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누리당 고삐 잡은 정진석 신임 원내대표

‘사방이 적’위기탈출 총대 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총선 참패로 위기를 맞은 새누리당. 가장 어려운 시기에 당을 이끌어갈 새로운 원내대표로 충청권 출신 4선 정진석 의원이 선출됐다. 정 원내대표는 당 내홍을 수습하고 여소야대 국면에서 거야를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중책을 맡게 됐다. 하지만 그 앞길은 험난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진석(4선·충남 공주·부여·청양)·김광림(3선·경북 안동)조는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20대 새누리당 당선자 총회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에서 총 119표 가운데 69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굳혔다. 새누리당은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한 당선자 총회를 열고 ‘협치의 정진석’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택했다.

계파 갈등
뇌관 터질까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정 원내대표는 비박계를 대표한 나경원(4선·서울 동작을)·김재경(4선·경남 진주을) 조와 친박 핵심 인사인 유기준(4선·부산서·동구)·이명수(3선·충남 아산) 조를 넉넉한 표 차이로 꺾었다. 이날 총회에 불참한 김무성 전 대표 등을 제외하고 총 119표 중 정 원내대표가 69표, 나 의원이 43표, 유 의원이 7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1차 투표에서 승부가 갈렸다.

당초 정 원내대표와 나 의원이 결선투표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현장에서 실시된 정견 발표, 상호토론에서 정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첫 원외 당선인 원내대표라는 영예도 얻었다. 정 원내대표는 총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오늘 호소드리고자 했던 것은 당의 단합”이라며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으려면 당의 결속과 확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예상과 달리 압도적 표차로 당선
친박·충청지지 1차 투표서 승부

이어 “길다고도 볼 수 있고 짧다고도 볼 수 있는 (차기 대선까지) 남은 18개월 동안 새누리당 의원님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목표에 도달할 지 중간에 주저앉을 지 결정 될 것”이라며 “몇몇 지도부의 힘으로 안 되고 정말 122명 새누리당 의원이 혼연일체가 돼 한 마음 한뜻으로 절대 결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는 친박계의 선거 참패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박계의 지원사격을 받은 원내지도부가 들어서면서 갈등의 불시가 내재돼 전당대회 등 차기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폭발할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계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정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계파 갈등이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 원내대표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다. 친이, 친박 모임에서 저를 발견한 분 계시느냐”며 “어느 계파에도 포함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원내대표는 그동안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경선 기간 내내 계파주의 탈피를 부르짖었다. 계파 간 선거 책임론을 제기하며 내부적으로 다투기보단 당 수습과 쇄신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 정 원내대표도 스스로를 ‘마무리 투수 겸 선발투수’라고 소개하며 “박근혜 정부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선발 투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 3당 체제 등 어려운 환경에서 원내 협상을 지휘해야 하는 만큼 청와대와의 의견 조율에서 대립이 표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 원내대표는 당청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수직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당청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험로


정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아무리 지시한다고 해도 원내 2당, 여소야대 상황에 어떻게 관철시키겠느냐”라며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당청 간 협치를 해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다 안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수평적 당청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당·정·청 고위 회동 정례화, 여·야·정 정책협의체 상시 가동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정 원내대표는 이날 경선 토론회에서 “집권여당은 청와대와 협의하고 야당과 타협해야 하는 협치의 중심”이라며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대통령과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내대표가 해결해야할 문제도 첩첩산중이다. 먼저 무소속 의원 복당 문제를 정 원내대표가 해결해야 한다. 핵심은 유승민·윤상현 의원 복당 허용 여부다. 친박계는 비박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유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고 있고, 비박계에서는 친박 핵심인 윤 의원의 복당에 부정적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 원내대표는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 원내대표는 입법과 정책 추진에 있어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중량급 인사가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되면서 여야협상에서 험로를 예고했다. 19대 국회와 비교해 국회의장뿐만 아니라 상임위원장 자리도 내줘야 하는 상황에서 상임위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국회가 늦장 출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6선 의원 아들
MB·JP와 인연

쟁점 법안 처리와 경제활성화 정책 추진을 위한 전략 수립도 정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큰 과제 가운데 하나다. 당장 노동 4법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등에 대한 여야 협상이 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아울러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한국형 양적완화 등 경제 이슈를 놓고 야당과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리막 길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면적인 당 쇄신 및 변화도 책임져야 한다. 총선 참패로 소수당이 되면서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여권에선 차기 대선주자도 보이지 않는다.

총선 패배의 배경엔 공천 실패 뿐 아니라 두 차례 보수정부 집권에도 저성장과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들을 풀어내지 못한 실망감도 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정 운영과 정책기조의 대대적 혁신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정 원내대표는 1960년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출생이다.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이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올라와 성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

현 정부 마무리…새 정권 창출 앞장
3당 체제 어려운 환경서 협상 지휘

정 원내대표는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의 명예총재특보로 1999년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친 정석모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충남 공주·연기에 자민련 공천으로 출마해 이상재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오시덕 열린우리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했고, 2005년 오 의원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선된 정 원내대표는 국민중심당에 입당해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를 지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해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 정보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어 2010년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 원내대표는 2010년 세종시 문제로 한나라당이 내분을 겪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회동을 주선하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정호준 민주통합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첩첩산중…
최우선 과제는?

정 원내대표는 ‘소통의 정치인’으로도 불린다. 함께 간다는 뜻의 ‘동반’과 서로 어울려 왕래하는 ‘통섭’이 정 원내대표의 생활신조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점에서 정 원내대표는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꼽히는 당내 계파 갈등을 아우르면서 당의 화합을 이뤄내는 데 적임자로 꼽힌다.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둬 거부감이 적은 데다 성격이 소탈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min1330@ilyosisa.co.kr>


[정진석은?]

▲충남 공주 출생(57) ▲성동고등학교·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 ▲16·17·18·20대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국민중심당 원내대표·최고위원 ▲국회 정보위원장 ▲2010년 대통령실 정무수석 ▲2013년 27대 국회 사무총장 ▲2014년 새누리당 충남지사 후보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지난 3일 김광림(3선·경북 안동)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20대 새누리당 당선자 총회 정책위원의장 경선에서 신임 의장으로 당선됐다. 김 정책위의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예산통’ 이자 재정전문가로 꼽히는 3선 당선인이다. 당내 최고 경제전문가로 꼽힌다.

행시 14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 재정경제부 차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발을 들일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경북 안동에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낙점으로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돼 일하기도 했다. 정신의 수도인 안동의 선비정신을 물려받아 안으로는 강직하지만 밖으로는 후덕한 인상으로 내강외유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예결위 간사를 맡아 각 지역에 예산배분 과정을 불협화음 없이 처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그때 덕을 본 의원들이 김 의원을 인간적인 정으로 찍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남권 의원이면도 계파색이 비교적 옅어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으로 여러 후보들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선출을 위한 당선자 총회를 열고 “협치의 정진석”을 신임 원내대표로 선택했다. <창>

 

[김광림은?]

▲경북 안동 출생(68) ▲영남대 경제학과·하버드대 대학원 ▲행정고시 14회 ▲대통령 기획조정비서관 ▲예산처 재정기획국장 ▲국회 예결위 수석전문위원 ▲특허청장 ▲재정경제부 차관 ▲세명대 총장 ▲새누리당 여의도 연구소장 ▲18·19대 의원·20대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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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