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국가안보실> '박 터지는' 과잉충성 혈전 내막

'박심 구애' 사생결단 정보전 불붙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공백이 달을 넘겼다.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하면서 '멘붕'에 빠진 청와대는 후임 인선을 놓고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도로 남재준' '도로 김장수'가 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정권 출범 후 라이벌 구도 속에 '충성경쟁'을 벌였던 두 전임자처럼 후임 국정원장이나 국가안보실장 역시 결국은 누가 더 '충성하느냐'로 놓고 파워게임을 벌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주: 본 기사는 지난달 31일을 기준으로 작성됐음을 알립니다.)

공석인 국가정보원장(이하 국정원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하 국가안보실장)의 후임 인선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박 대통령은 남재준 전 국정원장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십자포화를 맞은 청와대의 고육책으로 풀이됐다. 당초 청와대 안팎에서는 지난주께 후임 인사가 이뤄지지 않겠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러나 지난달까지도 청와대는 후임자를 고르지 못했다. 청와대 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양대 안보사령탑
1주일 넘게 공백
 

박근혜정부 출범 후 남 전 원장과 김 전 실장의 위세는 남달랐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실세를 꼽을 때면 남 전 원장과 김 전 실장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밖으로 보이는 위세는 남 전 원장이 더 대단했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복수 관계자는 2013년의 인물로 남 전 원장을 꼽았다. '올해(2013년) 정치는 남재준이 다 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남 전 원장은 어디까지나 청와대 외곽에 있었다. 수시로 박 대통령과 대면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국정원장은 주로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달랐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안에서 박 대통령을 직접 보좌했다. 수시로 대통령을 수행하며 정책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정치권 일각에선 김 전 실장의 파워를 더 높이 보기도 했다.  


청와대, 두 기관 후임 사령탑 놓고 고심
2기도 남재준·김장수 구도로 이어질 듯
 

실제로 세월호 참사 전까지 김 전 실장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하며,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NSC는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 직속 안보자문기구다. NSC는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한민국 군사·외교·안보현안을 총괄하는 조직이자 정부정책수립 및 조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NSC 위원의 면면은 국무총리,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등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 NSC를 상시체제로 전환하면서 김 전 실장을 위원장으로 앉혔다. 안보라인의 정점에 김 전 실장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말로 경질을 자초했다. 이 말 한 마디로 대한민국 안보사령탑의 한 축은 일거에 무너졌다. 그렇다면 남은 한 축, 남 전 원장은 왜 급작스레 해임된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남 전 원장은 세월호 참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 청와대로 향한 쏟아지는 비난에도 남 전 원장의 경질을 얘기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재준 경질'이란 깜짝 발표에 오히려 놀란 것은 야권이었다는 후문이다.  

씁쓸한 얘기지만 남 전 원장은 세월호 참사로 득을 본 케이스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틀 전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파문으로 대국민 기자회견까지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남 전 원장을 유임했다. 정치적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남 전 원장을 지켰던 것이다.

안대희 고르고
남재준 내쳤는데


그랬던 청와대가 갑자기 남 전 원장을 내쳤다. 대다수 언론은 ‘남재준 경질’을 ‘읍참마속’으로 풀이했다. 대통령이 직접 구상한 '국가개조'를 위해 청와대 주변부터 인적쇄신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단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남 전 원장을 내친 속내는 조금 더 복잡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같이 살 수 있겠냐'는 속담으로 비유했다. 무슨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퇴 의사를 표명했던 순간부터 남 전 원장의 입지는 흔들렸다. 때는 언론을 중심으로 '책임총리론'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한정된 권력은 중구난방으로 퍼져 한 곳으로 수렴되지 못했고,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요구됐다. 후임 총리로 '특수통' 출신인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던 건 청와대의 이같은 의중이 집약된 결과였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이 공직사회를 쇄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부각됐던 게 바로 남 전 원장의 존재다. 그간 남재준 체제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청와대 전면에서 국정 흐름을 좌우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정국을 몇 차례나 소용돌이로 빠뜨렸던 게 바로 남 전 원장이다.

여러모로 봤을 때 남 전 원장이 버티는 한 안대희 체제의 국정개혁은 여론의 힘을 받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고 남 전 원장이 신임 총리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림은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남은 선택은 양자택일. 장고 끝에 청와대는 '전사형'인 남 전 원장을 자르고, '관리형'인 무난한 인사를 신임 국정원장에 앉히기로 했다. 안 전 대법관과의 궁합이 고려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을 버티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청와대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정권 1등 공신을 내치고 길을 터줬더니 본인만 살겠다고 뒤통수를 때린 격이었다. 고심 끝에 고른 첫 단추가 헝클어지면서 안보사령탑의 공백은 자연스레 길어졌다.  

정치냐 안보냐
청와대 양자택일
 

그런데 문제는 청와대 밖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에 있다. 당장 북한은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의 함정에 포격을 가하면서 한반도 안보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또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솔솔 '북풍'이 불면서 청와대 안팎에서는 "총리 인선은 뒤로 미루더라도 안보라인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 박근혜' 입장에서 보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안보라인을 챙긴다고 해서 어수선한 시국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인 박근혜' 입장에서 생각하면 속이 바짝 탈 수밖에 없다. '선거 전 뭐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조급함이다.

여러 사정상 발표를 미루고 있을 뿐이지 차기 후보군의 윤곽은 어느 정도 가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사자들이 극구 고사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신임 국정원장으로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후보는 이병기 주일대사다. 앞서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낸 이 대사는 외교관 출신이다. 때문에 군부 출신이 요직을 꿰차고 있는 국정원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도 있다. 그러나 이 대사는 악화된 한·일 관계 등을 이유로 국정원장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또 다른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이다. 황 장관은 박 대통령이 믿고 쓰는 검사 출신인데다 '공안통'이어서 '공안라인'이 주도하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과 궁합이 잘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야권에 미운털이 박힌 황 장관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할 경우 자칫 '돌려막기'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정보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는 박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아무나 임명하진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검사 출신이자 안기부 파견 경력이 있는 권영세 주중대사는 '친박'이란 점에서 청와대가 안심할 수 있는 카드다. 그렇지만 권 대사 역시 일단은 청와대의 제안을 뿌리쳤다고 한다.

이도저도 안 될 경우에는 내부발탁 등을 통해 다시 '군 출신'이 국정원장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간 박 대통령이 보였던 인사스타일과 청와대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차기 국정원장 1순위는 정치인에 가까운 친박라인, 2순위는 퇴역한 육사라인이다.

친박라인·육사라인 경합…'PK'로 수렴?
문고리 3인 vs 박지만 가신 막후설 모락

현재 국정원 안에는 한기범(59·행시 29회) 1차장과 김수민(61·사시 22회) 2차장, 김규석(65·육사 29기) 3차장이 각각 포진해 있다. 이중 검사 출신인 김 차장은 '증거조작' 파문으로 옷을 벗은 서천호 전 2차장의 후임으로 지난 5월에야 내정됐다. 만약 내부 영전이 있다면 배제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리고 남은 후보군인 한 차장과 김 차장 중 한 명을 고르라면 나이가 위인 김 차장을 선택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김 차장은 대구 출신이라 PK(부산·경남) 편중인사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TK(대구·경북) 달래기에도 안성맞춤이란 평가다.

국가안보실장 후보로는 김관진 현 국방부장관이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나 김 장관은 북한 무인기 늑장보고 등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반대여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더구나 김 장관의 고향이 전북 전주라는 점 때문에 여권 상당수가 김 장관을 마뜩찮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유력 후보군은 윤병세 외교부장관이다. 윤 장관은 자신의 임기 내내 큰 논란 없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 박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받았고 한다. 특히 국가안보실장은 정세를 읽는 능력 못지않게 청와대로 융화되는 모습이 필요한데 윤 장관의 튀지 않는 성품은 플러스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윤 장관의 경우는 대북 강경론자들 사이에서 군의 생리를 모른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가안보실장 역시 이도저도 안 될 경우에는 내부승진이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부산 출신인 박흥렬 경호실장(육사 28기)의 깜짝 영전 가능성은 적극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박 실장의 임명 가능성을 낮게 보며 PK 편중 인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이 대부분의 인사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충성심이다. 전문성은 그 다음 문제다. 물론 일부 경제 관련부처에서 전문성을 위주로 사람을 뽑기도 했지만 국가안보실장 같은 요직에 어떻게 충성심이 없는 사람을 쓰겠냐는 것이다. 즉 청와대 입장에서는 불안한 탕평인사를 하느니 욕을 먹더라도 권력유지에 유리한 인사를 쓰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인선을 놓고 '청와대 비서진 3인방'과 '박지만 라인'의 권력암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다. 지난 인수위 때처럼 인사문제를 놓고, 양측이 갈등을 빚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안 전 대법관의 사퇴 내막이다. 안 전 대법관은 내정 당시 이영수 KMDC 회장과 동서지간이란 점이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 회장은 박지만 EG회장과 자주 회동을 갖는 등 막역한 사이로 전해진다. '박지만 미행' 사건 때도 함께 저녁을 먹은 이가 이 회장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비록 안 전 대법관은 총리직에서 사퇴했지만 후임 인선을 놓고 막후권력은 언제든 가동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조언이다.

더불어 이들은 국가안보실장이 누가 되든 결국은 청와대를 사이에 놓고 국정원장과 '충성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방대한 인력과 조직, 자금을 갖추고 있는 국정원은 당분간 박 대통령이 사활을 내건 '관피아 색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로 통치하는 박 대통령의 특성상 국정원은 VIP의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이 의무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는 관리대상인 고위공직자들의 정보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는 공직사회의 약점을 쥐고 흔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본인이 싫든 좋든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정원이 건네는 정보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탕평은 없다
충성만 있다
 

때문에 인력이 달리는 국가안보실 입장에선 박심을 사로잡기 위해 비장의 카드인 '안보'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은 상당 부분 업무가 중첩되면서 일대 혼선을 빚었다. 또 김 전 실장과 남 전 원장이 라이벌 관계라는 소문은 양 조직의 실적경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안보실의 기능과 역할을 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따라서 NSC의 위상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현재 NSC 사무처에는 김규현 외교부 1차관(NSC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 겸임)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국가안보실 2차장 겸임)이 포진해 있다. 두 차장 모두 파워그룹과는 거리가 먼 외교라인이라 자칫 국가안보실의 위상이 격하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어찌됐든 국정원과 국가안보실의 충성경쟁은 청와대 비서실과의 관계 설정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개각의 칼바람에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끝까지 살아남은 사실은 청와대 권력구도가 어떻게 되어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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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