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박호민 기자 =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막노동꾼’ 혹은 ‘노가다꾼’으로 비하돼 살아가는 일용직 건설사 노동자. 이들 중에는 생계가 불안정한 사람이 많다. 주거가 불안정해 정착할 수 없는 이들은 막노동을 해서 하루 먹고 하루를 살아가는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건설사가 건설을 할 때 산업안전보건법 30조 등에 의거해 산업안전보건비를 계상해야 한다. 통상 대형 건설사는 중·소형 건설사에 하청을 줄 때 ‘산업안전보건비’를 따로 책정해 시공을 맡긴다. 하지만 중소형 건설사들 대부분은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들 비용을 은근슬쩍 인력사무소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각자 사와”
노동자가 일용직을 구하려면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거리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7곳의 인력 사무소를 취재한 결과 모든 인력사무소에서는 구직 노동자에게 안전화를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안전화에 대한 비용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안전화는 안전모와 함께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필수품이다. 통상 중·소형 건설사에서 안전모를 지급하는 경우는 있지만 안전화를 지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안전모는 저렴하지만 안전화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안전모는 3000∼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화는 가장 저렴한 제품이 3만5000원에서 시작해 10만원을 넘기는 제품도 많다. 10배가량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모든 현장 건설 노동자에게 지급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 안전화를 요구하면서 건설사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는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모양새다. 이 같은 기형적인 구조가 우려스러운 점은 일용직 노동자의 대부분이 안전화 구입조차 부담스러운 차상위 계층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10년 새 건설사 일용직 근로 수당이 크게 오르지 않아 젊은 층이 대거 이탈한 가운데 건설사 일용직 외에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차상위 계층 위주로 건설사 일용직 노동자가 재편되는 추세다.
차상위 계층인 이들에게 안전화 구입 비용은 꽤 큰 돈이다. 하루 일당은 통상 10만∼13만원 꼴이다. 수수료 명목으로 인력사무소가 1만5000원 정도 떼가면 노동자가 하루 벌어 손에 쥐는 금액은 8만5000원에서 11만5000원 가량이다. 따라서 일용직 노동자가 11만원의 일당을 받는다고 해도 안전화 구입비용에 따라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
시공 맡길 때 산업안전보건비에 포함
건설사들 일용직에 구입 비용 떠넘겨
이같은 고질적인 문제는 건설사 일용직 구직을 희망하는 노동자에게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대형건설사가 책정한 산업안전보건비가 중소건설사에 하청으로 넘어갈 때 유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수 있다.
서울시 성북구의 한 인력사무소 직원은 “일용직 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집이 없는 사람이 많다. 찜질방에서 생활하기도 하며, 심지어 휴대폰이 없어 연락을 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화 비용 3만5000원이 없어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산업안전보건비용과 관련 “안전비용을 일용직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잘못됐다고 인식은 하고 있지만, 인력사무소는 건설사와의 관계에서 ‘을’이라며 안전화 비용을 요구하면 거래가 끊길 것 같아 건설사에게 현실적인 요구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감독 당국은 사실상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안전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지방노동청은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건설사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비 요율이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측면이 있다”며 “만약 안전화를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할 경우 집값이 올라갈 수 있어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지방노동청의 논리는 명쾌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하루 일하고 그만 두는 노동자도 많은 데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화를 지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심지어 노동자 스스로도 건설사에서 안전모와 같이 대여하는 방식으로 안전화를 지급하면 찝찝해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찝찝해서 개인이 안전화를 구입하든 비용이 없어 무료로 대여를 받든 선택권이 없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냐는 지적에 법률적으로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생산 원가 절감과 일용직의 안전 및 급여를 맞바꾼 셈이다. 감독 당국 관계자는 현재 안전관리 감독의 범위가 건설사로 한정돼 있어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가 안전화를 잘 갖춰 신고 있다면 현재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와 관련 “건설사가 사회적인 약자인 일용직 노동자에게 안전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집값 상승을 이유로 비용이 전가되는 사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뒷전
건설사는 일단 침묵으로 일관했다. 건설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일용직 건설 노동자에게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3개 건설사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관계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들은 모두 해당 사안에 대해 할말이 없다며 기사에서 자신의 업체명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용직 노동자도 교육?
건설사 일용직 노동자가 되려면 안전화 구입비용 외에도 안전보건교육 비용이 든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31조의 2에 의거한 산업안전보건교육인데 해당 교육을 받으려며 3만원이 필요하다.
국가에서 무료로 산업안전보건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사 일용직 노동자가 실제 일을 구하기 까지는 최소 6만원의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아 일을 구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