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누리 구원투수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

두달짜리 수장 ‘급한 불부터 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새누리당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4·13총선 참패 후 당을 이끌 혁신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잡음 끝에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혁신위원장에 임명됐다. 김 위원장이 임명되면서 새누리당 지도부 공백 사태는 일단락 됐다. 김 위원장은 전국위원회 추인으로 공식 임명된 후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될 때까지 새누리당을 이끌게 된다.

새누리당이 지난달 26일 혁신비대위원장으로 김희옥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내정했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당내 여러분들이 좋은 분이라고 추천한 김희옥 위원장을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틀 전 처음 만나 혁신위원장을 맡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며 “이에 김 위원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간 몇 차례 통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민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수락 결심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계속되는 갈등
포청천 노릇?

민 원내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청렴하고 원칙을 지키는 소신으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새누리당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판단해 줄 수 있는 경륜의 소유자”라며 “우리당의 진지하고 활발한 혁신 논의를 이끌 적임자로 판단돼 발탁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관을 했던 경험이 있어 국회 입법과정에도 매우 밝은 인사”라고 평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당으로 혁신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혁신하고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7월 말∼8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당 대표를 겸임하며 당 혁신작업을 추진하고 전당대회를 준비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계파 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비대위원 구성과 관련해서 “정식으로 위원장이 되면 전면적으로 새로 검토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박계 김선동 의원이 정 원내대표에게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국무총리·감사원장 후보로도 거론됐었다.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의 전 지역구인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이정현 의원과는 대학 동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계파 간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비박계에서는 당이 여러 차례 인선 논란으로 분란이 극대화된 만큼 이번에는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비박계 한 의원은 “당이 어려운 상황이니 혁신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지도부 공백 일단락…전당대회까지 컨트롤
‘점입가경’ 총선 참패·당 내분 해결책 있나

이런 계파 갈등을 불식하기 위해 김 위원장은 계파 청산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은 “부정적인 계파 분파 활동으로 통합을 해치는 구성원은 당의 공식 윤리기구를 통해 제명 등 강한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20대 국회 첫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불과 두 달여 남은 전당대회 전까지 총선 참패와 당 내분을 해결할 대책 마련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그가 순항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8월 초로 예정돼 있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초 계획한 새누리당의 혁신을 제대로 이룰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시급히 바꿔야 할 점이나 향후 과제, 계파갈등 청산해법 등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사실상 친박계의 의도대로 외부 인사가 혁신의 키를 잡았고, 정치 경험도 사실상 전무해 과연 김 위원장이 혁신의 칼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느냐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결국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관리형 위원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첫 혁신 시험대는 비대위원 인선이 될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인선과 관련 “전면적으로 새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비박계 중심의 비대위 인선이 친박계의 반발로 무산됐었던 만큼 어느 계파에도 치우지지 않은 기계적 인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혁신 과제의 강력한 추진도 난제다.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법조계에 몸담았고, 법조계를 떠난 후에는 동국대 총장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내 사실상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혁신비대위가 총선 참패 원인을 분석해 계파 청산을 비롯한 혁신 과제를 내놓고 이를 강력히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당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김 위원장이 이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붙는다.

계파갈등 제재?
탈당의원 복당?

특히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혁신안을 놓고 총선 참패 책임을 묻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혁신 비대위가 총선 참패 원인 분석에 나설 지조차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정 원내대표는 “혁신 전대로 가겠다. 나오고 싶은 사람은 다 나와서 백가쟁명식 안을 갖고 진검승부를 해라. 그런 안이 하나 있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상 전대를 통해 총선 참패의 책임을 가리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경상북도 청도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와 동국대 법대를 졸업,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검사가 됐다.

2006년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고, 2011년 동국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총장 퇴임 후 지난 2월 까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김 위원장은 헌법재판관 등으로 재임하면서 국법 질서 확립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 헌법 수호 등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청조근정훈장은 공직자로서 직무에 최선을 다해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인 근정훈장 5종 가운데 최고 등급이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4년 아들의 경기대 교수 특혜 임용 논란과 KCC 수의계약 등 각종 의혹에 휘말리며 동국대 총장 연임을 포기한 바 있다.

지난 2014년 김 위원장의 아들이 경기대 교수 특혜 임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법학과 신임 교수에 지원한 김 위원장 아들은 최종 심사 결과 1순위 자에 비해 9.27점 뒤진 차점자였지만 당시 박승철 경기대 이사장의 영향력 행사로 1순위 자를 제치고 임용됐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2013년 경기대의 교수초빙 접수 직후 서울 모 처에서 경기대 법학과의 한 교수와 저녁식사를 했다는 '청탁'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저녁식사를 했다는) 법학과 교수과 박 이사장을 알지도 못한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획기적 쇄신안 마련 자신


'청탁' 의혹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법원은 채용 과정의 하자를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14년 12월 관련 교수 임용 무효 소송에서 “당초 전형과정에 없던 경기대 재단 이사장의 개별 면접과정이 추가돼 2순위와 1순위가 뒤바뀌어 김모 씨가 채용된 점이 인정된다”며 채용 무효를 판결했다.

KCC 수의계약 논란은 김 위원장이 동국대 총장 연임 도전 중 불거진 사안이다.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에 따라 2억 원 이상의 공사계약을 체결할 경우 천재지변 등의 이유가 없는 한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지키지 않고 수백억 원 규모의 대형공사를 수의계약 형태로 KCC에 몰아줬다는 의혹이다.

특히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김 위원장이 법대 선후배인 점, 정 명예회장이 김 위원장의 총장 연임에 우호적인 인사였던 점이 주목됐다. 이 논란은 법적인 결론 없이 끝났다. 김 위원장은 2014년 11월 “모교 발전을 위해 한 번 더 봉사하고자 했으나 종립대학 총장직은 1회로 한정함이 좋고 연임은 좋지 않다는 종단 내외 뜻을 받들어 재임 뜻을 철회하고 18대 총장 후보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라며 총장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할 일이 태산
끝까지 순항?

김 위원장은 2006년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땐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주영·박세환 의원은 “후보자가 1972년 징병검사를 기피한 것으로 돼 있고 1975년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 받았는데 그 구체적 사유가 나와 있지 않다”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징병 검사를 기피한 사실이 없다”라며 “최근 경위를 확인해 보니 행정 착오로 잘못 기재됐던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비대위원 10명은? 내·외부 인사 5:5

새누리당은 2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내부 위원에 비박(비박근혜)계 김영우·친박(친박근혜)계 이학재 의원을 내정했다.

또 외부 위원에는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병곤 서강대 겸임교수,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민세진 동국대 교수, 임윤선 변호사 등 5명을 내정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김희옥 혁신비대위원장에 이어 비대위원 10명을 모두 내정했다. 비대위원 가운데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 비율은 5:5로, 내부 인사 중에는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 홍문표 사무총장 대행이 당연직 비대위원으로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비대위원장과 위원 인선안을 추인한다.

정진석·김광림·홍문표·김영우·이학재
오정근·유병곤·정승·민세진·임윤선

모두 11명으로 구성되는 혁신비대위는 오는 7월 말에서 8월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총선 참패 후 내홍을 겪어온 당을 정상화하고 쇄신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된다.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비대위원 인선 배경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당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사, 위공무사의 정신으로 흔들림 없이 당 혁신에 충실할 수 있는 인사, 당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사를 인선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달 17일 정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하고,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와 혁신위를 동시에 출범시키려 했지만 친박(친박근혜)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비대위원에는 김영우 김세연 이진복 홍일표 한기호 의원과 이혜훈 정운천 당선인 등이 내정됐지만, 새로운 비대위 구성과정에서 이중 김영우 의원만 비대위원에 포함됐고 나머지는 모두 제외됐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