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새정치민주연합 김효석 최고위원

"무공천 결정, 선거 유불리 따진 것 아니다"

[일요시사=정치팀] 김명일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0일 6.4지방선거에서 무공천 방침을 철회하고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무공천에 따른 혼란은 해소됐지만 당 일부에서는 국민적 요구인 무공천 철회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번 결정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새정치민주연합 김효석 최고위원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 안철수 대표는 그동안 기초선거 무공천을 강하게 밀어붙여왔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번 철회 결정에 놀란 분들이 많다. 숨겨진 이유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 우선 무공천 '철회'라기보다는 '유보'가 맞다. 무공천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무공천을 약속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선거 공천을 안 하겠구나 모두가 기대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누리당이 뒤집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압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새누리당이 무공천 공약을 철회했다. 한쪽은 공천을 안 하고 다른 쪽은 공천을 하면 민심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그 결과로 약속을 안 지킨 사람들이 어부지리를 얻는 결과도 예상됐다. 새누리당이 국가권력도 독점하고 있고, 의회권력도 독점하고 있는데 지방권력까지 싹쓸이 하는 결과는 막아야 했다. 결국 당원과 국민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계기나 숨겨진 이유는 없었다.

-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기초선거 공천을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무공천을 강행하면 불리하다는 것도 예상됐던 일이다. 그래서 안철수 대표가 "잠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 아닌가?
▲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무공천 공약을 했고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는 실제로 기초선거 공천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방선거도 공천을 하지 않겠구나 믿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마디 사과도 없이 바꿔버린 것이다.

- 안철수 대표는 본인이 무공천을 선언하면 새누리당도 따라 올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인가?
▲ 그렇다.

- 보수언론들에서는 문재인 의원의 무공천 재검토 발언 이후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다며 이번 결정에 친노진영의 압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이런 시각 자체가 너무 정치공학적으로 보는 것이다. 안 대표가 당내 여러 분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런데 무공천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었다. 문재인 의원뿐만이 아니다. 특정한 사람 때문에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전혀 맞지가 않는 말이다.

-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언론이 약속을 안 지킨 사람은 욕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려했던 사람만 욕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기초선거 무공천은 새누리당의 핵심공약은 아니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을 명분으로 합당까지 했고, 몇 달간이나 무공천을 주요이슈로 다뤘다.
▲ 무공천은 대선기간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한 공약이다. 또 지난해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실제 무공천을 했다. 무공천이 핵심공약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합당하면서 무공천을 대표적으로 내걸기는 했지만 새정치 정신에 동의해서 한 것이다. 기본 정신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약속을 못 지킨 것은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대표가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


- 무공천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설문 문구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부터 무공천 결정을 철회할 목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는데.
▲ 처음부터 무공천을 목적으로 한 것 같으면 안 대표가 "나는 지금도 무공천이 소신"이라는 이야기를 안 했을 것이다. 어떤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은 조금도 없었다. 설문 문구는 현재 상황을 그대로 설명한 것이다. 오히려 무공천으로 결정됐다면 안 대표의 체면은 훨씬 더 섰을 것이다. 설문 문구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문구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 합당 후 민주당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비례대표 지역구 출마 금지' '최고위원제 폐지' '정강정책 수정' 등의 개혁안이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대표적인 것이 정강정책이다. 정강정책에서 우리는 안보에 상당히 무게를 뒀고,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기존의 민주당과 비교해 성장에 좀 더 무게를 뒀다. 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로 가되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경계한다는 부분 등은 민주당이 과거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번에 우리 의견을 상당부분 받아들였다. 앞으로 민주당을 얼마나 달라지게 만드느냐는 이런 부분들을 얼마나 실천해나가느냐 하는 문제다.

- 지방선거 공천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런데 기초단체장 평가항목이 광역단체장 후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 등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 광역단체장에 대한 심사는 이미 끝나 있었다. 이미 다 결정을 한 부분이다. 다만 기초단체의 경우 (무공천 철회 결정으로) 공천을 하게 되니까 새롭게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 그렇다면 7월 재보선에서는 이번에 마련한 공천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것인가?
▲ 그건 또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약속 대 거짓' 프레임 여전히 유효
새누리당 지방권력 싹쓸이는 막아야

- 최근 정청래 의원의 북한 무인기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민감한 시기에 왜 자꾸 자책골을 넣는 것이냐며 답답해하는 분들도 많다. 당 차원에서 종북 논란과 선을 그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정청래 의원의 발언은 결과적으로는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더구나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에서는 그런 것을 종북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빌미를 제공해준 꼴이다. 설사 이의제기가 옳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각자 헌법기관인데 미리 단속을 하거나 징계를 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국회의원 개개인이 심사숙고해서 발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 이후 김한길 대표는 정청래 의원에게 구두 경고를 했다.)


- 새누리당은 자꾸 종북 프레임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흔들고 있는데 종북 프레임을 차단할 전략은 무엇인가?
▲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한마디로 낚이면 안 된다. 종북 공격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먹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도 발언과 행동에 상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이제 새정치민주연합도 기초선거 공천을 실시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한 만큼 부실공천의 우려도 있다.
▲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틀림이 없지만 밤을 새워서라도 심사를 잘 해서 개혁 공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 개혁 공천으로 기초단체 정치인들이 중앙정치에 예속된다든지, 기존 국회의원들이 공천과정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려고 한다든지 이런 부분을 철저히 막도록 하겠다. 늦긴 했지만 공천과정을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 이번 결정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내세워왔던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이 깨졌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내세울 선거 전략이 있다면?
▲ 저는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려고 해왔던 것이고 불가피하게 약속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수많은 약속을 어겼다. 경제민주화부터해서 총리에게 장관 제청권을 다 주겠다든지, 장관들에게 산하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다 넘겨주겠다든지, 또 여야 구분 없이 좋은 인재를 골라서 탕평인사를 하겠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좋은 공약이 많았다.

그런데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복지 공약은 재원 때문에 속도조절을 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공약들은 왜 지키지 않는 것인가? 우리 당은 약속을 지키려 했는데 새누리당이 동참하지 않아 못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랑 나랑 똑같다고 물타기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은 유효하다고 본다.

- 약속 대 거짓의 프레임을 꺼내들 때마다 보수진영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민주당은 왜 세비 30% 삭감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면 지킬 수 있는 것인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것 아닌가?
▲ 제가 기억하기엔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가 꺼낸 이야기지 대선 공약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민주당은 지난 2012년 12월1일 문재인 후보가 참여한 가운데 특별의총을 열고 세비를 30% 삭감하는 정치혁신안을 통과시켰다.)

- 문재인 의원이 최근 '박근혜정부 심판론'를 제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심판론이 제대로 먹히겠느냐는 비관론도 있다.
▲ 지방선거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로 생활정책 아젠다로 승부해야 하고, 또 하나는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방선거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 다들 꺼려한다. 현재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우리에게 불리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부분이나 국정원 문제라든지, 안보무능이 심각한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 야당이 국민들에게 알리고 여기에 대해 견제할 힘을 달라고 읍소해야 된다. 이렇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이런 부분들을 언론이나 야당들이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무공천 철회 결정이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기초선거 몇 석은 더 건질지 몰라도 광역단체장 선거에는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 무공천 철회 결정을 하면서 선거에 유리할 것인가 불리할 것인가 하는 점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이제 국민들이 느끼기에 "너희들의 마음을 알겠다. 하지만 이렇게 불공정하게 가면 안 되지 않느냐 너희들도 1:1로 제대로 싸워봐라" 이런 요구로 받아들인 것이지 유불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간에 기호 2번을 달고 당당히 싸울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mi737@ilyosisa.co.kr>


<김효석 최고위원 프로필>

▲ 제11회 행정고시 합격
▲ 중앙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
▲ 제16,17,18대 민주당 국회의원
▲ 민주당 원내대표
▲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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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