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⑥>15년 만에 돌아온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화가 시장님’이 그리는 행복한 광주 이야기 “기대하라”

민주당 광주시장 공천과정에서 상대후보들로부터 ‘당선인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가 제출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공천을 받아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강운태 후보가 결국 광주광역시장에 당선됐다. 이로써 강 시장은 향후 4년 간 광주의 시정을 꾸려가게 됐다. 지난 95년 임명직 시장에 이어 15년 만의 일이다.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목 놓아 외치며 4년 간의 임기에 첫발을 디딘 강운태 시장. 그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봤다.

초등학교만 네 곳 전전…자연스레 친화력 길러져
광주 비엔날레 개최해 세계인 이목 한 몸에 집중

강운태 광주시장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만 네 곳을 다녔다. 일선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다보니 여러 학교를 전전하게 됐던 것. 그의 아버지는 전남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근무했다. 1년 이상 머문 곳이 드물 정도였다. 이는 아버지의 강직한 성품 탓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고흥군청에 근무하던 시절, 누군가 쌀 한 가마니를 집으로 가져와 즉각 되돌려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부터 전근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은 담양에서, 2학년은 보성에서, 3·4 학년은 학다리(함평군)에서 보냈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여러 지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늘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했기에 자연스레 친화력이 길러졌다.
초등학생 시절 늘 상위권을 유지하던 그의 성적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었다. 특히 영어는 한심할 정도였다. 1학년이 다 끝날 무렵까지 영어사전 찾는 법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동네에서 우연히 한 여학생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영어 때문에 창피를 당한 일이 생긴 것. 여학생은 ‘president’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왔다. ‘대통령’이라는 뜻 말고 다른 의미도 있는가도 물었다. 그는 당황했다. 당시 그는 발음하는 법은 물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던 때문이다. 그는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영어로 망신당한 후
공부 재미에 눈 떠

집에 돌아온 강 시장은 둘째형에게 달려갔다. 영어사전 찾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제야 그는 영어의 재미에 눈뜨게 됐다. 그 덕에 그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공부의 동기를 부여해준 그 여학생은 강 시장에게 은인과 같은 존재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의 담임선생님은 서울고에 응시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그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 때만 해도 이것이 그의 인생의 첫 좌절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시험 전 날, 뼛속까지 시렸던 겨울밤을 2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 겨우 시험장 인근 허름한 여인숙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이윽고 시험 날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그는 몸에 이상을 발견했다. 어지러움증과 구토, 두통이 몰려왔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곧 있을 시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험장에 도착한 강 시장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심호흡을 한 후 시험에 임했다. 어지러움이 가시진 않았지만 예상시간보다 빨리 마친 그는 시험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답안을 확인하는 여유를 갖기도 했다. 1교시 시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시험지를 제출하려 일어설 때였다.

“아뿔싸!”. 시험지 뒷장에도 문제가 빼곡히 있었음에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앞면만 열심히 풀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마지막 시험까지 치르고 나니 눈앞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시험지에 머리를 처박을 정도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서울고 입학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그는 학다리고로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1학년을 재학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것. 신세를 한탄하며 방황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문뜩 검정고시에 응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1년 간 검정고시를 준비한 그는 응시 한 번 만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서울로 올라와 죽기살기로 공부했다. 덕분에 또래의 아이들이 졸업할 나이에 서울대 외교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교 3·4학년 시절 강 시장은 학교에서 자취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의아해 한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강 시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했다가 낙선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친구가 그에게 총무부장 자리를 제의했다. 한때 당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학생회 운영을 위해 손을 빌려줄 것을 요청한 것.

총학생회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동숭동 법대와 문리대 사이의 건물 교실 한 칸을 얻어 살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가 미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는 ‘자취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미술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 1998년, IMF 이후 광주의 예술인 40여 명과 함께 ‘실직자 기금 마련을 위한 백령도 스케치전’에 2박 3일간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그렸던 그림은 참가한 화가들의 것들과 함께 판매돼 실직자 기금으로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미술을 통해 갖게 된 문화에 대한 관심은 광주 비엔날레를 창설하는 밑거름이 됐다.

1994년 광주시장에 당선된 그는 광주를 빛낼 만한 빅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이를 토대로 광주를 문화산업도시로 도약시키려는 심산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비엔날레를 성공리에 개최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녔다.

하지만 당시 문화체육부에서는 비엔날레라는 생소한 행사에 대해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를 개최하려는 그의 뜻은 난항을 겪게 됐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한 것. 이날은 지역현안사업을 보고하고 대통령으로부터 비엔날레에 대한 확답을 구해야 했기에 강 시장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었다.

강 시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광주 비엔날레가 가져올 이익에 대해 설명함과 동시에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비엔날레에 관심을 표했고 그 날로 중앙정부는 협조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예산 지원은 물론 ‘광주 비엔날레 지원협의회’ 등의 기구가 구성됐다. 그 이후에도 숱한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왔다. 1994년 광주 비엔날레가 우리나라 세계 문화 축제의 효시를 이룬 역사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

최연소·농촌출신 장관
일본 시장 점유율 ‘펄쩍’

임기를 마친 뒤 그는 농림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때 언론은 최연소 장관, 농촌 출신 장관이라며 앞 다퉈 보도했다. 그의 나이 46세, 관계에 발을 들인 지 23년 만의 일이었다.

농림수산부 장관직을 역임하던 그는 농어촌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던 중 돼지고기를 일본 시장에 수출하는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게 됐다. 당시 일본 돼지고기 수출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그 이유다. 천고의 노력 끝에 그는 불과 1년 만에 돼지고기 수출을 4만4000톤으로 거의 3.5배 늘리는 값진 성과를 달성했다.

농림수산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강 시장은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전남 출신으로는 자그마치 25년 만의 일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내무부장관의 여러 가지 소임 중 공명선거를 역점에 뒀다. 공명선거에 대한 그의 소신은 한결같았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내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선거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그는 지난 1997년 10월부터 장애인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당시 각 장애인연합회를 통괄하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면서부터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거나 장애인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만들겠다”며 목 놓아 외치던 강 시장. 이제 막 출항에 나선 강운태호가 광주라는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6세, 관계 입문 23년 만에 ‘최연소 장관’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 만들겠다” 포부 밝혀


강 시장은 광주에서 만든 문화와 상품, 도시 경영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모델이 되는 창조적 거점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그는 광주 발전을 위한 4대 과제와 20개의 핵심 공약을 제시했다.

4대 과제는 ▲풍요로운 경제공동체 ▲멋들어진 문화공동체 ▲세계 속의 평화공동체 ▲참여와 소통의 자치공동체 등이다. 강 시장은 4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공약으로 ▲신규 일자리 10만개 창출 ▲최하위권 경제규모를 중상위권으로 도약 ▲5대 주력산업과 미래가치산업의 집중 육성 ▲R&D 특구 개발 및 LED 특화단지 조성 ▲문화투자진흥지구 지정ㆍ활용 통해 문화산업 집중 육성 ▲시민이 함께하는 명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 및 복지 향상을 비롯해 20가지를 제시했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 강 시장은 “시정의 최우선을 일자리를 통한 신성장 체제에 두고 오는 2014년까지 신규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 실업난을 해소하고 고용률을 60% 이상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최하위의 경제 규모를 4위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1인당 생산액을 3000만원 이상 달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옛 전남도청 주변과 사직공원, 송암공단 일대를 문화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해 문화산업체를 500개 이상 집중 육성하고 임명직 시장 때 창설했던 비엔날레와 김치축제, 첨단 엑스포 등 3대 축제를 시민이 주인 되는 세계적인 문화ㆍ경제ㆍ관광상품으로 정착시켜 광주를 명실상부한 문화산업 메카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 강 시장은 문화투자진흥지구에 대해 “광주 문화산업체에 조세감면혜택을 주는 법안이 지난 2009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도 현재까지 문화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지 않아 산업유치가 부진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는 “예향 광주는 시민들의 예술적 영감과 끼가 탁월하기 때문에 문화산업 육성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며 “문화 투자 진흥지구 지정과 문화산업체 유치, 문화적 가로환경 조성을 통해 문화산업 시범도시로 가꿈으로써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CT연구원을 유치해 한민족의 문화적 심성을 콘텐츠로 만드는 한류의 산실로 육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규 일자리
10만개 창출


또 그는 여성의 사회 참여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성의 권익 증진에 앞장서고 출산장려 등 복지의 질을 높이기로 했다. 누구나 시장을 만날 수 있고 시정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참여와 소통의 열린 공동체를 만들 예정이다.
더불어 갈수록 늘고 있는 고령자와 독신자, 그리고 핵가족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불리는 헬스케어 가전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프로필

<학력>
·1965년 함평 학다리고교 수학, 대입검정고시 합격
·1972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인사관리처 OPM과정 수료
·200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수료.

<경력>
·1972년 행정고시 합격(11회)
·1989년 순천시장
·1994년 광주광역시장
·1995년 농림수산부장관
·1997년 내무부장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2003년 국회 재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2003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2004년 새천년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09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일자리창출 및 중소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
·2010년 광주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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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평양 무인기’ 안보실 비밀 작전 주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는 북한 도발에 역대 정부 중 가장 적극적이었다. 대북 확성기를 틀거나 삐라를 날리면서 군사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북한도 오물 풍선과 무인기를 날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물론 윤정부도 참지 않았다. 북한처럼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 이 비밀 작전은 국가안보실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은 군 관계자로부터 국가안보실 지시로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날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6개월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언급했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라는 평가다. 안보실 중 국방·안보 파트는 1차장 소관이다. 나머지는 각각 외교와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태효 전 1차장이었다. 계속되는 군 거짓말 내란 특검팀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평양에 추락한 우리 군 무인기라며 공개한 사진 외에도 우리 군이 보낸 또 다른 무인기가 있다는 진술을 군 관계자로부터 확보했다. 이 관계자는 특검팀에 “백령도에서 날린 무인기 두 대 중 한 대는 평양에 추락했고, 나머지 한 대는 평양 인근에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그간 김명수 합참의장과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은 “확인해줄 수 없다”며 사실관계 공개 자체를 거부해 왔다. 앞서 평양 무인기 침투 의혹은 북한 외무성이 지난해 10월 “한국이 10월3일, 9일, 10일 심야 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 상공에 침범시켜 삐라(대북 전단지)를 살포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국방부 국방과학연구소는 국회에 제출한 ‘북 전단 무인기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와 우리 군 드론작전사령부(드작사)에 납품한 무인기의 전체적인 형상이 매우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등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려고 무인기를 평양에 침투시켰다며 외환 의혹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2022년 있었던 북한군의 서울 상공 무인기 침투와 2024년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한 대북 작전이었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이뤄진 지난해 10월은 남북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치달았을 때다. 북한은 2022년 12월 무인기 5대를 수도권 일대 영공에 침투시켰다. 그중 1대는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일대 비행금지구역 안에 진입해 국가원수 경호 방공망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다가 2024년 5월부터11월에는 북한이 오물 풍선 수천 개를 한국에 살포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윤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현충일 기념사에서 오물 풍선 도발을 겨냥해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합참 지휘부는 대응 작전과 관련해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남북 긴장이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겠다며 상황 관리에 치중했다. “국방·안보 1차장 소관”…정보융합팀 추진? 국군조직법상 부적절…당시 실장들은 몰랐다 그러자 민주당 등에서도 오물 풍선의 자유 낙하를 기다리는 군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휴전선 상공에서 풍선을 격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당시 “북한이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다. 다양한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드론사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특검은 드론사에 무인기 침투 작전을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 수사 중이다. 군 안팎에선 ‘김 전 장관→김 의장→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드론사에 지시가 내려갔을 가능성과, 김 전 장관이 김 의장이나 이 본부장을 건너뛰고 드론사에 직접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합동참모본부와 방첩사령부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사령관은 무인기 북파 시점을 전후해 이승오 합참 작전본부장과 김 의장을 잇달아 면담했다. 특검팀은 “2024년 6월 드론사 방첩대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군 현역 장교의 증언도 확보했다. 당시 드론사 방첩대 지휘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맡았다. 드론사는 적 무인기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에 출범한 육·해·공군 및 해병대 합동 전투부대로, 국군조직법에 따라 합참의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안보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부대다. 그러나 특검팀에 출석한 군 관계자는 “모든 군 작전은 상급 기관인 합동참모본부의 지시를 받는데 무인기 침투 작전은 대통령실 안보실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며 “북한이 무인기 추락 사실을 공개한 날 작전을 수행한 드론사령부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격려금을 보냈다”고 증언했다. 관계없는 안보실 왜? 민주당 부승찬 의원도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이 V(대통령)의 지시라며 국가안보실 직통으로 무인기 침투 작전을 하달했다”는 내부 증언을 공개하기도 했다. 민주당 외환유치진상조사단은 올해 초부터 드론사가(歌) ▲무인기 기종 재고 현황 ▲평양에 드론이 침투한 지난해 10월 드론사 상황일지 ▲삐라통을 제작할 수 있는 3D 프린터 보유 여부 등의 자료 제출에 성실히 응하고, 수사기관이 김 사령관과 핵심 참모들에 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안보실은 당시 기자단 공지를 통해 “인성환 제2차장이 지난 2024년 3월 드론사를 공식 방문한 바 있다”며 방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이는 육·해·공군 주요 사령부 현장 확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부대 방문이며, 당시 드론사의 업무보고 등 공식 일정에 다수의 드론사 장병들이 함께했다”고 해명했다. 또 “김용대 드론사령관은 같은 해 8월 국가안보실 방문 당시 드론 전력화 방안 및 국방혁신위원회 안건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국방부 및 방사청 관계관 다수와 함께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다수의 인원이 함께한 공식 방문과 안보 태세 강화를 위해 정상적으로 추진한 업무를 ‘북풍 몰이’로 연결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자,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외환 의혹 관련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연결고리’를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군 통수권자인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 군부대까지 이어지는 지휘체계 전체가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검팀이 김 전 국방부 장관을 추가 구속하고, 군검찰과 협조해 여 전 사령관·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추가 구속한 것도 외환 수사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계엄 비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요청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노상원 수첩’의 경우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공격 유도’ 등 이른바 ‘북풍’ 준비 정황이 담겨 있어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비선 조직을 활용해 북한을 자극해 대남 도발을 유도했다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는 게 정보기관 간부들의 설명이다. 수상한 연결고리 김봉규 정보사 대령의 “(노씨가)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다. 언론에 특별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는 경찰 진술 등도 특검으로 송부됐다. 특검팀 관계자는 “언론에 보도된 부분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드론사가 안보실의 지시로 무인기 침투 비밀 작전이 진행됐다는 의혹이 가리키는 시기는 지난해 8월이다. 안보실은 산하에 1·2·3 차장을 둔다. 이들은 각각 국방과 외교, 경제를 담당한다. 지난해 안보실 국방·안보 파트 담당은 김 전 1차장이었다. 안보실장은 장호진·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었으나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사실상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안보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던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이 실세 중의 실세였다. 최종적으로 안보실장이 모든 보고를 받지만 핵심 정보는 김태효 전 차장이 먼저 훑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 전 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북파공작부대(HID)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 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속초 갔던 김, HID 출신 용산 스카우트 왜? “방문 이례적” 대북 공작 플랜 일환이었나 김 전 차장이 HID를 방문한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정보 특기(820) 육관사관학교 60기 출신 오모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안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갔다. 오 중령은 인성환 당시 안보실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지난 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안보실이 당시에 언급했던 것처럼 오 중령이 소속된 팀은 ‘대북 특수정보’를 다룬다. 대북 문제에 대해 깊숙하게 알지 못하는 김 전 1차장을 사실상 보좌하는 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오 중령은 정보사 내 얼마 남지 않은 ‘대북 공작’ 전문가로 꼽힌다. 12·3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정성욱 정보사 대령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안보실의 지시로 드론사가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실행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오 중령이 속한 팀이 작전의 밑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보사 내부의 분석이다. 무인기를 언제 평양에 보내고 어떤 방법을 구사해야 하는지도 대북 공작의 한 종류기 때문이다. 일부러 들키려 분명한 목적 정보사 한 고위 관계자는 “무인기를 날린 시기를 보면 대북 공작 플랜을 한두 달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 때나 막 날리는 게 아니다. 어떤 목적을 정한 이후 그다음 시기를 정한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통상 대북 공작은 일부러 들키게 하거나 정말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일부러 들키려 한 공작은 ‘북풍 공작’이다. 이 방법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쓰지 않았던 방법이다. 자칫하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정보사의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