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원로 릴레이인터뷰> ⑩대한민국 헌정회 목요상 회장

"정치가 국민 걱정해야 되는데 국민이 정치 걱정"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 여야의 정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4년 대한민국 정치권의 현주소다. 이럴 때 정치 원로의 충고 한 마디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의 빛줄기처럼 반갑다. 길을 잃은 정치권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일요시사>가 준비한 정치 원로들과의 릴레이인터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이번 호에서는 대한민국 헌정회 목요상 회장을 만나봤다.

대한민국 헌정회는 제헌국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정사 66년을 장식해온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가입되어 있는 국가원로단체다. 이런 헌정회를 이끌고 있는 목요상 회장은 판사 출신으로 서슬 퍼렇던 박정희정권 시절 '오적시와 다리지 사건'에서 소신 판결을 내린 일로 판사직에서 쫓겨나 운명처럼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목 회장은 이후 한나라당 원내총무와 국회운영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거쳐 4선 의원을 지냈다. 올해로 팔순을 맞이한 목 회장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정치현안들에 대해 여전히 소신 있고 강단 있는 목소리를 냈다. 다음은 목요상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의 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그동안 헌정회는 어떤 활동을 펼쳐왔는지요?
▲ 아시다시피 우리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입니다. 헌정회 회원 중에는 대통령을 지내신 분, 국무총리를 지내신 분, 장관을 지내신 분, 국회의장을 비롯해 각 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내신 귀중한 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모두 우리나라 민주화와 산업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분들입니다. 국정전반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정회는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귀중한 자산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고견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부나 각계단체에 전달도 하고 세미나도 자주 엽니다. 이외에도 헌정회의 위상제고와 회원들의 복지증진, 친목도모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하며 정작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정쟁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여야 모두 당리당략에 너무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각 당의 지도급 인사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내에서 여러 의견이 분출되면 그 의견들을 하나로 수렴해서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견들이 이곳저곳에 분출되니 여야가 충돌하고 정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현재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들을 걱정해야 하는데 지금 거꾸로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습니다. 정쟁을 막기 위해선 우선 국회선진화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날치기 통과와 폭력국회를 지양하자는 의미에서 선진화법을 만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지금 식물국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익 차원에서 원자력 방호방재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해도 결국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여야를 떠나 민생 법안들을 잘 챙겨야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 한때 민주당에 몸담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국회가 민생과제를 하나도 해결 못하고 정쟁만 일삼다 보니까 구태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새정치를 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새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신당의 출현을 굉장히 반긴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양당이 합당한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니까 새정치가 아니라 구태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들도 (새민련에) 큰 실망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을 합니다.

대통령 잘 하고 있지만 관료들은 '낙제점'
새정치 기대했지만 구태 답습 "실망했다"

- 앞서 언급하신 것처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권에 입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정치권을 구태로 규정하며 비판하기도 했는데 원로정치인으로서 섭섭하지는 않으셨는지요?
▲ 안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할 때는 참신한 인물이었기에 정말 구태를 청산하고 새정치를 만들어 내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국민들이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구태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구태를 뺨치는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안 대표 본인도 냉철하게 자기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요.
▲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로 보낼 때는 국민들 잘살게 해 주고, 바른 정치를 해달라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을 의식해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가를 엄격히 따져봐야 합니다. 해서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정말 저 사람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신뢰를 얻게 됩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 3월 임시 국회에서 민생법안을 처리하려고 했는데 많은 국회의원들이 외유로 빠져나가 제대로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국민들로부터 국회가 불신을 받고, 비판을 받는 원인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 정치쇄신 논의가 나올 때마다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옵니다.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 헌정회 연로회원지원금의 성격부터 엄격히 따져봐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연금이 아닙니다. 과거 이 나라의 산업화,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정치원로들에 대한 보훈적 차원의 최소한의 품위유지비입니다. 우리 회원들은 모두 국가발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퇴직한 후에는 노쇄하여 기력이 떨어져서 일도 못하고, 소득도 전혀 없고 건강은 점점 더 나빠져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파도 병원에도 제대로 못 가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외국에서도 의원연금이나 국비로 퇴직한 의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품위유지비를 지급하고 있는 국가가 많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헌정회 회원들에 대한 예우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어려운 전직 의원을 돕는 것은 동의하지만 지원금 지급 내역을 보면 18억의 자산을 가진 전직 의원도 120만원의 지원금을 똑같이 수급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 헌정회원들이 가진 재산이라는 게 대부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가 유일합니다. 가진 돈이 많은 게 아니고 젊었을 때 마련한 아파트 한 채가 고작입니다. 아파트 시세가 오르는 바람에 자산가치도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바람에 아파트를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세를 놓으려고 해도 잘 안 나갑니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시가가 9억원 이상의 경우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입니다. 수입도 없고 팔려고 해도 안 팔리는데 그런 분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굶어죽으란 이야기와 똑같습니다. 지원금 지급 규정에 보면 소득이 일정액 이상 있는 사람은 지급대상에서 제외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과 균형을 맞춘 것입니다.

- 회장님께서는 박정희정권에서 판사를 역임하며 공안사건에 대해 소신 판결을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십니다. 서슬 퍼렇던 당시 소신 판결을 내리는 데 두려움은 없으셨는지요?
▲ 저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당시 오적시와 다리지 사건을 맡게 됐는데 과연 정부를 비판하고 고위직을 비판한 것이 반공법에 저촉되는 일을 한 것이냐를 소신껏 판단했을 뿐입니다. 김지하씨가 관련된 오적시 사건의 경우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의사회를 구현하자며 정부를 비판한 것이지 김일성이나 북한정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리지 사건도 아무리 검토를 해봐도 쿠데타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때려 부수자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독재를 타도하자는 것이었는데 북한을 찬양하거나 김일성을 찬양한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소신껏 판결을 했던 것입니다.

- 지금은 쉽게 말씀하시지만 서슬 퍼렇던 당시에는 외압이 엄청났다고 들었습니다.
▲ 당시에는 중앙정보부 직원이 법원에 상주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이 사람들이 수시로 내 방에 와가지고 고위층에서 관심 있는 사건이라는 둥, 잘못 처리하면 신상에 안 좋을지도 모른다는 둥 은근슬쩍 저를 굉장히 협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협에 굴복을 해서 죄가 아닌 것을 유죄라고 판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판결을 한 후에는 분명히 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몸조심을 엄청 했습니다. 평소 술을 좋아했는데 싸구려 술이라도 절대 남에게 얻어먹지 않고 차라리 혼자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당시 판결을 문제 삼아 판사직에서 쫓겨났고 서울지역에선 변호사도 못하게 해서 초임지였던 대구로 가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201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간첩증거조작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근 발생한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 사실 사건내용을 소상히 알지 못합니다. 수사기록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우성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간첩활동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입장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은 북한에서 탈북한 북한 주민이 아닙니다. 북한에 살고 있었던 중국 국적의 화교입니다. 그 사람은 탈북자를 가장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금을 불법으로 타내는 등 부정적인 행위를 했고, 서울시청에 들어간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봅니다.

자신의 친여동생이 오빠를 간첩이라고 말할 정도로 뭔가 수상한 행동을 했던 것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사건의 본질은 유우성이라는 사람이 간첩행위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본말이 전도되어 가지고 간첩으로 몰기 위해서 국정원이나 이런 데서 증거를 조작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초점이 쏠려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간첩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문서조작한 사건만 가지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우성씨의 유무죄 여부를 떠나 국가기관이 증거를 조작한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지요?
▲ 물론 문서를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본질은 유우성씨가 간첩이냐 아니냐부터 가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부분을 우선 가리고 나서 간첩이 아니라면 왜 이런 조작을 했느냐를 따지고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남재준 사퇴요구는 너무 과도한 주장"
"정쟁 멈추고 민생법안부터 처리해야"

- 야권에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고 여권 일각에서도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십니까?
▲ 저는 야당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남 원장이 그런 지시를 했다고 한다면 마땅히 물러나야 합니다. 형사책임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남 원장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하직원이 잘못된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안보의 총책을 맡고 있는 사람을 그런 유우성이라는 작은 사람에 대한 문서조작 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한다면 이 나라의 안보문제는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번 사건이 남 원장이 물러날 정도의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


- 최근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가 법안통과의 최종 길목을 막아서고 월권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셉니다. 과거 법사위원장을 지내신 바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국회 법사위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체계정리와 자구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과거 야당 시절에 법사위원장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법사위가 여당의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사위는 너무 당리당략에 치우쳐서 월권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민생 현안 법안들을 쳐 박아 놓고 상정도 안하고 심의도 안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서 요구하는 법안들은 아예 깔아뭉개고 있습니다. 정해진 범위 내에서 권한을 행사 해야지 이것은 맞는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 집권 2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평가해 주신다면?
▲ 저는 박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지금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를 상회하고 있는데 역대 대통령 중에 집권 2년차 지지율이 60%를 상회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지지를 받고 있느냐 살펴보면 외교적으로는 정상회의 등을 통해 국위를 드높였고 우리나라의 존재감도 분명히 각인을 시켰습니다.

대북 관계에서도 원칙을 지켜나가면서도 나름대로 실리를 챙기는 성과를 냈습니다. 대표적으로 개성공단 문제도 원칙을 정해놓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내치에 있어서도 규제개혁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저는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원칙을 정해서 정책을 제시했으면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되는데 거기에 부응하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국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정치권이 선거열풍에 휘말려 민생을 외면할까 걱정입니다. 국민들께서는 이번에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올바른 일꾼을 뽑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8대 국회에서 쇠망치를 들고 회의장의 문을 부수거나 본회의장 의장석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회의장 분위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이, 또 이석기와 같은 인물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정말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려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올바른 일꾼을 뽑아주셔야 합니다. 정치권도 서로 협력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목요상 회장 프로필]

▲ 서울고등법원 판사
▲ 제11,12,15,16대 국회의원
▲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법사위원장
▲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 목요상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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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