 아는 걸 보니 인근 거주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 갈 길을 갔다. 오후 2시가 좀 넘은 시간임에도 식당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보였다.

가리봉시장을 들어서면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혼동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간판은 중국어로 되어있고 좌판에는 월병 등 중국음식을 판다. 심지어 중국가게에는 개구리 뒷다리나 곤계란(부화 직전의 달걀을 삶은 음식) 등 국내에서 찾기 힘든 기호식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식당에선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향신료 냄새가 길가로 퍼져 나오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익숙한 듯 편안해 보였다. 한국사회정착학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리봉동은 갓 한국으로 온 조선족들이 선호하는 첫 정착지라고 한다. 초기 정착에 필요한 인력 시장이 형성돼 있고 교통 접근성이 좋으며 상대적으로 물가와 주거비 등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이 중국처럼 변한 것은 그만큼 해당 구역에 조선족들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소수였던 조선족들이 다수가 되어 그들만의 타운을 형성해 주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지역 거주 한국인보다 조선족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1일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69만명으로 국내 거주 전체 외국인 주민의 40%에 가까운 수치라고 한다. 해마다 조선족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불어나는 ‘그들만의 구역’ 매년 팽창세
전용 PC방까지 생겨…연변 현지 방불케

신대방 조선족 특구에 살고 있는 A씨는 조선족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여기(신대방)는 이미 다 먹혔고 신대방역이랑 구로디지털단지 사이도 다 이제 조선족이에요. 이젠 난곡사거리 넘어서도 조선족들이 있을 걸요? 그쪽은 아직 가게가 없을 뿐이지 애들(조선족) 많이 살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피해 간다고 이사 했는데 몇 년 새에 또 근처로 올라 왔다”며 매년 넓어지는 조선족 특구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또 최근엔 조선족들에게 역차별 받는다는 한국인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PC방을 갔더니 중국인 전용이라며 내보낸다” “식당에 들어가면 주문을 받지 않고 일부로 중국어를 사용한다”며 역차별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PC방에 대한 문제를 확인하고자 중국어로 쓰여 있는 PC방을 방문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들이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의 모습은 다른 PC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카운터에 ‘한국인도 와서 이용하나’라는 질문을 하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얻었다. 카운터를 담당하는 사람도 조선족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어쩌다가 오기는 하지만 우리는 외국인(중국인) PC방이라 프로그램이 달라서 사용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PC방에서 한국인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엔 “어차피 와도 사용을 못하니 되돌려보낸다”고 답했다.

무서운 거리
점차 슬럼화

어떤 프로그램을 한국인이 사용하지 못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PC에 접속을 해보니 중국 프로그램들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고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PC방을 가는 주 목적인 게임 실행을 할 때 중국 클라이언트로 설치돼 있어 한국 클라이언트를 받아 설치해야 한다는 점 외에는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키보드는 국내와 같은 자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외국인 PC방에서도 한국서 쓰는 키보드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한 매장에선 카운터에 질문을 하던 도중 가까이 있던 고객이 벌떡 일어나 쳐다보는 상황도 있었다. 더 정확한 파악을 위해 다른 특구도 방문하기로 했다.

신대방에 있는 외국인 PC방 매장 주인은 한국 손님들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굳이 손님들이 온다면 말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프린트 등 문서작업을 하려고 오면 거부하는 편”이라며 '한컴'과 같은 문서 프로그램이 깔려있지 않아 프린트가 용이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잘 안 될게 뻔한데 손님을 받아서 굳이 욕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찾아가기 불편한 식당들 빼곡
삥땅·무전취식 등 민심 불안

이번엔 식당의 손님 거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5일, 다시 조선족 특구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있어 사람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날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가리봉시장, 대림역 8, 12번 출구 앞 장터, 신대방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식당에 들어가 봤다.

한 식당에서는 정확한 판별이 불가능했다. 종업원이 한국어를 모르는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정도 알아듣는 눈치긴 했으나 종업원은 손사래를 치며 모른다는 제스쳐를 취하기만 했다. 근처의 다른 식당도 비슷했다. 어떤 종업원은 이 질문에 “나는 아무 것도 몰라, 사장이 아니라서 모른다”며 무작정 대답을 회피했다.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 대림에선 다른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고 우리(조선족)랑 안 맞아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먹겠다고 왔는데 왜 막겠느냐”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메뉴판을 가리키며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메뉴판에 한국어를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밉보이면 끝”
지역상권 점령

지역 주민들이 느끼기엔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인 거주자를 찾아보았다. 30~40분쯤 돌아다니다 세탁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탁소 주인은 “이 지역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80% 정도가 조선족”이라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장사는 다 조선족이 한다고 보면 된다. 음식은 물론 옷가게 등 장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선족들이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냐는 질문에 그는 “여기는 조선족이 많아서 밉보이면 큰일 난다. 근처에 있던 가게는 조선족들한테 밉보인 뒤로 손님이 없어져 문을 닫았다”고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토로했다.
 

택시정거장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택시기사에게 조선족 손님들은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손사래를 치며 “걔들(조선족) 갑질이 진짜 심하다. 일단 타고 행선지를 말하는데 모른다면 모른다고 화를 내고 막히면 막힌다고 막 화를 낸다. 한국사람 갑질은 양반”이라고 말했다. 기존 한국인 거주자들이 조선족이 늘어나며 느끼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큰 듯했다.

대림동에 이어 신대방동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그 안에서 생각보다 많은 조선족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는 핸드폰으로 중국어 텍스트를 보고 있었고 초등학생으로 짐작되는 아이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리봉서 대림, 그리고 신대방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조선족들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상기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에 녹아있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무시당해 되겠습니까”

신대방역서 난곡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식당들은 ‘한국인 손님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는 소문과 딴판이었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는 곳은 몇 곳 없었지만 매장에는 어설프게라도 한국어로 메뉴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종업원에게 ‘한국인 손님이 자주 오냐’는 질문을 하니 가끔 술집에서 술 먹고 온다고 답했다. 종업원은 “(조선족)손님들이 더 많아 한국인 손님들이 오면 불편해서 쳐다보곤 한다”고 덧붙였다.


조선족 식당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을 찾기 위해 인근을 돌아다녔다. 난곡으로 가는 길에는 찾을 수 없어 대림역 방향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한국인들에게 ‘조선족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냐’는 질문을 했지만 “전혀 가볼 생각이 없다. 그런 데를 왜 가나”는 대답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편의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B씨를 만났다. 신대방에 거주하고 있다는 B씨는 조선족 식당에 가끔씩 친구들과 방문한다고 말했다.

‘가 보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느냐’는 질문에 B씨는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처음엔 중국에 가지 않아도 진짜 중국음식을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B씨도 거북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다니다 보니 어느 새 익숙해져 가게 주인과 안면을 트는 사이가 됐다. 지금은 방문하면 가게 주인이 B씨에게 좋아하는 메뉴를 먹을 거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럼 어떤 점이 제일 불편하냐’는 질문을 하자 B씨는 “다른 손님들이 오면 좀 묘해요. 주인처럼 얼굴을 아는 것도 아니고 한 가게서 서로 다른 말 하고 외지인이 된 기분을 느껴요”라는 대답을 했다.

늘어난 조선족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신대방역서 오랫동안 장사했다는 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 주인은 “일부라곤 하겠지만 민폐를 끼치는 조선족들이 싫다”며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들려줬다. “주방 보조로 쓰면 가끔 삥땅(돈을 빼돌리는 행위)도 치고 손님으로 오면 무전취식 하려고 한다. 무전취식의 경우 돈을 달라고 하니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다 너희 XX들 죽여버린다고 겁박도 줘서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였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장사는 잘 되는데 수입이 고생하는 것에 비해 없다는 것. 가게주인은 “가격이 좀 세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아야 한다. 전에 물가가 올라 1000원을 올렸더니 손님이 뚝 떨어졌었다”며 이 지역에서 장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민폐 끼치는
그들이 싫다”

신대방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대로변서 조선족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편이었다. 지나가다 들려오는 중국어와 낯선 억양이 조선족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예쁘게 치장한 아가씨들이나 등가방을 메고 소란스럽게 친구들과 떠드는 아이들이 중국말을 쓸 때면 당혹스럽기도 하다. 중국어로 이야기하다가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는 순간 한국어로 말을 바꾸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차단기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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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