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두산가 장손 박정원 신임 두산그룹 회장

샴페인은 나중에…밀린 숙제 많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를 이어 박정원 ㈜두산 회장이 두산그룹 회장으로 등극한다. 박정원 신임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박두병 초대 회장의 장손이다. 오너 4세 경영이 시작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열린 두산 이사회에서 “그룹 회장직을 승계할 때가 됐다”며 차기 이사회 의장으로 박정원 ㈜두산 회장을 천거했다. 그동안 지주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이 그룹 회장직을 수행해 왔다. 이에 따라 박정원 회장은 오는 25일 ㈜두산 정기주총에 이은 이사회에서 의장 선임절차를 거친 뒤 그룹 회장에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박용곤 장남
아름다운 승계

박용만 회장은 이날 이사회에서 “오래전부터 그룹회장직 승계를 생각해 왔는데 이사 임기가 끝나는 올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다”고 밝혔다. 박용만 회장은 최근 들어 본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정원 회장이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지인들에게 자주 언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이사회 의장은 등기이사 중 선임하기 때문에 경영권 승계 전 등기이사 등재가 필수조건이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총에서 ㈜두산 등기이사로 재추대된 바 있다. 현재 7인의 이사회 구성원 중 박용만 회장을 제외하면 박정원 회장이 유일한 오너가 등기이사로 남아있다. 박정원 회장은 이미 오너가 중 ㈜두산 최대주주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9월30일 기준 보통주 133만7013주(6.29%), 우선주 1만5881주(0.29%)를 보유 중이다.

두산그룹은 박용만 회장에 이르기까지 형제가 번갈아 가면서 ‘회장직’을 맡는 독특한 구조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이 현재 그룹의 모태를 일군 이후 3세대부터 이례적인 형제경영을 시작했다. 박두병 초대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1981년부터 1996년까지 그룹 총수를 역임한 이후 차남인 고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은 동생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그룹 총수로 추대되자 이에 반발해 검찰에 비자금을 횡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하며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박용만 회장은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뒤를 이어 2012년 4월부터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박용만 회장의 동생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두산그룹과 별도로 사업을 이끌고 있어 두산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박용만 회장은 특히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용만 회장은 앞으로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서 두산인프라코어 턴어라운드에 힘을 보태는 한편 두산 인재양성 강화 등을 위해 설립된 DLI㈜(Doosan Leadership Institute)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데도 주력할 것이라고 두산 측은 전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4세들 중 가장 맏형으로 일찌감치 두산그룹 4세 경영의 1순위로 꼽혀왔다. 1962년생인 박정원 회장은 대일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 뉴욕지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6개월 뒤 도쿄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한다'라는 두산 고유의 경영철학에 따라 1992년 일본 기린맥주에 들어갔다. 2년 뒤 OB맥주 이사대우로 두산에 재입사했다. 1998년 두산관리본부 상무에서 2001년 두산상사BG 사장이 됐다. 2005년 두산건설 부회장을 맡았고, 2007년에는 지주회사 두산의 부회장을 겸하게 됐다. 2009년 두산가 4세 가운데 처음 회장으로 승진했으며, 3년 뒤인 2012년 지주회사 ㈜두산 회장에 올랐다.

사원 입사 31년 만에 총수로 등극
박용만 회장 큰조카에 경영권 넘겨

박 용만 회장은 특히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용만 회장은 앞으로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서 두산인프라코어 턴어라운드에 힘을 보태는 한편 두산 인재양성 강화 등을 위해 설립된 DLI㈜(Doosan Leadership Institute)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데도 주력할 것이라고 두산 측은 전했다.

박정원 회장은 30여년 동안 두산그룹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하면서 그룹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로 꼽혀왔다. 2007년 ㈜두산 부회장, 2012년 ㈜두산 지주부문 회장을 맡으면서 두산그룹의 주요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등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1999년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해 이듬해인 2000년 매출액 30% 이상 끌어올렸다. 수익 사업과 취약한 재무구조 상태였던 두산상사BG 정상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4년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상사BG가 경영상을 받기는 1987년 이후 18년 만이다.
 

두산그룹의 인재육성과 신성장동력 발굴에 큰 기여를 해왔다는 게 내부 평가다. 박정원 회장은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료전지사업은 2년 만에 수주 5870억원을 올리는 등 두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했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의 인재철학은 현재 구단주를 맡고 있는 두산베어스의 선수육성 시스템에서 잘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역량 있는 무명선수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베어스의 전통에는 인재발굴과 육성을 중요시하는 박정원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

밑바닥부터…
준비된 경영인

특히 결정적인 순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1999년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해 이듬해인 2000년 매출액 30% 이상 끌어올렸다. 수익 사업과 취약한 재무구조 상태였던 두산상사BG 정상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4년 ‘두산 경영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상사BG가 경영상을 받기는 1987년 이후 18년 만이다.

박정원 회장이 승계 이후 풀어야 할 현안도 산적하다. 올해로 예정된 두산인프라코어의 소형건설장비 자회사인 두산밥캣의 국내 증시 상장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지가 과제다. 두산밥캣은 올해 상장 목표로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두산인프라코어 재무구조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2007년 인수한 밥캣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공작기계상업부 매각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박정원 회장은 야심차게 진출한 면세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아울러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도 마무리해야 한다. 지난해 3차례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불거졌던 ‘28세 신입사원 명예퇴직’ 등으로 받았던 따가운 시선도 회복해야 한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일가 4세 가운데 가장 빠른 승진을 해왔다. 이것이 장남에 대한 배려는 아니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에 있어서 장남은 가장 큰 희생과 책임을 떠안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밥캣 상장·면세점 안착 등 현안 산적
새 회장님 능력은? 돌파 카드에 주목

두산 일가는 자식들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매헌 박승직 창업주는 “재산은 못 물려줄 지언정 교육만은 시키겠다”며 6형제에게 종아리 매질도 망설이지 않았다. 종아리 매질을 가장 오랫동안 맞은 이가 박정원 회장의 아버지인 박용곤 명예회장이었다. 자신의 잘못은 물론 동생들의 잘못도 모두 장남의 책임으로 돌렸다.

박정원 회장도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원 회장은 재벌가 자제답지 않게 겸손하고, 매사 행동거지를 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그가 언론에 조명받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과묵하고 소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타워 주변 식당가에서 식사를 하거나, 두산베어스가 경기를 하는 잠실야구경기장에서 의외로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박정원 회장은 자타 공인 야구광으로도 유명하다. 부인 김소영씨는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인기 제13대 국회의원의 딸이다. 슬하에 딸 상민씨와 아들 상수씨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승부사 기질
소탈한 성격

두산그룹은 이번에 평화적인 회장직 승계를 통해 4세 경영에 진입함으로써 형제경영의 모범적 사례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 다만 일각에선 “고 박용오 전 회장의 ‘왕자의 난’이 갑자기 터져나온 것처럼 이번 회장직 승계를 놓고도 그룹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을 수 있다”며 “박정원 그룹 회장 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 잘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계 ‘4세 시대’ 주역들 창업주 아들의 아들의 아들 등장

두산그룹이 재계에서 처음으로 4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재계 4세 경영인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산그룹 다음으로 4세 경영 체제에 가장 가까워진 그룹은 GS그룹이다. 지난해 연말 GS그룹은 연말인사를 통해 4세들을 경영 전면에 포진시켰다.


허만정 창업주의 증손자이자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법인사업부문장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허준홍 GS칼텍스 전무는 허만정-허정구-허남각으로 이어지는 GS그룹의 직계 장손이다. 1975년 생으로 허 전무는 2005년 GS칼텍스에 입사했다.

허창수 GS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사업지원실장도 상무에서 전무로 올라갔다. 허윤홍 전무는 1979년생으로 2002년 GS칼텍스로 입사했다. 허윤홍 전무는 GS그룹의 기틀을 마련한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손으로 정통성 측면에서는 허준홍 전무에 밀리지 않는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셜 회장의 장남인 허서홍 부장 역시 연말 인사에서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 사업부문장을 맡아 상무가 됐다.

30∼40대 젊은 후손들 활약
밑바닥부터 시작한 경영수업

코오롱그룹 또한 본격적으로 오너 4세들이 임원 반열에 올랐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상무보가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이규호 상무보는 1984년 생으로 지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에 입사한 직후 구미 공장에서 현장 근무를 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 부장에서 상무보로 승진했다. 이규호 상무보는 고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증손자이자 지난해 별세한 이동찬 명예회장의 손자다.

두산그룹도 4세에게 중책을 맡겼다.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 회장의 손자이자 박용만 현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 오리콤 크리에이티브총괄 부사장(CCO)을 올해 사업권을 따낸 면세점 유통사업부문의 전략담당 전무로 올랐다. 두산은 동대문 두타에 면세점을 만들어 내년 중 영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새로 진출한 면세점 사업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박서원 전무는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재학 중이던 2006년 빅앤트 디자인그룹을 설립했다. 빅앤트는 지난해 두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고, 박서원 전무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CCO를 맡았다. 그는 지난 7월 한화그룹 광고계열사인 한컴을 인수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면세점 사업은 그룹 오너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박 부사장의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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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