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다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서 재판까지 우여곡절…결국 쇠고랑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2000년대 이후 기업이나 정당 등 단체가 알바를 고용해 여론선동 및 이슈화를 주도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과정에서 증폭된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논란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2년부터 의혹이 불거진 원 전 원장을 필두로 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권
정통성 논란
 
당시 민주당(민주통합당)은 12월11일 국정원의 직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 후보인 문재인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에 민주당 당원과 기자들은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해당 직원의 오피스텔을 방문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20여명의 인원이 오피스텔 복도 앞을 점거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측은 현직 국가정보원 직원이 정치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게시하는 것은 불법선거라며,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하지만 국정원이라고 추정되는 직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 또한 정식 수색영장이 없는 상태기에 강제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면 현행범에 해당됨으로, 즉시 문을 열게 해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해당 국정원 직원은 민주당이 자신을 감금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문을 열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해당 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밤사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명 국정원 댓글녀 혹은 국정원 댓글 알바라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국정원 대변인은 12일 새벽, 기자와 당원이 지키고 있던 오피스텔 복도에서 “김씨의 개인 컴퓨터 등에 대해 이르면 12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이 입장 발표 후 댓글 알바로 의심받은 직원은 “정치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 관련 댓글을 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서울 수서 경찰서는 해당 인물이 사용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임의 제출하게 했다. 일주일 뒤 수서 경찰서는 댓글 알바 논란에 휩싸인 해당 직원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청은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 대선후보에 관련된 글의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중간발표를 했다. 여론은 봐주기 수사 등 의혹을 내세우며 경찰을 비판해 나섰다.
 
IT전문가나 네티즌들은 웹캐시 등 댓글 증거를 확보하며 인터넷에 공개했다. 경찰 측에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조사 당국은 댓글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진 6개 포털사이트와 32개 언론사에 통신자료 내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1심 집유…2심서 징역 3년 법정구속
중립의무 외면 정치 사안 개입 인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3년 1월3일 수사당국은 국정원 직원이 99회 걸쳐 대선에 관련한 댓글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직원을 재소환하며, 조사당국은 기존 중간 브리핑과 달리 해당 직원이 정치성향 댓글 49개를 달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냥 세봐도 100개는 넘는다”고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했다.
 
부실수사 의혹이 거세지면서 민주당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고발했다. 국정원은 이에 맞서 민주당에 제보한 전직 국정원 직원인 김씨와 현직 직원인 정씨를 직무상 기밀누설에 따른 국가정보법 위반으로 고발해 2월20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4월1일 민주당은 원 전 원장이 국가정보원을 이용해 국내 정치 관여 및 직권남용 등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혐의로 고발했다. 18일 수서 경찰서는 국정원 직원 김씨 외 3명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원 전 원장을 수사할 특별수사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수사에 진척은 없었다. 이에 당시 수서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했던 권은희 의원은 “국정원 수사에 윗선이 개입됐다”라고 내부고발을 했다.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검찰과 경찰은 이종면 전 국정원 3차장을 시작으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발표했다. 
 
당시 특별수사팀은 대검찰청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모두 적용해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중간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를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법무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리를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과 법무부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 여부를 놓고 의견충돌을 벌인 것이다. 이후 채 검찰총장은 혼외자식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퇴했으며, 팀별수사팀은 외압을 받는다.
 
이명박-박근혜
시그널 없었나
 
국정원은 지속적으로 댓글 개입에 대해 대북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대선에 관련된 것이 1281회, 정치 관련은 435회, 대북심리전인 북한과 중복에 대한 것은 143회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의혹은 국회에서 밝힐 일이라며 일축했다. KSOI 설문조사결과 78.4%가 국정원 개입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7월1일 여당과 야당은 7월2일부터 45일로 계획된 국정원의 국정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부분은 대선개입 의혹 일체, 전현직 직원의 비밀누설문제, 국정원여직원(감금주장)에 대한 인권침해 의혹이다. 하지만 특별위원의 선정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이 갈등하며 15일 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NLL논란이 불거진다. 하지만 민심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물타기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검찰은 10월17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4명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긴급 체포했다. 이들은 트위터 및 SNS 상에서 활동한 심리전단 5팀 소속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검찰은 곧바로 원 전 원장의 공소장을 변경하고 추가 기소했다. 
 

사실 이에 대해 <뉴스타파>는 지난 7개월 전부터 10여 차례 걸쳐 트위터에서 벌어진 국정원 대선 개입 실태를 집중보도 했다. 총 660여개 계정이 조직적으로 5만8000여 건의 대선과 정치적 관련 글을 올렸다는 정황을 밝혔다. 특히 핵심 계정인 ‘nudlenudle’ 국정원 직원 이씨라는 것도 규명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이번 사건을 ‘선거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범죄’라고 규정했다. 검찰 수사로 국정원의 정치와 대선 개입 의혹이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예상못한 판결 왜 뒤집혔나
심리전단 직원 파일 결정적 

재판이 시작된 지 1년1개월 만인 지난해 7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이 구형했다. 박형철 부장 검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장 등 직위를 이용해 정치 관여 행위를 함과 아울러,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하여 제18대 대선에 관여한 선거운동을 한 범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 정치 선거개입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책임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최후의 변론에서 “60세가 넘은 사람으로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무슨 얘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심리전단의 활동이 문제가 있더라도 선거개입 목적이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11일 서울중앙지법은 원 전 원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국정원 댓글 알바에 이은 1년10개월만에 내려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첫 번째 판단이었다. 당시 이 선고는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 기관에 의한 선거 개입이 있었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판결 내용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번 판결의 핵심이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요 공소내용. 법원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행위자의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확인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때문에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2012 사건의 서막
2013 물타기 정국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의 근거로 ‘직접 대선 개입을 지시하는 원 전 원장의 발언을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꼽았으며, ‘선거운동에 이용할 목적으로 볼 명확한 근거가 없는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공직선거법이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되지 않은 대선 결과를 가지고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재판부 논리는 이렇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내용의 판결을 한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증거로 인정된 심리전담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 수는 175개. 애초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통해 1157개의 계정에서 작성한 78만여 건의 트윗을 증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수집 과정 위법을 했다는 이유로 상당수가 증거에서 배제했다. 트윗 내용은 ‘박근혜 후보 후원 계좌 안내, 문재인이 대통령이 안되는 이유, 안철수는 종잡을 수 없다’ 등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지지, 비방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선고 이후 김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실명으로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A4용지 5장 분량의 강도 높은 비판글을 올렸다. 2013년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시민사회단체 역시 이번 판결은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치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재판부는 핵심 쟁점이었던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조직적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국정원 심리전단의 이른바 ‘방어심리전’ 활동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검찰이 항소 때 법조항을 조정할 경우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압으로 사실상 와해된 검찰 수사팀이 수사 의지를 가지고 항소심을 준비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지난 9일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선고 후 법정구속 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지시한 사이버 활동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능동적으로 계획된 행위라고 판단했다. 정치에 개입했지만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1심과 달리 국정원의 활동을 제18대 대선에 영향을 준 ‘선거 개입’으로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심리전단이 작성한 글 중 2012년 상반기에는 정치 관련 글이 80∼90%로 압도적이었다. 2012년 7월부터 선거 관련 글이 늘기 시작해 8월에는 선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이는 사이버 심리전단이 의도하는 바가 바뀌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심리전단이 작성해 퍼 나른 글들은 당시 이정희 대표 및 통합진보당을 반대하거나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당시 무소속이었던 안철수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논란이 됐을 때는 여자문제 등에 집중해 (트윗글) 작성 후 리트윗하고, 인혁당사건 발언이 나왔을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대규모로 리트윗하거나 야당 측을 비난하는 글을 작성해 서로 리트윗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안 의원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한 이후 안 의원 관련 글이 현저히 줄어들고 12월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은 반면 민주통합당 소속 문재인 대선후보에 반하는 취지의 글이 급격히 늘어난 점 등에 비춰볼 때 당시 트윗글이 선거쟁점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이 점이 특정정당과 정치인의 당락을 목적으로 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중 선거개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상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심리전 활동을 벗어나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이 사이버 활동이라는 자신들의 주관적 평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객관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변론에서 “부서장 회의에서 말한 것이 전 직원에게 공유되는지 한참 후에 알았다”면서 “직원의 트윗, 댓글은 개인적 일탈이지 조직적으로 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곧바로 상고 의사
대법원 판결 주목
 
원 전 원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심리는 최장 10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구속 기간은 2개월이지만, 상소심에서 부득이한 경우 2개월 단위로 3차례까지 총 6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1, 2심 재판부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림에 따라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min1330@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