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올 초 부국증권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많은 직원들이 짐을 쌌다. 이런 가운데 26년 넘게 부국증권에서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 있다. 회사 못지않게 장수하고 있는 ‘감사님’이다. 부국증권은 “일을 잘해서”라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내부견제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영을 감시하는 감사의 독립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증권사에서 20년 가까이 둥지를 틀고 있는 ‘터줏대감 감사’가 있다. 권기현 부국증권 상근감사 이야기다. 재임기간이 길다 보니 붙박이 감사라고도 불린다.
연봉 3억2500만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권기현 상근감사는 1998년 1월 선임된 이후 현재까지 감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로 17년째다. 증권업계 감사 중 최장수로 재임하고 있다. 증권사 감사위원 임기에 대한 공식적 통계 수치가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증권업계 감사 임기는 4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권 감사와 부국증권의 인연은 깊다. 이들의 인연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 감사는 1988년 3월 부국증권의 부장급으로 입사해 97년 5월 부국증권 이사보를 맡았다. 이후 98년 1월부터 감사직을 꿰차고 있다. 부국증권에서만 26년 동안 근무해온 것이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에도 권 감사는 한일합섬에서 근무했다. 권 감사는 이곳에서 과장까지 지냈다. 한일합섬은 현재 부국증권 대주주인 김중건 회장의 아버지 고 김한수 창업주가 설립한 회사였다. 부국증권은 한일합섬의 계열사였다. 1954년 8월 설립된 부국증권은 당시 국내 증권사 중 네 번째로 설립됐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공중 분해되면서 한일합섬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98년부터 지금까지 감사직 유지
경영진과 유착…견제·감시 의문
특히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해왔던 부국증권은 올해부터 ‘3세 승계설’이 솔솔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부국증권은 주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감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회사 특성상 여러 투자자들의 투자를 받는 만큼 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감사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이를 두고 감사직이 오래되면 경영진과 유착돼 내부견제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영을 감사하고 내부 비리를 감시해야 할 감사직에 한 사람이 오랫동안 있으면서 내부 견제 능력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권 감사는 지난해 회사로부터 3억247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업계에서 알려져 있는 등기이사 평균 연봉(3억3765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외이사 평균 연봉(3600만원)보다 10배가량 많은 금액이다. 타 증권사 감사위원들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감사위원은 원칙적으로 회사 내 모든 정보에 대한 요구권, 관계자의 출석 및 답변 요구권, 창고·금고·장부와 물품의 봉인권, 회계관계 거래처에 대한 조사 청구권 등의 권한을 갖는다. 때문에 임기가 계속 연장되고 억대연봉을 받는 감사가 이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지 의문스럽다는 시각이다. 내부 비리에 무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증권사 IR팀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감사의 임기가 길어지면 자연히 경영진들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비리 감시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오는데 애초부터 이런 의혹을 사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부연이다.
권 감사가 이토록 부국증권에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이유는 사외이사와 달리 감사는 임기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증권사 사외이사는 한국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라 5년 연속 재임할 수 없지만, 감사는 임기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융당국 간부들의 감사 이동이 여의치 않은 점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잘해서 재임”
부국증권은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오히려 권 감사가 일을 잘해서 오랫동안 재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부국증권 관계자는 “(권 감사가)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재임하고 있는 것”이라며 “매년 이런 지적이 나오는데 오히려 오래 근무하신 만큼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감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신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 관계자는 “당국도 있고 사외이사도 있는데 오래 일한다고 내부견제가 떨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특히 그분이 금융감독원 출신도 아니고, 아시다시피 부국증권이 힘든 상황에서 그동안 이익도 잘 내왔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만큼 지금껏 감사일을 잘해 오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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