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전쟁… 국민들 뿔났다 (2) 국민도 ‘부글’ 기업은 ‘여유’ 실태

‘버티면 산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도마에 올랐다. ‘먹거리 파문’관련 해당업체의 늑장 대응이 화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품업계는 그동안 이물질 사태가 벌어지면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번 멜라민 파문도 마찬가지다. 팔짱을 끼고 ‘버티기’로 나오다, 이제 ‘배째라’식이다.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일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 기업의 늑장 대처 실태를 되짚어봤다.

일단 버티기…그리고 호미 대신 가래로

1982년 10월 미국 시카고. 유명 진통해열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환자 7명이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제조사인 존슨&존슨의 시장점유율은 30%대에서 1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 회사는 머뭇거리지 않고 즉각 원인 규명에 나섰다. 언론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알리는 동시에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는 타이레놀을 모두 회수해 폐기처분했다. 그 비용만 무려 2억5천만달러(약 2천7백억원)에 달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 제품 제조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 정신병자가 타이레놀을 몰래 훔쳐 독극물을 투입한 후 진열대에 다시 갖다 놓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물질을 넣지 못하도록 용기를 새로 제조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등 존슨&존슨의 자구책은 계속됐다. 그 결과 존슨&존슨은 추락한 명성을 회복했고, 시장점유율도 순식간에 이전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 사건은 타이레놀 제품은 물론 존슨&존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일본. 농약 성분이 남아 있는 오염된 공업용 쌀이 식용으로 유통된 것으로 조사되자 이를 납품받은 회사들은 우왕좌왕했다. 일본 정부는 건강문제를 일으켰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맥주업체 1위인 아사히맥주는 재빠른 대응에 나섰다. 문제의 쌀로 만든 자사의 소주 제품 전량을 자진 회수한 것.
아사히맥주는 지난 6월 출고된 ‘카노카’ 등 4가지 상표 65만병을 회수했으며, 회수비용으로 15억엔(약 1백67억원)을 쏟아 부었다. 아사히맥주 측은 “자체 조사 결과도 살충제가 남아있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신뢰 회복 위해 자진리콜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95년 3월 구미.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불량제품 화형식’이 진행됐다. 당시 불량 휴대전화가 유통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이건희 전 회장은 “전량 회수하라. 그리고 공장 사람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태워 없애라”고 지시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제품 회수에 들어갔고, 5백억원대의 제품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 일화는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케 한 원동력이 됐다.
‘신뢰·윤리 경영’의 사례들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신뢰와 윤리는 기업 운명을 좌우할 만큼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들이 먹거리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요즘 신뢰·윤리 경영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본적인 대책과 해결보다 사건의 본질을 숨기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끊이지 않는 ‘분유 파동’이 대표적이다. 2006년 9월 국내 분유업체 제품에서 대장균의 일종인 ‘사카자키균’이 검출,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이 제품들을 전량 회수한 각 업체들은 다른 제품에서 사카자키균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이유식 제품에서 또다시 사카자키균이 검출된데 이어 9월 한 업체의 조제분유에서 역시 사카자키균이 검출되기도 했다.
앞서 2000년 8월 중국산 ‘납 꽃게 파문’때도 업체들의 늑장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전량 회수해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회수까지 3달이나 걸렸다. 논란이 증폭되는 사이 중국산 납꽃게가 수입업자들의 은폐로 대량 유통되는가 하면 중국산 꽃게의 회수 및 폐기처분 조치 직후에도 여전히 판매돼 충격을 더했다.
지난해 2월 ‘식용유지 파문’도 상황은 비슷했다. 식약청은 옥수수유와 참기름, 들기름 등 10여개 제품에서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이 허용 권고기준을 초과, 해당업체에 자진 수거를 요청했으나 수거율은 지지부진했다. 업체들이 강제로 수거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나중에 일부 제품은 회수되지 않은 채 시장에서 팔린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식약청도 자진 회수 권고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벤조피렌 발생을 자율적으로 줄이도록 촉구하는 선에서 사건을 넘겼다.
올 들어 먹거리 비상등에 불을 켠 ‘생쥐깡’과 ‘칼날 참치’파문도 기업들의 안이한 대처가 화를 키웠다. 지난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최근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트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유해물질 식품업체 안이한 대응 도마…사건 때마다 반복
‘나몰라라’수수방관에 소비자 속수무책 “불신만 키운다”
“국민들은 음식과 걱정 같이 먹는다”

더욱이 이 두 제품은 대부분 회수되지 않은 채 소비·유통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새우깡과 참치캔의 회수율은 각각 7.2%와 36.4%에 그쳤다. 특히 농심은 행정기관이 명령한 회수량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생쥐깡’회수량은 지난 4월 식약청이 시행한 ‘위해식품 회수지침’시행 이전의 평균 회수율인 10.8%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같이 국내에서 ‘위해’판정을 받은 식품 회수율은 극히 저조하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공개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해 식품 회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6월까지 수입산 과자류 제품 가운데 8백64.5t이 위해 식품으로 분류돼 회수 조치가 내려졌지만 회수 물량은 9.9%에 불과했다. 미 식품의약청(FDA)의 위해식품 회수율은 평균 36% 정도다.
올해의 경우 6월까지 위해 식품으로 적발된 수입 과자 81.3t이 유통됐지만 회수량은 1.2%(1t)에 그쳤다. 올해 적발된 과자류 가운데 캔디와 캐러멜 등에서 발암물질 논란이 있는 ‘시클라메이트’가 검출된 경우도 38.6t에 달했지만 회수량은 0.7t에 머물렀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먹는 음식에 장난치는 업체들은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어떻게든 사태 수습에만 급급하다”며 “제조회사가 진솔하게 경위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으면 리콜 등으로 적극 대응해야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계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것.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해태제과는 3천5백여명의 전 직원을 동원해 제품을 거둬들여, 9월말 현재 98% 정도 물량을 회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형마트 등을 제외한 영세 점포 등엔 아직도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업체들은 관련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유통 물량도 회수해 폐기하고 있지만, 그전에 판매된 제품들은 이미 소비자의 입속에 들어간 상태”라며 “업계의 ‘쉬쉬 관행’이 반복되자 소비자들은 해당업체가 생산하는 다른 제품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위해 식품 관련 법·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일 한나라당 이종혁 의원이 위해식품사범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고 시급히 회수를 하도록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식약청은 위해 우려 식품으로부터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권장규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규제력은 없다.
이 의원이 발의한 식품위생법 개정안에 따르면 식품회수 위반 및 허위보고에 대해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서 최대 1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며 벌금도 2억원으로 늘렸다. 이 의원은 “현재 식품안전사고를 일으킨 업체에 대해서 벌금이나 행정처분 등을 관대하게 처벌하는 것이 대부분이여서 식품안전사고의 재범률이 높다”며 “식품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관련 법상 사전규제와 사후 징벌 모두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약청도 저조한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신속한 회수시스템의 구축 등 이물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식약청은 “위해 우려 식품을 회수하지 않거나 은폐한 영업자에 대한 행정처분과 형사고발을 강화할 것”이라며 “위해식품의 원인규명과 신속한 회수를 위해 식품이력추적제도와 회수대상 식품을 정부가 직접 회수해 폐기처분하고 그 비용을 영업자에게 청구하는 행정대집행제도의 도입도 추진된다”고 설명했다.
‘먹거리 쇼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식품업계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불신 또한 되풀이되고 있다. 그동안 먹거리 사고가 터지면 그때뿐이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음식과 걱정을 같이 먹어야 할까.


‘불량품 쉬쉬’쪽박찬 회사들
“소비자 우롱은 폐업 지름길”
자사의 불량품을 쉬쉬하다 한순간에 쪽박 찬 회사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는 2000년 일부 차량의 결함을 알고도 소비자들의 리콜 요구와 클레임을 감춰오다 내부 고발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미쓰비시는 무려 76만여대 리콜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는 판매 부진으로 이어져 2000년 3천6백억엔 적자를 기록했고, 주가도 40%나 폭락했다.
2004년 6월엔 주력 승용차와 트럭·버스 등의 차량 결함 은폐 사실이 들통 나기도 했다. 그해에만 일본 내 판매가 40%나 줄어들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미쓰비시의 부도덕한 위기관리는 기업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켰고, 고객의 신뢰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일본의 햄·소시지 시장의 80% 가량을 차지했던 유키지루시식품회사는 2002년 문을 닫았다. 호주산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등을 돌리자 파산을 면치 못했다.
1990년대 초반 급부상한 미국의 엔론 역시 분식회계를 일삼은 대가로 2001년 12월 문을 닫았다. 이 회사는 이익 부풀리기를 통한 분식회계와 이를 숨기기 위한 정·관계로비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 결국 파산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해 잘못을 은폐하다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경우가 일어난다”며 “이런 안이한 조치는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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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