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특집> 파란의 6·4 지방선거 후폭풍 ①힘 받는 '청와대 플랜'

세월호 역풍에 휘말린 '박근혜호' 순풍에 돛 다나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로 궁지에 몰렸던 박근혜정부가 기사회생했다. 6·4 지방선거에서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면죄부도 함께 쥐었다. 보수층의 굳건한 지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박근혜 대통령. 이제 안팎의 관심은 '국가개조'에 쏠린다. 무엇을 어떻게 개조하겠다는 건지 박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법을 세우겠다"는 의지만큼은 어느 때보다 강력해 보인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조작업이 지연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무능한 정권론이 부상했다. 유족들은 매일 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렸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도 함께 울었다. 청와대는 "재난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헛발질했다. 박근혜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말마다 거리를 매웠다.

세월호의 눈물
박근혜의 눈물

지난달 차기 국무총리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자진사퇴했다. 내려올 줄 모르던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를 전후로 20% 가까이 빠졌다. 당시만 해도 '집권 2년차 레임덕'이라는 호들갑이 허언이 아닌 듯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느꼈던 위기감은 상당했다고 했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청와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여권 입장에서)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 선거에서 진다. (선거법상) 대통령의 입이 안 되면 '칼(문책성 인사나 야권을 겨냥한 공안수사 등)'을 써서라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은 입을 열지 않았다. '칼'도 쓰지 않았다. 다만 '눈'으로 보여줬다. '박근혜의 눈물'은 궁지에 몰린 여권이 쓸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는 동영상까지 올라왔다. 그날로 전국 곳곳에는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란 피켓이 등장했다.


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피켓 전면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나붙었다. 피켓 속 박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호소는 망설이고 있던 보수층의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돌렸다. '세월호의 눈물'로 시작해 '박근혜의 눈물'로 끝난 선거였다.

정권심판론
너무 일렀다

개표결과 여야 어느 쪽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성적표가 나왔다. 표면적인 결과는 새누리당의 패배였다. 전국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모두 8곳에서 이겼고, 새정치민주연합은 9곳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민심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수도권 3곳 중 새누리당은 경기와 인천을 얻어 서울을 사수한 새정치민주연합과 균형을 이뤘다. 또 새누리당은 여권의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을 지켜냄으로써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은 선거였다.

당선자의 윤곽이 가려진 5일까지 박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국가개조'란 국정과제를 또 한 번 명확히 했다. 이날 민 대변인은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 이번 선거결과는 그 자체가 국민의 소중한 민의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한 표 한 표에 담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년차 레임덕 위기서 벗어나
세월호발 정권심판론 잠재워

청와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나쁘지만은 않은 눈치다. 대체로 여권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역대 지방선거와 비교했을 때도 여당이 17곳 중 8곳을 가져 간 건 나름 선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가장 최근 있었던 2010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박근혜정부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 여당은 전체 16곳 중 6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반색하는 대목은 인천을 탈환했다는 사실이다. '친박'의 대표주자인 유정복(새누리당) 후보는 현 인천시장인 송영길(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꺾고 인천의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했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안전행정부장관을 역임했던 안 후보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송 후보에게 박빙열세를 보이던 안 후보는 본선에 돌입하자 예상 밖의 응집력을 보였다.

안 후보의 출마는 그가 청와대 내각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었다. 안 후보의 상대는 현직 프리미엄이란 후광을 업고 있는 송 후보였다. 송 후보는 야권의 잠재적 대권후보로 꼽힐 만큼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세월호 참사라는 돌발변수까지 발생했다. 정권심판론이란 그늘에서 안 후보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인천 민심은 결국 안 후보를 선택했다. 해석하기에 따라 박근혜정부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이해됐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없음을 확인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국가개조론
밀어 붙인다

'오거돈 바람'이 불었던 부산도 끝내는 친박 중진인 서병수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 전 서 후보는 오거돈 후보와 여론조사에서 막판까지 초박빙 접전을 벌였다. 위기감을 느낀 서 후보는 선거일이 임박하자 노골적인 '박근혜 마케팅'을 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읍소에 부산 시민들은 변화보다는 '인정'을 택했다.

그러나 여당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산에서 오 후보가 거둔 성적은 놀랍다. 최종득표율 49.3%, 서 후보와의 표 차이는 1.4%에 불과했다. 비록 야당 간판을 달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오 후보의 선전은 부산 시민들이 당만 보고 찍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반대로 박 대통령을 전면에 앞세운 서 후보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진땀 승부였다.

유권자들은 '세월호 민심'을 투표로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의 붕괴나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1년 6개월만의 레임덕은 너무 심하지 않냐. 지방선거로 심판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빨랐다. 유권자들이 조금 더 기다리자는 쪽이었던 것 같다. 만약 지방선거가 1년 뒤에 있었다면 결과가 또 달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국민들은 박 대통령을 재신임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앞길은 산적한 과제로 첩첩산중이다. 당장 국정운영의 변곡점이자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7·30 재보궐선거가 눈앞에 있다. 차가워진 민심을 외면했다가는 언제든 정권심판론이 타오를 수 있다.

국가개조 드라이브
공직사회 틀어쥐고
철권통치 재현할까

우선 박 대통령은 정권심판론에 맞서 국가개조론을 통해 난맥상을 정면 돌파할 방침이다. 세월호 참사 후 '관피아 색출'을 첫 번째 후속조치로 내놓은 게 대표적인 예다. 검찰 등 사정기관을 최대한 활용해 "무너진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게 청와대의 복안이다. 때문에 박근혜정부는 '관피아 색출'을 필두로 한 고강도 공직사회 개혁에 당분간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피아 색출과 관련해서는 공직사회 내부에 강한 반발이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관피아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문제인데 이 정부는 기관들만 닦달해서 성과를 내려한다"며 "공직사회가 경직될수록 득을 보는 건 국민이 아닌 절대 권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박 대통령이 공직사회 장악에 나선 배경에 '철권통치'에 대한 환상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윗사람의 지시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공무원을 주물러 이를 바탕으로 정국 운용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의 속셈을 알면서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쏘아올린 국가개조의 방향과 속도는 후임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일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법관의 쇼크를 경험한 청와대는 도덕성을 중점으로 두고 인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황우여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총리 후보로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고사할 경우는 의외의 선택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력 후보로 검토되고 있는 김 지사는 청와대로 입성할 경우 박 대통령과 얼마만큼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능력 면에서는 합격점이지만 국가개조의 각론에서 기존 청와대 비서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불안요소다.

한편 청와대는 공석 중인 국가정보원장 지명과 조각 수준의 내각개편을 위한 후보자 물색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탕평인사' 얘기가 나왔지만 선거 결과 여권의 중심부인 대구에서 고전하면서 소홀했던 'TK 달래기'에 나설 것이란 예측이 힘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보수층의 결집을 확인한 박 대통령이 다시 '줄푸세'  카드를 꺼낼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큰 틀에서 박 대통령은 경기부양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일자리 창출, 경제혁신3년계획 등의 경제정책이 골자다. '통일대박론' 역시 궁극적으로는 경제효과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전언이다.

TK 달래기
경기부양 사활

하지만 구체적인 경기부양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종국에는 '규제완화'에 방점을 찍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내수 진작을 위해 다방면으로 세금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절세'를 지지하는 보수·부유층의 표를 모으는 효과가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유임 여부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만약 김 실장이 유임된다면 사회전반적인 사정 드라이브가 좀 더 가속화될 것이고, 김 실장이 교체된다면 경기 부양에 좀 더 힘을 주게 될 확률이 높다.

청와대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실정을 하던 박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40%의 '국민'이 등 뒤에 있다는 사실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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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