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언제 접선하렵니까?”
“일단 저 친구의 행동 양상을 살피고 저녁 쯤 만나보려 합니다.”
“지금은 제가 특별히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동일의 답에 강철이 동일을 주시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동일이 가방에서 권총을 꺼냈다.
“일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총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처 취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강철이 대답 대신 권총을 받아들고 잠시 살피다가는 경수에게 건넸다.
경수가 마치 장난감 다루듯 권총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가볍게 혀를 찼다.
“팀장님, 이 총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주겠습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정조준해서 사격한다고 해도 10미터 이상 거리를 두게 되면 명중시키기 힘듭니다. 그런 연유로 이 총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아주 근접 거리에서 사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총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편이 이롭습니다.”
경수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를 살피던 강철이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일정으로 자리를 물렸다.
“다시 말하지만 일이 마무리되는 시점까지 함께 고생합시다.”
“고생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오히려 어깨가 무거워지는 걸요.”
“자, 그러면 이제는 저 친구의 국내 일정을 짜봅시다.”
동일이 모니터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내 당일부터 15일까지 적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략적인 방안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동일이 잠시 자신과 경수를 비교해 보았다.
아무래도 나이 40에 가까운 자신보다 한참 젊은 경수가 문석원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적격일거란 생각이 순간적으로 일어났다.
“그보다도 먼저, 김 군이 저 문석원이란 친구의 입장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으로 움직이려할지 한번 의견을 제시해보겠소.”
“지금은 낯설어서 잠시 침묵을 지키지만 조만간에 몸이 근질거려 조용히 룸에 틀어박혀 있지는 못할 듯합니다. 특히 20대 초반에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사람이라면 오늘 밤이라도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온의 양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팀장님, 오늘 저녁 무렵 저 친구를 만난다 하셨는데 일단 저 친구의 의향을 물어보시고 정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어차피 이제는 독안에 갇힌 쥐가 아니겠습니까?”
경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석원이 룸을 배회하더니 정장 차림 그대로 침대에 몸을 뉘였다.
저녁이 되어 문석원이 룸에서 갈비탕을 시켜 막 식사하려는데 동일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룸을 나서 곧바로 석원이 투숙한 룸으로 다가갔다.
잠시 심호흡하고 초인종을 짧게 두 번 눌렀다.
잠시 후 인기척이 들리며 문석원이 문을 열었다.
“고타로 상, 나카소네입니다.”
사전에 나카소네의 방문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현실로 나타나자 석원이 잠시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있는 갈비탕에서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식사 중이었습니까?”
석원이 방금 전 입에 넣었던 음식물 때문인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초면에 결례를 범했군요. 그러면 내 잠시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올라올 터이니 천천히 식사하도록 하세요.”
동일이 석원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슬그머니 자리를 물리고 다시 자신의 룸으로 돌아갔다.
룸에 들어서자마자 모니터를 주시했다.
석원이 아직도 멍한 상태에서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후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식사하기 시작했다.
동일과 경수…석원의 일정짜기 돌입
나카소네 석원에 “이제부턴 고타로”
“우리도 식사할까요.”
동일의 제안에 경수가 방금 전 사가지고 온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펼쳤다.
“저 친구 식사 끝나면 곧바로 가지 않으시렵니까?”
“천천히 가도록 하지요.”
동일의 담담한 말투에 경수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는 이내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부터 너무 심한 게 아닌지요?”
“저 친구에게는 오히려 그래야 하는 거 아니요?”
경수가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가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팀장님!”
“왜요?”
“제가 거북스러워 그런데 이만 하대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동일이 물끄러미 경수를 주시했다.
“그리 거북하면 이 시간부터 하대하지 뭐.”
동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받고, 이내 두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팀장님, 이 특보께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지만 어떻게 저런 친구가 각하를 대한민국 땅에서 암살하겠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되지 않습니다.”
“소영웅 심리라고 할까. 아니 이건 그저 한 젊은이의 객기로 표현함이 옳다고 봐야지. 그런데 그게 우리 라인에 걸려들었고.”
“우리가 아니라 팀장님이지요.”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짤막하게 답하고 본격적으로 식사한 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렸다.
모니터 안에서는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석원이 문을 바라보며 이제나 저제나 고정간첩이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너무 애태우지 마시고 이제 그만 가보시지요.”
경수의 제안에 동일이 짤막하게 “그러마”라고 답하고 천천히 움직였다.
문을 열기에 앞서 잠시 모니터를 살피다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어 좌우를 살피고 석원의 룸으로 다가갔다. 방금 전처럼 짧게 두 번 초인종을 눌렀다.
방금 전과는 달리 석원이 신속하게 방문을 열고 동일 아니 나카소네를 맞이했다.
“아베 고타로입니다.”
석원이 고개 숙여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하고는 곧바로 소파로 안내했다.
“북조선을 대표해서 석원 군의 영웅적 행위에 찬사를 보내는 바요.”
자리에 앉기 앞서 동일이 석원의 손을 굳게 잡았다. 동일의 과장된 행동에 석원이 다시 고개 숙였다.
“그저 지도원 동무…”
“나카소네라 부르시오.”
석원의 말을 급하게 잘랐다.
“석원 군이 거사를 성공시키기까지 자주 볼 터인즉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반드시 그리 부르도록 하오. 특히 외부 사람들과 접촉할 시에는 이를 명심하도록 하오. 나 역시 석원 군을 고타로라 부르도록 할 것이오.”
동일이 부드럽게 그러나 강하게 주문했다.
석원 역시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마”라고 응답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