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⑤>고진감래 끝 승리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칠전팔기 오뚝이 시장의 대전 살림살이 “빛난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에 자유선진당 염홍철 후보가 46.7%의 득표율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4년 전 선거에 낙선한 후 보냈던 고통의 시간을 만회한 순간이었다. “시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대전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염홍철 대전시장. 그의 족적을 따라감과 동시에 그가 대전을 위해 제시한 비전에 주목해봤다.

RCY 충남학생협의회 회장 시절 ‘스승의 날’ 전국화
‘대전엑스포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엑스포 시장’ 별명


염홍철 대전시장은 1944년 8월 충남 논산 채운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논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대전으로 진학했다. 늘 문학인이 되기를 꿈꿔왔던 그이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때문에 대학진학을 꿈도 꾸지 못했던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전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염 시장은 전교 학생회장과 JRC 대전지구 연합회장직을 도맡아 하면서 교우관계를 넓힌 한편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대전시내 고등학교에서 활동력이 있는 학생들로 이뤄진 ‘한다발회’는 오늘날까지 끈끈한 정과 신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스승의 날’의 뿌리가 된 ‘은사의 날’을 전국화 시킨 것도 이때의 일이다. 대전공고 3학년 RCY충남학생협의회 회장을 지내던 그는 RCY총회에 참석해 매년 5월24일 충남 일부 학교에서 행해지던 ‘은사의 날’을 전국 행사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는 RCY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고 이듬해부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은사의 날’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5년 ‘은사의 날’은 명칭과 기념일이 ‘스승의 날’, 5월15일로 각각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결국 그는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기계 만지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특차생으로 당당히 입학한 그는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맞게 된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을 반대하는 학생시위인 ‘6·3사태’가 바로 그것. 염 시장이 학생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굴욕외교가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학생에게 냉차를 건넨 노점 할머니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정부의 부도덕성에 울분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시위 참여가 문제가 되면서 결국 그는 대학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게 됐고 백마부대 일원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제대와 동시에 복학한 그는 지식과 소양을 쌓는 데 열중했다. 공부가 좋았던 염 시장은 대학 졸업 후에도 학문에 매진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성균관대,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며 경험을 쌓은 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뿐만 아니라 교수 재직시절에도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유학하며 학문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특히 당시 학계의 관심사였던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치ㆍ경제발전 이론인 ‘종속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제3세계와 종속이론>을 저술했다. 이 책은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는 등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학자로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국가발전에 활용하고 싶었던 그는 공무원이라는 새로운 항로에 들어설 것을 결심했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첫 공직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후 정치기획, 남북관계, 여성문제, 당정협조 등의 분야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다.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가 되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북한 대표들과 협상을 벌였고 국제 의원연맹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
반대시위 적극참여

그렇게 5년 간 중앙행정을 꾸려오던 그에게 제2의 고향인 대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993년 마지막 대전 관선시장으로 임명된 것.

2년 동안 대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93 대전 엑스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엑스포 시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정부대전청사를 기공한 그는 제75회 전국체전을 성공리에 치러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의 세계화를 핵심으로 한 ‘21세기 대전 발전 구상’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런 천고의 노력 끝에 그의 관선시장 시절은 ‘대전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긴 시기’로 평가 받게 됐다.

이후 한국공항공단이사장으로 발탁된 염 시장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계획을 수립해 국제적 허브공항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중부권의 세계화와 발전의 일환으로 청주국제공항을 완공하는 등 한국공항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다.

이후 그는 늘 꿈꿔 오던 대전발전의 뜻을 펼치기 위해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 한밭대 총장으로 2년 간 재임하면서 교명변경과 함께 대학 발전의 의지를 결집한 결과 한밭대를 중부권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밭대가 국립대학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으로 우수대학에 선정돼 수십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아내고 전국 산업대학 특성화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제3세계 종속이론>
베스트셀러 저술

국립대 총장직을 마친 그는 지난 2002년 대전시장에 도전해 대전시민의 선택을 받게 됐다. 그는 대전이 ‘한국의 신중심도시’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시정을 이끌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보니 임기 4년 간 개인적 시간을 쓴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재임시절 충청권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시민들과 더불어 노력했다. 그 결과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또 타시도와 정치권의 끊임없는 분산지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유일의 대덕연구개발 특구를 지정케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가적 경제성장 기지로 육성하는 데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 밖에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개통과 민·관 자율참여 복지네트워크인 복지만두레, 시내버스 준공영제, 3대하천 생태조성사업, 대전 전역의 공원화사업 등도 시민들과의 공감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룬 성과다. 무엇보다 시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염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선3기 대전시장을 퇴임한 이후 염 시장은 봉사활동과 독서, 집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2006년 9월 장관급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제7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때 그는 중소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감으로써 중소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2007년 11월 퇴임 직전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찾아다니며 경영주와 근로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정부에 바라는 내용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를 했고 여러 성과가 뒤따랐다.

염 시장은 스스로를 ‘소수파(minority)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시골출신(논산 채운초, 강경중 졸업)으로 고등학교(대전공고)와 대학 내내 같은 지역 출신이 적어 늘 소수에 속했고, 교수 시절 역시 동료교수에 비해 그럴듯한 배경을 갖지 못한 점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중앙공직자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끊임없는 노력, 자기계발로 소수파 인생 뛰어넘었다”
“소통은 화합을 통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


하지만 그는 이런 소수파적 인생을 뛰어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라고 설명했다.

염 시장의 하루는 대학교수시절부터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했다. 강의가 없는 방학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논문을 썼다. 중앙공직자 시절이나 관선 대전시장,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국립 한밭대 총장, 민선3기 시장,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서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존하는 사람”이라는 일념으로 뛰었다.

또 한 가지 염 시장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나눔과 섬김’이 바로 그것. 이는 그가 좌절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는 염 시장. 그런 그가 이번에 대전시민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앞으로 대전의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민선5기를 맞은 대전의 10대 주요 정책과제는 ▲5년 간 10만 개 일자리 창출 ▲원도심 활성화 ▲엑스포 과학공원 활성화 ▲도시철도 2호선 조속한 건설 ▲영유아 보육 및 교육의 의무교육수준 확대 ▲첨단의료ㆍ관광도시 육성 ▲호수공원 및 스포츠 테마파크 조성 등 서남부권 개발 ▲와인&뮤직 축제 등 명품축제도시 육성 ▲복지재단(위원회) 설립 및 복지만두레 부활 ▲3대하천 생태복원 및 꽃길 조성 등이다.

염 시장은 와인 축제와 관련해 “거부반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구상하는 와인&뮤직축제는 대전 근교의 포도생산단지 와인업체와 막걸리 등 전통주를 결합시키는 것”이라면서 “여기에 음악 축제를 접목해 세계인이 찾는 명품축제로 발전시키겠다”라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으로 사업성이 불투명했던 호수공원 조성 계획에 대해서는 “서남부권 호수공원 조성을 위해 실현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법령과 재원마련 방안을 적극 검토해 대전시의 역점사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끊임없는 노력
긍정적인 사고

이어 엑스포과학공원 활성화 방안과 관련, HD드라마 타운 조성 등 다른 공약을 반영해 엑스포공원을 교육과 과학, 첨단 놀이기능을 갖춘 테마공원으로 만드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또 세종시 원안을 적극 추진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부지를 확보하는 한편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염 시장은 “시민이 시정에 직접 참여하는 ‘민·관 협치시대’를 활짝 열고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이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시민과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염 시장. 그의 말처럼 대전시민과 더불어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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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