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후폭풍' 미공개 '박관천 파일' 추적

박지만 수족 겨눈 내사 있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은 청와대 문건을 거의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있었다. 문서를 유출한 세력은 6개월에 걸쳐 박 회장의 의심을 키워갔다. 급기야 박 회장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항의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검찰 중간발표로 유야무야된 '정윤회 문건' 수사. 그런데 박 회장이 받아본 문건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건 가운데 일부 내용은 '사실'일지 모른다는 정황이 나온 것이다.

'정윤회 문건'의 종착지는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으로 최종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임관혁)는 지난 5일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구속기소)이 박 회장에게 모두 17건의 문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관천·조응천
나란히 기소돼

박 경정에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공용서류 은닉, 무고 등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또 박 경정을 시켜 박 회장에게 문서를 건네도록 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불구속기소)에 대해서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검찰은 지난달 말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과 공모해 문건을 유출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 엄상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 내용, 수사 경과 등을 종합할 때 구속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법원은 문건 유출 사건에 연루된 최모·한모 경위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정국을 뒤흔든 정윤회 문건 파문은 결과적으로 박 경정 개인의 '일탈'로 좁혀진 모양이다. 조 전 비서관은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으며, 한 경위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회유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세계일보> 쪽으로 문건을 유출한 최 경위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이 지목한 피의자 가운데 범죄 사실이 소명된 인물은 박 경정이 유일했다.


서향희·이영수 등 박지만 측근 첩보
보고서 건네받고 김기춘에 항의전화

무엇보다 청와대 문건을 수시로 받아본 박 회장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야권 등에선 박 회장의 '암묵적인 지시' 여부를 조사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검찰은 혐의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을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고 동기를 추론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시킨 동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향 문건'을 속칭 '찌라시'로 단정한 청와대의 주장과 달리 검찰 안팎에선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단서로 한 수사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동아일보>는 검찰발 백브리핑을 인용해 "박 경정이 수사 과정에서 정치, 권력에 대한 관심을 자주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핵심은 이렇다. 수사 초기 박 경정은 조사를 받던 중 검사와 수사관에게 박근혜정부 권력 지형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박 경정은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최순실씨(정윤회씨의 전 부인이자 최태민 목사의 딸)가 1위, 정윤회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력서열 발언
와전된 이유는?

이는 <일요시사>가 지난해 3월 '박의 남자들 사활 건 권력암투 막후'란 기사에서 소개한 일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요시사>는 사정기관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박근혜정부의 서열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전한 바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다르다. 해당 관계자는 "정씨가 2013년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한껏 호기가 오르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정부의 서열을 말해줄까? 1위는 대통령(박근혜), 2위는 최순실, 3위는 바로 나(정윤회)." 발언의 배경을 놓고 정씨가 농담을 한 것인지 아니면 속내를 드러낸 것인지 관계자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고급 요정에서 나온 비화"라고 설명을 갈음했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서열 발언'은 박 경정이 지어낸 허구가 됐다. 서열 순서도 뒤틀려 황당한 주장처럼 됐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박 경정이 <일요시사>라는 매체와 접촉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발언은 여권 고위관계자들 사이에서 '미행설'과 함께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박 경정 혼자 '모든 말'을 지어냈다고 하기엔 검찰 측의 논리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지만 미행설'은 박 회장이 청와대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고 그의 지인이 유포까지 한 '작품'이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당시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조사를 할 테니 미행 자료를 달라"고도 했다. 문제의 미행설이 불거진 배경에는 '권력암투'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뜻밖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영수 KMDC 회장이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12월 '연초정국 뇌관 박관천 X파일 실체'라는 기사에서 이 회장의 존재를 전한 바 있다. 지난 5일 검찰은 미행설의 제보자를 '박 회장의 지인'이라고 뭉뚱그렸다. 이 지인은 바로 이 회장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는 관련한 기사에서 "K사 L회장은 박 회장 및 여권 인사들과 두루 가까운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TV조선>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해외 자원개발 특혜 의혹을 불러왔던 K사 대표 L모씨"라고 특정했다.

이 회장은 수년간 여권의 '숨은 실세'로 여러 차례 지목됐다. MB정부 탄생에 기여한 외곽조직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끈 장본인이며, MB정부 출범 후에는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과 함께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과 이 회장의 인연은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을 전후로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청와대 문건에서도 박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됐다.

박지만 주변부
누군가 노렸다

검찰 발표를 일부 인용하면 조 전 비서관은 이 회장이 박 회장 쪽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박 경정이 유출한 문건에 최소 두 차례 등장한다. 작성일이 2013년 6월18일로 기록된 'VIP(대통령) 방중 관련 현지 인사 특이 동향(VIP 친분 과시 등) 보고' 제목의 문건에는 이 회장의 이름이 적혀있다. 해당 문건에는 중국내 최고 실력자로 알려진 S씨와 관련한 첩보가 담겨 있다.

문건에는 "S씨가 이 회장을 통해 서향희 변호사(박지만의 부인)를 소개받아 친분관계를 과시하며, (자신의) 친·인척을 통해 한국 대기업 M&A 투자금을 모집하려 한다"고 쓰여 있다. 또 문건에는 S씨의 집안내력, 경력, 중국 내 영향력과 국내 기업인과의 친분관계 등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문건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사정기관 관계자는 "알고 있어도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박 경정은 이후에도 세 차례에 걸쳐 S씨와 관련한 첩보를 'S' 'S2' 등의 제목으로 작성했다. 이 가운데 6월24일 작성된 'VIP(대통령) 방중 관련 현지 동향 특이 보고'에는 S씨가 VIP의 친인척(서향희 변호사)을 통해 J씨의 회사 대표 재임용 청탁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여러 정황상 J씨는 대기업 P사의 임원으로 의심된다.

이어 S2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J씨가 OOO 회장으로 가려 로비하고, 서 변호사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주변에) 보여주며 세력을 과시한다"고 적혀 있다. S씨와 관련한 문건이 노리는 바는 정확하다. 박 회장의 부인인 서 변호사와 친구 이 회장이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박 경정이 관련한 문건을 박 회장의 '비서실장' 전모씨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박 회장에게 '주변을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띄운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다른 문건에는 이 회장의 이름이 또다시 등장한다. 6월 중순 작성된 'K사 L□□' 제목의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공천 알선 명목 수억원 수수 등 다수 관계자로부터 공천 관련 금품 수수 의혹"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 발표대로라면 이 보고서는 '풍문'을 긁어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 박 회장 주변을 자극하기 위해 허위로 작성된 셈이다.

또 이 회장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9일 이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 회장과는) 밥 한끼 했을 뿐"이라며 "미행설은 나도 모르는 내용이고 일부 보도도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앞서 <동아일보> 등은 "'박지만 미행설'의 첫 제보자가 박 회장의 먼 친척인 김모씨"라고 보도했다. 김씨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장을 지낸 송모씨(사망)의 처조카로 알려졌다. 김씨는 2013년 12월27일 작성된 'VIP 친척(박지만) 등과의 친분과시자 동향 보고' 제목의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그는 "요즘 정씨를 만나려면 현금으로 7억원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인물로로 특정됐다.


대기업 비리·기업인 사생활 포함
'찌라시'라면서 기업수사 저울질?

당시 김씨는 박 회장에게 "정씨가 약점을 잡기 위해 미행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의심이 든 박 회장은 측근 전씨를 통해 박 경정에게 진위 파악을 요청했다.

그러자 박 경정은 보고서에 '정씨 측이 박 회장의 마약과 관련한 약점을 잡으려 한다'는 등의 첩보를 담아 전씨에게 건넸다. 검찰 조사에서 박 경정은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가 허위였음을 인정했다. 김씨도 '7억원 발언' 등은 "근거 없는 얘기였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렇다면 박 회장은 왜 김씨의 말을 믿었던 것일까. 관련한 단서가 청와대 문건에 남아있다. 2013년 6월 중순 작성된 문건에는 H사 회장 P씨에 대한 개인비리 정황이 담겨 있다. 수입 금액 누락 등을 통한 자금세탁 및 비자금 조성 의혹과 전 정권에서의 재산 축적 경위 의혹 등에 관한 첩보였다.

비슷한 시기 폐기물처리업체 I사 대표 O씨에 관한 탈세 의혹도 보고서 형태로 박 회장에게 제출됐다. "O씨가 (자신의) 부인 명의로 토지와 차명주식을 취득하는 등 탈세 의혹이 있고, 공사 수주 대가로 모 회장에게 수억원을 공여한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O씨가 과거 수십억원을 추징당한 전력이 있으며, 조세당국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첩보도 기재돼 있었다. 같은 시기 이 회장과 관련한 보고서 역시 박 회장에게 넘겨졌다.

상기한 내용을 종합하면 2013년 6월 박 회장 주변을 겨냥한 광범위한 감찰이 진행됐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몇몇 언론은 '민간인 불법사찰'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도 "민간인 사찰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단순한 찌라시?
수사참고 자료?

문제가 된 보고서에는 기업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내용도 담겨 있다. 한 문건에는 모 관광업체 대표가 4명의 여성과 사실혼관계고 유명 연예인과 동거하는 등 성생활이 문란하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문건에는 서울 모 호텔 회장이 경리 담당 여직원과 불륜관계인 데다 집무실에서 환각제까지 복용하고 성행위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반면 '모 대기업 회장이 상속용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에 관한 것은 기업수사 첩보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보고서 전부가 찌라시"라는 정부 측 해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다.

유출된 일부 첩보는 제법 진실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전북지역 군부대 이전 관련 VIP인척 유언비어 유포 동향·조치 결과 ▲㈜EG 대주주 주식 일부 매각에 따른 예상 동향 ▲240억원 법인주식 횡령 피의자와 VIP인척 유착 관련 동향 등은 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찌라시'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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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