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현대판 청백리'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5: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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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 버리고 떠난 아름다운 뒷모습

[일요시사=경제1팀] 동네 편의점에서 만난 아저씨가 대법관이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얼마 전 퇴임한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아내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퇴임 시 공언했던 대로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간 것. 이런 신선한 행보에 정치권과 누리꾼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




대법관을 지낸 김능환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퇴임 후 일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퇴임 첫날인 지난 6일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 상도동 한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편의점 계산대에서 손님들의 물건 값을 계산했다. 짙은 청색의 등산 점퍼와 펑퍼짐한 갈색 바지, 연보라색 목도리 등 영락없이 '동네 편의점 아저씨'를 연상케 했다.

'공짜 사탕'건네고
물건값 깎아주기도

김 전 위원장은 할머니와 함께 껌을 사러 온 꼬마에게 '공짜 사탕'을 건네고 막걸리를 계산하는 노인에게는 돈을 깎아주기도 했다. 취재차 편의점을 방문한 기자들이 구입한 음료수를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하기도 했다.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은 김 전 위원장을 편하게 대했다. 손님이 없을 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책을 읽는다.

김 전 위원장이 편의점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부인이 편의점을 차린 뒤 그는 주말에 시간을 내 편의점 업무를 틈틈이 배워왔다.

부인 김문경씨도 김 전 위원장과 함께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를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해 7월 대법관을 퇴임하자 김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냈다. 채소가게는 편의점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겨울이라 채소 가게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 채소가게 이름은 김 전 위원장의 아이디어로 부인의 영문이름 이니셜을 따 'K·M·K 야채 가게'로 지었다. 채소가게는 이달 말 쯤 다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5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여러분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서 있다"며 "그동안 선관위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거나 발전한 게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여러분이 노력한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의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 것이다.

또한 그는 선관위를 떠나면서까지 앞으로의 선관위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에 ▲선거관리와 관련하여 조사권을 보다 더 엄정하게 행사할 것 ▲모든 선거절차에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여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것 ▲정치관계법률과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 ▲유권자의 선거제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투표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등을 당부했다.

퇴임 첫날부터 평범한 소시민 일상 화제
부인 편의점서 일…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앞으로 거취에 대해서는 "당분간 공직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내의 가게를 도우며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김 전 위원장이 부인이 운영하는 한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에서 참다운 공직자의 모습을 본다"고 밝혔다. 허 부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전관예우'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며 "함량 미달의 장관 후보자들 속에서 군계일학 같은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1951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 17회에 합격, 육군 법무관을 시작으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80년 전주지법 판사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가정법원, 서울지방법원 부장 판사를 거쳤다. 2006년에는 법관 최고 영예인 대법관으로 임명, 2011년 2월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했다.

취임 이후 지난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등 가장 중요한 선거를 무난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대선 정국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서운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립 입장을 유지해 주목을 받았다.


"가장 뛰어난 법관"
노 전 대통령 극찬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3억원을 전달한 혐의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영희 의원을 지난해 8월 검찰에 고발했으며 9월에는 총선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홍사덕 전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선을 불과 6일 앞둔 12월13일에는 당시 박근혜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로 의심되는 서울 여의도 오피스텔을 급습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대선이 끝난 지난 1월 사의를 표했으나 후임 선관위원장이 정해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

김 전 위원장은 '청백리'로 유명하다. 위원장 재직시절 김 전 위원장은 곧잘 '선비'에 비유되곤 했다. 항상 "아래 직원과 똑같이 하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위원장실에 난방이 켜져 있으면 "직원들은 추위에 고생하는데 나만 특별대우 하지 말라"며 난방을 끄게 했고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는 "내가 다 뜻이 있다"며 개인 카드로 결제했다.

매달 직위보전비로 받은 400여만원은 모아 직원들 격려금에 쓰곤 했다. 명절이나 큰 선거를 치른 뒤 회식비로 쓰게 하거나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격려금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인 김 전 위원장은 2006년 대법관 청문회 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동네에 책방 하나 내고 이웃 사람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해주면서 살고 싶다"고 밝혔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은 '가장 뛰어난 법관'이라고 극찬한바 있다.

"고위직 출신이 이럴 수가…"
정치권·누리꾼 일제히 찬사

2011년 10월 재·보선 때는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 후 선관위 직원이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자 김 전 위원장이 변호사 선임비용 800만원을 사비로 지원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직무유기죄로 기소됐는데 국가 예산으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못하게 해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가혹하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알고보니 김 전 위장이 몰래 변호사비를 지원했던 것이다. 총무부서를 통해 돈을 전달하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전 위원장의 재산은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대법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꼴찌는 이번에 신임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인복 대법관(4억9760만원)이다. 김 전 위원장의 재산은 9억5617만원으로 송파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와 전세권 하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이 없다. 퇴임식에서는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직접 몰고 선관위 청사를 떠나기도 했다. 임직원들에게는 "세금을 들여 공로패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선관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선관위 직원들이 공로패를 만들어 전달하려 하자 "선관위 예산에서 비용을 대는 것 아니냐"며 "국민 세금으로 왜 그런 일을 하느냐"며 만들지 못하게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선관위 공보실을 통해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 중의 하나로 모든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자리이자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지에 대해 늘 감시해야 하는 자리"라며 "어떻게 그런 자리에 있던 사람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아 행정부를 관할하는 총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후배 법관들이 꼽은
'법조계의 모범인'


김 전 위원장은 대법원 선임·수석 재판연구관 등을 두루 거치며 민·형사, 조세, 행정 등에 대해 전문적 법률지식을 갖췄고 함께 근무한 후배법관들이 본받고 싶은 '법관의 모범'으로 꼽는다.

1982년 고교 교사 9명이 좌경의식화 교육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된 '오송회' 사건에서 6명에게 선교유예, 3명에게 징역 1∼4년의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등 국가보안법 적용에 관대한 시각을 보였다.

또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 김현장씨가 "보호관찰처분 연장을 취소해 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범 위험성이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001년 국가가 노태우 전 대통령 동생 재우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재우씨가 형에게서 받은 돈으로 구입한 아파트 등을 국가에 내놓겠다고 검찰에 약속하고도 나중에 시효가 지났다며 거부한 것은 신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120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같은 해 반국가단체 구성 등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영남위원회' 사건과 관련해 8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특별사면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심의자료 공개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정치적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국민의 비판 대상이 돼야 한다며 정보공개판결을 내렸다.


연구실적 부진을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서울대 미대 조교수 김민수씨가 낸 교수 재임용 거부처분 취소소송 파기환송심에서는 "연구실적 심사는 주관이 반영돼 결론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실적 2편이 동시에 기준을 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사위 의결에 따라 재임용하지 않은 학교 측 처분은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며 "2편이 기준을 통과할 때까지 실적을 제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김씨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2005년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갖게 된 손모씨가 '병역의무가 생겼다고 해서 국적 포기를 제한한 것은 부당하다'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항소심에서 "이중국적 병역 의무자가 만 18세가 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 병역 의무를 지게 됐다면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중 국적 병역 의무자의 국적포기 제한조치는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공직 생각 없다"했는데
정부·정계 러브콜 잇따를 듯

울산지법원장 재직 시절에는 법원 내 연구모임인 '민사집행법연구회' 회장을 지내며 법관과 법원직원들의 대표적 실무지침서인 <법원실무제요 강제집행편>과 <주석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등을 공동 집필했다.

병역문제에서도 깨끗하다. 김 전 위원장 본인은 법무관으로 만기전역했고 2남 가운데 큰아들도 공군 사병으로 전역했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한 김 전 위원장의 모습을 접한 국민들은 "퇴임 후 행보가 아름답다" "퇴임공직자의 모범이 될 만하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자연스레 행정안전부에서 추진 중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공개하는 방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행안부는 또 그간 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던 변호사·회계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공직자들도 심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청문회 과정에서 전관예우 관행이 논란이 되는 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자 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조치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국가·지방직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은 퇴직 전 5년간 몸담았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민간기업에 취업할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행안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심사결과를 공개하고 같은 퇴직공직자라도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세무사 등 자격증을 가졌을 경우에는 심사 대상이 아닌 현행 예외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현재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 등 11명 등이 발의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행안부는 유정복 신임장관이 임명되는 즉시 태스크포스를 꾸려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형 로펌 거부
"당당한 퇴임길"

김 전 위원장은 지금이라도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1억대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대형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고위 법관이든 관료든 공직을 떠나기가 무섭게 돈과 명예를 찾아가는 요즘, 김 전 위원장 만큼은 지금의 소박한 삶처럼 조금은 다른 길을 가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김능환은?>

▲충북 진천 출생
▲경기고-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제17회 사법시험 합격
▲전주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 법원장
▲대법원 대법관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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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