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막말’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

‘보장된 삶’ 버리고 택한‘투쟁하는 삶’?


“이명박정부를 소탕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을 실망시키는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 다름아닌 민주당 천정배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입에 올린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도를 넘은 ‘막말’에 여당은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내며 천 의원과의 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세인들의 시선은 온통 사건의 주역인 천 의원에 쏠렸다.

군사독재정권의 판·검사 임명장 거부…변호사 선택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정치권 러브콜 쇄도

전남 신안의 자은도란 작은 섬에서 태어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참고서 하나 구하기 어렵던 외지, 전라도 목포에서 혼자 힘으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서울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데 이어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도 합격 했다. 대학시절에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뭔가를 바꾸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지만 남들 앞에 나서기엔 숫기가 부족했고 수줍음도 많은 청년이었다.

5·18 광주항쟁
인권에 관심

그런 천 의원을 바꿔놓은 사건이 바로 5·18 광주항쟁이었다. 당시 군복무 중이던 천정배가 받은 충격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다. 또 다시 무고한 시민을 향해 자행된 그 같은 악행이 벌어진다면 그 땐 스스로 시민군이 되어 총을 들겠다는 마음을 먹을 정도였다.

이 마음속 분노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천 의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반독재 민주화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천 의원은 판·검사라는 보장된 미래가 아닌 변호사를 선택했다. 군사쿠데타와 양민학살을 통해 부당하게 권좌에 오른 군사독재정권의 임명장을 받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천 의원은 이른바 ‘잘 나가는’ 국제비즈니스 변호사였다. 국내 최대 로펌에서 4년 간 외환·무역·조세 등의 분야를 두루 거치며 국제변호사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 아래 감옥으로 끌려가는 학생, 노동자, 재야운동가들을 보며 그의 마음은 바뀌게 된다.

결국, 힘들게 쌓아온 국제변호사로서의 보장된 미래를 과감히 떨쳐버린 그는 1985년 10월,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고 본격적인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천 의원은 1988년 5월28일 창립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창립멤버로 상임간사, 국제인권위원장 등의 요직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천 의원의 이름 앞엔 인권변호사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정치권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천 의원의 진가를 일찍이 알아봤다. 천 의원에게는 러브콜이 쏟아졌다. 실제로 1988년에는 출마와 동시에 당선이 보장되는 고향 신안의 지역구까지 제안 받는 등 천 의원을 향한 정치권의 구애는 뜨거웠다. 하지만 천 의원은 이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6월항쟁 이후 미진한 한국사회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천 의원이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3년, 김근태 의장이 이끌던 재야단체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에 법조계 일원으로 참가하면서다.

본격적인 변화의 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 1995년이었다. 당시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던 시기, 그의 측근으로부터 정식 정치권 영입 제안을 받게 된 것. 그리고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천 의원은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사회에 갖가지 병폐를 심어놓은 보수세력의 집권을 막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일념 하에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천 의원은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란 중책을 맡아 대선공약 개발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그야말로 입과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녔다. 그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며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천 의원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발굴,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천 의원은 2001년 7월 현역의원 최초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선언을 했다. 언론은 시기상조론과 더불어 찻잔 속의 태풍으로 폄하했다. 당시 민주당 주류인 이인제 대세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상황이었던 게 그 이유였다. 때문에 노무현이 이인제를 누르고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인제 대세론의 기저에는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호남과 충청표를 묶으면 국회의원은 할 수 있으리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있었다. 또한 대세를 벗어난 행동으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두려움도 상당부분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천 의원의 결단에 지인들의 만류가 이어졌다. 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안산시는 호남과 충청 출신 유권자를 합하면 60%를 넘었고, 천 의원의 정치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대선공약 개발

하지만 천 의원은 단 한 장의 필승카드가 노무현이라고 단언했다. 노무현 후보가 한국 사회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명분론과, 호남과 영남의 일부 그리고 젊은 개혁층의 표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론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천 의원의 예측은 적중했다. 광주 경선의 승리를 발판으로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으며 노무현이 민주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 그러나, 노무현 앞에는 월드컵 바람을 타고 정몽준이란 새로운 태풍이 등장했다. 철옹성 같은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가 실패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노무현 후보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며 후보 단일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시선은 또 다시 천 의원에게로 쏠렸다.

모든 의원들은 천 의원이 후보 단일화를 반대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후보 단일화를 찬성했고 적극 나서서 추진했다. 그 때 계속 상승했던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하향국면에 접어들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추세라서 노 후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결국 천 의원의 선택은 주효했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이 민주개혁세력이 재집권하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그런 천 의원에게 2003년 11월11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나다.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위해 최초로 지구당위원장을 내던졌던 천 의원은 신당 창당 선언과 당의장 직선제 도입, 국민참여정치 실천 등 새로운 정치를 위한 수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했다. 2002년 12월, 대선 직후부터 시작된 정치개혁 논의가 가시적 성과를 맺기까지 그야말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천 의원은 민주당 안팎의 모든 개혁세력을 끌어안는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기존 정당의 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두터운 기득권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천 의원은 기존의 낡은 정치행태로는 새 정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비로소 신당창당의 불가피함을 깨닫게 된다.

그는 신당의 밑그림으로 제도개혁과 인물의 교체를 상정했다. 당헌, 당규에 국민참여를 통한 상향식 의사 결정, 대선 후보와 당의장의 직접 선거 등의 콘텐츠들을 채워 나갔다. 또한 원내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총회를 최종 의사결정기구로 만드는 등 원내 정책정당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치의 오랜 폐단이었던 돈정치, 보스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타파를 위해 탄생한 최초의 정당이었고, 천 의원 개인으로선 정치생명을 건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4·15 총선,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며 역사상 최초로 개혁세력이 의회권력을 장악했다. 민생입법과 개혁입법을 처리할 최적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천 의원 역시 선거에 출마해 지역구를 누비며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을 약속했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발굴, 참여정부 탄생시킨 장본인
모진 산고 끝에 열린우리당 창당 우여곡절 많아

이후 3선을 한 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도전했다. 경쟁자는 5선의 전략가이자 현재 대선주자로 뛰고 있는 이해찬 의원이었다. 막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까지 마련한 이 의원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당내 중진들은 물론 재야파까지도 상대편에 줄을 섰다. 천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 예상됐던 몇몇 측근까지 등을 돌렸다. 여기에 ‘청와대가 관리형 원내대표로 이 의원을 민다’는 소문까지 퍼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쇄신운동, 노무현 최초 지지, 열린우리당 창당 등 정치적 고비마다 한발 앞서 결단을 내리고 실천해 온 천 의원의 진정성은 마침내 초선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결국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첫 집권여당의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원내대표에 오른 천 의원의 첫 마디는 “정기국회 100일 동안 국회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초기엔 아예 국회 안에서 주거를 해결했지만, 그로 인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직원들의 애교 섞인 원성(?)에 밀려 국회 근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겼다. 매일 아침 7시면 원내대표단 회의를 열었고, 수십 차례의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그 결과, 물리력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 개혁입법 중, 과거사법과 언론개혁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또한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3대입법을 포함해 100여개의 민생법안을 처리했다.

막말 파문 난관
돌파할 해법 주목

이후 법무부장관 등을 지낸 천 의원은 국회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올해 초 국회에 다시 복귀했다. 이 가운데 최근 막말 파문이 불거져나오면서 세인들의 싸늘한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과연 천 의원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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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