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헌재 결정에도…‘말 많은’ 김영란법 해부

의원님들 입맛 따라 ‘넣고 빼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부정청탁’에 대한 이슈가 올라오면 대중은 분노 이전에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판단한다. 그만큼 부정청탁에 대한 인식은 일반화되어 있다. 이를 극복하고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나왔다. 탈도, 말도 많은 김영란법이 합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이다.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1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 2015년 3월에 국회본회의에 통과되었으며 1년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9월28일 시행된다.

9월28일 시행
관련산업 맨붕

부패방지 제재에 관한 관심은 지난 2011년 불거진 속칭 ‘벤츠 여검사’사건에서 시작된다. 내연관계의 여검사 A씨와 남변호사 B씨가 연루된 형사사건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A씨가 검사가 되기 전부터 이어졌다. A씨와 연인관계가 된 부장판사 출신 B씨는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거나 다이아 반지, 시계 등을 선물했다. 심지어 지난 2008년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해주고 2010년엔 신용카드도 줬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에게 사건 하나를 부탁받았다.

B씨가 동업중인 건설업자와 분쟁이 생겨 고소하게 된 일로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B씨는 A씨에게 “담당검사에게 부탁해서 동업자가 구속되거나 고소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한다. 이에 A씨는 담당검사에게 직접 사건을 빨리 처리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사실은 B씨의 또 다른 내연녀가 검찰에 진정을 내면서 드러났다. 특임검사팀도 꾸려져 조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A씨의 행동이 단순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판단 A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A씨는 “청탁 받은 기억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의혹이 되고 있는 신용카드나 벤츠 승용차는 대가성이 없고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호의적 행동이라는 주장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A씨가 B씨에게 받은 금품들이 청탁의 대가로 보기 힘들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원은 A씨가 받은 금품은 내연관계의 B씨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15년 4년간의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와 같이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는 일이 생기자 부패 방지를 위해 더욱 강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김 전 위원장은 제정안을 발표한다. 형법 등에 뇌물죄가 있지만,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어야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가성이 없어도 금품과 향응 등을 받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제출한 원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목에 상관없이 공직자가 금품이나 향응을 받거나 요구, 약속을 하면 처벌받는다(제공자도 마찬가지). 금액이 100만원이 넘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 금액 5배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100만원 이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제 3자를 통해 부정 청탁을 하면 이해당사자와 제 3자 모두 처벌을 받는다. 이때 1000만∼3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위 공직자나 인사 담당자가 자신의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하거나, 본인·가족·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위반할 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차관급 이상 공직자, 지자체장, 공공기관장이 새로 임용되면 민간에서 했던 관련 업무에 2년간 참여할 수 없다.

이후 김 전 위원장은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자 돌연 사직서를 냈다. 발의한 법안 중 ‘고위 공직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리에 친인척을 두면 안 된다’는 조항에 위반이 된다는 이유였다.

수정 또 수정
제 모습 잃어

지난 2013년 5월 권익위와 법무부가 법안 내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나치게 가혹하고 법리에 맞지 않다’며 반대를 하던 법무부와의 합의여서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법안 내용이 눈에 띄게 변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금품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권익위는 말을 바꿨다. 수정안인 ‘직무 관련성이 있을 때만 처벌한다’는 조항은 유지하면서 직무 관련자의 범위를 ‘공직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러한 권익위의 입장은 원안에 가깝게 직무 관련 여하를 떠나 누구에게든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겠다고 변한다.

이에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에서 유래되는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금품품수는 대가 관계가 없더라도 형사처벌’을 받도록 했다. 직무관련성이 없는 돈을 받은 경우는 형사처벌에서 과태료를 물리는 것으로 후퇴한다. 이는 원안에 비해 원만해졌다는 원성을 샀다. 이후 김영란법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국회는 김영란법을 신경쓰지 않았다. 여야는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국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부터다. 참사의 원인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청탁 등 부정부패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서 촉발
당시 김영란 위원장이 처음 제의


일명 ‘관피아’를 바로잡을 대책으로 김영란법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이하 정무위)는 총 6차례에 걸쳐 법안심사 소위를 열었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5년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변화를 거치게 된다.

법안 적용 대상자를 공직자에서 언론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확대한 것이다. 사립 유치원과 학교 교직원들이 포함된 것도 논란이 됐다. 넓어진 적용 범위에 혼란은 계속됐다. 이어 지난 2015년 3월3일 여야가 법안 최종안에 합의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투표에 참석한 의원들은 총 247명으로 찬성 228명, 반대 4명, 기권 15명으로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다.

통과된 법안에는 원안에 있던 ‘이해충돌 방지법’이 제외돼 있었다. 이해충돌 방지법은 김영란법의 핵심 중 하나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나 인사 담당자가 자신의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하거나, 본인·가족·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로 인해 김영란법은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어 부정청탁 금지 대상에서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일부가 처벌대상에서 제외됐다. 조문 5조 2항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 3자의 민원 전달 행위’를 예외조항으로 세운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고충이나 민원을 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들의 고유 업무이기에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자칫 잘못하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브로커화 될 수 있는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 “적절히 거르겠지만 (부정청탁의)문을 열어놓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취지에 비춰보면 (선출직 공직자)본인에게 스스로 걸러주는 것을 맡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 4년간 수술대에 올랐던 김영란법은 몇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헌법상 연좌제 금지에 대한 위헌시비가 있다. 김영란법 22조 2항에 ‘수수 금지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한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아니한 공직자’를 벌한다는 조항이 있어 이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현행 형법에서 친족은 가족의 범죄를 숨겨주더라도 은닉죄에 해당하지 않는데 반해 김영란법에서만 은닉을 벌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일었다. 형법 151조 2항은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말도 나왔다. 언론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영역에 속하는 이들을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다. 과잉금지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침해의 최소성 등이 준수되어야 한다’고 지정하고 있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지적도 있다. 업무와 관련이 없는 연인들의 선물 등도 물품의 금액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품의 금액으로 뇌물 여부를 판단하다보니 고가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업계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에선 김영란법 시행 시 약 11조원의 경제 손실이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경연은 비용제한 한도액을 상향 조정 할 시 업계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음식 접대비 상한을 3만원으로 하면 음식업계는 연 8조5000억원 정도의 매출이 줄어들지만 5만원으로 올리면 감소액이 4조7000억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에 김영란법의 상한선을 인상해야한다는 말도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농축산물을 빼줄 것을 권익위에 건의했다. 건의안에는 식사 5만원, 선물 10만원의 인상안과 김영란법의 시행시기를 5년 이후로 하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뇌물 상한선 인상’이냐는 비난도 나타났다. 앞선 일들로 인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대한민국 부패 규모가 11조란 소리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부패 방지’사회적인 공감대 형성
국회 거치면서 이상하게 다듬어져


논란이 많은 탓에 김영란법은 시행이 되기도 전인 지난 28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사를 받게 됐다. 결과는 ‘합헌’판정이었다. 판정이 내려지기 전 가장 큰 쟁점은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은 언론과 사학의 자유를 침해하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에 대한 신고를 의무화한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이었다.

이는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의 부패는 피해가 광범위하지만 원상회복이 어렵다”며 관계자들은 공직자에 버금가는 청렴성, 업무 불가매수성이 요청된다며 합헌 판정을 받았다.

부정청탁과 사회상규 등 조항의 모호성에 대해선 “부정청탁이란 용어는 여러 법령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대법원도 많은 판례를 축적하고 있다. 사회상규도 형법 제20조에서 사용되고 있는 등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원일치로 합헌 판정 됐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신고 의무에 관한 조항도 합헌 판결이 났다. 이 조항에 대해 재판관들은 “배우자를 통해 부적절한 청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할 뿐”이라며 “연좌제에 해당한다거나 양심의 자유를 직접 제재한다고 볼 수 없다. 배우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만큼 기본권 침해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에 관한 위임조항 역시 합헌 판정을 받았다. 재판관들은 “사교·의례 목적의 경조사비·선물·음식물 등의 가액을 일률적으로 법률에 규정하기 곤란하다. 탄력성이 있는 정부 시행령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김영란법은 합헌 판정을 받아 오는 9월28일 시행된다. 여야는 대부분 헌재 판결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시행 시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시행착오가 많이 생길 것”이라며 국내 경제에 미칠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헌재 판단에도
계속되는 논란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은 시행령에 규정된 음식접대 상한액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지하고자 하는 것은 현금과 부정청탁이 오가는 것과 차떼기(비자금을 현금으로 제공)”라며 “밥을 3만원짜리를 먹느냐, 선물을 5만원짜리를 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조문 5조2항에 국회의원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anjapil@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영란법’ 김영란 누구?


1956년생으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강지원 변호사가 남편이다. 노무현정권 때 대법관을 지내고 이명박정권 들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남편인 강 변호사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하면서 권익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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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