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파란의 4·13> ⑩<화제의 인물> 대망론 불붙은 김부겸

야당 불모지에 깃발 “노무현이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역사에 길이 남을 한판 승부였다. 예상을 뒤집고 야당이 16년 만에 의석 과반수를 차지했기 때문. 그 중심에 김부겸 당선인이 있다. 여권의 심장에 깃발을 내리 꽂았다. 내친 김에 대권주자로 치고 올라갈 기세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당선인은 지난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성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대구에서 제1야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식 정치실험
31년 만에 TK혁명

김 당선인은 “공존과 상생의 정치를 열어가겠다”며 “여야 협력을 통해 대구를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라는 대구시민의 명령에 순명하겠다. 저부터 손을 내밀고 자세를 낮추겠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이어 “지난 4년 동안 민심의 바다에서 한국 정치가 무엇을 못 보고, 무엇을 제대로 못했는지 처절하게 깨달았다”며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는 정치를 넘어 여야가 협력할 때는 협력하고 싸울 때라도 분명한 대안을 내놓고 싸우는 정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야권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김 당선인은 중선거구제였던 12대(1985년) 이후 대구에서 탄생한 첫 정통 야당 의원으로 헌정사에 남을 만한 기록을 세웠다. 대구에서는 14대(1992년)와 15대(1996년) 총선에서 국민당과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후보가 당선된 적은 있지만 이들은 ‘정통 야당’은 아니었다.


김 당선인은 경기 군포에서 3선을 지낸 중진의원이었다.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뽑혀 TK 출신으로는 40년 만에 첫 선출직 야권 지도부가 됐다. 그는 지역주의 타파, 경쟁의 정치를 기치로 내세우며 19대 총선에 대구행을 선택했다.

당시 김 당선인은 “군포에서 4선을 하는 건 월급쟁이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며 고향 대구로 홀연히 내려갔다. 그러나 대구 여당의 아성은 만만치 않았다. 2012년 총선에선 39.9%를 득표하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기호 1번의 벽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지역주의 타파” 여당 텃밭 대구에 도전
2전3기 끝에 입성…야당후보 처음 당선

내친김에 2년 뒤인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도전해 40.3%라는 높은 득표율을 얻었디만권영진 새누리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졌지만 이겼다”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평가가 이어졌고, 그의 정치적 위상은 점점 더 커졌다. 경기도 군포에서 세 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한 관록의 정치인이었지만 연이은 패배는 그를 압박했다.

그러나 ‘삼 세 판’이란 말을 떠올린 그는 이내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고 20대 총선을 준비했다. 오로지 주민만 바라보며 자신의 진심을 알리고 비전을 제시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주민들은 서서히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손꼽혀 온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상대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시종일관 우위를 점할 만큼 어느새 탄탄한 지지층이 형성됐다.

이번 승리는 4년 간 한눈팔지 않고 공을 들인 김 당선인의 진정성이 통했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이나 아파트단지 담벼락에 대고 혼자 독백하는 일명 ‘벽치기’ 유세로 '바닥민심'을 파고들었다.
 

기호 2번을 특별히 내세우지 않고 철저하게 ‘김부겸’이라는 인물론으로 승부하자는 전략이었다. 물론 ‘유승민 공천 파동’ 등 새누리당에 대한 대구 유권자의 반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김부겸이란 인물이 아니었다면 대구의 민심을 끌어오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결국 이번 총선에서 62.5%의 압도적인 지지로 지역주의 타파에 성공했다. '제2의 바보 노무현'이 탄생한 것이다.

부산에서 야당으로 도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의 정치적 야당성향을 일정부분 이끌어내면서, 이를 바탕으로 결국 대통령이란 정상에 올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 당선인은 이번 승리로 당당하게 대권후보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일찍이 김 당선인은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는 노 전 대통령에게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물려받았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지역주의 벽을 깼다는 점에서 전국 어디서도 통할 스펙을 갖게 된 것이다.

재야 강경파
정치 온건파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 김 당선인은 ‘영남 출신 야당 대선주자’라는 프리미엄을 확보했다. 같은 영남 출신이지만 호남에서 ‘반문(반문재인) 정서’에 시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와 달리 폐쇄적인 친노(친노무현) 이미지가 없다는 점도 강점이다. 투표장에선 결국 여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구시민들이 김 당선자를 선택한 것도 그의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민주 내에서는 일찌감치 ‘김부겸 대선 등판론’이 제기됐다. 지난해 전당대회와 문 전 대표의 재신임 국면에서도 ‘김부겸 역할론’이 급부상했지만, 그는 대구 선거에 집중하겠다며 고사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분당 국면에서도 당을 지켰던 김 당선인은 ‘대구 당선’으로 당내외 입지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다만 김 당선인의 여당 의원 경력은 대권가도에서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00년 경기 군포에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 때문에 김 당선인은 야당 내에서는 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노 전 대통령이 부산경남 지역과 호남의 결합을 이뤄낸 것처럼 대구경북지역과 호남의 결합을 가능하게 할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김 당선인은 1956년 12월1일 출생했다.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으로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6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며, 재학 중 학생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두 차례 실형을 살았다. 제적과 복교를 거듭하며 1987년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민주통일재야운동연합(민통련),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등 재야운동권에서 활동했다. 이 때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호헌조치’ 발표 후 이에 반발하는 6월항쟁을 주도했다. 1991년부터는 민주당에 입당하며 직업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적진에 칼 꽂다 ‘돌풍 어디까지…’
노무현과 같은 길? 그림자 아른아른

김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변인으로 있던 시절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2년 11월 ‘이선실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안기부가 대선을 앞두고 차례로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며, 오래전에 인지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해온 것을 선거 직전에 전격적으로 발표해 선거정국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김 당선인도 연루돼 세 번의 구속을 당했고 이듬해 2월 석방됐다.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 이후 1995년 새천년민주당과 민주당으로 분당됐다. 민주당에 남은 의원들은 민주화와 당 쇄신, 지역주의 극복, 3김 청산 등을 목표로 국민통합추진회의(이하 통추)를 결성했다.


통추에는 김원기, 제정구, 노무현, 김정길, 이철, 유인태, 원혜영 등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했다. 김 당선인도 이 중 한 명으로 막내격이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의왕시·과천시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 당선인은 김 전 대통령과 갈라섰다. 김 전 대통령이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 연합하자 김 당선인은 한나라당행을 택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으로 아버님 같은 분인데, 정치적으로는 끝까지 따를 수 없었던, 그래서 김대중 총재만 생각하면 늘 회한에 젖는다’고 썼다.

김 당선인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 지역구의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한나라당 의원이었지만, 재야 출신이다 보니 여러 현안에 대해 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 당선인은 한나라당 내에서 소장개혁파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대북송금특검법안에 반대하다 당내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민주당 시절의 정치적 스승이였던 노 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2003년 8월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 군포에서 17대, 18대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하며 3선의원이 됐다. 원내 수석부대표, 교육과학기술위원장 등을 지내며 야권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내친김에…
대권주자로!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이력과, TK라는 이유로 당내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김 당선인은 재야 시절 강경파로 활동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백봉신사상도 여러차례 수상했다, 그는 ‘정치는 통합과 상생을 목표로 해야 국민에게 도움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김부겸은?]

 

▲1958년 경북 상주 출생 ▲경북고 ▲서울대 정치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간사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 ▲진보정치연합 대변인 ▲민주당 부대변인 ▲16대 국회의원 ▲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18대 국회의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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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