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 생명 주고 떠난 김창민 감독

비참한 죽음 뒤 충격적 사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난 한 영화감독의 죽음 뒤에, 충격적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단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그의 죽음은 ‘집단폭행’으로 인한 억울한 희생이었다.

고 김창민 감독은 지난해 11월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기증을 통해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을 나누고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선택에 깊은 감동을 표했지만, 그가 왜 뇌사 상태에 이르렀는지는 한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질질 끌고
다니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망 약 5개월이 지난 뒤였다. 김 감독이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다른 손님들과의 시비 끝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특히 당시 현장에는 아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충격은 더욱 커졌다. ‘아이 앞에서 벌어진 집단 구타’라는 점에서 공분이 확산됐다.

비극은 지난해 10월20일 새벽,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의 한 24시간 식당에서 벌어졌다. 김 감독은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유가족에 따르면 아들이 갑자기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해 늦은 시간에도 운영하는 식당을 찾은 것이었다. 평범한 외식이었다. 하지만 식사 도중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인근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일행과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일단 상황은 한차례 가라앉는 듯했지만, 식당 밖에서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다시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후 김 감독이 자리로 돌아와 식탁 위에 있던 식사용 나이프를 집어 드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일행이 이를 제지하며 충돌이 격화됐고, 결국 폭력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은 상대 일행에게 주먹으로 가격당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공개된 폐쇄회로(CCTV) 영상과 목격자 증언은 사건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상 속 김 감독은 여러명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위협을 받는다.

한 남성이 뒤에서 목을 조르는 이른바 ‘백초크’를 걸었고, 김 감독은 식당 안에서 이미 의식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에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김 감독이 두 손을 들며 저항하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해자들은 그를 강제로 끌고 이동했다.

CCTV 사각지대로 향하는 동안에도 폭행은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김 감독은 골목까지 약 10m가량 끌려간 뒤에도 주먹과 발로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쓰러진 이후에도 폭행이 이어졌다. 김 감독이 뒤늦게 의식을 되찾은 뒤 “그만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에는 최소 4명에서 많게는 6명 이상의 일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목격자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둘러싸고 일방적으로 제압하는 수준이었다”고 증언했다. 더 충격적인 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일부 일행이 이를 말리기는커녕 웃거나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결국 김 감독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졌고, 약 1시간이 지난 뒤에야 병원으로 이송됐다. 폭행 직후 쓰러진 김 감독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지지 못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사건 현장 인근에는 대학병원이 있었음에도, 실제 이송까지 약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아들 앞에서 벌어진 ‘집단 폭행’
현행범인데 귀가…부실 수사 논란

그 사이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119구급대에 의해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김 감독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의료진은 곧바로 중환자실로 이송했지만,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외상성 지주막하출혈, 즉 뇌출혈이었다.

유가족은 “조금만 빨리 병원에 도착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며 골든타임을 놓친 점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사건의 참혹함은 이후 공개된 응급실 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사진 속 김 감독의 눈두덩이와 콧등, 관자놀이 곳곳에 검붉은 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왼쪽 귀 안쪽에는 피가 고여 있었고,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 사진은 당시 병원으로 급히 달려온 아버지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감독의 아버지 김상철씨는 “의식이 없는데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며 “억울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통도 느꼈을 것이고, 아들 걱정도 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치명적 구타의 흔적이었다.

김 감독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사고 약 보름 뒤인 11월7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기적을 기대했지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유가족은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장기간 연명 상태를 유지할 경우 장기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김 감독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것이다. 그의 심장과 간, 양쪽 신장은 각각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됐다. 총 네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가족들은 “본인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사람”이라며 그의 생전 성격을 떠올렸다. 김 감독과 함께했던 지인들도 비슷한 기억을 전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한 목사는 “자신이 힘들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했던 사람”이라며 “누구에게든 100%를 내주던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비극적인 죽음이었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은 또 다른 삶을 이어주는 결정이 됐다.

김창민 감독은 오랜 시간 영화 현장에서 묵묵히 경력을 쌓아왔다. 2013년 영화 <용의자>에서 소품 담당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대장 김창수> <마약왕> <마녀>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소방관> 등 다수 작품에서 작화팀으로 참여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연출자로서도 활동했다. 2016년 단편 <그 누구의 딸>로 경찰 인권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구의역 3번 출구>를 연출했다. 특히 <그 누구의 딸>은 성범죄자의 딸이 사회적 시선을 피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주목받았다. 그는 연출자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점에 있었다.

골든타임 놓쳐
범인도 놓쳐

유작이 된 작품 <회신>은 전주국제단편영화제와 서울한강국제영화제 상영이 예정돼있었지만, 고인은 영화제 측 처우에 문제를 제기하며 상영 철회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해당 작품은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유가족은 “오랜 시간 힘들게 버티며 기반을 쌓아왔고, 이제 막 인정받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며 “완성된 시나리오도 여러 편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감독 죽음의 진상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사건 당시 경찰의 수사와 대응이 부실했다는 것이다.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 있던 가해자들을 즉시 체포하지 않았다. 대신 인적사항만 확인한 뒤 귀가 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피해자인 김 감독이 스스로 구급차에 올라탔다는 이유 등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현장에는 폭행 장면이 담긴 CCTV가 존재했음에도, 초기 대응은 그 심각성에 비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의 핵심 쟁점은 ‘가해자 특정’ 과정이다. 경찰은 사건 직후 확보한 식당 내부와 인근, 골목 CCTV를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에는 단 한 명만 가해자로 특정해 입건했다. 하지만 이후 공개된 영상과 유족 측 주장,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는 최소 4명에서 많게는 6명 이상의 일행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CCTV에는 김 감독이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목이 졸린 채 끌려가는 장면까지 담겼다. 그럼에도 경찰은 초기 수사에서 일부 인물에 대해 “싸움을 말렸다”는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명백한 집단폭행을 단독 범행으로 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검찰이 보완 수사를 요구하면서 경찰은 재조사를 진행했고, 그제야 또 다른 인물이 가해자로 추가 특정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입건된 인원은 2명에 그쳤다. 유족 측은 “CCTV상 최소 6명이 있었는데도 단 2명만 입건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일행은 김 감독을 둘러싸고 위협하거나 폭행 상황을 방조한 정황이 있음에도, 공동상해 또는 방조 혐의 적용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 측 변호인 역시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음에도 다른 일행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라고 지적했다.

“양아치
같은 놈”

심지어 초기 수사에서 피해자인 김 감독이 ‘특수협박 혐의’로 입건됐던 사실도 논란을 키웠다. 경찰은 김 감독이 식당에서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는 종업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사건 초기에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판단했다.

물론 이후 폭행의 강도와 결과가 명확해지면서 사건의 중심은 가해자 쪽으로 옮겨갔지만, 수사의 시작점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가해자들에 대해 여러 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를 요구하며 일부 영장을 반려했고, 이후 법원은 두 차례 모두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특히 법원은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 자체가 구속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약 5개월 만에 가해자 2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이 직접 움직였다.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은 사건을 넘겨받은 뒤 형사2부장을 팀장으로 검사 3명, 수사관 5명으로 구성된 전담 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과학수사 기법과 의학적 분석을 포함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초기 수사의 미흡이 있었다”며 “실체적 진실을 밝혀 가해자들이 엄정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건이 알려지며 여론이 크게 들끓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사건 이후 힙합 음원을 발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해당 곡에는 “순수했던 나는 없어졌어 벌써” “양아치 같은 놈이 돼” 등의 가사가 담겨있었고,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 특히 이 음원이 고 김창민 감독 사망 약 4~5개월 뒤 발표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반성은커녕 상황을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음원은 일부 플랫폼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들의 사건 이후 행적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주민들과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사건 이후에도 별다른 제약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1시간 이송 지연 ‘뇌사 판정’
장기기증 4명 살리고 떠나

한 명은 배달 업체 운영을, 또 다른 한 명은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헬스장에 나타나 운동하거나 러닝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는 “문신 때문에 평소에도 눈에 띄던 사람들인데 사건 이후에도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온라인상에서는 가해자들의 발언을 둘러싼 주장까지 확산됐다. 일부는 가해자가 주변에 “한 대 치니까 쓰러지더라” “내 주먹 아직 녹 안 슬었다”는 식의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공분이 커졌다.

가해자들의 신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조직폭력배 연루설도 제기됐다. 일부에서는 특정 조직 소속이라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한 매체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해당 조직과 가까운 관계일 뿐 실제 조직원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유족의 분노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 감독의 아버지는 방송을 통해 “지금까지 전화 한 번 없고 사과 한마디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편 가해자 중 한 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뒤늦게 사과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김창민 감독님과 유가족에게 죽을 죄를 지은 것을 안다”며 “유가족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수사기관을 통해 여러 차례 사과와 합의 의사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신문조서에도 관련 내용이 기록돼있을 것”이라며, 직접 사과할 기회를 얻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이어 “어떤 말로도 유가족의 상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지만, 고인을 해할 의도는 없었고 싸움을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면서도 “지금은 유가족의 아픔을 고려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유족 측의 입장은 달랐다. 유족은 “언론을 통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직접 연락이나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연락처를 몰랐다는 설명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며, 가해자가 실질적인 사과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가해자들과 유족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문제는 가해자들이 불구속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족은 “가해자들이 여전히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어 가족들이 극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결국 경찰은 유족 보호 조치로 긴급 호출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버튼을 누르면 위치 정보와 함께 즉시 신고가 접수되는 장치지만, 유족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제서
사과를?

특히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당시 현장에 김 감독의 발달장애 아들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검찰은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아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듣기로 했다. 경찰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던 조사다. 의사 표현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피해자 측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해 취한 조치로 풀이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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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5월9일 이후 파장

‘폭풍전야’ 5월9일 이후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SNS에 적었다. 지난 1월 다주택자 관련 글을 쓰면서 한 말이다. 이제 그 말의 결과가 곧 나온다. 부동산 가격은 매매자의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다양한 이유로 바뀔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 쉽게 휩쓸린다. 부동산 시장에 작은 불씨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큰불로 번지는 이유다. 부동산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전문가는 저마다 원인을 분석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정권 흔드는 집값 이슈 그럼에도 부동산 문제는 정부가 손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내 집 마련’이라는 DNA를 갖고 태어난 듯 부동산을 꼭 가져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에 집중돼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집값은 집을 가지고만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오른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재명정부는 부동산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부동산으로 몰리는 돈을 주식시장으로 돌리는 이른바 ‘머니 무브’를 꾀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코스피 지수 5000’을 목표로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모두가 허황한 소리라고 말했지만 지금 그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코스피 지수는 이재명정부 들어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전쟁 리스크까지 뚫는 기세를 보였다. 지난달 28일 기준 코스피 지수는 6641.02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6712.73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중동발 전쟁 여파로 하락세를 보이던 게 종전 기대감으로 상승장에 진입한 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양새다. ‘주식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투자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촉구하면서 부동산 정책을 함께 내놨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은 거주 공간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투기 수요를 잡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정책을 펼쳤다. 돈줄을 묶고 공급을 확대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잠재우려 한 것이다. 이정부는 지난해 6월27일 수도권과 규제 지역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의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택 매매 전후로 세입자를 구하는 ‘갭 투자’를 막기 위해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주담대를 받을 수 없도록 사실상 금지했다. 9일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이, X에 언급→정부, 정책 발표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는 평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6·27 대책에 대해 공급 없이는 잠깐의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의 열기를 당장은 가라앉힐 수 있어도 장기적인 안정세로 이어가긴 어려우리란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7일 이정부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해마다 신규 주택 27만호 착공 등 2030년까지 총 13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집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정책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여러차례 다주택자 관련 글을 올렸다. 지금까지 다주택자가 받던 세금 유예 조치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다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게 손해라는 인식을 심으려 한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팔 때 양도세 기본세율(6~45%)에 2주택자는 20%포인트, 3주택 이상 소유자는 30%포인트를 가산하는 제도다. 문재인정부에서 이 세율로 시행하다가 윤석열정부가 주택 거래 활성화 취지로 2022년 5월부터 1년씩 유예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X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재연장하는 법 개정을 또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다주택자에 관한 보수 언론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겠다는 수십만 다주택자의 눈물이 안타까우신 분들께 묻는다. 이들로 인한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은 안 보이느냐”고 일갈했다. 지난 2월12일 다주택자 관련 정부 정책이 발표됐다. 이날 조만희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를 현재 예정된 일몰 기한인 2026년 5월9일 종료한다”고 최종 발표했다. 다만 임대차 상황에 따라 양도세 중과 적용과 토지거래허가제상 실거주 의무를 일정 기간 유예한다고 예외를 뒀다. 예정된 기한에 종료하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정책 내놔도 계속 올랐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에도 다주택자 관련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집을 여러 채 가진 공직자도 표적이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주택과 부동산 정책의 논의·입안·보고·결재 과정에서 다주택자, 비거주 고가 주택 소유자, 부동산 과대 보유자를 배제하도록 청와대와 내각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이들을 업무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X에 “부동산이나 주택 정책에서 단 0.1%의 결함이나 구멍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집값 폭등으로 이어진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이력이나 이후 정책 수정 노력 등을 따져 보고 이 과정에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투기적 주택 구입 등을 한 공직자를 찾아내 관련 업무를 할 수 없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의 정책 설계에 참여하면 제도가 왜곡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서류를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라면 다 빼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회의 과정에서 다주택자 공직자를 부동산 정책 설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내용을 점검하면서 나온 말이다. 이 대통령은 “거기에 이해관계가 절대 침투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기안 용지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는 안 된다”며 “철저히 준비를 잘해주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주택자를 위한 퇴로도 조금 더 열어줬다. 지난달 21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오는 9일까지만 토지거래 허가 신청을 완료하면 양도소득세 중과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확정됐다. 종료 당일까지 주택 매매계약을 위한 토지거래 허가를 신청하면 유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장도 다주택자에 대해 언급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파는 대신 자녀에게 편법으로 증여하는 사례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경고했다. 예상 밖의 시장 흐름 그는 지난달 29일 X에 “혹시라도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 증여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다주택자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주택을 증여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실제 올해 1분기 서울 주택 증여는 3075건으로 전년보다 94.4% 증가했다”고 통계를 언급했다. 임 청장은 정당한 증여는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같은 사례들에서 증여세가 제대로 납부되고 있는지 의문을 드러냈다. 다주택자가 10억원에 사들여 10년 동안 보유한 시가 30억원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를 기준으로 세금을 비교하기도 했다. 임 청장은 “(이 아파트를) 양도하면 차익이 20억원인데 중과 유예 종료(오는 9일) 전에 양도하면 세금이 6억5000만원이다. 반면 증여하면 13억8000만원으로 2배 넘게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내면 양도가 증여보다 세 부담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증여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인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증여 과정에서 세금을 다 내고 있는지에 의심을 표한 것이다. 대통령의 거듭된 언급, 정부 정책, 국세청장의 경고에 다주택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 상황에서는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굳이 지금 팔 필요가 있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열흘 정도 앞두고 매물이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종료가 이뤄지면 다주택자들이 내놨던 매물까지 거둬들여 집값이 요동칠 가능성도 나온다. 매물 나오길 기대했지만… 관망세 들어가면서 감소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한 달 새 25개 자치구 모두 감소했다. 다주택자를 압박하면 매물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상황과 다른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7만2699건으로 한 달 전보다 5.9% 줄었다. 매물은 이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압박하기 시작한 2월 이후 늘기 시작해 지난 3월21일 8만건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지난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감소 폭은 중랑구(-16.9%), 강북구(-13.3%), 노원구(-13%)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 컸다.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도 각각 8.6%, 4.9% 매물이 감소했다. 매물 감소는 집값 상승의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셋째주(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1%, 전세 가격은 0.22% 올랐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주인들은 굳이 팔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관망세로 돌아섰고 매수자는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생각에 매물을 살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세입자의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전세 세입자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미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는 보증금 상승을 걱정해야 하고, 전세로 살길 원하는 세입자는 씨가 마른 매물 앞에 속수무책 상태다. 전세 세입자 불똥 튀나 전세 매물이 줄어들면서 덩달아 월세가 폭등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집을 사고자 하는 매수 심리를 자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은 없는데 수요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가격은 상승한다. 정부의 정책 의도와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파장이 큰 이슈다. 이재명 정부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jsjang@ilyosisa.co.kr>